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5.; 사순 제5주간 화요일 (민수 21,4-9; 요한 8,21-30)
제1독서
<물린 자는 누구든지 구리 뱀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4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21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선을 향한 길에는 언제나 악에서 나온 장애물이 길을 불편하게 합니다.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도 사탄의 사주를 받은 죄인들이 방해 공작을 폅니다. 모세는 파라오와 대결하면서 열 가지에 이르는 재앙의 기적으로 물리치고 겨우 이집트를 빠져 나왔지만, 정작 해방되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파라오 대결 못지않은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바로 양식도 없고 물도 없다고 불평하는 백성에다가 금송아지까지 만들어 경배하는 우상숭배 풍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옭아매어 죄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바리사이 유다인들의 피곤한 논쟁에 휘말리셨습니다. 아무리 기적을 보여주고 당신의 신원을 밝히셔도 막무가내로 당신의 신성을 부인하는 속물들이요 사탄의 사주를 받은 듯한 죄인들이었습니다.
모세의 경우에는 백성의 불평과 우상숭배에 대한 대책이 중재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백성을 직접 상대하신 분은 하느님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 대해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시어 물려 죽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또 다시 모세에게 몰려와 하느님께 불뱀을 치워 달라고 중재 기도를 요청했고,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세우라는 응답을 들었습니다. 구리는 붉은 색을 띠는 금속이어서 불뱀과 색깔이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 처방이 그 천 년도 훨씬 지난 후 예수님 당시에는 십자가 처방의 예형이 되었습니다. 바리사이 유다인들의 피곤한 유혹과 막무가내식 논쟁에 대한 예수님의 처방은 그들의 기대와 음모에 휘말려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현실적인 권력과 영향력은 그들에게 있었기에 예수님은 기어코 그들의 음모에 따라 신성모독과 성전모독의 혐의를 뒤집어쓰시게 되었고, 곧 이어 유다인들의 왕이 되려 했다는 반역 혐의까지 뒤집어쓰시고 십자가형을 선고받으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당신의 운명을 예감하신 듯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요한 8,28). 과연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높이 달리셨고 죽음을 당하신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도 바리사이 유다인들은 그분의 부활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높이 달리신 이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분이 자신들의 음모를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신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처방, 즉 십자가를 받아들이시는 믿음은 사탄의 사주를 받는 줄도 모르고 죄를 저지르는 그들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으로 예수님의 이 처방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믿는 이들에게서 효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깨달은 이 처방은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자기비허의 삶이 세상의 죄를 없앨 수 있다는 십자가의 신비였습니다. 또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이야말로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 나는 부활의 신비라는 것도 동시에 얻게 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세 시대에 구리 뱀이 불뱀에게 물린 상처를 낫게 해 주었듯이, 십자가를 쳐다보는 신약 시대의 처방이 예수님의 신성을 몰라 보고 죄를 저지르는 죄악의 벌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이렇게 되면 악은 더 이상 선의 방해물이 아니라 디딤돌로 작용합니다. 마치 십자가가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되듯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