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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사람들/ 고린도전서 15:1-11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Thh8mP4q55s
여러분! ‘Jesus Christ Superstar’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보셨나요? 이 뮤지컬의 내용을 보면, 성경에는 없는 네용인데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믿지 못해 배반했던 가룟 유다가 뒤늦게 후회하며 울부짖는 대사가 나옵니다. 성경적인 것은 아닌데, 죽었던 가룟 유다의 혼령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고 구슬피 울며 말합니다. “Why didn't you tell me?” 계속해서 “Why didn't you tell me?”라고 슬피 울면서 노래를 합니다. 이 말을 좀 길게 풀어보면 “왜 죽은 다음에 부활할 것이라고 나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말씀하셨더라면 내가 미쳤다고 예수님을 팔았겠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진짜 가룟유다가 그렇게 말했다면 가룟유다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1입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이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여섯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자신의 부활을 십여 차례 보여주셨습니다. 본문에는 그 중 여섯 차례의 경우가 나옵니다. 먼저 세 번은 개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5절에 보니 게바에게, 7절에 보니 야고보에게, 8절에 보니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은 집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5절에 보니 12제자에게, 6절에 보니 500형제에게, 7절에 보니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1. 막달라 마리아
마가복음 16:9입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무덤가에서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만난 후에 제자들에게 갔습니다. 그들은 슬픔으로 인하여 울고 있었는데 마리아가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습니다.
2. 여자 제자들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 제자들이 무덤을 보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큰 지진이 나며 천사가 내려와 돌로 된 무덤의 문을 굴려 내고 번개 같은 형상으로 그 위에 앉아있었습니다. 천사는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고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고 말했습니다.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가는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여자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평안하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들이 주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부활의 소식을 여자들에게 먼저 알려주셨을까요? 어떤 분은 여자들이 입이 싸기 때문이랍니다. 여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면 남에게 얘기하지 않고는 못 견딘답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니라 어느 분의 농담입니다. 미국에서는 특별히 입이 싼 여자를 BMW라고 부른답니다. 자동차 메이커 이름이 아니라 ‘Big Mouth Woman’이라는 뜻이랍니다.
주님께서 여자 제자들을 먼저 만나주신 것은 그들이 입이 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주님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잠언 8:17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여자 제자들은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믿음은 없었지만 무덤에 누워계시는 주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 갔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3.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주님이 부활하신 그 날에 주님의 제자 중에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이 가리어져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이 식사 자리에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두 제자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주님을 만난 사건에서 핵심은 누가복음 24:27입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구약 성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님은 성경대로 죽으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4. 베드로
누가복음 24:34을 보겠습니다.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주님을 만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두 제자에게 한 말입니다. 주님께서 살아나셔서 시몬 베드로에게 보이셨습니다.
5. 열 제자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주님이 열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다락방의 문들을 잠그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부활체로 오신 것을 보여주시려고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약속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49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복음의 증인이 되고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 약속을 의지하여 예루살렘에서 10일 동안 오로지 기도에 힘을 쓰다가 성령을 받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6. 열한 제자
주님께서 열 제자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도마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하니 믿지 못했습니다. 그 후 한주일이 지났습니다. 도마가 열 제자와 함께 있을 때에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도마가 귀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 신앙고백을 받으신 주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29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또 한 번은 주님께서 갈릴리 한 산위에서 열한 제자를 만나주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제자들 가운데 그때 까지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17입니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놀랍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부활하실 것을 여섯 번이나 말씀하셨고 또 실제적으로 부활하신 후에 주님은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확신을 위하여 제자들과 함께 음식도 잡수셨고, 옆구리의 창자국과 손과 발의 못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누가복음 24:50-51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물론 이들은 열한 사도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40일째 되는 날에 감람산 베다니 근처에서 사도들을 축복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11입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승천하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7. 일곱 제자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제자들에게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하니 제자들이 함께 갔습니다. 그들은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제자들이 주님 말씀대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습니다. 그때 요한이 주님이신 것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라고 말하니 베드로가 수영을 하여 주님에게로 갔습니다. 베드로가 육지에 올라가니 주님께서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물고기가 153마리였습니다.
8. 500여 형제들
6절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형제가 500여 명이면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족히 2천 명은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가 기록될 당시에 그 중에 대다수는 살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9. 야고보
본문 7절에 보면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 중에 야고보가 나옵니다. 그는 주님의 육신의 동생입니다. 마가복음 3:21을 보겠습니다.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야고보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주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로는 변화되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의 변화는 주님의 부활이 얼마나 확실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야고보서 1:1입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주님을 메시야로 믿지 못하고 주님을 미쳤다고 생각했던 야고보가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자기소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비문에는 “그는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전한 참된 증인이었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10. 스데반
사도행전 7:55-56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스데반은 죽기 직전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11.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이 변화되기 전에 그는 기독교를 나사렛 이단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일 때 앞장섰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서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려고 가던 길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갑자기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빛이 비취면서 소리가 났습니다. 그는 말에서 떨어져서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렇게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변화 되었습니다.
그는 변화된 후에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습니다. 사도행전 20:23-24을 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의 변화는 부활 신앙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고 자신의 부활을 확신했기 때문에 복음에 목숨을 거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12. 그 외의 사람들
그 외의 사람들에는 저도 포함 됩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1년 6월 13일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이후 제 인생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 전도사님이셨던 김지원목사님께서 저의 신학교 동기가 전도사로 있던 교회에 가셔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제 동기가 그 설교를 듣고 와서 저에게 김지원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북아현동에 마경훈이라는 청년이 있는데, 그가 변화 된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입니다”라고 하셨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변화 되었습니다. 금년에 제가 거듭난지 4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저는 6월쯤에 김지원목사님을 모시고 1일 집회라도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부활신앙이 분명하면 죽음을 이깁니다.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에서 근무했던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책에 보면 ‘유두영’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두영이란 사람은 아주 잔인한 살인범으로 사형언도를 받았는데,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박장로님의 기도에 감동을 받고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이후에 유두영은 감옥 안에서 만나는 죄수들에게 “죽을 준비 되어 있어?” 하며 열심히 전도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유두영의 사형 집행 날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형수들이 사형당하는 날이 되면 죽기 싫어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지에 대소변을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두영은 달랐습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그는 계속해서 “할렐루야”를 불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박 장로님은 ‘유두영이 겁이 나서 그러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듬거리는 말투로 “두영아, 잘 가. 먼저 가.” 하고 조용하게 한 마디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유두영은 도리어 “예, 장로님 먼저 갑니다.” 하고 힘차게 말하더랍니다. 다른 사형수들과 뭔가 달랐습니다. 그를 전도했던 장로님도 놀랄 정도로 그는 사형을 앞두고도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사형장에 도착해서 형무소 소장님이 “오늘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유두영 씨의 사형을 집행합니다.”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집행 선고를 했더니, 유두영은 “아멘” 하더랍니다. 소장님이 사형을 집행하기 앞서 간략한 절차를 거치기 위해서 이름, 생년월일 등을 묻고, 그가 범한 사형에 해당한 끔찍한 죄상을 요약해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두영이 손을 번쩍 들더니 “소장님, 부탁이 있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소장님, 지금 읽으시는 그 죄를 제가 다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는 제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은 죄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런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 이와 같이 사형을 당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늦게나마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제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기억도 아니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 믿고 8년이란 긴 세월을 살다가 아버지 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아니하시는 그 더러운 죄를 다시 듣고 가기가 싫습니다. 용서 받은 깨끗한 영과 몸 그대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그 부끄러운 죄를 읽지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두영이 사형을 앞에 두고 당당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예수 믿지 않는 소장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마지막 임종 예배를 드리는데, 유두영은 요한복음 3:16을 외우고, 자기의 온몸을 장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 기증했습니다. “유언을 남기겠느냐?”고 물으니 그는 “소장님, 그리고 검사님, 제 마지막 부탁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제가 믿는 예수님을 믿으시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밧줄 올가미를 목에 거는데, 그는 조용하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가 사형을 당하면서도 그렇게 기쁘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전원일기에서 복길이 역을 맡았던 김지영 배우를 아시죠. 그리스도인입니다. 김지영 자매가 교회 학교 선생님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하는데,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거 사실이에요? 그걸 어떻게 증명해요?” 김지영 자매는 그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란다”
김지영 자매는 어려서부터 혈관이 엉겨 붙는, 이름조차도 알 수 없는 아주 희귀한 병을 앓았습니다. 혈관이 한 데 엉켜서 혈액 순환이 제대로 안 되었고, 몸은 늘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혈관이 심하게 뭉친 부분은 몸 밖으로 흉측하게 돌출되어 옷으로 항상 가리고 다녀야 했습니다. 좋다는 병원은 다 가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지영자매가 17살 되던 해, 의사 선생님은 20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 기분은 너무나 소름끼치는 기분이었답니다. 온 몸의 혈관들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몸 밖으로 튀어나오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팽팽하게 당겨지더랍니다. 그는 털썩 주저앉아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지영 자매는 그날부터 의사들의 실험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병은 자신에게는 온 몸을 갉아먹는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의학계에서는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걸핏하면 그는 수술대에 올라야 했고, 마취 속에서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며 깨어났습니다. 새로운 치료 방법이 나올 때마다 의사들은 그에게 시험해보며 그 반응을 살폈고, 그것은 곧바로 의학계에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지영 자매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이 수술을 할 때마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부모님의 고통이었습니다. 수술 도중 위험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하겠노라고 서명을 하는 부모님의 눈은 빨갛게 타들어 갔습니다. 한 번은 미국에서 새로운 치료 방법이 들어왔다고 또 다시 수술을 권유하길래. “싫어, 싫어! 나 그냥 죽게 해줘!”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나기를 원했습니다. 어서 빨리 하나님께서 자기를 데려가시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날 해가 질 무렵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날만큼은 슬픈 아버지의 눈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영자매는 눈을 감은 채 애써 잠을 자려고 했습니다. “지영아, 지영아 자니?” 지영 자매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자는 척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하나님, 우리 지영이 살려 주세요. 지영이 살려 주시면 저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지영 자매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아버지는 교회에 다니지 않을 뿐더러, 어머니와 지영자매가 교회를 갈 때마다 노발대발하며 화를 내시던 분이였으니까요. 그런 분이 하나님을 부른 것입니다. 지영자매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잃어버렸던 희망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살고 싶다. 정말 살고 싶다.’
자매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찾았던 지영 자매의 아버지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의사들이 포기했던 자매입니다. 스무 살까지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자매입니다. 자신도 자신의 삶을 포기했던 자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영 자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자매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내가 살아난 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에게 베푸신 기적입니다.”
아이언 사이드 박사는 죽음에 대하여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마을길을 지나가다가 항상 열려 있는 어떤 상점의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창문에는 커튼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이상하다 이 집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자세히 봤더니, 창문 밖에 다음과 같이 써 놓았더랍니다. ‘내부 수리 중’ 그 후 여러 날 동안 그 가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내부 수리 중’이라는 팻말만 붙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가게 문이 활짝 열려서 들어가 봤더니 가게 안이 얼마나 멋지게 장식이 되었는지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들어가는 손님들마다 아주 기분 좋게 물건을 사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아이언 사이드 박사는 깨달았습니다. ‘아,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내부 수리 중인 것과 같구나.’ 우리가 죽으면 문 딱 닫아 놓고 ‘내부 수리 중’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수리된 가게 문이 열리듯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의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83세 된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11시30분쯤 목욕을 하시더니 새 옷을 갈아입은 후 목사님에게 “죄송하지만 목사님 오셔서 예배를 드려주세요”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권사님은 목사님과 예배를 드린 후 늦은 시간에 오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시고 피곤해서 누워야겠다며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권사님은 부활과 천국을 믿었기에 편안히 눈을 감으신 것입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전쟁기념관에는 네 명의 군목을 기념하는 ‘불멸의 군목들’이란 문구를 새겨놓았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그들이 탄 함정이 적의 어뢰에 맞아서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네 명의 목사님들은 자기들의 몫으로 주어진 구명대를 부하들에게 주고 침몰하는 갑판 위에서 찬송을 부르면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부활 신앙이 이런 담대함을 갖게 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사도바울은 부활에 관한 진리를 말한 후에 58절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는 부활 신앙 위에 서있습니다. 부활을 확신하는 우리의 신앙은 견고하여 흔들림 없습니다. 부활 신앙이 확실한 우리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 것입니다.
성경을 가슴에 대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나는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이심을 믿습니다. 나는 믿는 자의 부활도 믿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나도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나는 부활 후의 영광을 믿습니다. 나는 부활을 확신하기 때문에 견고합니다. 나는 부활을 확신하기 때문에 더욱 주의 일에 힘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