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골프 ‘스폰서 대박’ 안 터지는 까닭은?
매년 이맘때면 여자 골프선수들의 후원계약 열기가 뜨거웠다. 인기 있는 선수 영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계약금 규모도 가파르게 뛰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굵직한 계약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일부 선수들이 후원계약을 성사시켰으나 예년 같은 대박은 보이지 않는다. 후원방식도 한두 선수를 집중후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가능성 있는 선수 여러 명을 지원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하이트진로와 결별한 뒤 아직 새 후원사를 찾지 못해 스폰서 로고 없는 모자를 쓰고 개막전에 나가게 생긴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의 케이스가 바뀐 풍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관례대로라면 지난해 한국선수 최초로 LPGA투어 전관왕을 석권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고진영은 역대 최고 몸값을 기대할 만했다.
그러나 고진영의 매니지머너트사인 갤럭시아SM이 글로벌 금융기업과 국내 대기업 등과 접촉 중인 것으로만 알려졌을 뿐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소식이 없다.
매니지먼트사가 너무 높은 가격을 제시해 후보 기업 측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생긴 현상일 수도 있지만 특정 몇몇 선수에 거액 후원이 몰리는 분위기가 바뀐 것만은 확실하다.
롯데만이 대형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KLPGA투어를 호령한 최혜진(21)과 최근 상승세를 타는 LPGA투어의 김효주(24)와 후원계약을 매듭지었다.
최혜진은 지난해 말 롯데와 ‘3년간 30억원’에 이르는 대형 계약을 이뤄냈다. 최혜진이 LPGA투어 진출 시 연간 보장액을 2억원씩 더 늘리는 등의 인센티브도 받는 조건이다.
2015년 LPGA투어 진출하면서 롯데와 5년간 거액 후원계약을 했던 김효주도 최근 2년 재계약을 마무리했다. 정확한 계약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박성현(27)을 데려오느라 10억원이 넘는 돈을 썼던 하나금융그룹은 올해는 LPGA투어의 신인 유망주인 재미교포 노예림(19)을 새로 영입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박인비를 후원하고 있는 KB금융그룹은 전인지(25), LPGA투어 신인 전지원(23)과 후원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전지원과의 계약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전지원은 대구에서 자란 뒤 호주와 미국에서 장학생으로 고교, 대학을 다녔다. 2017년 미국 주니어대학체육협회(NJCAA)로부터 ‘올해의 선수상’을, 2018년 US아마추어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아마추어 랭킹 3위까지 올랐던 유망주다. 지난해 11월 LPGA투어 퀄리파잉 시리즈에서 박희영(35), 강혜지(30), 곽민서(29), 손유정(19), 전영인(19) 등과 함께 LPGA투어 시드를 확보했다.
볼빅은 지난해 일찌감치 손유정과 후원계약을 맺었다.
후원기업들의 이런 변화는 국내 경제 환경의 변화와 맞물린 것 같다. 스타급 선수에 거액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중견 선수나 유망한 선수 여러 명을 발굴해 지원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위험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래를 내다본 실속 있는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만개한 선수보다는 개화를 기다리며 튼실한 봉오리를 맺고 있는 선수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대회에서의 성적과 별개로 선수 개인의 가치로 선수의 값을 평가하겠다는 의도도 읽혀진다.
한편으론 이런 스폰서 시장의 찬바람은 선수들 탓도 없지 않아 보인다.
골프선수의 상품성은 기량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기량은 기본이고 기량 외에 동료나 갤러리, 미디어와의 소통 능력, 골프 팬들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할 수 개성 넘친 퍼포먼스, 사회적 기부 등이 선수 개인의 가치와 상품성을 결정한다.
후원기업은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 못지않게 후원하는 선수가 골프 팬들의 인기를 얻기 원한다. 좋은 성적으로 상금만 챙기고 골프 팬이나 미디어와 가까이하지 못하는 선수라면 그만큼 상품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수 스스로 기량과 함께 인기를 창조하는 자세가 되었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