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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이 넘은 이야기다.
또자는 우리집에 들어온 첫번째 고양이였다.
그 이전부터 집사람과 애들은 고양이를 키우자고 성화였으나 내가 반대해 키우지 않고 있었다.
집사람은 어렸을 때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는데 난 집 마당에서 멍멍이만 몇 번 키워봤을뿐이다.
그 멍멍이란 것도 반려견으로 키운 게 아니라 아버지 개소주를 내기 위해 키운 멍멍이였다.
많이는 아니고 몇 마리의 멍멍이가 우리집을 거쳐갔다.
그리고 때가 되면 키우던 멍멍이를 차마 먹을 수는 없었는지 어머니는 옆에 사는 이모네집 멍멍이와 우리집 멍멍이를 바꿔 약을 했다.
결국 우리집 멍멍이를 먹지는 않지만 때 되면 키우던 멍멍이가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때론 개장수에게 팔기도 했다.
개장수에게 끌려가면서도 집쪽을 바라보며 짖으며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멍멍이를 보면서 슬펐지만 초등학생이였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땐 그런 시기였다.
멍멍이는 그냥 키워 먹는 존재였다.
그리고 학교 갔다 돌아와 멍멍이가 보이지 않으면 허전한 마음에 그냥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우는 게 다였다.
멍멍이로 태어나지 않는 게 행복이었고 다행이였던 시기였다.
그렇게 큰 나에게 고양이는 멍멍이와 크게 다른 존재가 아니였다.
그 당시엔 길냥이를 보면 도둑고양이라고 돌을 던지던 시기였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다.
다 그랬다.
가끔씩 저녁밥을 먹고 집사람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갔다.
멀리 가는 건 아니고 그냥 가까운데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정도.
그날은 집에서 5km 정도 떨어진 교대 앞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는데 차 앞으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휙 하고 지나갔다.
왜 그랬는지 차를 멈추고 내려 길건너에 있는 새끼 고양이를 불렀다.
"야옹아, 이리와......."
그런데 오지 않았다.
그런데 집사람이 부르자 아무 거리낌 없이 뽀로로 집사람 앞으로 왔다.
집사람은 그 새끼 고양이를 덥썩 안았다.
그리고 집으로 와 목욕을 시켰다.
생후 3개월 정도 되 보이는 아기 고양이.
씻기자 빛났다.
볼 때마다 잠을 자 이름을 '또자'("또 자니?"란 뜻)라 지었다.
고양이가 그렇게 많이 자는지 몰랐던 난 우리집 첫고양이에게 그런 이름을 지었다.
지금까지 수 많은 고양이들이 우리집을 거쳐갔지만 또자는 좀 특별했다.
영리했다.
그 때 딸 아이는 중학생이었는데 사춘기와 왔는지 대단히 반항적이고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내 말을 그런데로 들었는데 엄마 말은 한사코 안들었다.
꼬박꼬박 말댓구를 했다.
그 때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집사람은 딸을 방안에 밀어 넣고 너 죽고 나 죽자며 딸을 두둘겨 팼다.
난 그냥 방 밖에에서 관망했다.
나까지 나서면 딸아이가 죽어 나자뻐질 게 뻔하기 때문에 참기도 했고 딸을 두둔하자니 엄마의 위신과 교육효과가 하나도 없을 것 같아 그러지도 못했다.
결국 방안에서는 집사람 악다구니 소리와 딸 아이의 말댓구 소리, 그리고 "하지 마, 하지 마!"하는 소리와 함께 딸 아이 우는 소리가 났다.
그 때마다 또자는 문 밖에서 방안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작은 목소리로 "야옹, 야옹........"하며 울었다.
나에겐 또자의 그 울음소리가 "싸우지마, 때리지마!"로 들렸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그 와중에 작은 목소리로 중재하고 또 식구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걸로 들렸다.
그때 고양이가 참 영리하다는 걸 알았다.
고양이가 사람과 교감할뿐만 아니라 사람을 위로할 줄 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집사람은 마음이 여리다.
사랑이 많다.
동물이 어려움에 처하면 모른 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많은 양의 고양이들이 우리집에 왔고 또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당연히 또자는 집사람의 고양이였다.
집사람이 밥 주고 똥 치워 주고 목욕시켜주니 당연한 결과다.
또자에게 우리는 엄마와 같이 사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 때는 이미 고양이별로 돌아간 달님이가 오기 전이어서 고양이가 또자 한 마리밖에 없던 때여서 또자 쟁탈전이 치열했다.
특히 집사람과 난 또자가 자기를 더 많이 사랑한다고 믿었다.
가끔씩 집사람과 나 또자는 삼각형으로 앉아 공놀이를 했다.
공을 또자 뒷편으로 던지면 그 공을 또자가 우리들 앞으로 물고 오는 그런 놀이였다.
또자가 공을 물어올 때마다 그 공을 본인 앞으로 가져 오라고 또자 이름을 목청껏 불렀다.
그러면 또지는 한 번은 집사람 앞에 물어다 놓고 그 다음은 내 앞에 물어다 놨다.
정확하게 집사람에게 한 번 물고 가면 그 다음은 나에게로 물고 왔다.
틀리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집사람과 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 외교를 했다.
그렇게 열 번 정도를 지나면 놀이가 시둘했는지 힘이 들었는지 집사람 앞도 내 앞도 아닌 집사람과 내 사이에다가 공을 물어다 놨다.
참 애매한 위치였다.
집사람에게 물어다 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앞에다가 물어다 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건 또자가 공놀이 이젠 그만 하자고 집사람과 나에게 보내는 싸인이었다.
지금까지 공이나 종이뭉치를 축구하듯이 앞발로 현란하게 차는 고양이는 많이 봤으나 또자처럼 엄마 아빠에게 물어다 놓는 고양이는 본 적이 없다.
또자는 사람과 노는 방법을 알았다.
또자가 그랬으니 우리집 온가족은 고양이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밖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어려움이 처한 새끼 고양이들이 줄줄이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집사람은 길냥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는지 하루 2시간씩 길냥이들에게 밥을 줬다.
눈이 와도 나가고 비가 와도 나가고 아파도 나갔다.
명절날은 시댁에서 자지 않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 길냥이들 밥을 줬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집사람과 난 전주에서 약간 떨어진 시골로 장사하기 위해 내려왔다.
아파트에서 같이 살던 고양이들과 떨어져 살 게 된 것이다.
고양이들은 집에 남은 아들과 딸이 돌보고 집사람과 난 토요일 밤에 집에 가 일요일 오후에 장사하는 시골로 내려왔다.
온시간을 장사하는 데 쏟고 일 주일에 한 번 집에 잠시 있다 또 정신 없이 가니 고양이들과 교감할 시간이 없었다.
남은 또자는 집안에 있는 많은 고양이들의 대장 노릇을 했다.
귀율을 잡고 돌보고......
집사람이 해야 할 많은 부분을 또자가 떠안았다.
그렇게 또자와 고양이들이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또자가 밥을 먹지 않았다.
우울증이 온 것이다.
집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또자에게 한계가 온 것이다.
그 일을 하기가 싫어진 것이다.
그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집사람은 또자를 시골로 옮겼다.
그러나 집사람 옆으로 온 또자는 계속 밥을 안먹었다.
밥그릇을 또자 앞에 들이미나 항상 입 데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집사람은 틈나는데로 사료를 한 알 두 알 또자의 목구멍 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한 알이 두 알 되고 두 알이 세 알 되고 세 알이 여러 알이 되면서 많은 시간이 지나 또자는 원래의 또자로 돌아왔다.
그렇게 시골에서 집사람 옆에서 외출냥이로서의 제2의 묘생을 살았다.
그리고 어느날 새벽에 일을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났는데 계단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또자를 발견했다.
자는 줄 알았다.
"또자야, 안녕!"
이름을 불렀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또자를 다시 한 번 불러 보고 흔들어 보고 나서야 또자가 고양이 별로 돌아간 걸 알았다.
급하게 자고 있는 집사람을 깨웠다.
집사람은 잠이 덜 깬 와중에도 또자 이름을 부르며 펑펑 울었다.
집사람은 또자를 그냥 보낼 수 없어 화장해 환으로 만들어 유골함에 담아 창틀 옆에 두고 일하기 위해 오고 가면서 또자를 불렀다.
우리집 첫째 고양이 또자는 그렇게 우리와 15년 가까이 살다가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또자가 있어 우리집에 고양이들이 그렇게 많이 불었다.
또자 때는 디카가 없어서 사진을 찍기 못했습니다.
또자 사진이 없어 호떡이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호떡이는 또자와 무척 많이 닮았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