아침이 되었다.
나는 이제 출근해야 한다.연희도 출근 할것이다.
이제 다시 나는 연희의 상상하기도 벅찬 그 엉덩이를 볼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매일같이 그녀의 창문가에 지켜서서 그녀를 살펴 본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단지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엄마가 아침 먹으래."
연희방 창문이 열렸다.
"뭘봐?"
연희는 옷을 갈아 입는 중이었고 애석하게도 부라우스의 단추를 잠그는
중이며 그 아래로 창문 열면서 살짝 보여준 속옷만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창문을 열고 그리고 그녀의 커텐으로 몸을 가리고 고개만 삐죽 내민
그녀의 모습이 나를 어떤 상상의 세계로 몰고 간다는 것을 연희는 알 지 못
한다.
나는 옆집 여자가 창문을 열고 옷을 벗는 습관에 대해서 항상 유쾌해 했다.
지금 같은 세상에 어떤 여자가 항상 창문을 닫는 것을 잊을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가 밥을 할때 볼륨을 8로 맞추고 오토리버스로 듣다 까마득하게
잊어 버린 그런 잊어 버리다란 의미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보지마! 보지 말란 말야!"
연희가 악을 쓴다.차라리 창문을 닫지.
"절대 보면 안돼."
연희는 내게 절대란 단어를 붙이고 돌아 서서 치마가 걸려 있는 곳으로
갔다. 약 일초 정도의 시간이지만 돌아서면서 가렸던 커텐이 반듯하게 흘러
내렸다.
내가 연희와 다른점 중 한가지는 바로 이것이다.
나는 절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믿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연희가 옷을 갈아 입고 다시 창문으로 나와서 이번에는 베란다로 나와 내방
베란다로 움직였다. 차라리 치마를 입지 말 것이지. 연희는 딱 한번 좌우를
돌아보고는 아슬아슬한 치마길이를 만들어서 내 방 베란다를 넘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다.
"보지 말라지까 봤지? "
"뭘.."
"안봤어? 알았어. 엄마가 밥 다했데.같이 내려 가자."
봤다라고 말 안하면 끝까지 안 본걸로 생각하는 여자.
그래.
커텐이 내려질때 아주 살짝 보였던 것은 분홍색 꽃무늬 였다.
나와 연희는 주말이 되도록 서로 바쁜 관계로 만날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연희가 나가는 곳은 의상실이다. 연희는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
고 잘 노는 그런 애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의상과를 나와서 결국 취직을 한
곳이 의상실인데 여러분은 그냥 조그만한 동네 의상실을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의상실은 세평 안팎으로 아주 작은 것에 비해서 그 건물의 이층에는
백평정도의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네 수공업이다.
연희는 디자이너는 아니다. 의상과를 나아서 몇이나 일류회사의 디자이너
가 될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연희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일명 말하
는 빽과 유학파만이 누릴 수 있는 직함이 디자이너라는 것이다. 그래서 연
희가 생각한 것이 바로 재단이었다.
혹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재단이라 함은 양복점에 가면 이곳 저곳 치수를
재고 그리고 재단을 하는 재단사를 생각하는데 물론 재단사는 그런 사람이다.
단지 여기서 연희가 재단을 선택한 것은 연희가 유학을 갈정도로 돈이 없는
집안의 딸이었기 때문도 아니고(사실상 연희네는 부자다. 서울 갑부는 아니
라 하더라도 외동딸 연희를 유학 보내고 용돈을 주고 오렌지를 만들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그런 집인 것이다.) 디자인에 흥미가 없다거나 아니면
재능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하나. 재단사가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사실때문이었다. 돈 많은 집 딸이 돈, 돈 한다면 약간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연희는 자신의 돈과 부모님의 돈을 확실히 구분지을 줄 아는 여자
였고 그리고 자신이 번 돈을 남자를 사랑하는만큼 사랑하는 여자였다.
재단은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디자인은 어디 어
느 곳 유학이라는 이름이 붙어야 하지만 재단은 어느 곳에서든 삼년만 일하
면 이곳 저곳에서 어서 오십시요라고 고개를 숙이고 모셔 가려고 하기때문
이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 해외 유학파 디자이너 보다 받게 되는 월급이
더 많아 지는 것이었다.
연희가 말해준 그녀를 가르친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자신은 유학가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고생해서 왔는데 중학교나 고등학교만 나와 재단을 배워
자신과 동갑인 사람보다 버는 돈이 조금이라고 한탄하셨다고 한다.이정도면
재단이 생각보다 벌이가 좋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 수 있을것이다.
저녁이 되었고 나는 연구소 일을 마치고 돌아 왔다.
연희는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그녀의 방은 어둠이었다. 그녀의 체중계도
그녀를 살짝 가려주던 커텐도 그 의식을 잃고 연희가 돌아와 생명을 불어
넣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내 책상 내 자리에 앉아서
가끔 고개를 돌리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내 방 창가에서 삶 그 자체인 연희를
기다리는 중이다.
닫혀진 창문이 열리는 아름다움.
그것을 단 한번이라도 경험한적이 있는가?
열린 창문 사이로 여자의 모습이 드러나는 그런 황홀감.
그러나 지금 창문은 닫혀 있고 여자도 없다.
나는 내 방 창문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그 창문으로 들어 올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밤 11시가 다 되어 가자 연희의 모습이 보였다.
이젠 여러분들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연희의 모습이 보였다라고
한다면 상상할 수 있는 장면. 연희의 키스신.
어제보다 약간 작아 보이는 키에 적당히 잡힌 균형감 있는 체구를 지닌
남자였다. 새로운 사랑. 새로운 남자.
"짜잔..뭐했어?"
연희가 창문을 통해 들어 왔다.
"있잖아. 오늘 만난 남자. 봤어? 난 석우가 보기를 바랬는데... 그런데 하여간
나 정말로 사랑에 빠질 것 같아. 약간 달기도 한 것 같은데 아직은 모르겠어."
"짜릿했어?"
"짜릿? 으응... 아니..그렇지는 않았어. 하지만 어차피 짜릿한게 세상에
있는지나 모르겠어. 난 한달에 남자가 몇이나 바뀌어도 단 한번도 짜릿하다
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걸 뭐. 차라리 아무런 맛도 못 느끼는게 더 좋을지
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거 있지? 그리고 아까 만난 그 남자가 바로 그런
것 같아. 그래..조금 달기도 한 것 같아. 하지만..."
연희가 달다고 말하는 것은 제비족일 확률이 높다.
연희의 남자에 대한 미각은 상당히 뛰어났고 그래서 단 한번도 그녀의 미각
이 틀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단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라면 우리가
일명 말하는 플레이 걸과 플레이 보이의 만남이 될 수도 있을거 같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그 어떤 책을 읽을때 남자 여자가 둘다 쑥맥이거나
둘 중 하나가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둘 다 문제가 있는 그런 케이스를
읽은 적이 있는가 말이다.
남자나 여자 둘 다 관음증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관음증은 남자가
더 많다고 한다. 훔쳐 보기. 엿보기. 이렇게 우리들은 말한다. 특히 우리는
남의 사랑을 훔쳐 보고 엿보기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 첫번째 예가 국민
학생이나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나 교실이 바뀌고 학년이 올라 갈 때마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에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바로 첫사랑 얘기해 주세요
인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잘하면 플레이 걸과 플레이 보이의 만남을 살짝 살짝 훔쳐
볼 수 있을 런 지도 모른다.
"그런데 배고픈거 같아. 우리 피자 시켜 먹을까?"
"돈은 누가 내고?"
이쯤 되면 연희가 상당히 짠돌이 라는 것을 알수 있다.
"니가."
"내가 매일 내면 나는 언제 저금해서 여우같은 마누라랑 같이 오손도손
살아 보냐?"
"흐응..여우 같은 마누라? 내가 나중에 부주돈 넉넉히 넣어 줄께. 그러지
말고 한번만 사라."
"싫어. 저번에도 넉넉히 넣어 준다고 했잖아."
"그럼 내가 떼부자 되면 왕창 넣어 줄께. 아니 돈 방석에 앉게 해줄께."
"네가? 정말로 떼부자 될 자신 있어?"
"그럼. 그리고 뭐. 사실 이집도 명의는 벌써 네 이름으로 되어 있으면서
치사하게 그러네. 집 있으면 됐지 뭐가 더 있어야 한다고 그래?"
"그건 너도 마찬가지 잖아. 그리고 내 여우 같은 마누라를 집에만 두냐?
오리고기 사 먹여야지. 다이아 해줘야지.또..아니 물방울 다이아. 그리고
밍크 모피도 해줘야지."
"악~~~~~~~~~ 배고프단 말야. 사줘. 사줘. 사줘..잉..."
우는 여자는 어찌 해볼 재간이 없다. 물론 우는 척하는 여자도 마찬가지 이다.
나는 연희가 우는 것을 딱 한번 봤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인데
그때가 그녀가 7살 때였다. 연희는 울었고 그 다음부터는 강아지 쪽은 쳐다
도 안보며 파뿌리 한단이라도 길러 본 적이 없는 연희였다. 심지어는 생물
숙제로 양파나 콩나물 기르기를 해서 가져 오라는 것도 과감히 무시하고
점수가 나쁘게 나오거나 선생님이 반항적이라고 부모님을 오시라 할 망정
기르지 않았던 연희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다부지게 몰아 대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렇듯이 연희가 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절대 울지 않는 여자가 우는 척 하면서 졸라 댄다는 것은 그녀가
창문을 여는 신선함만큼 상큼한 요구였다.
사줄수 밖에.
피자집에 전화를 걸고 배달이 오기까지 연희와 나는 베란다로 나갔다.
하늘이 보이는 장소.
우리 동네는 정말 다행인것이 다 주택가라 큰 건물이 별로 없는 편이다.
세상이 우리가 쳐다 보는 눈안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 딱 알
맞은 장소가 베란다 였다.
연희가 내게 이런 제안을 했다.
"이 베란다 모서리 말야. 부수고 반듯하게 연결할까? "
"그럴까? 너 항상 어렸을때 이거 잘 못 넘어서 다쳤을 땐 왜 이런 생각을
안했나 모르겠다. 아저씨께 말씀드려 보자."
"으응..찬성하실거야. 더 든든해 하시고."
별이 보였다.
밤 11시.
별이 하늘을 흘러 다녔다. 연희는 그 흐르는 별 속에 빠져 들어 영영 이
세상과 연이 없어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별 같은 여자. 문득 잊고
살다가 어느날 창밖으로 보이는 별을 보았을때의 그 감격과 같은 여자이다.
세상에 가려져 흐린 날이면 자취를 감추는 별같은 그런 여자가 바로 연희이다.
연희는 머리를 쓸어 놀리면서 내게 기대었다.
연희의 안정되고 규칙적인 심장소리가 들려 왔다.
연희가 내게 기대어 하늘을 쳐다 보더니 이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하늘이 파래."
나는 연희가 하는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 보았다.파란 하늘..
그리고 곧 피자 배달차가 헤트라이트를 켠채 집앞에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초인종이 울릴 것이다.
그 동안 초인종이 울릴 동안의 그 짧은 시간은 일시 정지의 시간이다.
단지 연희의 숨고른 소리만이 정지된 틈을 타고 세상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주말이 되었다.
나는 바빴고 이제서야 조금 쉴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베란다 공사는 마무리 되었고 아직 베란다를 사용해서 연희와 내 방을 들락
거릴 수는 없었다. 연희 아버님은 연희에게 앞으로 열흘동안 절대로 베란다
를 사용하지 말것을 약속시키셨다. 굳이 열흘이 아니더라도 될 것을 열흘로
잡은 것은 다 연희의 그 호기심때문이었다.
연희는 베란다가 튼튼한지 확인하려 들 것이고 그것을 실험한답시고 도끼에
망치를 어디선가 들고와서 두드려 볼 것이 뻔했다.
그렇게 두드려 보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고 만족할 때까지 꽝꽝 거릴테니
아무리 시멘트로 단단하게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그게 금이 가던지 아니면
한쪽 모서리는 반드시 부수던지 할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연희가 아홉살때 연희네 집은 한쪽 유리를 통유리로 끼워 넣고 새로 인테리
어를 했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연희 아버님이 연희에게 이것은 상당히
비싸고 두꺼운 것이기 때문에 그냥 두드려서는 안깨진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연희는 부모님이 잠깐 나가신 주말에 그 통유리를 실험하기
에 이르렀고 처음에 찬찬히 두드려서 안깨지자 결국은 망치를 던지는 것으
로 그 유리는 생명을 다 해야했다.
그런 이후로 연희 아버님은 절대로 연희의 호기심을 자극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모든 일을 처리 하셨고 급기야는 베란다 공사를 또 어떤 식으로
망쳐 놓을까 싶어서 단단히 굳어지도록 절대로 베란다쪽은 바라도 보지 말
것을 약속하게 만드신 것이었다.
오후 다섯시쯤 되
자 연희가 그녀의 직장에서 돌아 왔다.
그녀는 커다란 노랑색의 박스 티를 입고 또 그 아래로 핫 팬츠를 걸치고
내 방으로 들어 오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봐.."
연희가 보라고 한것은 하얗고 복슬거리는 강아지 였다.
연희의 말에 의하면 그 강아지 이름은 복순이. 연희의 사모(의상실에서 일
하는 사람들이 주인을 가르키는 호칭. 정확히는 국어 사전에 없으므로
모름.)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라고 했다.
"어디서 난거야?"
"으응..나 강아지 좋아하는거 아시고 사모가 이번 주말만 돌봐 달래. 싫으
면 동물병원이나 애견센타에 맡길 수도 있다고 하시는데 요느무 강아지는
어떻게 애견센타와 동물병원 구분을 하는지 그곳에만 가면 밥을 안먹는
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맡기로 했어. 이틀이고 그리고 가지고 놀기도 좋
잖아..쬐끄만 녀석 같으니라고.."
그러더니 연희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스읔 복순이를 자신의 노랑색 박스티
안으로 집어 넣는 것이었다. 개를 키워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다 한번쯤
해봤을 장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장난은 어릴 때 해본 것으로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다. 왜?
왜라고 생각하시는가. 바스트 웨스트 힙이 잘 발달되어 있는 여자가 자신의
가슴 속에 강아지를 집어 넣고 키득거린다고 생각해 보라. 상상이 되는가?
불행히도 나는 연희가 키득 거리는 장면에 대해서 어떤 종류의 연상이
가능한데 연희는 그 느낌 자체를 즐길 뿐이었다. 옆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든지 말던지 간에 말이다.
"꺄르르르~~~"
연희는 침대에서 뒹굴다가 노랑색 옷 속에서 강아지를 꺼내 살포시 강아지
의 입에 입술을 맞추는 것이었다. 저 진지한 표정. 아마도 저 진지한
표정을 연희 그녀가 만났던 남자에게 반쯤이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반이
아니라 한 십분의 일이라도 저렇게 남자에게 진지할 수 있었다면 연희는 지
금쯤 왕자와 공주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살았습니다 라는
말에 딱 맞추어 살고 있을 것이다.
"기억나? 예전에 우리 자주 이렇게 했었잖아."
"그래.기억나."
"난 말이야. 강아지를 만질 때 감촉이 참 좋아. 특히 살아 숨쉬는게 내가
툭 하고 치면 왕왕 거리는것도 좋고, 내 이부자리에 몰래 싸놓은 쉬한
자국도 좋아."
연희가 말을 하면서 강아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자 강아지는 겨울날 눈이
라도 떨어지는 것을 보듯이 침대위를 잘도 뛰어 다녔다. 주먹만한 녀석이
휙 뛰더니 연희의 배위로 올라타고 그런후 다시 쭈르르 미끄러지고 그러다
가 다시 연희의 머리칼을 왕왕 거리면서 물어 뜯기 시작했다.
연희는 한손을 그녀의 얼굴 위에 올려 놓았다. 눈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이렇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이런식으로 눈을 가리는 모양
이다. 항상 모든 일에 그 반짝이는 눈을 보여 주었던 연희가 잠시 눈을
가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기를 하는 것이다.
"참. 그런데 오늘 강아지랑 같이 자야 하는데 쉬하는거 어떻게 처리할려고?
그냥 강아지 쉬야한거에 세수하면서 부비면서 잘려고?"
내가 연희에게 묻자 연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 났다.
"내가 왜? 내가 왜 이방에 강아지를 데려 왔는데. 여기가 복순이가 이틀
동안 살 방이야."
"강아지 응가 한 것은?"
"그거? 석우가 치우는 거지 뭐. 목욕도 시키고."
세상 남자들이여 여자가 자신의 눈을 가리고 울던지 말던지 절대 그런
모습에 현혹되지 말지어다. 여자는 단 한순간에 백팔십도 바뀌는 것이
가능한 동물이니 절대로 착하고 순진한 남자들이여 마음 약해할 필요가 없느니라.
어떻게 저렇게 눈이 초롱초롱 해서는 내 방에서 저 쪼그많고 호기심 많은
연희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녀석을 재워야 하는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복순이는 연희가 일어 남으로써 머리칼을 물지 못하자
그 다음 선택한 것이 내 베개였다.
"안돼."
"왜 안돼? 돼."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
이 정도면 폭력배 따로 없다.
연희는 반드시 내 방에 강아지를 놓고 가겠다고 결심을 했는지 자꾸만
자꾸만 졸라 대는 것이었다. 분명 자꾸 졸라도 안된다고 하면 우는 척할 것이다.
연희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면서 내게로 다가 왔다.그런후 내 무릎위에
앉더니 그녀의 얼굴을 내 바로 앞에 까지 가져다 놓았다.
"재워 줄거지?"
연희는 축농증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말중에 비음이 섞인 소리가
났고 그리고 그 소리는 상당히 섹시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지금 막 한
그녀의 말에는 비음이 섞여 있으니 그 어떤 남자가 싫다고 할 수 있겠는가.
특히 바로 3센치도 안떨어진 곳에 얼굴을 들이 밀고 이렇게 묻는데 말이다.
"고마워."
연희는 금새 고맙다고 하고 내 입에 자신의 입술을 살짝 갖다 붙인 후
다시 떼었다. 그리고는 총총 걸음으로 침대에 가서 강아지 녀석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봐봐. 석우는 착하니까 널 재워 줄거라고 했지? 내 말이 맞지? 그러니까
너 말 잘들어야 한다. 알았지? 참..저녁때가 다 되었네.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호박죽 해 놓는다고 했어. 헤헤.. 맛있겠다."
연희는 내 강아지를 한손으로 잡고 나에게 와서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나와 연희는 집에서 나와 현희네 현관으로 들어 가려는데 갑자기 복순이가
낑낑거렸다. 연희는 복순이가 낑낑거리자 복순이를 놓아 주었는데 복순이는
쪼르르 달려가 담 벼락 어느 구석에 가서 한쪽 다리를 번쩍 드는 것이었다.
숫놈!
"복순이가 이름이라면서."
"응. 복순이가 이름이야 사모 손자가 복순이라고 해야 한다고 우겼데.
그래서 복순이야."
오늘밤 나는 강아지와의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이 복순이라는 숫놈은 연희와 잘놀 생각으로 이곳에 온 모양인데 옷도 하나
안걸치는 같은 숫놈끼리 잔다는 것을 알면 아마 날 밤새 공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연희의 가슴속에 들어 갔을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이런 궁금증이 드는 것이었다.
앗!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내가 하는 것을 보니 결국 연희의 병적
호기심이 나에게도 전염이 된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전염에 의한것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진짜로 나는 나를 감쪽 같이 속인 저 악당같은 녀석이 한없이 부러워지고
있는 참이었다.
아무래도 단체로 돌은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니 이 복순인지 하는 여장 숫놈 강아지는 내 방 창가에
가서 연희 방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확실히 돌은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강아지가 어떻게 저렇게 뚜러지게 여자의 방을 빤히
쳐다 볼 수 있느냔 말이다.
난 햇볕이 드는 사이로 주먹만한 강아지가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
시키듯이 그렇게 창가에 서서 창문을 열어 다오 뭐 그런 노래 비스무래
하게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되었다. 아마 나도 돌은 모양이
다. 저 강아지가 창문을 열어 다오를 부른다고 생각하다니.
나는 잠시 일어 났다가 다시 침대에 누워 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자고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러면 약간 돌았던 머리가
정상으로 돌아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꽝!"
아마 연희가 내 방문을 여는 소리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큰 소리
가 들릴 턱이 없었다. 또는 갑자기 강아지가 무슨 햇볕에 의한 초자연
적인 에너지를 받아서 손 발이 발달하고 일어 서서 걷게 된다면 그렇게
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 강아지가 지금 일어
서서 걷는 것이라면 복순이의 사랑 연희를 찾아서 하늘을 날아 갈것이다.
아니지 그럼 창문을 열어야 하는거 아닌가?
이건 방문 소리인데.
"안 일어나? 이불 벗길거야!"
연희가 소리를 꽥 질렀다.
그렇지. 그런데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데 왜 연희는 노래를 못부를까?
왜 노래방에만 가면 60점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일까? 남들은 소리만 질
러도 90점대는 거뜬하다는데..심지어는 100점도 나와서 초콜렛을 탔다는
숨겨진 전설도 있는데 왜 연희는 노래라면 영 젬병인걸까? 연희 남편은
안됐다. 주부가요 열창도 못나가니 해외 여행하기는 틀렸고 그럼 결국
자신이 벌어서 가야 한다는데 남들 노래 잘부르는 마누라랑 외국갈 때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돈 벌 생각하면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뭐 하는거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안 일어 날거야? "
연희는 다시 소리를 지르더니 내 방 서랍을 열었다.
내방 서랍... 서랍..그것도 내 방에.. 있는??
읔.. 그 서랍안에는 내 예쁜 속옷들이 들어 있는데 연희는 내 속옷을
꺼내려는게 틀림없다. 어떻게 남자 속옷을 꺼내는 일을 저렇게 뻔뻔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여자는 다 요물이다. 평소 같아서는 백화점에 디스 플레이된 남성용 속옷
만 보더라도 베시시 거리던 애가 빤빤하게 남자의 속옷을 꺼내다니 참
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마 이런 것을 여자는 결혼하면 손으로 바퀴
벌레를 잡는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일 것이다.
"우와...이거 이쁘다. 내 반바지로 하면 좋겠어."
내 속옷이 연희 반바지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결국 고개를 들어서 연희가 뭘 가지고 자신의 반바지로 하고 싶다고
하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빨리 그거 비슷한 것을 사주고 내 속옷을
눈독들이는 일을 없애야 할테니까 말이다.
"이거 너무 이쁜데 코팅해서 이 방 저쪽에 장식하면 어때?"
연희가 내게 내 속옷을 코앞까기 가져와 보여 주면서 물었다.
나는 잽싸게 연희가 들고 있던 속옷을 빼앗아 내가 입어 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잠시 실수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매일 같이
창문을 보면서 상상과 드라마를 즐기듯이 연희도 적어도 오늘은 내 속옷의
색깔과 디자인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어차피 입은
옷이었다. 상상을 하던지 말던지 나는야 밥 먹으러 가련다.
"복순아..복순아 어디 있니? 에구 이쁜것..."
연희가 부르자 복순이는 냉큼 달려 와서 연희 가슴에 안기는 것이었다.
아아..차라리 이럴땐 여자가 요물이 아니다. 강아지가 요물이지. 어떻게
저렇게 내내 내가 자는 침대 쪽에는 와서 쉬나 하면서 연희가 오자 쪼
르르 달려 품에 안길 수 있단 말인가. 저걸 이번 복날에 날 잡아서 잡아
버리던지 해야지.
연희는 복순이를 안고는 연희네집 일층 식당으로 내려 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석우도 잘 잤니?"
"네.."
"어서 앉아라. 아침 먹어야지."
나와 연희와 강아지는 밥을 먹었다.
조그만게 많이도 먹는다. 저렇게 많이 먹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조그말
수가 있는거지?
"무슨 생각해?"
"응..저 강아지 먹는 생각."
"뭐? 복순이를 먹는다고?"
연희가 팔짝팔짝 뛰었다.
"야만인!"
"그래. 난 야만인이다. 그런데 넌 몽몽탕 한번도 안먹어 봤냐? 작년 여름에
너 맛있다고 먹은 그거 있지? 그거 몽몽탕이었잖아."
어쩌다가 강아지가 밥 먹는 모습을 생각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을 복순이
먹는 생각이라고 했을까. 하기사 그 바로 전에 잡아 버리겠다는 생각을
한 탓에 무의식 중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때 연희 어머님이 연희를 보고 말씀 하셨다.
"너 오늘도 데이트 있니?"
"네."
"그럼 말이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제발 집안에서 뽀뽀 하는거 안할 수없니?"
"왜? 난 좋던데.. 그리고 키스는 마지막에 헤어질때 해야 제 맛이라고요."
아침에는 강아지가 창문을 열어 다오를 하지 않나.
이젠 대한민국 어느 가정에도 존재하지 않을 모녀의 대화가 이루어 지고
있고 나는 미키 마우스가 예쁘게 그려져 있는 속옷을 입고 앉아 아침부터
강아지를 잡을 고차원적인 생각을 해야 하다니.
정말로 단체로 돌아 버린걸까?
"동네 사람들이 너 안 본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그게 뭐가 어때서? "
"그러니까...네가 미국애냐?"
드디어 연희 어머니가 연희를 나무라기 시작하셨다.처음에는 곱게 잘나갔었는데..
"엄만 미국애만 뽀뽀하고 사는 줄 알아요? 나도 그리고 성인으로써 뽀뽀
의 권리는 있다고요. 아니지 남자들에게 뽀뽀를 해 줄 의무가 있다고요.
그리고 이번에 만나는 그 남자와는 프렌치 키스를 해 볼까 생각중인데..."
결국 이번에 만나는 남자는 복순이의 연적이 되는 것이었다.
연희 어머님은 혹시나 해서 말을 하셨다가 연희의 그 당당함에 질리셨는지
더 이상 말씀하시기를 포기하셨다.
아침을 다 먹고 연희 어머니가 주신 토마토를 들고 연희 방으로 갔다.
"너 데이트때 강아지도 데리고 나갈거니?"
"아니? 왜? 그럼 키스할때 자세가 좀 이상해 지잖아."
연희는 강아지를 목욕시켜야 겠다면서 토마토를 한 입 가득히 물고 목욕
탕에 물 받으러 갔다. 이 강아지 녀석은 내내 쫄쫄쫄 연희를 쫓아 다녔다.
연희는 강아지 목욕을 다 시킨 후에 침대에 누워서 강아지 말리기에 정신
없더니 곧 테레비를 본다면서 리모콘을 찾았다.
리모콘은 불행하게도 침대 밑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떨어져 있었다.
혹 미래소년 코난을 본적이 있는가?
본적이 없다면 상상하지 말기를 충고한다. 그리고 본 적이 있다면 코난이
날아가는 비행기 위에서 무엇때문에 떨어지지 않았는지를 기억해 낸다면
연희가 지금 뭘로 리모콘을 움직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세 고정. 그리고 온 몸의 기를 한 곳에 모아서... 결국 기를 모은 곳이
발가락이라는 점이 웃기기는 하지만 연희로써는 최대한 조금 움직이고
리모콘을 자신의 손바닥까지 가져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른쪽의 엄지발가락과 그 다음 발가락을 최대한 벌린다.그리고...
아....... 잡았다.
연희는 리모콘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은 후에 복순이를 보고
이러는 것이었다.
"얌마. 너도 나처럼 이런거 못하지? 헤헤..요 기술은 나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거야."
연희는 테레비젼을 켰다.
주말이었다. 테레비젼속에서 사람들이 꼼지락 거리는것이 보였다.
연희가 나를 한참을 쳐다 보았다.
"헤헤..미키 마우스가 어디 있어? 음..오른쪽이다..헤헤.. 흐흐흐.."
아마도 난 이 미키 마우스를 코팅해서 걸어 놓지는 못해도 절대적으로
앞으로 입기는 틀린 것 같다.
연희는 다시 강아지와 놀기 시작했다.
가끔은 나도 엉뚱한 생각을 한다. 나도 연구소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서
기억을 지우는 기계를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할까 보다.
이 미키 마우스...
"하하..하하핫...."
나는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희는 내가 웃는 것을 보더니 돌은게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같이 웃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린 이제서야 교집합이 생긴것 같다.
밤이 되자 괜히 뭔가 마음에 걸리는게 있는지 창문쪽으로 눈길이 갔다.
눈길이 가면 맨 처음 보이는 것은 복순이가 창문 너머를 쳐다 보면서
배를 깔고 누워 있는 장면이고 그 다음은 항상 연희가 헤어지기 전에
서서 키스 하는 바로 그 장소였다.
같이 목욕탕에 갔던 그래서 우리는 볼거 다 본 사이인데도 그것 참 이럴
때의 느낌은 참으로 묘했다. 특히 연희가 말한 그 프렌치 키스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월드컵에서 우리가 어디를 어떻게 이길 것인지 점치는
것처럼 나도 점을 치고있는 것이 참으로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야.. 복순아.. 너도 질투 하냐?"
대답이 없다.
하기사 주먹만한 강아지 한테 내가 무슨 대답을 바라겠는가.
나는 연희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게 싫다.
싫은거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신의 누나가 사랑에 빠지면 동생은
항상 심술을 부리는게 당연하다. 연희는 내 누나는 아니지만 하여간 난
연희의 그 무지막지한 남성 편력이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안들었는데
결국 어떤 놈팽이를 내가 보이는 창문 앞까지 끌고 와서는 프렌치 키스를
한다고? 안돼!
"멍멍.."
내가 마지막 부분 안돼라고 소리를 지르자 복순이는 쪼르르 내 책상으로
달려 와서 나에게 짖어 댔다. 저건 아마도 나와 동감이라는 뜻일게다.
나는 잠시 예의 그 화려한 키스신의 장소를 바라보다가 결국 캔 맥주하나
를 꺼내기 위해 잠시 아래층 냉장고에 갔다 왔다.
캔을 들고 방문을 여는 순간 내 큼지막한 창문 너머로 연희와 그녀의
남자가 보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창문 가까이로 다가가 그 모습을 훔쳐 보게 되었는데.
훔쳐 보든지 당당히 보든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연희는 점점 그 얼굴을
남자 가까이로 가져다 대고 있었다.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고 느꼈는데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아닌 밤중의 홍두깨라고 복순이 녀석이 마구 짖어 대는 것이었다.
"멍멍..으르릉... 멍멍.."
몸체가 크기나 하면 몰라도 주먹만한 것이 소리는 왜 그리 큰지 악을
쓰고 짖으니 결국 연희도 그 소리를 알아 들었던가 보다.
연희는 막 잡고 있었던 폼을 스르르 풀더니 남자가 어떻게 보거나 말거나
복순이의 짖는 소리에 맞춰서 미친 여자 마냥 웃어대고 있었다.
"꺄르르..꺌꺌꺌..."
연희는 내 방 창문쪽을 한번 쓸쩍 쳐다 보았다.
연희와 같이 있던 남자는 참으로 쑥쓰러웠는지 눈길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아마 연희가 평가하는 아주 달착 지근한 제비족은 아닐
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사 이런 상황이라면 달착지근하던
맹숭맹숭하던 괜시리 창피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연희는 남자를 보내고 대뜸 우리집으로 들어 오는 것이었다.
연희에게 우리집 대문 열쇠를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루에도 열번도
더 드나드는 연희를 매일 같이 나가서 마중하기 싫어서 주어 버렸더니
결국은 이러한 때에 그 열쇠의 사용 용도가 분명해 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방으로 들어 오더니 복순이를 바라 보았다.
복순이는 더 이상 짖지 않았다.
귀여운 녀석. 때로는 동물이라는 것은 인간이 감추고자 하는 마음을
그대로 본대로 느낀대로 표현해 주는 그런 역할도 한다는 것을 나는 지금
에서야 알았다.
"복순이 이 나쁜 녀석아. 그렇게 질투가 나던?"
복순이는 연희의 품에 안기자 연희의 손을 마구 핥기 시작했다.
왜 웃는 사람에게 침 못뱉는 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연희는 복순이의
꼬리가 좌우로 살래 살래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한대 쥐어 박았을 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즐거웠어?"
내가 연희에게 물었다.
"으응.. 즐거웠어. 나 있잖아.."
"응..뭔데?"
"다니던데 그만 둘까?"
"왜? 너 돈 밝히는데 그거 그만 두고 땅파면 어디서 돈이 나온다니?"
"아니..그런것은 아닌데 재단이 싫어 졌어."
"왜 싫어 졌는데?"
연희의 표정이 사뭇 어두워 졌다.
"산다는게 이런 걸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봐봐. 내가 날마다 남자를
만나서 같이 웃고 밥먹고 그런것이 좋기는 한데 그게 좀 기분이 그래. 난
말야. 미치고 싶어. 무슨 뜻인지 알지? 사람들이 보통 두려워 하는 그런
종류의 것으로 미치고 싶다고 후후.. 하루 하루가 똑같은 것의 연속이야.
나는 그림을 그리고 치수를 재고 그리고 다시 그것을 공장으로 가져 가
고. 뭐 그런 식으로 우리 사모는 나한테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넘겨줄
모양이야. 사모 말로는 나이가 너무 들어서 이젠 그만 하고 싶데. 그런데
넌지시 나한테 의향을 물으시거든. 나 사모한테 잘 보였다는게 좋기는
한데 그냥 재단은 싫어. 내가 의상실 맡는 것도 싫고 손님이야 많겠지만
돈도 많이 벌겠지만 그냥 싫은 것은 싫은 거야. 알지? 무슨 뜻인지?"
"부모님과는 상의 해 봤어?"
"아니..유학가라고 하실 때도 내가 재단으로 한다고 고집피워서 안갔어.
그런데 또 그 재단을 그만 둔다고 한다면 뭐라 하실까 하는 생각때문에좀 그래."
"그럼 재단 그만 두고 뭐할건데?"
"글쎄 특별히 할일은 없는데.."
"그럼 너 나 한테 시집 올래?"
에고..요느무 주둥이..이럴땐 영 헛소리다.
이제 나는 연희한테 열심히 맞고 열심히 빌고 그리고 먹을 것을 잔득
사다 바쳐야만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 연희의 입에서 참으로 빼도 박도 못할 말이
나온 것이다.
"그래도 돼?"
그래도 돼라..
그래도 돼냐고 묻는건데 나는 이럴때 뭐라 대답해야 하는거지?
"그럼..그래도 돼.. 돼고 말고..."
우린 잘 하면 교집합에서 합집합으로 가게 될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거 다 보고 알거 다 아는 사이에 합집합이라니 이건 또 무슨 변괘란 말인가.
난 불행히도 연희의 달거리 날짜도 알고 연희의 반쯤 벗은 모습도 지금
그려내라면 그려 낼 수 있는 그런 사이에 무슨 합집합이 필요 하단 말인가.
우리가 공집합 관계에서 합집합으로 간다면 또 별난 맛이 있을 지 모르지
만 교집합에서 합집합이라니.. 이거 영 아무래도 꺼림직 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온 말을 어떻게 뒤로 뒤로 다시 뺀단 말인가. 일단 칼을
뺐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잘라야 하는 것이다.
"언제 할건데?"
연희가 언제 할거냐고 물었다. 언제? 언제 하기는 내일이라도 당장 혼인 신고를..
"좋은 날 잡아서.."
"알았어."
나와 연희의 대화는 이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휴우..다행이었다.
연희는 내 방 침대에서 평소처럼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복순이와 둘이 신나게 뒹굴다가 밤 12시가 다 되서야 집으로 돌아 갔다.
그런데 내가 어쩌다가 이런 이상한 일을 벌인 것일까?
나도 알수가 없는 일이었다.
12시가 다 되어서 연희를 집에 바라다 줄 때 그녀가 현관앞에 서자 이런
말을 했었다.
"파랑새.. 그거 정말로 웃기는 동화야. 그렇지?"
파랑새.
복순이 녀석은 내 방 구석 어디쯤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누웠다.
나는 연희의 따뜻한 체온이 채 가시지 않은 침대에 누워서 밤새 잠 못들
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연희가 잡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동화에 나오는 파랑새 일까?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연희의 말대로 그것은 단순히 웃/기/는 동화일 뿐일까.
열려진 창문 사이로 아직 연희방에서 꺼지지 않아 새어 나오는 불빛이 내
방까지 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여름이 시작되었고
마침 운이 좋게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