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마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 18: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마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많은 분들이 죄의 용납과 용서를 잘 구분하지 못해서 가정과 삶에 부정한 죄를 많이 허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르면 이혼이 허락된 유일한 경우라(마 19:9) 이혼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일단 용서는 해야 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계속 그러한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는 데도 그대로 놔두는 것은 죄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죄는 크든 작든 죄이기 때문에 이 원리를 모든 죄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죄는 용서할 대상이지 용납할 대상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많은 성도들이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용납은 잘합니다. 마음에 꽁하고 담아 두고서 용서하진 않지만 그 상황에 맞서 싸우지 않고 죄를 용납하고 맙니다.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한 댓가가 실은 엄청난데 그것을 모르고 그렇게 하는 듯합니다.
제가 처음 사역을 시작했을 때 '은혜의 복음'을 전하면서 완전한 용서를 말하니, 죄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저의 기준을 낮출 것을 교묘하게 요구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 커플은 혼전 동거를 하면서도 자신들은 사역자가 되겠다고 저에게 제자 양육을 해 달라고 했고 또 한 커플(?)은 유부남 유부녀가 사귀는 불륜 커플이었습니다.
혼전 동거하는 커플이 저에게 "사역자가 되려면 우리가 지금 뭘 해야 하냐?"고 질문했을 때 저는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혼인신고다." 그 이후, 두 번 다시 그들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귀던 유부남 유부녀도 마찬가집니다. 자기들은 사귀는 사이라고 저에게 고백을 하자마자 저는 너무 놀라서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유부남 유부녀가 왜 사귑니까?" 그러자 그들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두 커플 다, 은혜의 복음을 좋아하였고 제가 직면하지 않았다면 제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은 진리이지만 그러한 라이프 스타일은 계속해서 그들의 삶에 사단 마귀가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이며 (실제로 그들의 삶은 처참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는 입장에서 그것을 말하지 않고 묵인한다면 직무 유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묵인이란 동의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 저의 삶과 사역에도 마귀가 들어오는 문을 열어주는 꼴이 됐을 겁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축복하며, 하나님 안에서 잘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들과 아무 일도 없는 듯 친하게 지낼 수는 없습니다.
예로 든 위의 두 커플(?)은 하나님의 법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직면할 것을 말씀하셨는데도 제가 하지 않았다면 그들을 대신해서 제가 하나님을 거절한 꼴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달 할 뿐, 거절을 하든, 받아들이든 그것은 당사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저에게 직접 고백을 했고 저에게 권위를 부여했으니, 저에게 책임이 있었던 것이지, 상대가 나에게 권위를 부여하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내 의견을 묻지도 않은 사람에게 조언을 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책임은 나에게 권위가 부여된 경우, 나와 관련이 있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저에게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관해 얘기 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직접 당사자에게 얘기해 봤습니까?" 이것은 마태복음 18장에 예수님께서 설명하신 인간관계의 지혜인데, 예수님께서는 누군가가 나에게 죄를 지었다면 그 사람에게 먼저 가서 직접 얘기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직접 직면해서 얘기할 정도는 아니구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원칙입니다.
이렇듯 죄를 용서하진 않되 용납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셔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래, 다 없었던 일로 해줄게." 이러면 되지 않았겠습니까?
죄의 용서와 용납의 차이를 잘 알아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용서를 하되 죄를 용납하는 일은 없도록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넘치는 지혜를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