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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올려진 글을 읽던 중 아담의 원죄에 관한 글을 읽다가 지난날 써 놓았던 글이 기억나 함께 나누고자 올려봅니다.
오늘도 말씀안에서 그 은혜까지만 달려갈 수 있길 소원하면서....
성경은 연좌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실까요?
성경을 통해 우리는 원죄에 대해서 종종 듣게 되고 나누게 됩니다.
아담의 선악과 타락 이후 인생들은 모두가 원죄의 족쇄가 지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연좌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동안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요?
사실 저도 오늘 이전까지만 해도 깊이있게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사무엘상 15장2절~3절에서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부분의 말씀을 듣고
과연 이것은 연좌제에 의한 징벌인가 아닌가가 갑자기 궁금해졌고 그러다 보니 이렇듯 글이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전한 내용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성경에는 이처럼 연좌제를 연상케 하는 사건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므로 나단 선지자로부터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삼하12:14)
결국 그 아이는 죽게됩니다.
아말렉 조상이 지은 죄로 인해 아말렉 후손들이 몰살을 당하고 다윗의 범죄로 인해 다윗과 우리아의 아내 밧새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게되고 아담의 선악과 범죄로 인해 그 이후의 인생들은 원죄를 얻게되어 사망에 이르는....
이렇게 죽게된 인생들은 연좌제로 인해 죽게된 것일까요?
그동안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그동안 어떻게 전해 들으셨나요?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신명기 24:16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성경은 위와같이 분명하게도 연좌제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처음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분명코 성경은 아멜렉 조상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한것을 이유로 그들의 후손인 아멜렉족속을 멸절하라 명령하십니다.
젖먹이 아이까지도
또한 다윗의 죄로 인해 태어나게된 아이가 반드시 죽게되리라는 말씀도 선지자를 통해 듣게되고 그 아이는 말씀처럼 죽게됩니다.
왜일까요?
분명코 아버지의 죄로 자식이 죽지 않을것이라 성경은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왜 젖먹이까지 죽이라 하셨을까요?
왜 그 아이는 사망선고를 미리 받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을까요?
요한복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결국 자기 죄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이루어진 사건들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육신적 한계로 인해 시공간에 매인바 되었기에 모든 해석을 인본론적 사고로 이해하고자하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며 하나님 중심으로 이해 되어져야만 전체 말씀이 하나로 관통되는 비밀을 가지고있습니다.
마가복음12장에서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들은 일곱형제 모두와 순차적으로 결혼하게된 한 여인이 훗날 부활때 누구의 아내가 되는냐는 질문이었던걸 기억하실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답변은
막12장26~27절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각자의 시공간속에 살았던 인생들이며 육신적으로 볼때에는 죽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하나님께 택함받은 백성들 모두는 하나님의 시공간에서는 모두가 동일선상 위에서 지금도 똑같이 하나님과 마주대하고 있는 하나님께는 죽은자가 아닌 산 자들인것입니다.
과거,현재,미래가 인생들에게는 존재하나 그 시공간을 만드신 전능자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기에 무의미한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닌 산자의 하나님이라 하시는것이고 그러하기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공간적 한계에서 오는 이러한 다차원적인 부분을 깨닫지 못한 사두개인 그리고 수많은 인생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 주재인 연좌제를 돌아보겠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아멜렉이 범죄하는 순간과 그 후손인 아멜렉인들이 범죄하는 순간을 하나님은 동일 선상에서 함께 보고계신것입니다.
단지 앞서 말씀드렸던 인생들만이 각각의 시공간에 묶여 완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할 뿐이죠.
그것은 간난 아기가 되었건, 태속에 아이가 되었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인생이 되었건 모두 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에덴 동산의 첫 아담과 오늘날의 우리들과 그리고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또 다른 미래의 인생과도 모두 동일하게 말입니다.
그러하기에 첫아담이 에덴에서 취한 그 범죄로 인해 "내"가 죄를 억울하게 뒤집어 쓴것이 아닙니다.
첫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그 순간과 현재 오늘날 내가 하나님 앞에 선악을 구별하며 죄를 짓는 모습은 하나님의 위치에서는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지는 동시 진행형의 죄인것입니다.(내 과거,현재,미래 모두)
그 아담이 하나님께 변명했듯 하나님께서 주신 또 다른 나 "하와" 가 함께 먹자 하였기에 먹었나이다 라고 반론하듯
오늘날 현재의 아담들은 끊임없이 선악과를 취하며 하나님이 주신 내 안의 또 다른 내(자유의지)가 먹자 하였기에 먹었나이다 라고 끊임없이 대항하며 반론하는 것입니다.
첫 아담 역시 좋을 때는 내 뼈중의 뼈요 내 살중에 살이라 칭송하던 하와였지만 죄 앞에 섣을 때는 하와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탓합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도 내가 때로 의롭고 선을 흉내내고 좋을 때는 스스로를 존귀히 여기다 추락하여 나락에 떨어지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바로 내가 그 선악과 취하던 아담이 되는것입니다.
아멜렉조상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던 모습과 그 후손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모습 역시도 하나님의 위치에서는 동일선상 인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죄의 모습과 그 간난아기의 과거,현재,미래 모두들 역시도 하나님께는 동일하게 마주대하고 계신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 징벌의 사건들은 연좌제에 의한 징벌이 아닌 "각자의 죄"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24:1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인본론적 시각으로 구약을 바라보게되면 도무지 이해 불가한 이야기들로 넘쳐 납니다.
그러하기에 사랑의 하나님을 정당화 시키기위해 억지스런 권선징악 등이 등장하게됩니다.
이 사랑 역시도 인본론적 잣대를 들이대어 하나님의 사랑을 규정 하고자 한 인간들의 교만에서 나온 오해인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젓먹이까지 모두 멸절하라하셨던 하나님)
변하는것은 인생들이고 그 인생들의 눈높이로 해석하고 받아 들이고 싶은 부분만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려 하다보니 첫 아담의 원죄로 인해 지금의 내가 조금이라도 피해를 본것 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사랑의 하나님은 인본론적 사랑이 아닌 절대 주권적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시고 이루심을 나타내신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성경은 구약을 펼쳐도 신약을 펼쳐도 그 어디를 펼쳐 보아도 모두가 한가지 말씀만을 하고 계신것입니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을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진리는 참 심플하다 합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이 깨달아 지는 진리가 오직 허락하시는 이의 선물로 밖에 이해될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진리를 인지할수는 있어도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오늘 알아지는 이 진리가 내일은 또 어떻게 다가 올지 자신할 수 없는 인생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첫댓글 성경이 말씀하는 죄는 의를 드러내기 위한 죄입니다.
세상을 불순종 아래 가두신 것이 하나님이라고 하시잖아요.
긍휼베푸심, 곧 하나님의 자궁에서 새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함 이지요
그래서 에덴이라는 무대를 통해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셋팅이 되고
한사람 아담(하와가 아닙니다)을 통로로 세상에 죄를 집어 넣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통일, 새창조를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본래 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분이심에도
아들 예수를 위한 창조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죄도 사망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창조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들을 위한 창조 입니다.
그래서 형제, 신부, 백성 이라는 단어들이 등장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담 안에서 이미 신이 되어버린 인간들은 각자의 안목으로
죄에 대해서도 의에 대해서도 오해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아담의 형상으로 생산한 죽고 죽는 아담들이 아니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서 아들들에게만 주목하십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생산한 자식들에 대해 레위기는 해산하면 속죄제를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결국 죄의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하는가 입니다.
죄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문제는 관심밖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증거 할 때는 그런 인간의 죄로 인해 발생된 언약의 피가
어떤 하나님의 은혜이며 심판인지를 함께 전해야 합니다
@강구만 그래야 복음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복음은 십자가를 빼버린 복음이지요.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보니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사람들에게 욕 안먹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들이 오해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성령이 아니고서는 절대 예수를 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게 죄인의 실체이니까요.
그래서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 십자가의 영이라고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맹점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인간에게 이해시킬려는 기특한 열심이 오히려 복음을 대적하는 다른 복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에의한 사람을 위한 신학은 그래서 언제나 말씀 앞에서 부정당하기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강구만 그런 신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교회 역시 마찬가지로 말씀 앞에 날마다 해체되고 새롭게 세워지는 교회여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날마다 새로운 교회입니다. 교회의 역사와 인간들의 수고가 부정되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발생되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땀이 축적된 교회가 부정 당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리끼는 십자가부터 치워 버리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온전히 이루어진 사랑인데도 그런 사랑이 아닌 자신을 긍정해주고 자신의 힘이 되는 사랑만 사랑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십자가는 오늘도 미련하고 거리끼는 흉물이되어서 성문밖에 갖다 버린
@강구만 오래 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들을 꾀더냐 라고 호통을 칩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성도에게는 심플하듯이 마귀의 궤계도 하나 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십자가를 가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섬겨도 좋고 본 받아도 좋고 가르쳐도 좋은데 십자가만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들의 종교성을 부추겨서 십자가복음이 아닌 종교놀이를 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도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눈과 지혜가 주어집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한 "내가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십자가외엔 알지 않기로 했다"는 말씀입니다
@강구만 고기낚다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
38년된 병자
사마리아 여인
죽었다 살아난 백부장의 딸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잡아 죽이다 부르심을 받게된 사도바울 등
왜 성경은 그들을 복음의 모델로 증거하셨을까요?
열심이 믿음을 경주하던 인생들을 모델로 삼지 않으시고 말입니다.
그것은 성도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닌
죄인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성도라 칭함이 되는것이 아닌가합니다.
그러하기에 첫아담의 죄가 내 죄가 되며 마지막 아담의 보혈의 공로가 내 공로가 되어지는 은혜
바울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예수와 십자가를 알게되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오직 은혜였기에 그것이 복음임을...
@손종선의정부 하나님이 보시는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아담과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구원을 이야기 할 때는 아담 안에 있는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영역의 문제로 말 합니다.
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죄의 권세 아래 있는지 은혜 아래 있는지를 말하지 각자의 행위로 인한 죄는 죄의 본질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의, 곧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죄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한 성도는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성도되게 하기 위한 피가 아니라 왜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죄인인지를 그 필연성을 평생토록 책망하시는 분으로 성령이신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고전2:12)
@강구만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아담에 관해 잘 설명한 책이 있습니다. 죄의 본질과 의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스카 쿨만의 그리스도와 아담 입니다.(김성수 목사님 로마서 57강에서 많이 인용을 하신바 있습니다) 오래된 책이라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입니다. (위에 예로드신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보여주기 위한 모델들 입니다)
@강구만 지난날 죄에 관한 질문에 대해 답변으로 썻던 글을 올려 봅니다.
아담의 원죄 이야기에서 죄의 본질까지 확장되는 듯 하나 결국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구속의 은혜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만을 깨닫게됩니다.
소위 신학을 하신 목사님들이 한결같이 말씀 하시는것이 원죄론이죠...
전 그 원죄론을 손종선님이 말씀 하신것처럼 각자 자기의 죄로 인해 심판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의 일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원죄는 우리가 무한이 아닌 유한에 속해 있기 때문일것입니다
이러한 유한에 속해 있으면 무한에 있는 그분을 모르기 때문에 죄가 되는것이지요
아담의 불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된 그러한 연좌죄적인 죄를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비가 신포도를 먹으면 그 아들의 이가 시린다는 이스라엘의 속담을 성경은 금하고 있지요
말씀 하신것처럼 나의 죄 때문에 죽는것입니다
죄가 전가되어서 내가 죽는것이 아니구요..
더 나누고 싶은데 목요 성경공부에 가야해서.....
좋은글 감사합니다^^
말씀안에 말씀을 펼쳐 나누며 과연 그것이 은혜를 향한 것인지 또 다른 무엇을 향한것인지 서로가 상고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안에 교재되어지길 소망합니다.
성경나눔으로 인해 은혜만 목격되길 바라며...^^
감사합니다. 샬롬~
@손종선의정부 사실 죄라는것은 율법의 가입함에 따라 유한한 인생에게 있어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고 경룬이겠지요
율법이 가입하지 않았으면 죄를 죄로 알지 못하는 인생이기에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에게 계명(율법)을주시지요
그 율법은 죄를 죄되게 하는 힘이 있지요(고전15:56)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율법을 주시는것을 상기해야합니다
이는 죄를 드러나게 함이요 그 죄의 삯은 사망(다나토스)인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인것을 알게함이지요(롬6:23)
겔18장 전체의 내용이 인간은 저마다 자기죄로인해 죽는다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지요
그 율법의 가입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씨 심는 죽음을 통해 창3:16절 말씀처럼
@황동억 성도의 잉태함의 수고와 해산하는 수고를 거쳐 자기부인이라는 열매를맺게 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으로 인한 그 분의 그분 되심을 계시 하는것이겠지요^^
그래서 그 첫 아담안에 속한 우리들(역시 아담) 그 아담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그 아담이 바로 나 인것을아는것이 중요하겠지요
결국에는 두번째 아담 즉 살리는 영으로 오셔서 완성되게 하는 그리스도예수를 찬미케 함이라 생각됩니다
@황동억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으로인한 그 분의 그분 되게하심..........아멘입니다. ^^
@황동억 그런데 우리가 여기 죄를 나쁘게 보면은 않된다는것이지요
그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기 위한 즉 죽여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리려는 연장선이고 하나님의 사랑인것이지요(갈2:19-20)
우린 이원론적인것에 갖혀서 좋고 나쁘고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셩경에 나와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 하나를 말함이며 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이지요
창세기에 나오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는곳에 하나님의 영이 찾아와서 창조를 하는것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동일한 창조인것이지요
이것을 성경은 새 창조라고 합니다만...
그 새창조의 삶이 내안에서 실체적으로 일어난자만이 참 그리스도의 지체라 할수 있지요^^
@황동억 사실 죄에 주목하는 인생은 죄에 사로 잡힘 바 된 인생들이지 않을까싶습니다.
물론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이 그 죄가운데 참 자유로울수없는것도 사실이지요
그러함에도 은혜를 맛보고 은혜 가운데 머물게되는 교회는 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점점 더 은혜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고 그 죄를 통해서 은혜를 경험게 되는것이 아닌가합니다.
율법이 없이는 죄를 깨달을 수 없듯 죄가 없이는 은혜를 깨달을 수 없는 구속의 은혜와 같이 말입니다.
물론 그 조차 인생의 열심으로 도달할 수 없기에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아질수록 오직 은혜 앞에 납작업드러지게 되는것이 아닌가합니다.
@손종선의정부 그렇지요 그래서 피조물은 피조물 자리를 지키는 것이며
창조주는 창조주 자리에 있는것이 평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황동억 한동안 시비를 위한 시비를 하려고 오신 분들 땜에 머리가 아팠는데
오랫만에 복음을 나누게 되어서 참 기쁩니다 ^^
@황동억 그 평강 오래토록 누리고 싶은데 본향에서는 그 평강 끊김없이 누릴 수 있겠지요? ^^
@강구만 부족한 인생을 은혜로 받아 주시니 저에게 더욱 은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
@손종선의정부 우리의 하나 됨은 오직 진리의 말씀 안에서만 가능하리라 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거부하고 인위적인 하나 됨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이름을 내세워 교회가 믿음의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 오늘의 현실이지요.
그러다 보니 복음의 교제가 참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요한 목사님 말씀대로 복음으로 소통이 되는 형제를 만나면
죽은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놀란다잖아요 ^^
한주 내내 욕만 얻어 먹다가 이렇게 말씀나눔의 기쁨도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
두분 덕분에 저 까지 덤으로 행복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종성 그렇습니다. 위에 본문에서도 말씀드렸듯 성경은 이처럼 상호 모순되는 것 같은 말씀을 주고 계시지요
그러하기에 연좌제로 오해할 수 있다를 말씀드렸습니다.
날마다 말씀의 진의를 쫓아 하나님의 완전하신 은혜만을 알아먹는 교회가 되어지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