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들에게는 목욕탕에서 보내는 것은 최고의 시간이었다. 황제들은 말 그 자체로 최고의 '레크리에이션'을 백성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목욕탕(thermae) 는 그리스어 에서 나온 말로 몸을 유연하게 단련 시킨다는 체육관과 땀으로 몸을 깨끗이 씻는다는 목욕탕을 동시에 가리키는 말이었다.
기원전 3세기 중반 부터 로마인들은 그리스에서 차용한 개념을 가져와 시골이든 도시든 부자들을 중심으로 그들 저택안에 목욕탕 시설을 갖추고 이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기원전 2세기 무렵 로마에 공중목욕탕이 들어섰다. 이때에도 남녀 탕 구별은 있었는데 개인 목욕탕을 가리키는 'balnea' 와 여성 전용탕을 가리키는 'balneae'가 그것이다. 대중목욕은 귀족 뿐만아니라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도 누릴수 있는 진정한 휴식처 였기에 이후로도 황제들은 민심을 얻을 목적으로 크고 많은 목욕탕을 축조하기 시작했다.따라서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났는데, 가장 규모가 큰 카라칼라 황제때의 카라칼라 목욕탕은 탕이라는 개념을 초월하여 우선 목욕탕 내부에 사우나실, 냉탕실, 온탕실, 욕조, 수영장등이 들어서 있다. 직사각형의 거대한 목욕탕 건물의 외부로는 여러 조각상들이 장식된 주랑들이 도열해 있었고, 출입구 좌우로는 바깥쪽을 향해 셀 수도 없이 많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또 정원, 휴게실, 체육관, 산책길, 도서관 박물관까지 있어 생활공간의 축소판 처럼 느껴진다.
실제탕은 건물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64개의 둥근 천장방으로 이루어진 저수조가 대주는 엄청난 물의 양에서 보나 물을 각기 다른 온도로 덥혀 각 탕에 따로 배수해주는 복잡하고도 정교한 난방시스템에서나 보나 카라칼라 목욕탕은 단연 최고 였다. 목욕시설의 체육관에서는 트리곤이라는 공놀이를 남녀노소가 즐겼으며 그외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욕탕을 둘러싼 나무 그늘과 작은 분수대는, 그리고 그 옆쪽으로 회랑으로 둘러싸인 체육관과 그너머로 연결된 조각품전시장까지 있었다.
이걸 보았을 때 지식문화와 신체문화의 결합과 조화 의 그리스 문화가 로마의 목욕탕이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로마인들은 목욕을 스스로 참여하며 수행하는 것이니 이롭고 건강한 행동이며 육체의 건강과 아울러 정신의 건강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때는 성에따라 목욕탕을 구분하기 시작하였는데, 공간이 아닌 시간에따른 구분이었다. 즉 1-7까지는 여자가, 8-10시까지는 남자가 목욕하였다. 긴장을 이완시키고 느긋하게하는 목욕이후에는 그옆에 눈으로 즐길 감상거리가 있고, 먹고 마시고 취할 수 있는 식당, 술집, 사창가 등이있었기에 로마인들은 치명적인 환락생활로 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지만 로마의 모든 민중이 한데 어울려서 즐기는 목욕탕을 통해서 작은 민주주의의 축소판을 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