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도착한 해 겨울 우리는 애들레이드 힐 근처의
포도농장에서 두 달 동안 일했다.
군데군데 간이 화장실이 서 있고 경계를 알 수 없는 초대형 농장이었다.
우린 컨트랙터(contractor)라고 불리는 한국인 매니저와 연락을 했고
임금도 그에게서 받았다.
우리에게 할당된 일은 포도나무 가지치기인 소위 프루닝과 롤링.
기본 준비물은 독일제 스닙 2개, 핀란드제 밑둥자르기용 가위,
고어텍스 종류의 비옷, 장화, 고글 등이었다.
농장일은 임금 지급 방식에 따라 시급제, 능력제로 나뉜다.
시급제는 시간당 고정된 임금을 받는 것이고
능력제는 말 그대로 일한 양에 따라 받는 것이다.
에들레이드 힐 포도농장 일은 능력제였는데
그건 왕복 차비에 식비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을 정도로 야박한 조건이었다.
우리나라처럼 눈이온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애들레이드로서는 가장 추운 8월에
아침 7시 전후로 시작해서 8~9시간을 서서 일하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한국에서 숱하게 읽었던 수기들을 떠올리며
오로지 ‘대박 일꾼’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한손으로 쥐었다 펴기도 벅찬 푸르닝 전용 가위질은 고사하고
장갑 낀 손가락으로 얇고 짧고 가느다란 케이블 타이를
실수 없이 한 번에 집는 데만도 몇 주가 걸렸다.
자고 일어나면 팔이 저리고
손가락 마디가 제대로 펴지지 않을 만큼 힘들었지만
정작 기본 생활비도 못 벌었던 날들.
하도 벌이가 시원찮아서 그때 우리 모두의 꿈은
수입이 안정적인 고기공장에서 일하는 거였다.
그래도 모든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애들레이드 시티에서 애들레이드 힐로 가는 길은
무척 아름다워서 집으로 돌아올때마다 감탄했고
농장 역시 대단한 관광지 못지 않게 아름다웠으니까.
해가 막 떠오를 무렵 고요한 농장 한 편의 저수지에서
투명한 물안개가 하늘거리며 날아올랐고
곧 하늘이 열리며 금빛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솜처럼 부드럽고 폭신한 구름들이 그 하늘을 자유롭게 떠다녔고
새들이 저마다 지저귀는 소리가 농장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면 엉덩이에 두둑하게 살이 오른
털 복숭이 양떼들이 고랑과 고랑 사이를 신나게 뜀박질을 하는 풍경...
거기다 육체노동은 골치 아프게 잔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몸이 피로할수록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서울에서 번듯한 사무실에서 일할 때보다
막노동을 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텃밭에 상추와 고추를 키우며 사는 꿈을 꾼 것도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쨌든 우린 여행하는 동안 와인을 마실 일이 생기면
늘 “바로사 밸리 산 쉬라즈!”를 외치며
한 때나마 이곳에서 일한 자로서 의리를 지켰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 익숙할 법도 한데,
조금만 가까이 다가갈라 치면 저 둔하게 생긴 몸으로
어찌나 정확하고 빠르게 고랑사이를 뛰어다니던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은 대형농장
일 마무리가 끝난 깨끗한 포도나무들.
새벽에 도착하면 이런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농장이 하도 커서 조금만 이동을 할래도 차를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린 늘 드라이브를 즐기는 기분이었다.
간이 화장실
이것이 가지치기.
농장에서의 마지막 날 같이 일했던 멤버들.
잘 지내고 있나요?
그립습니다. 모두.
첫댓글 정말 넓네요 ^^ 저도 좀 했었었는데, 덕분에 손 압력이 좋아졌었죠 ㅎㅎ
토마스 님은 어디 농장 출신이신가요?ㅋㅋ
아, 정말 손가락 손목이 아스라질 뻔 했지요,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것들만 남지만^^
네 전 아주 오래전 NSW주 남쪽 그리피스라는 쌀 샹산지역 이랍니다^^ 전 농장보단 체질에 공사장 일이 맞는것 샅네요 ㅋ
어휴 상상만해도 얼마나 넓었을지... 공사장 일이라 흐흐
사실 무얼해도 아름다운 곳이었답니다. 저에게 호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