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규 장군의 곽주 탈환
흥화진에서의 활약 덕분에 거란군을 절반으로 양분시키는덴 성공하지만
강조가 통주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남하루트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거란군이 통주-곽주-안주를 차례대로 함락시키고 서경에까지 이르게 됨.
거란이 빨리 개경을 함락시키기 위해 흥화진을 두고 남하하는
초강수를 둔 덕분에 양규 장군에게 거란의 뒤통수를 칠 기회가 주어졌고,
양규 장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단 700명만을
이끌고 거란의 뒤를 치기 시작함.
그래도 아직 건재한 흥화진을 의식하곤 있었는지
거란군은 곽주에다 6,000명을 주둔시켰음.
사실 이 정도 병력이면 어느정도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규모라
흥화진 전체를 끌고와도 깰 수 있겠냐 싶었을거임.
양규 장군은 일단 통주로 가서 흩어져있던 고려군 1,000명을 수습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래도 곽주를 지키고 있던 6,000명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랐고,
공격자의 입장에서 공성전을 이기려면 적어도 수비군의 2~3배 이상은
끌고가야 이길까 말까한 상황. 심지어 흩어졌다 재합류한
1,000명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였을터, 양규 장군은 그대로 곽주 탈환을 감행하는데..
1,700명의 병력으로 6,000명이 지키고 있었던 곽주를 탈환하는데 성공함.
?????
위의 전투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음.
양규가 흥화진에서 군사 700여 명을 이끌고 통주까지 와서
〈흩어진〉 군사 1,000명을 수습하였다. 밤중에 곽주로 들어가 잔류한 거란
병사들을 습격하여 모조리 목을 베었으며, 성 안에 있던 남녀 7,000여 명을 통주로 옮겼다.
-고려사-
양규가 흥화진으로부터 병사 700여 인을 거느리고 통주에 이르러 병사 1,000인을 수습하였다.
곽주로 들어가 거란의 남은 병사들을 공격하여 모두 목을 베고, 성 안의 남녀 7,000여 인을 통주로 옮겼다.
이날에 거란의 군주가 서경을 공격하였다가 함락시키지 못하자 포위를 풀고 동진하였다.
-고려사절요-
정황상 야습을 통해 탈환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전력차가 엄청난 상황에서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
심지어 수많은 백성들까지 구출해냈다.
이 곽주 탈환으로 인해 거란은 곽주의 보급로가 끊기면서
결국 서경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서경을 우회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시발..이거 맞음?
ㅇㅇ 고증임
첫댓글 이래서 2차 침입 1타 장군이 양규였군요 ㄷㄷㄷ
어떻게 연출할지 기대된다
오호
양규 아무래도 양만춘 후손 같은
양만춘은 가명입니다. 실제 기록에는 안시성주라고만 기록되어있을뿐 안시성주가 누군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음
@뚠뚜니스타 배성재 안타까움ㅜ 우리 사서들이 많이 소실되어서..
설령 안시성주가 양만춘이 맞다해도 구전으로 梁萬春 혹은 楊萬春이라 기록됨...
어디 양씹니까
연인때랑은 전혀 다른모습이네 지금 너무 듬직함 그자체 ㅋㅋ
👍
2차 여요전쟁의 양규
여몽전쟁 김경손
진짜 사람인가싶은 대활약을펼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