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충청북도 삼도봉 넘어가는 장꾼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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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1. 02:32조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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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 넘어가는 장꾼 보게
황간 근처 상촌면에서 물한계곡을 따라간 곳에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그리고 전북 무주가 만나는 삼도봉이라는 민주지산이 있다.
“삼도봉 넘어가는 장꾼 보게. 무주장 보는 놈 짚신짝 꿰지고, 황간장 보러 가는 놈 줄달음친다”라는 이 지역 사람들의 노랫말 속에 남아 있는 삼도봉 정상에 고즈넉한 돌탑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고개를 넘는 나그네들이 발끝에 채는 돌을 주워서 하나씩 던져 쌓여 만들어진 것인데, 충청도의 것이 제일 컸고, 다음은 경상도, 가장 작은 것이 전라도의 것이었다. 어느 해 봄날 이곳에 놀러 왔던 전라도 사람이 그것을 보고 심술이 나서 가장 큰 충청도의 것을 무너뜨렸고, 그것을 본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의 것을 헐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전라도 사람이 다시 올라와 경상도의 것을 헐어버려 돌탑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생긴 지역감정을 타파하자고 세운 탑이 화합의 탑이다.
영동 도마령 © 유철상
도마령은 영동군 황간에서 전북 무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말을 키우던 마을’ 혹은 ‘칼 찬 장수가 말을 타고 넘던 고개’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정몽주의 문인으로 조선 건국에 참여했던 조선 초기의 문신 윤상이 금유에게 보낸 글에서 “산수가 맑고 기이해서 시 짓는 것에 도움 될 만한 것이 진실로 많다”라고 하였던 영동은 북쪽으로 속리산과 남쪽으로 덕유산의 사이에 있다. 동편에는 추풍령이 있다.
추풍령 산줄기가 조령에서 뻗어 나와 상주목을 거쳐 이 고을의 동쪽 경계에 이르러 평평한 육지를 끊을 듯 솟아 있다. 영남지방에서 서울로 향하다가 충청도에 이른 사람들은 반드시 이 길을 택한다. 그런 까닭에 임진왜란 때 조정에서는 조방장 장지현을 파견하여 이곳에서 막아 지켰다. 적의 군대가 대규모로 이르니, 우리 군대가 허물어져 흩어졌다. 장지현은 하루 종일 힘껏 싸웠지만 화살이 다 떨어져 죽었다. 이는 미리 막아서 지키지 않은 탓에 일어난 일이니, 가슴 아픈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영장 한지가 건의하여 황간으로 지영을 옮겨 지키고 건의하는 대책을 삼으려 했으니, 지리의 형세와 군사에 관한 업무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곳이며 지금은 경북고속도로가 지나는 중요한 길목이다. 김천 직지사 부근에서 황간으로 넘어야 할 때 이곳을 꼭 통과해야 했으며 일인들의 왕래가 많았다. 특히 쇠전(우시장)이 크게 섰던 김천장과 영동의 곶감장 그리고 명주와 곶감이 유명했던 상주장을 다니던 보부상과 소 장사들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황간과 김천에 큰 장이 서면 오가던 장꾼들이 모여들고, 한편에선 풍각쟁이들의 품바 소리가 구성지게 이어졌다.
껑충 뛰었다, 제천장 신발 없어 못 보고,
바람 불었다, 청풍장 선선해서 못 보고,
청주장을 보잤더니 술 취해서 못 보고,
(······)
보은 청산 대추장은 처녀 장꾼이 제일이고,
엄벌 중천에 충주장은 황색 연초가 제일이고,
지리구 지리구 잘한다, 품바 품바 잘한다.
구성진 장타령에 힘든 줄도 모르고 넘는 추풍령의 산은 그다지 높거나 웅장하지 않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추풍령 굽이”라는 오기택이 부른 노랫말을 놓고 보면 높은 고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야트막하다. 땅이 기름진데다 물이 많으므로 물 대기가 쉬워서 한재(旱災)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2002년 홍수 때 추풍령 일대와 김천 일대가 그 물 때문에 큰 화를 입었다.
추풍령 아래에 있는 고개가 괘방령(掛榜嶺)이다. 황간면 어촌리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그리고 대항면 경계에 있는 큰 고개인 괘방령은 예전에 임지로 가는 관원들이나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넘나들던 고개다. 추풍령은 그 이름을 따라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고 여겼고 괘방령을 넘으면 급제를 하거나 오래 근무를 한다고들 여겼기 때문이다.
노근리 쌍굴다리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에 의해 이 지역 주민 3백여 명이 무차별 죽임을 당한 곳이다. 교량 옆에는 당시 탄흔이 흰색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한편, 영동은 바람이 많기로 소문난 지역이다. 백두대간의 능선이 낮아지며 골짜기들을 만들어낸 것이라 그 골짜기로 바람이 몰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정한 거주지가 없이 방랑 생활을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중 ‘오늘은 충청도요, 내일은 경상도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고장이 바로 김천과 영동이다. 이곳에서 바람의 신 영동할미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시작되었는데, 그 연유는 이렇다.
조선 중엽에 어떤 벼슬아치가 저녁밥을 먹은 뒤 갑자기 숨이 끊어지면서 그와 동시에 큰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돌멩이가 날아다녔다. 그 바람을 죽은 벼슬아치의 귀신이 억울해 나타난 것으로 여긴 주민들이 돈을 모아 제사를 올리자 바람이 잔잔해졌다. 그때부터 시작된 이 제사는 ‘영동할미제’로 굳어져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룻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영동할미제는 내륙지방에서 이곳 영동이 유일하고, 남해안과 제주도에서만 이어지고 있으나 지금은 그 명맥이 끊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
황간면 굴봉 자락에 위치한 노근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사슴이 숨어 있는 부락이라 하여 녹은(鹿隱)이라 칭하다가, 일제 강점기 때 부락 이름이 어렵다는 이유로 노근(老斤)이라 개칭했다. 이곳에서 1950년 7월에 한국전쟁 참전 미군에 의해 무고한 민간인 수백 명이 학살당했다. 사건현장인 쌍굴다리 일대는 역사공원이 착공되어 2010년 연말에 준공될 예정이며, 근처에 임시분향소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도봉 넘어가는 장꾼 보게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5 : 충청도, 2012. 10. 5., 신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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