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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지파의 성소봉사 모본과 영혼의 성전 속에 있는 성령
목사들은 질서를 존중하고, 자기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성공적으로 훈련시키고, 잘 훈련받은 군대처럼 조화롭게 활동하도록, 그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된다.
전쟁터에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훈련과 질서가 필요하다면 싸움터에서 적군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런 자들의 목적보다 성격 면에서 훨씬 더 가치 있고, 고상한 목적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우리의 전쟁에서는 더욱 필요하다. 우리가 임하고 있는 전쟁에는, 영원한 문제들이 걸려 있다.(1T 649.1)
천사들은, 조화(調和:즐겁게 어울림)를 이루어 활동한다. 완전한 질서가,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특징짓는다. 우리가 천사의 군대에게 있는 조화와 질서를, 철저하게 본받을수록 우리를 위한 이 하늘 군대의 활동은, 더욱 성공적인 것이 될 것이다.
우리가 조화로운 활동의 필요를 깨닫지 못함으로, 우리의 행동이 무질서하고 규율이 없고 혼란해지면, 철저하게 조직적이고 완전한 질서 아래 움직이는 천사들은, 우리를 위하여 성공적으로 일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슬픔을 안고 돌아서게 된다.
그들은 혼란과 혼잡과 무질서를 축복하도록, 위임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의 사자들의 협력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과 연합해서 일해야 한다. 하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그들의 모든 활동을 통하여 질서와 훈련과, 행동의 통일을 권장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과 협력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하늘의 사자들은, 파격과 혼란과 무질서를 결코, 결코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악은 우리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용기를 꺾고 성공적인 활동을 방해하기 위하여, 사단이 활동한 결과이다.(1T 649.2) 사단은 성공이 오직 질서와 조화로운 활동에만, 수반(隨伴:함께 수행해서 이루지게)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는 하늘과 연결된 모든 것이 완전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과 순종과 철저한 훈련이 천사의 군대의, 움직임을 특징짓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자들이 가능한 한 하늘의 계획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그가 고안한 활동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언하는 자들까지도 기만하여, 질서와 훈련이 영성과 반대된다는 것과 그들을 위한, 유일의 안전책은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의 길을 따르고 연합을 이루어, 훈련과 행동의 조화를 기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단체에서, 특별히 별개의 존재로 남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기울인 모든 노력은, 위험한 것이요 정당한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하여 마치 천주교의 제도처럼, 두려워하게 된다.
이와 같이 기만당한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다고 뽐내는 것을 일종의 덕성으로 여긴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하는 말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떤 사람에게도, 순종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형제들과 동떨어지게 스스로 고안해 내어, 자신의 길을 택하는 것이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사단의 특별한 일임을 보았다.(1T 650.1)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애굽’을 떠난 직후에 그들은 조직을 이루고, 가장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특별한 섭리로써, ‘모세’에게 자격을 갖추게 하여 ‘이스라엘’ 대군의 선두에 서게 하셨다.
그는 ‘애굽’군대를, 지휘하는 강력한 전사(戰士;사령관)였다. 그리고 그의 지휘 솜씨는, 어떤 사람도 능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성막이 택함 받은 아무 지파에 의해서나, 아무렇게나 관리되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분은 “법궤”를 운반하는 일을 위하여 그분이 정하신, 질서를 자세히 알려 주시고 그것을 메기 위한, ‘레위’지파의 특별한 족속을 지적하실 만큼 철저하셨다.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이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장막을 쳐야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을 성막위에 직접 머물게 하심으로, 그분의 뜻을 알려 주셨다.
그리고 그 구름기둥은 그들이 다시 여행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실 때까지 그 곳에 머물렀다. 그들의 여행 동안 내내 그들은, 완전한 질서를 유지하도록 요구받았다.
각 지파는 조상의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었으며, 각자의 깃발 아래 장막을 치도록 되어있었다. “법궤”가 움직이면 ‘이스라엘’대군이 여행을 시작하고, 여러 지파들이 각자의 깃발 아래 질서 있게 행진했다. ‘레위’지파는 그 지파의 맨 가운데 “법궤”를 메고 가도록, 주님께로부터 지정되었다.
‘모세’와 ‘아론’은 “법궤” 바로 앞에서 행진해 가고, ‘아론’의 아들들은 각각 나팔을 들고 그들 곁을 따랐다. 그들은 ‘모세’에게서 지시를 받아야 했는데 그 지시는, 나팔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있었다.
이 나팔들은 백성들이 이해하는 특별한 소리를 내게 되어 있었으며, 거기에 따라 그들의 움직임이 지시되었다.(1T 650.2) 사람들이 주목하도록 어떤 특별한 군호[신호]가, 나팔 부는 사람을 통하여 먼저 전달되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주의를 기울여, 특정한 나팔소리에 순종해야 했다. 나팔소리에는, 아무런 혼란이 없었다. 그러므로 움직이는데 있어서, 혼란을 핑계할 길이 없었다.
각 무리를 지휘하는 담당자가 그들에게 요구되는, 동작에 관하여 분명한 지시를 했기 때문에, 주의를 집중시킨 사람들은 한 사람도 그들이 해야 할 것을, 모른 채 방치되지 않았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주님을 통하여 ‘모세’에게,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전달된 요구 사항에 응하지 못하면, 그들은 죽음으로 형벌을 받았다. 그들이 그 요구 사항의 성격을 알지 못했다는 핑계로‘ 애원할 길은 없었다.
그들은 고의적인 무지를 스스로 입증하는데 불과(不過:수준을 넘지 못함)하므로, 그들의 범죄에 알맞은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들이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들은 백성들 중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주어진, 지식을 얻을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그들의 죄는 마치 그들이 듣고서도, 범죄 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눈앞에는 큰 것이었다.(1T 651.1)
주님께서는 ‘레위지파의 특별한 어떤 족속에게, “법궤”를 메도록 지시하셨다. 그리고 ’레위‘지파의 다른 족속들은 성막과 그 모든 기구들을 메거나, 성막을 세우고 뜯는 작업을 하도록 특별히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호기심이나 질서관념의 부족으로, 자기 자리를 이탈하여 성막이나 기구의 어떤 부분을 만지거나, 심지어 일꾼들 중 어떤 사람 곁으로 접근하게 되면, 그는 죽임을 당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성막이 담당자를 임의로 택하는, 어떤 지파에 의하여 아무렇게나 운반되고 건립되고 뜯겨지도록 방임(放任:내버려두려)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담당한 일의 신성성[거룩함]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을 택하셨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이 사람들은 백성들에게 “법궤”와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의 특별한 신성성을 알려 주어서, 그들이 그 신성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들을 바라봄으로, ’이스라엘‘에게서 끊어지는 일이 없게 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지성소”에 있는 모든 것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했다.(1T 652.1) ‘이스라엘’ 백성의 여행은, 세밀하게 기록에 남아 있다.
주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신 구원, 그들의 완전한 조직과 특별한 질서, ‘모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쏟아 놓은 그들의 불평, 그들의 범죄와 그들의 반역과 그들의 형벌, 하나님의 현명한 처사에 순종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광야에 버려진,
그들의 이 모든 것에 대한 성실한 묘사는, 우리가 그들의 불순종의 본을 따름으로 그들처럼 넘어지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경고로서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1T 652.2)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 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5-12). 하나님께서, 이제는 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신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분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세대에도 동일하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14:33). 그분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철저하시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모세’ 당시에 정하신 완전한 규율에서 질서와 조직의 교훈을, 우리가 배우기를 바라신다.(1T 652.3)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2:20).(FLB 189.1) 지상성소에 속한 거룩함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만나는 장소를 그들이 어떻게 여겨야 할지 배울 수 있다.
종교적 예배에 관한 백성들의 습관과 관습에 큰 변화가 생기되, 더 좋게 변하지 않고 더 나쁘게 변했다. 우리와 하나님과 관련된 거룩한 것들과 귀중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는 힘을 신속하게 잃어버리고 있으며, 통속적인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내려가고 있다.
옛날에 사람들이 거룩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성소에 대하여 가졌던 존경심은 거의 상실되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분을 예배하는 질서를 명령하셨고, 그것을 세속적 성격에 속한 어떤 것보다 더 높이셨다.(FLB 189.2)
가정은 가족을 위한 성소이며, 골방과 가장 궁벽한 곳에 있는 숲은, 개인의 예배를 위한 성소이다. 그러나 교회는, 회중을 위한 성소이다.(FLB 189.3)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있지만, 그분께서 마치 우리 같은 수준에 계시는 것처럼 주제넘고, 뻔뻔스러운 태도로 그분께 가까이 나가서는 안 된다.
가까이하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위대하시며,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와 그들과 동등한 사람이나 그보다 못한, 사람에게 하듯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상의 통치자의 알현실(謁見室:접견실))에서도 감히 하지 못할 행동을, 하나님의 집에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스랍[세라핀-그룹천사보다 더 상위의 불타는 천사]들이, 경배하고 하늘의 천사들이 그분 앞에서 얼굴을 가리 우는, 분의 면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FLB 189.4) 하나님께 예배하러 모이는 자들은, 모든 악한 일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신령과 진리와 거룩함의 미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아니하면, 저희의 모임은 아무 유익이 없다.(FLB 189.5) 사랑하는 젊은 형제들이여,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나타내는 것은, 그대들의 특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박한 일[게임, 오락, 스포츠, 영화감상, 남녀들의 모임 등]이나 쓸데없는 일 또는, 대수롭지 않은 것에서 마음을 돌이켜서,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에 향하도록 하라.(FLB 189.6)
죄로부터 정결함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FLB 190.1) ‘이사야’ 선지자는, 주의 영광을 보았을 때 놀랐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깊이 느끼고 부르짖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6:5)고 부르짖었다.(FLB 190.2)
‘이사야’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질책해 왔지만 이제 그가, 자신을 보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선고를 내린 것과 꼭 같은, 정죄 하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도 그는 차갑고 생기 없는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주의 이상이 그에게 주어질 때까지, 이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가 성소의 위엄과 거룩함을 보았을 때, 그의 지혜와 재능들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사야’가 자신을 본 이러한 견해를, ‘바울’의 말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FLB 190.3)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 6:6,7).(FLB 190.4) ‘이사야’에게 주어진 이상은 말세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를 상징한다.
믿음으로 그들은 지금 하늘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을 볼 수 있는 특권들을 받았다.... 믿음으로 그들이 “지성소”를 보고 그곳에서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볼 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입술이 부정한 백성, 곧 그들의 입술은 자주 헛된 것을 말하고 그들의 재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별하지 않고 그 영광을 위해서, 쓰이지 않는 자들임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들의 연약하고 무가치함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인격의 순결함과, 아름다움을 대조해 볼 때에 당연히 절망감을 느끼겠지만, ‘이사야’처럼 주께서 그들의 마음에 주시기로 계획하신 감명을 받아서, 그들의 영혼을 그분 앞에서 겸비하게 하면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 “언약의 무지개”는 “보좌” 위에 있다. ‘이사야’를 위해서 하신 일을 그들 속에서도 하실 것이다.(FLB 190.5)
영혼의 성전 속에 있는 성령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FLB 191.1) 영세 전부터 광명하고 거룩한 스랍 천사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을 창조주께서 내재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그쳤다. 사람의 마음은 죄악으로 어두워지고 더러워져서, 신령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더 이상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쓰시고 사람이 되심으로, 하늘의 목적은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 인류 안에 거하시고 또한 구원하는 은혜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은 다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FLB 191.2)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모든 영혼에게 고상한 운명이, 공개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거 하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그 성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성령이 임재하실 만한 성전으로 바치지 않았다.
불경한 거래의 혼잡으로 채워진 ‘예루살렘’ 성전 뜰은, 관능적인 욕정과 부정한 생각을 품음으로 더러워진 모든 사람의, 마음의 성전을 너무나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었다. 세상의 매매하는 자들로부터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마음에서 더러운 죄 곧 영혼을 부패하게 하는, 세속적인 욕망, 이기적인 욕정, 악한 습관을 제거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그분의 사명을 나타내셨다.(FLB 191.3) 어떤 사람도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악한 세력을 자기 스스로 내쫓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만 영혼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강제로 들어가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옛날 성전에 들어가셨던 것처럼, 마음에 들어오지는 않으신다. 그는“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리라,”(계3:20)고 말씀하신다.
[성령을 통하여 부르심에 응하는 자는 문을 열 것이며, 문 여는 자에게만 들어가심에 유념하고, 마지막 세 천사의 기별을 믿는 자만 구원조건에 들어가는 진리말씀을 받들 것이다]
그는 또 하루 동안만 와 계시지는 않으실 것인데, 이는 그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 지 시리이다.”(고후6:16;미7:17)고 말씀하신 까닭이다.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은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성결하게 하여 주님의 거룩한 성전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엡2:21,22)되게 할 것이다.(FLB 191.4) 주께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선물을 주기를 원하는 것보다, 그분을 섬기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더 원하고 계신다.(FLB 191.5)
성소의 목적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고전25:8).(FLB 192.1)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출29:43, ]45)는 보증이 ‘모세’에게 주어졌다.(FLB 192.2)
하나님이 거하실 성소를 짓는 데 있어서, ‘모세’는 모든 것을 하늘에 있는 것을‘ 본떠서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산으로 부르셔서’ 하늘의 것들을 보여 주셨다. 그리하여 성막과 그 부속물은, 다 하늘의 것들을 본받아서 만들게 하였다. (FLB 192.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이 거할 곳을 만들어 주길 원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품성의 영광스러운 전형을 보여 주셨다. 이 품성의 전형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시는 중에, ‘모세’의 앞을 지나시면서 그들에게 보여 졌다.(FLB 192.4)
그러나 그들 스스로는, 이 이상에 도달할 능력을 갖지 못하였다. ‘시내산’에서의 계시는 다만 그들의 마음에, 그들 자신의 부족함과 무력함을 깊이 깨닫게 할 뿐이었다.
그들은 성소에서 행해지는 희생봉사를 통하여 또 다른 교훈, 즉 죄의 용서와 구주께 순종함으로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배워야 했다.(FLB 192.5) 영광으로 가득 찬 성막, 그룹들을 수놓아 짠 휘장을 반영하여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황금 벽, 쉴 새 없이 피어올라 성소에 가득한 향연, 깨끗한 흰옷을 입은 제사장들,
“지성소”의 깊은 신비에 싸여 “시은좌” 위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있는 천사의 형상 사이로 나타난, “지성소”의 영광 이런 성막이 상징하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어야 할 것이었다.
이런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목적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셨다. 훨씬 뒤에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그와 꼭 같은 목적에서였다.(FLB 192.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 17)(FLB 192.7)
희생으로 지어진 성전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출25:2)(FLB 193.1)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성소의 구조를 도면으로 보여 주시고, 그 크기와 형태와 사용할 재료들과 그 안에 비치해야 할, 모든 기구에 대하여 상세한 지시를 주셨다.
손으로 지은 성소는 “참 것의 그림자”요,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히9:23,24)이다. 즉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후 죄인을 위하여 봉사하기로 되어 있는, 하늘 성소의 축소판이다.(FLB 193.2)
성소를 건축하기 위하여 많은 준비와 값진 재료들이 필요하였고, 다량의 가장 귀중하고 비싼 재료가 요구되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원하는 헌물만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출25:2)으라고, ‘모세’를 통하여 회중에게 반복해서 명령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희생의 정신이 지극히 높으신 분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는 데 있어서 첫째 필요조건이었다.(FLB 193.3) 희생할 때가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다.(FLB 193.7)
하나님의 성소의 능력과 아름다움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시96:6).(FLB 194.1) 인간이 창조되고 타락한 후로부터 현재까지 그리스도를 통하여, 타락한 인류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끊임없이 전개되어 왔다.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과 성전은, 하늘 본체를 따라 지어져왔다. 성소와 그 엄숙한 봉사에는 각 시대를 통하여 발전되어 온, 광대한 진리를 신비스럽게 집약되어 있다.(FLB 194.2)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그들의 통치자로 인정해 왔을 때보다 하나님께서 그 광대하심과, 위엄의 증거를 주신 때는 결코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 왕의 출현은 장엄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엄이 있었다.
왕권이 권세를 나타냈으나, 그것은 인간의 손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속죄소”로 덮여있었던 거룩한 “법궤”는, 여호와 그분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이스라엘인들의 능력이었다. 그 앞에서 우상은 박살나고, 경솔하게 그것을 엿보다가 수천인이 멸망했다.
하나님께서 다만 홀로 ‘이스라엘’ 왕으로서, 인정하심을 받았을 때처럼 그분 자신의 최상권을 나타내셨던 것은, 이 세상에서는 그 후에도 없었고 그 전에도 없었다.(FLB 194.3) “법궤” 속에 안치된 하나님의 율법은, 의와 심판의 대 원칙이었다.
그 율법은, 위반자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그 율법 위에 속죄소가 있었고, 그 위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났으며, 거기로부터 속죄의 공로로 말미암아 회개한 죄인에게, 사유하심이 허락되었다.
이와 같이 성소의 봉사로 상징된, 우리의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업 가운데,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시85:10)다.(FLB 194.4)
우리는 오늘날 우리 구주께서 오셨다는 것과 구약당시의 희생제물이, 죄를 위한 완전한 제물로 드려졌다는 것을 기뻐하는 한 편, 구약당시를 가볍게 생각하고 경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FLB 194.5)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시96:6).(FLB 194.1)
구주시요 제사장이요 왕이신 그리스도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7:26).(FLB 195.1) 하나님의 명령으로 ‘레위’족속은 성소봉사를 위하여 구별되었다. 고대사회에서는, 모든 남자는 자기가족의 제사장이었다.
‘아브라함’시대에는 제사장 직분은, 장자의 상속권으로 간주되었다. 이제는 모든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성소의 일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레위’족속을 받으셨다.
그러나 제사장의 직분은, ‘아론’의 가족에 국한되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이 여호와 앞에서, 봉사하도록 허락되었다. 그 지파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성막과 그 기구를 관리하는 책임이 맡겨졌다.(FLB 195.2)
그들의 직무에 따라, 특별한 복장이 제사장들을 위하여 지정되었다.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출28:2)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셨다....
제사장들의 복장과 태도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에 대한 예배의 신성함과 그분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성결함을 깨닫고, 보는 사람에게 감명을 줄 만한 것이라야 하였다. 성소 자체뿐 아니라 제사장들의 봉사도,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8:5)의 구실을 해야 하였다.(FLB 195.3)
성막과 후에 그것을 대신한 성소봉사에서 백성들은, 날마다 예표와 그림자라는 방법으로 구주시요 제사장이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오심과 관계된 큰 진리를 배웠고 매년 한 번씩 그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 쟁투의 마지막 사건들과, 우주가 죄와 죄인들로부터 정결함을 입을 최후의 사건으로 이끌어 갔다. ‘모세’의 의문의 희생과 제물도 언제나 더 나은 예배 즉, 하늘의 것을 지적하였다.(FLB 195.4)
[예수님의] 희생의 공로는,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께 드리기에 넉넉하였다.(FLB 195.5)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죄 많은 인간에게 언제나 허락되어 있는 가장 귀중한 특권으로, 가장 큰 축복으로 여겨야 한다.(FLB 195.6)
하나님께 매일 산 제사로 드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FLB 196.1) 성소의 봉사는 매일의 봉사와 연례적인 봉사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매일의 봉사는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과 성소에서 수행되었고, 연례적인 봉사는 지성소에서 거행되었다.(FLB 196.2) 매일의 봉사는 조석으로 드리는 번제와 금 향단에, 향기로운 향을 드리는 일과 개인들의 죄를 위한, 특별한 제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석으로 드리는 제사를 위하여 정해진 시간들은, 거룩하게 여겨져서 그 시간은 ‘유대민족’ 전체를 통하여, 예배를 위한 정한 시간으로 지켜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조석 예배의 표본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에 대한 진정한 정신이 없이, 단순히 의식만을 반복하는 것을 정죄하시지만, 그들이 범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필요한 축복을 간구하기 위하여, 조석으로 머리 숙이는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을 큰 기쁨으로 바라보신다.(FLB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