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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노무현 운명 짊어지고 길을 나서다
<……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
노무현은 유언대로 화장되어 집 가까운 곳에 묻혔다. 현충원에 묻히지 않은 대통령으로는 윤보선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였다. 아주 작은 비석만 남겨달라는 유언대로 평범한 비석 하나가 봉화마을에 놓여 있다. 이 유서를 문재인은 늘 지갑에 넣고 다녔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에서는 노무현의 기적 같은 클라이맥스가 지난 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눈물의 노제(路祭), 문 대통령의 육성이 담겨 있다. 유서 낭독을 마무리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떨리는 목소리는 그의 마음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또 문재인 대통령의 육성과 병치 되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록수’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이 영화에서 문 대통령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낭독하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늘 지갑에 넣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된 이창재 감독의 즉석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인터뷰는 2016년 11월,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이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 친구 노무현이 죽으며 문 대통령에게 정작 남긴 것은 고작 네 글자가 전부다. ‘운명이다.’ 이 말은 그의 체념으로도 느껴지지만,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에서 느껴지는 뒤바뀐 주체의 부각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처럼 ‘너는 포기하지 마라’ 하는 또 다른 울림을 남겨 놓은 것같이도 느껴진다. 30년 넘게 동고동락한 처지로서는 그들만의 언어가 따로 있었을지 모른다. 열정의 소유자 노무현이 생을 포기하며 한 말, ‘운명이다.’라는 말은 필경 늘 그를 지켜본 친구로서 나는 ‘내 운명에 최선을 다하였는가.’로 짐이 되고 부끄럽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평소 늘 안고 다녔던 노무현의 자취는 스멀스멀 살아 끝내는 인간 문재인의 주체로 옮겨 붙고 만 것은 아닐까. 절절히 가슴 아픈 비극은 때로는 보답의 가치로서 거룩하게 승화한다. 세월호가 그랬고 촛불집회가 또 그랬다.
인간의 육체는 압력이 없으면 기압을 못 견디고 파열된다. 세상의 풍파는 인간이 견뎌야 할 또 다른 기압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정신도 고뇌하는 압력이 없어지면 파괴된다. 평소 우리가 그토록 벗어버리고 싶은 것들은 바로 그 압력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압력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죽는다. 사실상 우리는 운명의 짐을 죽고 나서도 갖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운명의 짐은 일시적인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벗어나기 힘든 멍에 같은 짐을 말한다. 그 짐은 우리를 약하게 만들어 파멸시킬 수도 있고, 우리를 강하게 단련시켜 성장시킬 수도 있다. 운명의 짐이 버거울 때 인간 노무현은 문재인을 불렀고 문재인은 이를 또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운명의 짐은 전적으로 자신의 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지만,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인간 문재인은 과연 어떠했을까. 친구의 죽음을 보아서 선뜻 그 주어진 운명 속으로 다가섰을 것 같지는 않다. 친구 노무현이 죽고 2년이 지난 때였다.
<“(현재 심경을 묻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정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죠. 비통한 일이고요." "(앞으로 개인적인 계획을 묻자) ……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수사 과정이나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정말로 세상이 참 싫어졌어요. 세상이 가진 악의들이 무섭고요. 그래서 세상하고 거리를 좀 둬야 되겠다."
2011년 2월 한 인터뷰 中>
그의 말처럼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문재인은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치와 거리를 두며 그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2년이 지난 후에도 그러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온갖 출마 요청을 다 거절했는데, 정치가 그렇게 싫으냐는 질문에 문재인은 이렇게 답했다.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요. 정치를 하려면 두 가지를 갖춰야 해요. 역사가 요구하는 방향과 함께 하는 통찰력, 그리고 그걸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현실정치 속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에요. 저는 그런 게 없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멤버를 중심으로 한 친노 그룹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문 고문을 차기 주자로 일찌감치 점찍어두고 있었다. “출마하지 않는다는 말만 하지 말아 달라.” 하지만 ‘정치인 문재인’은 청와대 멤버들이 보기에도 어색한 조합이었다. 본인 또한 정치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상태에서 결국 참모들이 찾은 돌파구는 책을 쓰는 것이었다. 각자가 있던 자리에서 겪은 참여정부를 기록하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이기 때문에 문재인은 차마 이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2011년 2월 양정철(당시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이 문재인은 애초 책 내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말한다.
<책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우선은 본인이 책을 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쿨한 분입니다. 자신에 관한 한 수줍음도 많은 분입니다. 책을 낼 경우 생길 오해를 걱정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설득으로 어렵사리 책을 내게 된 것은 두 가지 때문일 겁니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정확한 증언과 기록, 그것을 통한 민주개혁 진보진영의 참여정부 극복. 그래서 대통령님 2주기에 맞춰 책을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2주기 준비에 많은 시간을 내면서 집필에 몰두할 시간을 갖지 못해 늦어졌습니다. 책의 2부, 자신의 인생 얘기도 기술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어렵게 설득을 했습니다. 저희가 보기에, 노 대통령과 만남에서부터 함께 해온 운명 같은 세월이 우연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두 분 모두 가난하게 컸고, 가난 때문에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려 했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삶을 살게 됐고, 그들이 살 만한 세상으로 시대를 바꿔보려 한 과정의 출발. 그건 바로 성장 과정에서부터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사에 대한 원고를 보고선 놀랐습니다. 청와대와 <노무현재단>에서 그를 모시면서 꽤 안다고 생각했던 저는 물론,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이호철 전 민정수석조차도 처음 접하는 내용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그동안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수줍어하고 쑥스러워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가난했다는 것도 뜻밖이었고, 그토록 투철한 운동권 대학생이었다는 것도 뜻밖이었습니다. 공수 특전사 출신인 건 알았지만, 특전사에 딱 맞는 ‘A급 군인’이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평소 개인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그의 외모나 스타일에서 ‘가난’ ‘투철한 운동권’ ‘특수부대’ 출신의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성장 과정에 대한 기술도 필요하다고 건의했습니다. 그 건의를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강권이 심해 일일이 기술하긴 했지만, 아마 책이 나온 지금까지도 찜찜해 하고 있습니다. (중략)>
그 무렵의 인간 문재인의 순진함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자신에 관한 한 정말 수줍음이 많은 내성적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다. 실제 그는 자기의 과거를 웬만하면 말하지 않았기에 다들 제대로 그의 묵직하고도 진실 된 진면목을 몰랐었다.
그런데 문재인의 『운명』은 출간 후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재인은 각종 여론 조사기관에서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르게 된다. 분위기가 슬슬 달아오르자, 참모들은 북 콘서트를 기획한다. 처음엔 끝까지 하지 않겠다던 문재인을 참모들은 독자들에 대한 예의라며 설득한다. 또한 참모들은 전국에서 요청이 밀려든다는 이유로 전국 순회로 판을 키웠다. 일에 맞춰 책을 내기로 한 약속을 그가 먼저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당시 참모 중 한 명이었던 양정철 전 비서관은 이렇게 당시 상황을 말했다.
<“과정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문 고문의 원래 말투는 건조하게 팩트를 나열하는 식이다. 대중 앞에 나서는 것도 쑥스러워한다. 그런데 북 콘서트 전국 순회에 들어갈 무렵부터, 말에 위트를 섞고 스스로 연출도 하고, 조금씩 무대를 즐기기 시작했다.” “됐다 싶었다.”
2011년 북 콘서트 中>
책을 읽은 많은 사람이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아주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책도 겨우 마음을 돌려냈는데 정치 참여라니. 당시 문재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저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질문입니다. 실제로,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이 저를 대안으로 기대를 걸고 계시고, 여론조사 지지도 상으로도 높아지니까 기대를 하시는데, 저로서는 과연 제가 대안이 될 만한 능력이나 자질이 있는지, 두렵기도 합니다.">
노무현이 대선 출정하기 전 두려움에 한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라는 엄중함, 이는 국민을 섬긴다는 자세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처음엔 소극적이었던 문재인도 북 콘서트 횟수가 늘어갈수록 점차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흡사 순진한 시골 처녀가 종갓집에 맏며느리로 시집을 와 이제 막 여염집 규수 역할을 하는 그런 모습이다. 당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절망과 회의, 새로운 정권에 대한 희망과 염원을 관객과 공유했다. 관객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북 콘서트를 보러 온 많은 관객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문재인 대통령’을 외쳤다. 공연장의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대선에 출마해 달라.”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문재인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웃기만 했다. 그래도 어쩔 줄 모르고 마냥 수줍어하던 때에 비해서는 아주 준수하게 달라진 것이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벗이자 동료로서 30년이란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오며 늘 노무현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서 노무현의 모습을 지켜봐 왔던 그는 정치에 엄청난 환멸을 느끼고 있었고 따라서 인생의 매 순간 자신을 속박해오는 정치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을 테다. 그러나 그는 결국 노무현 때문에 정치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자기 심경변화에 대해 이렇게 글에 적어 두었다.
<“만일 (노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정치의 길로 접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문재인의 운명』 中(블로그 tistory.com (성공의 문) 문재인의 정치를 걷다 중에서...>
10. 두려움에서 용기로 1
시대가 바뀌면 많은 것이 변한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양식이나 삶의 방식은 당연히 달라진다. 군주로부터 수평적 대인관계로의 전이는 인류역사상 엄청난 변혁이었다. 권위와 위엄으로서 봉건 시대적 통치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권위가 어느 시대에든 존재하고 시들해진 것만도 아니다. 역사는 신권과 권위 전제를 넘어섰다지만 시민사회에서 탈 권위는 여전한 숙제이기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갑 질이란 말이 같은 맥락의 말이다. 이는 비단 정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수평적 의식,촛불민심은 바로 이 역설적 의미를 함축하고도 있다.
공자가 군주의 소임을 말한 수직적 관계에서 비로소 큰 틀을 깨는 구도가 형성된 민주사회이다. 이에 걸 맞는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요즘 시대, 리더십도 여전히 진화 중에 있다. 리더십은 조직이나 단체를 이끄는 지도자의 자질이다. 소통, 비전, 창의, 책임, 통찰 등은 리더가 갖춰야 할 대표적 자질이다. 리더십 또한 시대에 따라 방점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느 시대에는 권위가 리더십의 요체였고, 21세기는 소통이 리더십의 주요 덕목이다. 앞에서 끌어주는 리더십이 중요시된 시대도 있었고, 뒤에서 밀어주는 리더십이 칭송받는 시대도 있었다. 리더십 또한 진화 중인 셈이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치르기 전 조정에 올린 장계에 담긴 이 문장은 ‘용기’라는 리더십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 남긴 “죽으려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또한 죽음을 각오하면 얼마나 큰 용기가 생기는지를 역사적·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이순신의 리더십은 용기의 리더십이자, 승리의 리더십이다. 계층 간, 진보 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해진 대한민국에서 영화 ‘명량’이 사상 초유의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바로 결연한 의지와 용기에 있다.
용기는 통찰력, 비전, 실천력, 인격 등과 함께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 리더의 자질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에게 말한다. 적들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 배, 천 배로 커진다고. 용기는 리더의 자질만은 아니다. 큰 꿈을 품고, 만만치 않은 세상을 헤쳐 나가려는 청춘에 꼭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그것도 일본 전함 300여 척에 맞서 불과 12척으로 싸우려는 아버지(이순신)가 안타까워 아들이 묻는다. 이에 이순신은 “신하의 근본은 충(忠)이고, 그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라고 답변한다. 바로 백성이고 민의다. 촛불민심이 바로 또 그러하다. 민의(民意)보다 ‘사의(私意)’에 더 민감하다고 비난받는 정치권에 던지는 따끔한 충고로도 읽힌다. ‘명량 돌풍’은 대한민국이 진정한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는 방증은 아니었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그를 정치의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면 책 출간 ‘운명’ 그리고 북 콘서트는 문재인이 정치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세상의 일이 어찌 선택한 대로만 흘러가겠는가. 그래도 중요한 순간이 오면 우리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 선택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온다. 애초 문재인이 사법고시에 패스하고 낙향을 하지 않고 러브콜이 왔던 김 엔 장 법률사무소에 취직하였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낙향해서도 불쌍한 노동자를 상대하는 노무현을 안 만났다면 또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신출 문재인에게 노무현은 번 돈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인생 친구를 아주 제대로 만난 셈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은 옳든 그르든 자기 마음 그릇 내에서 판단해야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기의 인생이니까. 그 당시의 문재인을 향한 간절한 민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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