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약소한 나라가 강대국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양다리 전략입니다. 주식에서 바구니에 여러 종목을 골고루 담는다는 것도 손실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듯 나라사이에 전략에도 한곳에 몰빵하는 것이 아닌 양다리 전략이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오직 특정 나라에만 올인하다가 자칫 삐걱할 경우 국민들에게 엄청난 손실과 피곤함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사람이 있을 경우 친하되 약간의 거리를 두는 전략은 처세술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지만 지금 일본이 행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전략이 그야말로 양다리 전술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세계 2차대전 후에 급격하게 밀착되고 있습니다. 한때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에서 미국과 일본은 엄청난 인명과 재산을 희생했습니다. 4년동안의 전쟁은 양국을 불구대천지 원수사이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고 일본의 과거를 거의 용서해줌에 따라 미일은 급속하게 가까워집니다. 지금도 미국과 일본은 최대 동맹국으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에서 대통령이 당선되면 세계에서 제일 먼저 미국으로 달려가 미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일본은 미국과 아주 밀착하면서 자신들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구사해 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일본내에서 미국을 연구하고 미국의 외교를 정밀 분석하는 인물들의 상당히 많습니다. 일본이 미국의 대선주자가운데 승자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파악할 능력을 갖췄다는 소리도 그래서 나옵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조금 다른 것같습니다. 얄궂게도 전임 대통령이었던 트럼프가 다시 후보로 나오면서 일본의 판세 분석에 어려움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선거에서 실패하고 다시 나온 전임 대통령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일본에서는 새로 당선된 신임 대통령에게 잘 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현역 대통령이 있고 전임 대통령이 후보로 나서는 아주 묘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본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트럼프 후보가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어 트럼프에게 배팅하면 되겠지만 현재 대통령은 엄연히 바이든입니다. 지금 지지율은 바이든이 뒤지고 있지만 아직도 8개월이나 남아 있으며 트럼프가 각종 범죄로 인해 형사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니 상황은 아직 모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이 전직 대통령이었는데 새로 바이든이 당선되고 난 뒤 일본이 하는 행위에 대해 트럼프는 속으로 괘씸하다는 생각을 해왔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재임기간동안 간도 쓸개도 다 내어줄 듯 하던 일본이 자신이 선거에서 지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태도가 바뀐 것에 엄청난 실망감을 가졌다는 후일담도 있습니다. 일본입장에서는 바이든에게만 잘 할 수도 트럼프에게만 잘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속에 일본은 양다리 전략을 구사하기로 최종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일본 정부가 미국 내 로비 활동비를 13% 늘렸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습니다. 일본의 보수신문의 대표격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 정부가 오는 11월에 트럼프 후보가 미 대선에서 재선될 것을 대비해 로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는 보도를 한 것입니다. 보도를 보면 주미 일본 대사관은 트럼프와 가까운 로비 기업인 발라드 파트너스 등 3개 회사와 새로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미국 내에서 일본 정부의 로비 활동 지출액은 한화로 660억원으로 전년보다 13%이상 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신문은 미국 대선에서 누가 승자가 될 지 아직 뚜렷하지 않으며 아직 예측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양쪽 후보 모두에 로비력을 가동시키는 전략을 내세우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외교라고 비아냥거린 적이 많습니다. 전형적인 양다리 전략이라고 비꼰 적도 많습니다. 그런 양다리 전략을 지금 일본 정부는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아마도 한국 정부에서 양다리 전략을 왜 구사했는지 실감할 것입니다. 강한 인물들 사이에서 견디기 위해서는 양측 모두에게 잘 해줄 수밖에 없듯이 강국 사이에서 양국과 잘 지내는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입장을 이제는 정말 공감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양다리 전략이 득이 될 지 독이 될 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바이든 캠프나 트럼프 캠프에서 일본측의 그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외교가 양다리 전략을 구사하던 시절 미국이나 중국이 한국에 대해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택일 하라고 윽박지른 것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마 지금 워싱턴 정가는 그런 분위기일 것으로 보입니다. 바이든의 경우 노인의 삐짐같은 심정이 있을 것이고 트럼프의 경우는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본의 그같은 전략이 효과를 거둘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오는 4월 10일 바이든은 일본 총리 기시다를 워싱턴으로 부를 계획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트럼프에게도 상당한 로비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바이든측이 모를 리 없을텐데 미일 양측 수뇌부의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힘이 부족한 경우 양다리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를 잘 보고 이런 전략을 구사해야지 자칫 잘못 하다가는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뺨 맞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양다리 전략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같습니다.
2024년 2월 2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