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부활 제6주일
-이영근 신부
복음;요한 15,9-17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 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 친구 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 가 된다.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 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 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 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부활 6주일입니다. 그리고 ‘생명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모든 선물의 기초가 되는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선물을 받습니다. 곧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진 아버지의 사랑’을 선물로 받습니다.
제1독서는 그 선물이 ‘성령을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에게 베풀어지는 선물임을 보여줍니다(사도 10,44-46).
제2독서에서는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 것”(1요한 4,10)을 말하며, 우리의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1요한 4,7)임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다락방에서의 유언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장면입니다. 그것은 먼저 당신의 놀라운 사랑의 선포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참으로 놀라운 사랑의 선포입니다. 이는 첫째는 우리가 이미 사랑받았다는 선포요, 둘째는 그 사랑의 원천이 아버지의 사랑임을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사랑을 받아먹은 존재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을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호의와 자애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미 받은 사랑인,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곧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10) 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아버지의 사랑 안에 하나 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요한 15,11 참조)이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계명을 선포하십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하되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지 말고,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본보기로 보이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성부에 대한 지고의 사랑의 표현이면서(요한 14,30), 동시에 당신의 친구로 삼으신 이들에 대한 사랑의 절정(요한 13,1.13)이기도 합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동시에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 그것은 친구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알려주고 흘러들게 하는 사랑입니다. 바로 이 사랑이 제자들이 실천해야 하는 사랑의 바탕이며 규범입니다.
이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 15,13-14)
그런데 왜 ‘친구를 위한 사랑’이 원수나 죄인을 위한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여 친구로 만들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그것은 우리가 적이 아니라 서로 친구가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곧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이를 그레고리오 교종은 이렇게 해설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때,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도 우리의 친구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려는 말씀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불러 뽑으십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 불렀다. ~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5-16)
참으로 큰 은총입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친구’로 삼으십니다. 당신께서 목숨까지 내어주어 아버지의 사랑을 알려주며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로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신 까닭이요, 우리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주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진 아버지의 사랑이요, 선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의 권능을 입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도 ‘친구가 되어주라’ 하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알려주어 ‘친구가 되라’ 하십니다. 그래서 단지 우리를 친구로 뽑은 것만이 아니라, '뽑아 세웠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세웠다'라는 원어의 뜻은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도까지 보장하면서 어떠한 책임을 지워 내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사랑을 실천하고 선포할 책임을 맡겨 세워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있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5,16).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숨결이 흐릅니다. 제 안에 새겨진 당신의 사랑입니다. 제 안에 굴을 파고들어 와 빈 무덤으로 모습을 숨긴 그지없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결코 빼앗길 수도 빼앗겨지지도 않는 기쁨입니다. 주님! 당신의 기쁨의 숨결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소서! 아멘.
-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양주 분회/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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