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故최진실 씨 자살사건 등을 계기로 경찰이 사이버 명예훼손 범죄 단속에 주목하는 가운데, 최근 악성댓글로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를 받은 네티즌에게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렸다.
10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2형사부(이승호 부장판사)는 특정 인물과 관련 종교단체를 비방할 목적으로 인터넷 댓글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김모(31) 씨의 항소심 판결에서 사이버 명예훼손죄를 인정하여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하여 특정 종교단체를 비방할 목적으로 자신의 주거지에서 불특정 다수인이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악성 댓글을 달고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밝혔다.
“의견형식을 갖추더라도 사실전제가 포함되면 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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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방법원
김 씨는 2006년 12월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특정 인물과 관련 종교단체에 대한 비방을 목적으로 한 허위사실을 수차례 게재했다. 김 씨가 게재한 댓글을 보면 일반인으로서 듣기 거북하고 민망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검찰의 기소 이전에 김 씨는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피해 호소, 삭제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검찰의 기소로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밤늦게까지 악성댓글을 게재하는 등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인터넷 사용이 광범위해지면서 논란을 빚고 있는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판단 근거로 “어떤 표현행위가 의견을 표명하는 형식을 갖췄더라도 그와 동시에 묵시적으로라도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씨가 사용한 비방표현에 대해 “단순한 과장의 정도를 넘어 허위인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같은 표현은 종교단체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다수가 이용하는 인터넷 게시판에 악성댓글을 반복적으로 게재하고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특정인물을 폄하한 점, 이로 인해 피해단체의 명예가 훼손된 정도 등을 비춰볼 때 비방목적도 인정된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김 씨는 ▶자신의 댓글이 반드시 피해단체를 지칭한다고 볼 수 없고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 등에 비추어 허용돼야 하며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펴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댓글의 전체적인 내용과 게재 동기, 경위 등을 종합해 볼 때 피해단체를 언급한 것으로 충분히 인정된다”며 “정당한 교리비판 차원을 넘어 비방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종교 자유의 한계를 일탈했다. 피고인의 행위, 목적, 수단, 방법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김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정보통신망을 통한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에는 위법성 조각에 관한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신의 댓글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한 김 씨의 주장을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네티즌, 사이버 명예훼손 심각성 인지해야 이번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한다.
우선 개인뿐 아니라 단체에 대한 사이버 명예훼손 범죄의 법적처벌이라는 점이다. 법률상 사이버 명예훼손 피해자는 개인과 단체 모두 포함되지만, 현실적으로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피해만 부각되어 왔다. 단체의 경우 법인은 설립 후 종료까지, 법인격이 없는 단체는 통일된 의사를 가지고 대외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명예의 주체가 된다.
둘째는 그동안 다소 모호한 부분이 없지 않았던 사이버 모욕죄와 사이버 명예훼손죄를 구분 짓는 데 있어 중요한 죄책 성립조건인 ‘사실 적시’의 기준이 보다 더 명확해졌다는 점이다.
2007년 사이버 명예훼손 피해자 모임인 포털사이트피해자모임(이하 포피모)의 법정싸움을 이끌었던 이지호 변호사는 “인터넷상에서 공개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해 언급할 때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공익적 목적도 없이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에서 쓴 글은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들이 쉽게 퍼 나를 수 있기 때문에 몹시 위험하다. 사실 확인도 안 된 글을 수많은 사람들이 퍼 나를 경우 발생할 피해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변호사는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이용할 때 좀 더 예의와 원칙을 지킬 것을 당부했다.
인권단체 한 관계자는 “인터넷 상에서 무분별한 명예훼손 글이 난무하면서 청소년, 초등생들마저 이를 따라하거나 농도 짙은 비방글을 작성하고 퍼 나르고 있어 사이버 윤리의식이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와 경찰청의 ‘사이버폭력 신고, 심의현황 및 사이버 범죄현황’ 자료에 따르면 명예훼손, 욕설 등 사이버 폭력 신고가 2004년 3141건이었으나 2007년에는 4만 6720건으로 급증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조사 결과 사이버폭력 건수도 2005년 9227건에서 2007년 12905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사이버 명예훼손 범죄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법적, 제도적 정비와 대책마련이 촉구됨에 따라, 앞으로 익명성을 이용해 인터넷에서 무분별하게 악성댓글이나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개인이나 단체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더욱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