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 속의 새 (외 1편)
김수형
소매 속에 새가 숨어 울고 있다 언젠가 새의 눈물을 닦아준 적이 있다 둥근 둥지에 깃들어 살이 차오르는 어둠을 쪼아대던 새의 가녀린 호흡에 나무의 맥박이 두근거리고 앙상한 겨울나무에도 움이 돋을 듯 인기척이 들려왔지 늘 젖은 자국들이 웅크리던 생의 은밀한 바깥 잊고 살았던 서글픔이 다녀간 곳에서 새는 숨죽여 운다 재봉된 계절이 스르르 풀려나갈 때 솔기 하나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보풀로 일어서 두리번거린다 고개 숙여 새의 노래를 만지작거리면 나보다 먼저 엎드려서 어깨를 들썩이던 사람이 새의 날갯죽지에 얼굴을 묻은 나를 보고 있다 어제보다 올 몇 개가 더 풀린 오늘 둥지 너머로 짙어지는 어둠을 몇 번이고 접어보는데 새의 근심에도 동그란 단추가 돋아나는 겨울 찌든 민낯으로 찌르르 새가 울고 새의 생각이 깊어질수록 얼룩이 더 짙어진다 날짜변경선 너는 어제를 살고 나는 오늘을 살아 사모아나 피지, 통가에 핀 꽃잎들은 이제 막 적도의 하루를 지나고 있어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모두 어제가 되어버리는지 눈물이 나오기도 전에 울고 있는 노을 동쪽은 서쪽보다 파릇하고 가랑비 같은 슬픔이 서투르게 자라나면서 늙어가는데 고래는 뇌의 절반만 잠이 든대 나머지 절반은 눈 감고 산 어제를 보내기 위해 지지직거리며 파도의 주파수를 모으는 거야 잠 못 든 시간이 이렇게 지나갈 때마다 우리도 이제 가상의 선을 긋자 세로로 줄을 치며 내려오는 거미처럼 늘 등을 보인 채 앞서 걷는 생각들을 위해 눈 감고 보폭을 헤아리며 걷다 보면 이별은 발꿈치부터 서서히 완성될 거야 어젯밤의 울음과 오늘의 울음은 분명 다를 테지만 아침은 동쪽에서도 살고 서쪽에서도 산다는 거 당신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가 내일의 첫 입술이 되고 어제 잃어버렸던 립스틱이 호주머니에서 만져지고 바뀐 핸드폰 번호로 문자가 잘못 날아온다 ―시집 『사랑한 것들은 왜 모두 어제가 되어버릴까』 2023.11 -------------------------- 김수형 / 시인, 문학평론가. 중앙대에서 「현대시조의 통시적 고찰」로 문예창작학 박사학위. 목포대에서 국문학 박사학위. 2019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스몸비」 당선. 평론집 『존재의 푸른 빛』, 시집 『사랑한 것들은 왜 모두 어제가 되어버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