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눈병을 낫게 한 감응사 약수 / 성주 4

[계림]

왕자의 눈병을 낫게 한 감응사 약수
대구에서 떠나는 가족여행 (4) - 성주 (4) 영취산 아래 한개마을도 둘러보고
	정만진(daeguedu) 기자

	▲ 독수리가 가르쳐준 약수 덕분에 신라 왕자의 눈병이 나았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경북 성주 영취산 감응사
	ⓒ 정만진

대구(성서)에서 20km쯤 서쪽으로 가면 '→왜관 월항 ↑성주'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이정표 옆에는 '→한개마을 3km 선석사 세종대왕자태실 10.4km'라는 갈색 관광지 안내판이 서 있다.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 도로로 접어들면 금세 한개마을에 닿는다. 한개[大浦]마을은 성주의 큰 내인 이천(伊川)과 백천(白川)이 합류하는 지점이 마을 앞에 있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다. 이 마을 뒤에 해발 322m의 영취산(靈鷲山)이 있고, 영취산 거의 정상에 신라 고찰 감응사(感應寺)가 있다. 한개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을 쳐다보면 영취산 거의 정상 지점에서 천년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감응사의 모습이 숲 속에 반쯤 파묻힌 채 눈에 들어온다.

영취산의 취(鷲)는 '독수리'를 나타낸다. 산 이름에 영험할 영(靈), 독수리 취(鷲) 자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 누구나 이 산이 영험한 독수리와 모종의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신라 40대 애장왕은 왕자의 병 때문에 늘 마음이 아팠다. 태어나면서부터 왕자는 눈이 나빠 제대로 앞을 보지 못했던 까닭이다. 왕비도 왕자의 눈을 고치기 위해 온갖 약을 다 구해서 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 꿈에 도인이 나타나 "내일 아침 해가 뜰 무렵 문 앞에 독수리가 나타날 것이니, 그 독수리를 따라 서쪽으로 줄곧 가다보면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외다. 그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면 눈이 나을 것이오" 하고 말했다.

▲ 감응사 삼성각
ⓒ 정만진

이튿날 아침, 과연 독수리가 문 앞에 나타났다. 왕은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당연히 특별히 날랜 군사들을 뽑아 독수리의 뒤를 쫓게 했다. 독수리는 서라벌 하늘을 세 바퀴 돌더니 서쪽으로 서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군사들은 말을 재촉하여 독수리가 날아가는 쪽을 향해 휘달렸다. 가다가 강이 놓이자 독수리는 말이 도강하기를 기다리는 듯 강언저리를 세 바퀴 돌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군사들은 독수리를 놓치고 말았다. 왕명을 받고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왕자의 눈병을 낫게 해줄 약수를 찾기도 전에 독수리의 행방을 잃고 말았으니 이제 큰일났다! 그 때 어디선가 독수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산등성이 늙은 소나무 위에서 독수리가 울어대고 있었다.

군사들은 부랴부랴 산을 올랐다. 어느샌가 독수리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지만, 독수리가 앉아서 울던 소나무 아래 바위틈에서는 맑디맑은 약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사들은 잽싸게 마을로 뛰어내려가 깨끗한 덩굴박을 구해 맑은 약수를 길어 담았다. 이 약수를 마시자 왕자의 눈은 깜쪽같이 완치되었다. 왕과 왕비는 크게 기뻐하며 군사들에게 상을 내렸고, 신령스러운 독수리가 가르쳐준 이 산을 영취산이라 부르게 하였으며, 약수 앞에 절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도록 명했다.

▲ 감응사에서 내려다본 한개마을 전경. 마을 앞 들판을 강이 휘돌아 흐르고 있어 이 마을의 이름이 한[大]개[川]로 붙은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 정만진

애장왕 3년(서기 802년) 체징(體澄)이 창건한 이 절의 이름은 나중에 감응사로 바뀌었다. 감응사는 1,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취산에 남아 한개마을과 그 앞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 유명세만큼 위용을 자랑하거나 대단한 문화유산을 보유하지 못해 방문객들을 자못 안타깝게 한다. <성주군지(郡誌)>는 '이 약수는 절 뒤의 절벽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옥류정(玉流井)이라 하며, 지금도 그 물맛이 달고 차가워서 이름이 높다'고 기록하고 있다.

▲ 한개마을 골목 풍경
ⓒ 정만진

감응사 가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취산 바로 아래 한개마을 한복판을 걸어 그대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걸어서 20분 남짓 걸리는데, 약간의 경사는 있지만 숲길을 따라 걷는 한가로움도 만끽할 수 있어 어린 아이와 함께라도 충분히 밟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시간이 없거나 병약자와 동행하는 경우인데, 한개마을에서 오른쪽으로 얕은 야산 모퉁이를 하나 돌면 금세 나타나는 '→ 감응사' 이정표를 따라 차를 몰고 영취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좁은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영취산 거의 90% 지점 주차장까지 갈 수 있고, 거기서 200m 정도 걸으면 감응사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감응사까지 가는 이 길도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이라 정취가 아주 좋다.

첫 번째 길로 감응사에 갔건, 두 번째 길로 감응사에 갔건, 한개마을은 산에서 내려온 뒤에 들러보는 것이 좋다.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것이 제대로 된 경치 감상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감응사에서 내려다보는 한개마을의 전경부터 먼저 감상한 후에 내려와 한개마을의 이곳저곳을 즐기면 된다.

특히 감응사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이천과 백천이 합해져 한개마을 앞 들판을 흘러가는 광경이 보인다. 왜 이 마을 이름이 '한개[大川]'마을인지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 한개마을은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고택들로 이루어진 전통 집성촌이다.
	ⓒ 정만진

<한개마을은 500여 년 전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개척한 성산(星山) 이(李)씨 집성촌이다. 성주군청이 발행한 "관광 성주" 안내도는 성산동 고분군, 성밖숲, 세종대왕자 태실, 독용산성, 가야산, 포천계곡, 무흘4곡 선바위, 성주댐과 더불어 이곳 한개마을을 '가볼 만한 곳' 아홉 명소로 추천하고 있다.

크고 작은 옛집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양반촌으로, 고가옥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성주 한개마을' 안내판을 읽은 다음 마을 안으로 들어가 각각의 고택들을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 고택마다 집 앞에 별도의 안내판이 있어 그 집의 특징을 그때그때 충분히 알 수 있다.

참고로, 마을 입구의 '성주 한개마을' 안내 입간판에 기록된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일부 한자 표기 생략).

font color=a77a>한개마을은 성산이씨(星山李氏)가 대대로 살아온 전형적인 동성(同姓)마을로, 조선 세종 때에 진주목사(晋州牧使)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처음으로 이 곳에 이주하여 마을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은 월봉(月峰) 이정현(李廷賢)의 후손들이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있는 한옥 보존마을이다.

이 마을의 지형은 마을 뒤에 해발 322m의 영취산(靈鷲山)이 마을을 중심으로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로 뻗어 있고, 마을 앞에는 이천(伊川)과 백천(白川)이 합쳐 흐르고 있어서 영남 제일의 길지(吉地)를 이루고 있다.

▲ 한개마을 앞 비닐하우스에 황혼이 깃들었다. 무너진 우리 농촌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아 사진에 "농민의 황혼"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 정만진

한개마을은 이름 있는 선비를 많이 배출하였는데, 마을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와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이 있다. 이원조는 대사간(大司諫),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공조판서(工曹判書) 등 고관(高官) 요직(要職)을 역임하였으며, 정헌(定憲)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이진상은 한말(韓末) 성리학의 대표적 이론가로, 심즉리설(心卽理說)이라는 새로운 성리학풍(性理學風)을 열었다.

오늘날 이 마을에는 월봉정(月峰亭), 첨경재(瞻敬齋), 서륜재(敍倫齋), 일관정(一貫亭), 여동서당(餘洞書堂) 등 5동의 재실(齋室)이 있으며,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교리댁(敎理宅), 북비고택(北批古宅), 한주종택(寒洲宗宅), 월곡댁(月谷宅), 하회댁(河回宅), 극와고택(極窩古宅), 진사댁(進士宅)이 있으며, 경상북도 민속자료 및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집집마다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전적(典籍)과 교지(敎旨) 등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고택들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한개마을 앞 들판 너머의 야트막한 야산 위에 노을이 떴다. 비닐하우스를 황혼으로 물들인 아주 독특한 노을이다. 성주는 참외의 고장이라 온통 들판이 비닐하우스이지만, 비닐하우스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이 풍경은 낯설고도 애잔하다.

'농민의 황혼'이라 해야 하나. 왕자의 눈병을 낫게 해준 독수리의 전설을 안고 있는 영취산 중턱 감응사와 그 아래 한개마을을 떠나며 이제는 다 무너진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을 잠깐 생각해 본다.

	2006-02-25 14:50
	ⓒ 2006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