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1. 킥돌이 공
    2. 공야
    3. 청룡태왕
    4. 공실불
    5. 푸른바다
    1. 성법맨
    2. 아싸
    3. 천손강림
    4. 은꽃비
    5. 과거와 미래
  • 가입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인권연대1
    2. 권혁수
    3. 강서구
    4. 과거와 미래
    5. 지리능선
    1. dbrltkd
    2. 숲가치플러스
    3. 하라발가순
    4. edev
    5. 문학중개사
 
 
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3. 458년 송서 백제조의 11장군 책봉
과거와 미래 추천 0 조회 34 25.07.08 17:08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5.07.08 22:44

    첫댓글 송서에서 백제 개로왕이 보내온 국서에 개로왕이 자신의 신하 여기와 여곤을 좌우현왕으로 호칭한 내용은 조공책봉에 거슬리는 내용이라 유송의 자국중심적 천하관의 입장에서 봤을떄 당장에 거부되어 접수되지 못할 수준의 기록이었지요 황제국의 높은 책봉작인 왕작은 황제만이 수여할수 있는 제도라 유송 입장에서는 제후국이나 다를바 없는 백제가 신료들을 상국의 허락도 없이 왕으로 봉한건 책봉 체제를 중대하게 위반하고도 남을 일이고 백제의 최고 통치자인 왕과 동일한 호칭을 신하들이 같이 쓴다는건 정상적인 군주 국가의 체계에서는 있을수가 없는 일이었지요

  • 작성자 25.07.09 07:09 새글

    왜 이 기록이 삼국사기에 없는가에 대한 공실불님의 설명으로 보입니다. 중국왕조의 책봉책이란 형식적인 것으로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습니다. 이 기록이 삼국사기에 없는 이유는 "삼국사기에 나올 이유가 없기 때문"인데 뒤에 설명드릴 것입니다.

  • 25.07.09 12:11 새글

    @과거와 미래 중국왕조의 책봉외교에 중국왕조의 주관적인 외교적 입장도 크게 좌우하여 나타나는 법이라 형식도 그 나라의 주관적 입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삼국사기에 백제의 좌우현왕 작위에 관한 개로왕의 국서를 수록못한건 아무래도 삼국사기 저자들의 반대파들인 묘청 등 서경파들이 추구했던 칭제건원론을 유리하게 띄워줄 자료라서 그래서 삼국사기 편찬 추체들인 김부식 개경파들의 주관적 성격에 거슬리는 내용이라서 편찬에서 제외시켰던 것이지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