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 살면서 전 세계로 연주 여행을 하고 음반 녹음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김정원이 새 앨범 『Remember Vienna』를 냈다. 연주회마다 매진을 기록하는 김정원은 클래식 음악계가 인정하는,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다.
클래식 문외한에게 그는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마지막 장면에 나온 피아니스트로 얼굴을 알렸다. 연주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누구에게나 선물하고 싶은 앨범, 『Remember Vienna』
“홈페이지에 있는 연주일정을 보니까 올해도 매달 연주 일정이 잡혀 있던데요, 보통 일 년에 몇 번 정도 연주회를 하시나요?”
“일 년에 열다섯 번에서 스무 번 정도 연주회를 해요.”
“연주가로서의 기백과 도전 정신이 강하게 느껴지는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앨범과 쇼팽 앨범보다, 이번 앨범은 편안한 느낌이 좋습니다. 연주하면서 많이 즐거우셨을 것 같아요.”
“연주를 하면서 빈에서의 추억이 하나하나 생각나서 무척 행복했어요. 선곡부터 연주까지 정말 즐거웠어요. 스트레스 제로였죠.”
“협주곡 앨범도 냈고 솔로 앨범도 냈는데, 어느 쪽이 더 자신에게 맞는 것 같으세요?”
“솔로 쪽이 내 색깔을 더 잘 낼 수 있어서 좋아요. 협주곡은 지휘자와 견해를 나누고 오케스트라의 개성도 반영되니까요.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녹음할 때 힘들어서 다시는 협주곡 녹음 안 한다고 했는데 지금 녹음한 걸 들으면 무척 뿌듯해요.”
“이런 소품집을 내는 걸 외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특별히 외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앨범을 내면 외도라기보다 상업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정통 클래식 앨범보다는 이런 소품집이 더 잘 팔리니까요. 이전의 앨범(협주곡, 쇼팽의 <에튀드>와 <스케르쪼>)은 성취감이 있었지만 내 주변에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즐겨 들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편하게 차 마시면서 들을 수 있는 앨범, 클래식을 몰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앨범을 만들어서 선물하고 싶었어요. 누구에게나 선물하고 싶은 앨범을 만들어 보자, 그것이 이번 앨범의 컨셉트였어요.”
“앨범에 실린 곡 중에 베토벤의 ‘월광’이 참 좋았습니다. 잔잔하게 슬픔에 젖어들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그런 ‘월광’이었습니다.”
“‘월광’이 원래 슬프기만 한 곡은 아닌데 이번 앨범의 ‘월광’은 굉장히 가라앉은 기분이에요. 어머니도 연주회 때 오셔서 ‘월광’을 들으셨는데 눈물을 흘리셨어요.”
“빈은 음악의 도시인만큼 배출한 작곡가도 많은데요. 그중에서 특별히 어떤 분을 좋아하시나요?”
“슈만과 브람스를 특별히 좋아해요. 이번 앨범에는 꼭 이 두 사람의 곡을 넣고 싶었죠.”
피아노와 진지하게 일대일로 만난 빈
“가족과 떨어져 어린 나이에 혼자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셨는데요.”
“열다섯 살 때 독일어도 한마디 모르고 빈에 도착했어요.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방에 묵으면서 랭귀지 학원에 다녔는데 너무너무 외로웠어요. 두려울 정도로 외로웠어요. 그때 견딜 수 있었던 건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다들 음악으로 유학을 간다면 미국으로 갈 때가 아니었나요? 미국으로 갔으면 같이 음악 공부하는 한국 학생도 많아서 훨씬 덜 외로웠을 텐데요.”
“그런 것뿐만 아니라 비전도 미국 쪽이 더 있었죠. 유학을 가는 사람들이 유럽보다 미국을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해요. 그쪽이 기회도 더 많고 시장도 더 크니까요.”
“그래도 굳이 빈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그곳이 클래식의 본고장이잖아요. 빈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커다란 부분은 클래식 문화였어요. 그곳에 가서 저는 클래식 음악이나 피아니스트에 대해 선입견을 많이 깰 수 있었어요.”
“유학 가기 전에는 어떻게 생각하셨는데요?”
“아무래도 클래식은 일부 사람들만 즐기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빈에서 음악 공부를 하면서 아름다운 음악은 누구에게나 통한다는 걸, 누구나 클래식 음악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다는 걸 체험했어요. 그곳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가르침 받은 것만큼이나 이런 문화적인 분위기에 젖을 수 있었던 것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자세도 많이 바뀌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쇼맨십과 리더십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에요. 앞에 나서길 무척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죠. 주목받는 것도 즐기죠. 그런 성격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저는 퍼포먼스를 굉장히 즐기는 타입이거든요. 그래서 유학 가기 전에는 ‘피아니스트는 수많은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좋은 직업’ 이렇게 생각했어요.(웃음) 피아니스트지만 혼자서 연습하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오로지 연습이 끝나면 무대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로 연습을 참았을 정도였으니까요.”
“빈에 가서는 어떠셨나요?”
“처음으로 피아노 소리가 다르게 느껴졌어요. 그전에는 피아노는 누가 눌러도 같은 소리가 나는 악기라고 생각했는데 빈에서 그게 아니라는 걸 느꼈죠. 연습실에서 진지하게 피아노와 일대일로 만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너무 외로웠고, 음악 말고는 파고들 대상이 없었으니까요. 퍼포먼스의 즐거움만큼이나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즐기게 되었죠. 빈에 가서 피아노 연습하는 게 즐거워졌어요. 그전에는 연습량이 부끄러울 만큼 적은 편이었거든요.”
“취미생활도 많이 즐기는 걸로 소문이 나셨는데요. 어떤 취미생활을 하고 계시나요?”
“운동을 좋아해요. 그런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혼자 하는 운동은 별로 안 좋아해요. 여럿이 하는 운동, 시합을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면 뭐든 좋아하고요.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직접 만들어 먹는 것도 좋아해요. 여행도 자주 다니고….”
“혹시 주변에서 언제 피아노 연습을 하느냐고 걱정하진 않나요? 많은 프로 연주자가 사실 취미생활이나 사생활이 없이 온종일 연습에만 몰두하잖아요.”
“그런 걱정 많이 하죠. 그런데 저는 잠이 굉장히 적어요. 잠을 줄여서 논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럼 연습은 하루에 어느 정도 하시나요?”
“저는 학생 때부터 연습량이 많진 않았어요. 대신 집중력이 강해서 피아노 앞에 앉으면 시간을 잊어버려요. 연습을 하다가 한 시간쯤 지났나 싶어서 시간을 보면 여섯 시간이 지났을 때도 있을 정도로요. 학생 때는 지금보다 연습량이 더 많았어요. 지금은 피아노를 치지 않는 날도 있어요. 연주회 2~3주 전부터는 외부와 연락을 끊고 연습에만 집중해요.”
나이가 먹을수록 더욱더 두려워지는 무대
“음악을 하면서 자신의 재능에 좌절을 맛본 적은 없나요? 클래식 음악계만큼 천재가 많은 분야도 없잖아요.”
“재능의 양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그렇지만 내 재능을 타인의 재능과 비교해본 적은 없어요. 아마 남들의 재능과 비교하면서 살면 미쳤을 거예요. 저는 제가 가진 재능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살아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가들 역시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음악가들을 보면 교만하다고 느낄 만큼 자기 재능을 자부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그 정도가 되어야 이 업계에서 살아날 수 있어요.”
“비판과 찬사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음악 활동을 하다 보면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찬사와 비판 혹은 비난에 휩싸이게 되잖아요. 그 속에서 자기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런 비판과 찬사는 클래식 업계의 모순이죠. 스포츠 경기는 명쾌하잖아요. 수영이라면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이 일등이죠. 음악은 사실 승부가 아닌데도 경쟁을 시키고 누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줄을 세우잖아요. 여기서 받은 상처가 분명히 저에게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일찌감치 (운이 좋게도) 음악을 한다는 건 음악과 나의 일대일 승부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백 명의 사람에게 모두 좋다는 평가를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죠. 나에게 공감하는 사람을 위해 연주한다는 생각이에요. 나의 청중은 내 무대를 보러온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레코딩을 하다 보면 ‘결정반’에 대한 욕심은 생기지 않나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은 누구누구의 앨범이 최고다’ 이런 식의.”
“분명히 생기죠. 만약 내가 그런 감투를 받게 된다면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동시에 이런 질문도 받아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최고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네가 그걸 연주할 이유가 있느냐’ 하는 질문을요. 결국은 ‘너는 왜 연주를 하느냐’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도달하죠. 이미 최고의 연주가들이 수없이 많은데 왜 나는 연주를 할까, 내 연주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결국 내가 연주하고 싶으니까 연주하는 거죠. 그리고 이 세상에 내 연주가 좋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음반을 낸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인 되시는 분도 피아니스트라고 들었습니다. 부인께서 음악을 하시는 분이라 도움을 받는 부분도 있고, 갈등을 겪는 부분도 있을 듯한데요.”
“저는 우리 부부 사이에 피아니스트로서 약간의 경쟁의식이 있다면 같이 못 살 거라고 생각해요. 참 이상한 것이 친구는 상관이 없는데 부부일 때는 그게 힘들 것 같더라고요. 아내가 피아니스트라서 저는 도움을 많이 받은 편이에요. 학생 때부터 내 연주 활동을 서포트해 주었고, 가장 가까이에서 내 음악을 인정해주는 사람이에요. 아내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무대 위에서 많이 힘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저처럼 무대를 즐기면서 연주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고 많이 신기했대요.”
“무대 위에서 어떤 압박감이나 긴장감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않나요?”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좀 더 나이가 들면 두려움 같은 게 들 것 같아요. 남들과 비교할 때 거꾸로지요.”
“어째서 나이가 들면 무대가 더 무서울 것 같나요?”
“예전에는 실수하지 않고 완성도 높은 무대가 장땡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음악이 무서울 정도로 자기를 드러내는 거예요. 소리를 들어보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무대 위에서 옷을 벗고 연주하는 느낌이 들어요. 아름다운 사람까지는 힘들고 적어도 무대 위에 올라가서 사기 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죠.(웃음) 예전에 스승님이 ‘예술을 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보다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도구로서 자격을 갖추려면 반은 성직자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때의 전 어려서 ‘무슨 저렇게 고루한 소리를 하실까’ 하고 귓등으로 흘렸는데 요즘 들어 그 말씀이 자주 생각이 나요. 그리고 내가 그런 두려움을 안고 무대에 올라가는 한, 스승님의 가르침에는 엇나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한국은 아직도 클래식 음악의 변방처럼 느껴집니다. 한국인으로 클래식 음악을 하면서 어떤 한계 같은 건 느껴보지 못하셨나요?”
“오히려 저는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양이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걸요. 제 후배들을 봐도 능력 있는 솔리스트가 많고 세계 클래식 콩쿠르 수상자의 반 이상이 동양인이에요. 국내 클래식 인구와 수준도 높아졌죠. 그래서 저는 음악인으로 클래식이 어렵고 소수의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무너지고 대중이 즐기는 음악이 되길 바라요. 또 그렇게 되는 데 일조하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만약에 김정원 씨가 영화 속의 선생님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나요?”
“음, <호로비츠를 위하여> 때문에 여러 인터뷰를 했는데 이런 질문은 처음이네요.(웃음) 저는 영화 속에서 엄정화 씨가 했던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게 과연 그 아이에게 행복한 선택이었을까요?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면서 피아노를 취미로 즐기는 삶이 더 그 아이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설사 본인의 삶이 힘들어지더라도 재능을 꽃피우게 하는 편을 선택했을 것 같아요. 만약 모두가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을 선택한다면 이 지구상에 예술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재능 덕분에 사람은 감동하고, 감동을 통해 인생을 다시 살 힘을 얻습니다. 큰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능 때문에 겪어야 할 고통을 이겨낼 힘도 함께 주신다고 생각해요.”
“좀 전에 ‘감동’이라는 하셨는데요. 감동이라는 것처럼 모호한 말도 없잖아요. 김정원 씨가 생각하는 감동은 어떤 말과 동의어인가요?”
“저에게 감동은 위로를 의미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아요. 그래서 내 음악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위로는 동질감에서 온다고 봐요. 고향을 잃은 사람을 가장 잘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과 똑같이 고향을 잃은 경험을 한 사람이 아닐까요? 아파야지 아픈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면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어요.”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요. 피아니스트 중에서는 훗날 지휘자가 된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정명훈도 그렇고, 바렌보임과 아쉬케나지도 그렇고. 왜 그런지 궁금해요.”
“아마 그건 피아노가 앙상블을,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악기기 때문일 거예요. 저도 피아노를 치다 보면 이 손가락은 오보에, 이 손가락은 첼로, 이 손가락은 바이올린의 소리가 울려나온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요.”
“그럼 혹시 나중에 지휘자가 될 생각이 있나요?”
“언젠가 지휘자가 되고 싶어요. 피아니스트로 더 이상 고단해서 살 수 없을 때 지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피아니스트 살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끝도 없는 자신과의 싸움이고, 하고 싶은 일을 참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지금 30대인데 곧 40대가 될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더라고요. 그리고 연습이 힘들어요. 테크닉은 이미 10대 후반에서 20대에 절정에 이르고 그 이후의 연습은 그 테크닉이 퇴보하지 않도록, 아니면 천천히 퇴보하도록 하려는 연습이거든요. ‘무엇을 위해 연습을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죠. 이럴 때 다른 무언가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지 않는다면 음악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음악을 하는 것이 더 이상 힘들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돼요.”
“피로감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리히터의 마지막 연주를 본 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잠이 안 왔어요. 피아니스트에게 리히터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연주를 들어보니 너무 형편없는 거예요. 손이 완전히 굳어서 스케일도 안 되고 미스터치도 너무 많고…. 저렇게 손이 굳었으면 아예 연주를 하지 말지 왜 자기 무덤을 파고 다닐까 이해가 안 됐죠. 저는 아직 절정을 향해 가는 연주자고 리히터는 이미 그 절정에 도달했다가 내려가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그 절정에 가기 전에 회의부터 드는 거예요. 그런데 며칠 후 잡지에서 내 그런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리히터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어요.”
“리히터가 뭐라고 말했나요?”
“자기도 연주를 하면 할수록 자기 명성을 갉아먹는 걸 알지만 자신은 연주중독이어서, 연주를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명연주를 듣고 싶으면 내가 전성기 때 녹음한 음반을 들어보라고 말했어요. 리히터는 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걸 보고 음악이 정말 예술이라는 걸 느꼈어요. 죽는 날까지 해도 새로운 것을 줄 수 있는 원천이고, 아무리 많은 성취를 이뤘다 해도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음악이에요. 끈기 없고 뭐든 싫증 잘 내는 내가 지금까지 음악을 붙잡고 있는 건 그런 위대함과 새로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
첫댓글 멋잇는 김정원님^-^//
그럼 잠을 얼마동안 자세용?궁금하넹^^요리도 사진도 잘찍는 정원님이시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