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현정 현판 사진, 2017년 8월 20일>
모현정기(慕賢亭記)는 모현정중수기(慕賢亭重修記)와 내용이 일치한다. 모현정중수기가 원본(原本)이다.
慕賢亭重修記 --- [荷江書院誌, 1977년]에서 옮김.
中原之北 牧湖之上 有洞 曰荷潭 後有細麓 屈曲圍繞環匝 前有群山羅列 高岡遠秀 足以致靈運之淸標 左有太古煙霞之痼癖擬作堯天之乾坤 南有玉湖 大江之瀯聲喚起自然底律呂 其泓崢幽絶 可以爲愛林泉之奇勝 噫 此地 有翼然丹雘 而輪奐暎輝者 乃我十一代祖 慕堂文敬先生 以國朝名臣 立朝事業之善德遺風 垂之後世 遠近士林 設院享祀 曁于 高宗 朝令廢撤之後 子孫之痛 志士之恨 無地可湔(雪과 同)矣 丁丑春 吾宗有志諸彦 殫誠竭力 建亭於院右 楣其額 曰慕賢 蓋取追慕先賢之義也 幸賁先生當日 仁智之眞趣 顧名思義 一念于賢 而勿忘其赫赫志業 或接物而不忘 或臨機而追慕哉 鳴呼 於焉光陰 已過數十年之間 爲風雨之所頹破 而寥寥未遑者 至今日 而與僉宗議定 始加重修儘吾宗光紫 而所謂靈芝醴泉之有近源者 非耶 自今以後 登斯亭 而逍遙乎 千派萬流朝海之上 盤桓乎風淸月朗灑落爽快之時 隨時 而感發繼述之心 應物而激勵无忝之志 以盡事一不忘之誠 則豈非慕賢報本之義哉 日夕所望者 如此 盍(闔와 通字)相勉旃
歲甲寅 槐月 上澣
十一代孫 忠州 承箕 謹書
<표점>
慕賢亭重修記
中原之北,牧湖之上,有洞曰荷潭。後有細麓,屈曲圍繞環匝;前有群山羅列,高岡遠秀,足以致靈運之淸標。左有太古煙霞之痼癖,擬作堯天之乾坤;南有玉湖,大江之瀯聲,喚起自然底律呂。其泓崢幽絶,可以爲愛林泉之奇勝。
噫!此地有翼然丹雘而輪奐暎輝者,乃我十一代祖慕堂文敬先生,以國朝名臣,立朝事業之善德遺風,垂之後世。遠近士林,設院享祀。曁于高宗朝,令廢撤之後,子孫之痛、志士之恨,無地可湔(雪과 同)矣。
丁丑春,吾宗有志諸彦,殫誠竭力,建亭於院右,楣其額曰「慕賢」,蓋取追慕先賢之義也。幸賁先生當日仁智之眞趣。顧名思義,一念于賢,而勿忘其赫赫志業,或接物而不忘,或臨機而追慕哉!
鳴呼!於焉光陰,已過數十年之間,爲風雨之所頹破,而寥寥未遑者。至今日,而與僉宗議定,始加重修,儘吾宗光玆,而所謂靈芝醴泉之有近源者,非耶?
自今以後,登斯亭而逍遙乎千派萬流朝海之上,盤桓乎風淸月朗灑落爽快之時,隨時而感發繼述之心,應物而激勵无忝之志,以盡事一不忘之誠,則豈非慕賢報本之義哉!日夕所望者如此,盍(闔와 通字)相勉旃!
歲甲寅槐月上澣,十一代孫忠州承箕謹書。
<번역>
모현정 중수기 (慕賢亭重修記)
중원(충주)의 북쪽, 목계(牧溪) 위에 하담(荷潭)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뒤쪽에는 가느다란 산기슭이 구불구불 둘러싸고 있으며, 앞쪽에는 여러 산이 벌려 서 있고 높은 언덕이 저 멀리 빼어나니, 혼령을 모시고 옮겨 높은 풍치를 자아낼 만하다. 왼쪽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이어져 온 안개와 노을의 고질병(자연을 사랑하는 깊은 마음)이 있어 요임금 시절의 태평성대와 같은 천지를 이룬 듯하고, 남쪽에는 옥호(玉湖)가 있어 큰 강의 물결치는 소리가 자연의 가락을 일깨운다. 그 물이 깊고 산이 높아 그윽하고 빼어나니,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기이하고 뛰어난 경치라 할 만하다.
아! 이 땅에 날아갈 듯 단청을 칠하고 번듯하게 빛나는 건물이 있으니, 바로 나의 11대조이신 모당(慕堂) 문경공(文敬公) 선생의 정자이다. 선생께서는 조정의 명신으로서, 조정에 서서 이룩하신 사업의 훌륭한 덕과 끼치신 풍기가 후세에까지 드리워졌다. 이에 원근의 선비들이 서원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왔다. 그러다 고종조에 이르러 서원을 철폐하라는 명령이 내린 뒤로, 자손들의 아픔과 뜻있는 선비들의 한탄은 씻어버릴 길이 없었다.
정축년(1937년) 봄, 우리 종중의 뜻있는 여러 선비가 정성을 다하고 힘을 쏟아 서원 오른쪽에 정자를 짓고, 그 편액에 '모현(慕賢)'이라 하였으니, 대개 선현을 추모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다행히 선생께서 당시 자연을 즐기시던 참된 정취를 빛나게 장식하였도다.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며 오직 현인을 생각하여 그 빛나는 뜻과 업적을 잊지 않는다면, 혹 사물을 접할 때도 잊지 않을 것이요, 혹 기회에 임해서도 추모하게 될 것이다!
슬프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미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비바람에 무너지고 파손되었으나 쓸쓸히 지내며 미처 겨를을 내지 못했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여러 종중 사람들과 의논하여 결정하고 비로소 다시 고쳐 지으니, 참으로 우리 종중의 빛남이 이와 같다. 이른바 신령스러운 지초와 단 샘물이 가까운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부터 이 정자에 올라 천 갈래 만 갈래 물줄기가 바다로 흘러드는 위에서 거닐고, 바람이 맑고 달이 밝아 시원하고 상쾌한 때에 머물면서, 때에 따라 선대의 뜻을 이어받으려는 마음을 느끼어 일으키고, 사물을 접할 때마다 부끄러움이 없으려는 뜻을 격려하여, 매사에 잊지 않는 정성을 다한다면 어찌 현인을 사모하고 근본에 보답하는 의리가 아니겠는가! 밤낮으로 바라는 바가 이와 같으니, 어찌 서로 힘쓰지 않겠는가!
갑인년(1974년) 사월(槐月) 상순(上澣), 11대손 충주인 승기(承箕)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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慕賢亭記 --- [慕賢亭 懸板에서 옮김]
<원문>
慕賢亭記
中原之北 牧湖之上 有洞曰 荷潭 後有細麓 屈曲圍繞 環匝 前有群山 羅列高岡 遠秀 足以致靈運之淸標 左有 古煙霞之痼癖 擬作堯天之乾坤 南有玉湖大江之 瀯聲 喚起自然底律呂 其泓崢幽絶 可以爲愛林 泉之奇勝 噫 此地 有以翼然 丹雘而輪煥 暎 輝者 乃十一代祖 慕堂文敬 先生 以國朝名臣 立朝事業之先善德 遺風 垂之後世 遠近 士林 設院 享祀 暨于後 高宗 朝令廢撤之後 子孫之 痛 志士之恨 無地可雪矣 丁丑春 吾宗有志諸彦
弹(彈)誠竭力 建亭於院右 楣其堂 曰慕賢 盖 取追慕尊賢之義也 幸賁先生當日 仁智之眞趣 顧名思義 一念于 賢而勿忘 其赫赫志業 或接物 而不忘 或臨機而追慕哉 嗚呼 於焉光陰已 過 數十年之間 為凮(風)雨之所 頹破而寥寥未遑 者至今日 而與僉宗議 㝎(定)始加重修儘 吾 宗光 紫而所謂 灵(靈)芝醴泉之有源者 非耶 自今以後 登斯亭而逍遥乎 千泒(派)萬流 朝海 之上盤桓乎 凮(風)清月朗 灑落爽快之時 隨時而 感發繼述之心 應物而激勵 无忝之志 以盡事一不忘之誠 則豈非慕賢報本之義哉 日夕所望者 如此盍相勉旃
歲甲寅 槐月上澣
十一代孫 承箕 謹書
<표점>
慕賢亭記
中原之北,牧湖之上,有洞曰荷潭。後有細麓,屈曲圍繞環匝;前有群山羅列,高岡遠秀,足以致靈運之淸標。左有古煙霞之痼癖,擬作堯天之乾坤;南有玉湖,大江之瀯聲,喚起自然底律呂。其泓崢幽絶,可以爲愛林泉之奇勝。
噫!此地有以翼然丹雘而輪煥暎輝者,乃十一代祖慕堂文敬先生,以國朝名臣,立朝事業之先善德遺風,垂之後世。遠近士林,設院享祀。暨于後高宗朝,令廢撤之後,子孫之痛、志士之恨,無地可雪矣。
丁丑春,吾宗有志諸彦,弹誠竭力,建亭於院右,楣其堂曰「慕賢」,盖取追慕尊賢之義也。幸賁先生當日仁智之眞趣。顧名思義,一念于賢,而勿忘其赫赫志業,或接物而不忘,或臨機而追慕哉!
鳴呼!於焉光陰,已過數十年之間,爲凮雨之所頹破,而寥寥未遑者。至今日,而與僉宗議㝎,始加重修,儘吾宗光玆,而所謂灵芝醴泉之有源者,非耶?
自今以後,登斯亭而逍遥乎千泒萬流朝海之上,盤桓乎凮清月朗灑落爽快之時,隨時而感發繼述之心,應物而激勵无忝之志,以盡事一不忘之誠,則豈非慕賢報本之義哉!日夕所望者如此,盍相勉旃!
歲甲寅槐月上澣,十一代孫承箕謹書。
<번역>
慕賢亭記
중원(충주)의 북쪽, 목호(牧湖, 牧溪를 말한다.) 위에 하담(荷潭)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뒤쪽에는 가느다란 산기슭이 구불구불 둘러싸고 있으며, 앞쪽에는 여러 산이 벌려 서 있고 높은 언덕이 저 멀리 빼어나니, 사령운(謝靈運)의 맑고 높은 품격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足以致靈運之淸標) 왼쪽에는 옛날부터 이어져 온 안개와 노을의 고질병(자연을 사랑하는 깊은 마음)이 있어 요임금 시절의 태평성대와 같은 천지를 이룬 듯하고, 남쪽에는 옥호(玉湖)가 있어 큰 강의 물결치는 소리가 자연의 가락을 일깨운다. 그 물이 깊고 산이 높아 그윽하고 빼어나니,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기이하고 뛰어난 경치라 할 만하다.
아! 이 땅에 날아갈 듯 단청을 칠하고 번듯하게 빛나는 건물이 있으니, 바로 11대조이신 모당(慕堂) 문경공(文敬公) 선생의 정자이다. 선생께서는 조정의 명신으로서, 조정에 서서 이룩하신 사업의 선대의 훌륭한 덕과 끼치신 풍기가 후세에까지 드리워졌다. 이에 원근의 선비들이 서원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왔다. 그러다 후대 고종 조에 이르러 서원을 철폐하라는 명령이 내린 뒤로, 자손들의 아픔과 뜻있는 선비들의 한탄은 씻어버릴 길이 없었다.
정축년(1937년) 봄, 우리 종중의 뜻있는 여러 선비가 정성을 다하고 힘을 쏟아 서원 오른쪽에 정자를 짓고, 그 당(堂)의 문 가로대에 편액을 걸어 '모현(慕賢)'이라 하였으니, 대개 선현을 추모하고 어진 이를 존경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다행히도 선생께서 당시에 산수를 즐기시던 참된 정취를 빛내었도다.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며 오직 현인을 생각하여 그 빛나는 뜻과 업적을 잊지 않는다면, 혹 사물을 접할 때도 잊지 않을 것이요, 혹 기회에 임해서도 추모하게 될 것이다!
슬프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미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비바람에 무너지고 파손되었으나 쓸쓸히 지내며 미처 겨를을 내지 못했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여러 종중 사람들과 의논하여 결정하고 비로소 다시 고쳐 지으니, 참으로 우리 종중의 빛남이 이와 같다. 이른바 신령스러운 지초와 단 샘물이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부터 이 정자에 올라 천 갈래 만 갈래 물줄기가 바다로 흘러드는 위에서 거닐고, 바람이 맑고 달이 밝아 시원하고 상쾌한 때에 머물면서, 때에 따라 선대의 뜻을 이어받으려는 마음을 느끼어 일으키고, 사물을 접할 때마다 부끄러움이 없으려는 뜻을 격려하여, 매사에 잊지 않는 정성을 다한다면 어찌 현인을 사모하고 근본에 보답하는 의리가 아니겠는가! 밤낮으로 바바라는 바가 이와 같으니, 어찌 서로 힘쓰지 않겠는가!
갑인년(1974년) 사월(槐月) 상순(上澣), 11대손 승기(承箕) 삼가 쓰다.
(雲山 洪承箕이며 이 분의 묘는 연수동 금릉초등학교 뒷편 뒷목골산에 있다)
<槐山郡守豊山洪公承箕之墓>
음기(陰記)
운산풍산홍공승기 기적비(雲山 豊山 洪公承箕紀蹟碑) --- 금가면 하담리 하강서원 앞에 있다.
<全文>
滄桑이 無常한 轉變의 渦中을 살면서도 그 世態時流에 휩쓸리지 안기란 壯히 어려운 일이언만 그러한 激變의 混濁속에서도 浩然히 獨也靑의 氣稟을 잃지 않으시고 오히려 傳統禮度의 典範이 되시며 鄕黨風節의 支柱되시는 선비로 그 孤高의 빛이 江湖에 비낀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雲山 洪公이시다 公의 諱는 承箕요 號는 雲山으로 豊山人이니 高麗朝 國學直學 諱之 慶公의 後裔로서 朝鮮朝의 名臣 慕堂 文敬公의 十一代孫이시다 公은 檀紀四二四二年 己酉 二月 二十九日 그 아버님 號 華世 祐寅公과 海州崔氏를 어머님으로 世上에 나시니 天資非凡하시고 才氣過人하시어 일찍부터 遠近의 尊崇을 받으시었다 그리하여 成家하시면서는 더욱 溫故의 學風과 傳統儒家의 凡節을 남달리 崇尙하시며 篤實히 선비의 길에 힘쓰시더니 槐山郡守를 끝으로 일체의 官職에서도 물러나시었다. 그리고는 公의 愛鄕인 이 곳 中原 땅으로 還鄕하시니 그로부터 더한층 鄕人들의 도타운 信望을 받으시며 忠州 鄕校典校와 本道鄕校財團理事長과 中央儒道會總本部 副會長등의 莫重한 責務를 지시고 實로 값진 그 末境을 보람속에 東奔西走하시었다 뿐만 아니라 公의 先祖로 宣廟朝의 重臣이며 壬亂收拾에도 功이 크셨던 慕堂 諱 履祥公의 그 높으신 學德을 기리어 일찌기 이 곳 南漢江 淸流畔에 荷江이라 이름하여 받들던 書院이 朝鮮朝末期의 紛紛했던 世流속에 分別없이 毁撤되어 차마 송구스러운채 許多年光을 恨스러이 虛虛롭더니 이를 민망히 여긴 公의 獻身的인 周族의 힘이 中心이 되어 鄕郡儒林들의 格別한 誠熱과 遠近族親들의 誠孝를 일깨워 모아 이곳 由緖어린 옛터전에 다시 荷江書院을 重建하고 이로써 나아가 社會敎化에도 크게 이바지하시었다 이같이 重厚한 德望의 선비로 推仰을 받으시면서 時代에 符合되는 儒道의 宣揚과 鄕土文化 창달에 앞장서 힘쓰시다가 辛酉年 六月 二十九日 그 크신 뜻 다 펴지 못하신채 이로써 그 高邁하신 風敎의 章을 닫으시니 春草는 年年綠인데 人傑은 歸不歸라 公이 가신지 於焉 三個餘星霜 이에 새삼 公의 높으신 資稟을 思慕하고 끼치신 德을 기리어 公과의 특별히 因緣 깊은 이 자리에 鄕儒들에 曲盡한 配慮로 이에 여기 一偏石을 새기노니 公의 그 높으신 遺德이야 길이 永世에 빛되오리
甲子年 三月 荷江書院 春享日
族人 達山 起薫 謹識
牙城 李鎬昌 書
檀紀 四千三百十七年 甲子 三月 日 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