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폐지 줍는 노인을 보면 창문 안쪽의 내가 몹시 젖는다. 도시가 비 맞은 폐지처럼 눅눅하다. 제일교회 옥상에서 예수가 비를 맞고 서 있다. 첨탑 십자가를 향해 하늘이 세상ㅇㄹ 심문하듯 창끝을 내리꽂는다. 천국의 길은 멀고도 험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비스듬하게 이어주던 양철 계단이, 균형 잃은 바람의 몸을 떠받치려고 움찔하다가 그만 발목이 접질렸는지 삐거덕 소리를 낸다. 허공으로 몰려가는 빗발, 삶의 찌꺼기들이 홈통을 타고 흘러내린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이런 날이면 하릴없이 방바닥을 뒹굴다가 저녁이 오지 않은 시간인에도 괜히 주방 싱크대 아랫도리를 더듬는다. 몇 달 전에 사놓은 밀가루 봉지가 눈에 띈다. 밀가루를 꺼내 물을 붓고 반죽이 꾸덕꾸덕해질 때까지 반복하여 치댄다. 밀가루라는 세상에 물을 적당히 넣으면 내 마음대로 그 세상을 주무를 수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밀가루 반죽으로 여러 모양의 쿠키를 함께 만든 적이 있다. 아이들은 집, 기차, 비행기, 토끼, 코끼리 모양 등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들을 반죽으로 빚었다. 나는 꽃 모양을 몇 개 만들어 아이들의 세상에 합류했다. 잘 치댄 반죽으로 빚은 사물들은 오븐 속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둥근 접시 위에 담겼다. 세상을 어떤 모양으로 빚고 어떤 색깔로 구워낼지는 오로지 우리 손에 달려있었다.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다. 하지만 밀가루 반죽으로 완성된 세상이 되기까지는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밀가루에 물을 붓기도 전에 반죽 그릇을 엎어 거실 바닥엔 온통 밀가루가 흩어졌고 흰 가루를 뒤집어쓴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주방과 거실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녔다. 철없는 아이들의 저지레에 뒤치다꺼리하기가 귀찮아 쿠키를 만들자는 작은 희망을 가차없이 잘라버린 적이 많다. 그러지만 않았어도 아이들의 세상은 더 넓게 열렸을 테고 아이들은 그들의 세사을 스스로 바꿔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그때 나는, 손에 덕지덕지 붙어 올라온 밀가루 반죽을 뜯어내며 끈적쯘적하게 나를 조여오는 거미줄 같은 인연의 끈들을 조금씩 떼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날처럼 밀가루 반죽은 내게 치근대듯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그럴수록 반죽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횟수가 늘어난다. 맥주병을 굴려 반죽을 납작하게 민다. 모든 생의 굴곡이 어느새 평평해진다.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풍랑 멎은 바다의 표면처럼 일순간 고요하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밀가루를 꺼내지 않았을 게다. 납작하게 누른 반죽으로 칼국수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게다. "이놈의 세상, 무엇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어." 하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퇴근한 가족들에게 뜨거운 칼국수 한 그릇 퍼담아주지만 차가워진 속을 데워주진 못했을 게다. 그래도 화투판 끗발처럼 어떤 때는 좋은 날도 있지 않겠냐며, 애호박 썰어 넣고 멸치 진하게 우려낸 국물을 한 구자 가득 떠서 빈그릇 다시 채워주진 못했을 게다. 빗소리가 길어진다. 나무들이 너울너울 신나게 춤을 춘다. 빗방울을 거슬러 하늘로 솟는 나무들. 모든 생명의 시원始元이 물이라는 것을 나무는 온몸으로 다해 말하려 한다. 하늘이 참고 참다못해 땅에 떨어뜨리는 저 긴 문장들…. 어떤 메시지인지 미처 해독하기도 전에 바닥에 부딪혀 장렬히 산화한다. 마치 자전거 뒤에 실려 가다 도로에 떨어져 산산이 깨어지는 유리창처럼. 어떤 문장들은 쓰다 남은 페인트 통속에 들어가 제 몸 빛깔을 은근슬쩍 바꾸기도 한다. 날개도 없이 지상에 추락해 부서지는 비의 모습이 때때로 측은하기도 했지만, 빗방울로 스며들어 대지 깊은 곳으로 혈육을 찾아가는 오랜 여행자 같기도 했다. 가끔은 비가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어떤 영적인 존재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비의 성별 정체성을 여성으로 보게 된 것은 뚜렷한 과학적 근거에 기인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에 충실해서다. 느닷없이 은빛 줄무늬 옷을 입은 여자가 우리 집 창문을 두드린다. 나는 잠들어 있다가 후다닥 일어나 그녀를 맞이한다. 그녀는 키가 엄청스레 크다. 도무지 일상에서는 입지 못할, 패션쇼에서 모델들이나 걸치고 나올 법한 의상을 두르고 급작스레 내게 왔다. 은빛 줄무늬는 직선이었다가 어떤 때는 사선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번엔 그녀가 무림의 검객처럼 날카로운 칼을 들고 나타났다. 양날의 검은 광선의 각도에 따라 몸의 색깔을 조금씩 바꾸곤 한다. 세찬 바람에 줄무늬 옷을 휘날리며 거친 호흡으로 세상에 칼날을 휘두른다. 네거리에 달린 신호등의 목이 떨어지고 가로수가 어이없이 뿌리뽑혀 쓰러진다. 그녀는 지금 몹시 위험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면 세찬 물살을 일으켜 온 마을을 인정사정없이 휩쓸어버린다. 연대 連帶한 세력인 천둥과 번개가 그녀를 도우면 어른들은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아이들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곧이어 다가올 불길한 조짐을 점쳐보기도 한다. 그녀처럼 나도 위험한 때가 있었다. 내 손에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도 쥐어진 것처럼, 나만의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마음대로 잘라냈다. 어느 순간, 그들에게 아픈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여 깊이 용서를 빌며 마음을 비우겠다고 인생 선배에게 말했을 때, "마음을 비우겠다는 너의 생각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욕심인지 먼저 깨달아야 한다."며 폐부를 찌르듯 단호한 일침을 놓았다. 그때까지는 내게는 벗어 던지지 못한 오만함이 남아있다는 것을 그는 눈치했었던가 보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아스라한 하늘에서 비가 떨어질 때, 그들은 서로 마주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가늠하여 엇비슷한 무게로 몸을 나눠 하나하나의 빗줄기아 된 것이리라. 하지만 제 몸을 어디에 떨굴 것인가에 대해 사전에 논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사山寺마당의 수국잎에 사뿐히 안기거나, 가파른 절벽을 타고 미끄러지거나, 속도가 제어되지 않는 과격한 차바퀴에 깔리거나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지 않았을까. 온종일 빗소리에 빠져들었더니 사람이 빗소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빗소리가 사람 안에 들앉아 있었다. 비와 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 속에 스며들고 싶다. 고귀한 한 방울의 물이 되어 목마를 세상을 촉촉이 적셔 줄 수 있다면 나도 은빛 줄무늬 옷을 입은 그녀와 함께 하늘에서 기꺼이 낙하하고 싶다. 저렇듯 슬픈 얼굴로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들, 어느 선창의 새벽 경매시장에서처럼 도매금으로 값 매겨진 애 애달픈 청춘이 어렴풋이 보인다. 살다 보면 닿을 수 없어서 더욱 간절한 것도 있다. 내가 한사코 달려가 닿고 싶었던 세상은 내가 생각한 거리보다 조금 더 먼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읽어내지 못한 삶의 언어들이 하나둘 제 자리를 찾아간다. 이제 더는 빗소리에 젖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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