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님의 글은 @표시로 그리고 제가 드리는 질문은 파란색으로 기록하니 번호별로 하나씩 대답해 주세요
카페자료실 참조글 :
http://cafe.daum.net/christianfreedom/J6Ex/20
http://cafe.daum.net/christianfreedom/J6Ex/6
1. 여호와는 성서를 통해 이스라엘나라가 하느님의 나라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런데, 왜 현재 JW조직에게는 그런 직접적 증거가 없을까요?
서로들 참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종교난무의 세상에서 성서는 왜 그런 직접적 표현을 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도록 했을까요?
@예수는 자신의 제자들이 직무와 활동 그리고 숭배와 믿음에 있어서 하나, 혹은 분열이 없는 하나의 공동체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예수 사망후 예수의 제자들은 활동 지역은 달라도 하나의 공동체로서 활동하였슴을 여러 기록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2. 네, 물론 지리적 위치는 달라도 하나의 정신적 공동체로 사랑하고 연합하는 모습은 성서적으로 권장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공동체의 일부지도층이 (지금의 JW통치체처럼) 그리스도인의 행동지침까지 명령하는 구조였다는 성서적 증거가 있습니까?
@이 공동체는 다양한 견해와 교리가 상존하게 되어 있었을까요?고린도 첫째 1:10은 이렇게 알려줍니다."여러분은 모두 일치되게 말하고,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게 하여, 같은 정신과 같은 방향의 생각으로 일치 연합하십시오."
다시 말해 이 공동체는 피를 먹어도 되든지 안되든지, 할례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지 안받아도 되는지 등의 문제에서 이견이나 분열이 없어야 했다는 것이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공동체내의 어떤 시스템이나 협의를 통해 일치된 믿음과 교리의 연합된 숭배를 드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몇몇 기록에 보면 그들은 일치된 믿음과 교리에서 떨어져나가거나 분열되게 만드는 배교를 상당히 경계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점과 관련하여 바울은 재차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온전히 자기를 낮춘 정신과 온화함과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참으며,평화의 연합시키는 띠 가운데 영의 일치를 지키기 위해 진지하게 애쓰십시오."- 에베소 4:2
"평화의 연합시키는 띠" 는 무엇을 말합니까? 한 무리, 한 공동체내에서 서로 다른 교리로 분열과 혼란을 초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 네, 인정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함께 연합하고 뭉치는 일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누구를 중심으로 연합해야 합니까. 인간조직입니까. 아닙니다. 성서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모이는 것이 권장되는 성구는 있지만, 그리스도로 가는데 인간의 조직이나 모임이 반드시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성구가 있습니까?
다음 성구는 중앙관리체의 인간조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사도 4:12) 더욱이,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주어진 이름들 중에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받아야 할 다른 이름이 하늘 아래 없습니다.
(야고보 3:1)내 형제들이여, 여러분 가운데 가르치는 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1:13)곡식 제물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아라. 향―그것은 내게 가증한 것이다. 신월과 안식일, 대회 소집―장엄한 모임과 아울러 괴이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다
(마 18: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그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인원이 많아지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정통 율법에 길들여진 유대인들과 그것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섞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조정이 필요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마련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조정되었습니까?
문제가 발생된 지역 회중의 어느 정도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베드로를 비롯하여 초기 그리스도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연륜과 지식 그리고 영이 강했을 것으로 보이는 예루살렘 성원들에게로 멀리서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이 통치체였던 뭐였던 그것은 다음에 논의하기로 하구요.
4. 이 한무리, 이 공동체는 어떻게 인도되게 되어 있었습니까? 요한 24:15~17 에서 예수께서는 그 점과 관련하여 베드로에게 세 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어린 양들을 먹이십시오"베드로는 나중에 실제로 각 회중에서 예수의 어린 양들을 먹이는 책임을 가진 감독자들에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여러분이 돌보아야 할 하느님의 양떼를 치십시오."
4. 네 그렇습니다. 양떼를 돌보는 일은 제자들의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 의무가 인간조직이 양떼들을 가르칠 교리를 정하고 행동지침까지 정하는 것이었습니까?
사도 16:4(신세계역)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사도 16:4) ...그들은 도시들을 두루 여행하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연로자들에 의해 결정된 법령들을 그곳 사람들에게 전하여 지키게 하였다.
위 성구상으로는 일견 중앙집권적인 명령체제가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서의 더 많은 기록은 그런 해석을 부정합니다.
(사도 15:31) ...그들은 그것을 읽고 그 격려(권면의 말씀)에 대하여 기뻐하였다..(쉬운성경) 이것은 그들의 내려보낸 것이 명령이 아니라 격려의 말씀이었다는 기록입니다.
사도들의 기록상 임명이나 명령 그리고 결정은 성령과 계시가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다음과 같은 성구들이 있습니다.
(사도 13:2) 2 그들이 여호와를 공개적으로 섬기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말하였다. “나를 위하여,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하도록 모든 사람 중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인간조직이 임명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명)
(사도 16:6) 6 더욱이, 그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금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프리지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지나갔다. (여기서도 성령)
(갈라디아 1:16-17) ...내가 그분의 아들에 관한 좋은 소식을 이방 사람들에게 선포하도록 나와 관련하여 그분의 아들을 나타내는 것을 좋게 여기셨을 때에, 나는 즉시 육과 혈으로 더불어 의논하지 않았다. 또한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위 기록상으로는(이상하게 이 신세계역부분에 나오는 즉시라는 표현은 다른 번역판에는 없습니다) 바울은 천국선포와 관련하여 인간들과 의논한 것이 아니었으며 (의논하러 또는 지침을 받으러)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2:1-10) ...그리고 나서 십사 년 후에 나는 바나바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으며, 디도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계시로 말미암아 올라간 것입니다.
바울은 14년만에 예루살렘에 갔으며, 중앙의 어떤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갔습니다.
왜 사도들의 전체기록은 성령의 임명이나 인도를 강조하고 인간으로 이루어진 중앙집권체의 명령이나 인도를 부정하고 있을까요?
@잘 알고 계시듯이 누가 12:42은 이렇게 알려줍니다."주인이 적절한 때에 일단의 수종들에게 정해진 양식을 계속 공급하기 위하여 그들 위에 임명할 충실한 관리인, 곧 슬기로운 사람이 과연 누구입니까?""그들 위에 임명할 충실한 관리인" - 이것은 예수의 추수사업을 총괄할 관리체제가 있을 것입을 알려주는 것이며, "일단의 수종들에게 정해진 양식을 계속 공급"에서 일단의 수종들은 누굴까요? 모르긴해도 아마 양떼들을 섬기는 중간 관리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일 것입니다.
5.충실한 관리인, 청지기는 개인일 수도 있고 단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부여된 임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성구에 님이 말씀하신대로 예수의 추수사업을 총괄할 관리체제 라는 개념이 어디 있습니까?
님은 모른긴 해도, 것일 것이다 같은 애매한 표현으로 추측을 했습니다. 이 중요한 개념을 성서가 이렇게 애매하게 알려주면 되겠습니까? 적어도 일단의 인간조직이 이 일을 해야 하고 중앙관리체계여야 한다는 개념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댓글 사도행전 9장은 바울이 다마스쿠스에 가다가 예수의 음성을 듣고 개종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마스쿠스에 사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집에서 머물며 시력도 되찾고, 며칠동안 다마스쿠스에 있으면서 회당에서 전파하다가 유대인들이 사울에게 박해하던 사람이 전파를 한다고 죽이려고 하죠. 그것을 사울의 제자들이 알고 피신시킵니다. 그는 피신처로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제자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했는데, 제자들은 사울이 박해하던 자였으므로 두려워하였죠. 그러자 바나바가 사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제자들과 같이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했다는 내용입니다.
논점이 무엇인가요
여기서 궁금한것은 갈라디아1:16~17에서 바울은 나보다 먼저 사도된 사람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았다라는 말과 모순되는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대요...
어찌보면 사도행전 9장의 내용은 사울이 침례를 받고 제자들과 연합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고, 그곳에서 공동체를 구성한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추측이야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공동체를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오늘날 jw통치체처럼 중앙지도부 역할을 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핵심은, 추측으로 어떤 정론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거죠. 그게 상식인데도 증인들은 추측으로 자기네 교리를 정론화하고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인 설명입니다. 일세기 당시의 공동체가 ....지금의 통치체 처럼 전세계의 증인들의 활동을 지시하고, 임명하고 통치행위를 한다는 것이 성서적이 아님을 잘 증명하셨습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통치 한다는 말입니까? 통치는 정치하는 사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발 하느님 이름 팔아서 통치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