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장은 대적들의 반대로 인해 암울한 분위기가 압도적인 데 반해, 에스라 5장으로 들어서면 3장과 마찬가지로 낙관적 어조로 돌아선다. 그 이유는 5-6장에 이르러 마침내 성전이 재건되기 때문이다. "다리오 왕 6년 아달월 3일에 전을 필역하니라(스 6:5)." 물론 다른 간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서편" 총독 닷드내가 페르시아 황제에게 성전 건축에 대해 알아보라는 서신을 보냄으로 성전 건축은 또 다시 중단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의 활동과, 하나님의 "돌아보심", 그리고 이로 인한 다리오 왕의 도움으로 성전 재건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에스라 5-6장의 핵심적 주제는 구조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A 성전 건축을 독려하는 학개와 스기랴(5:1-2)
B 닷드내 총독이 성전 건축 허락에 대해 알아 봄(5:3-5)
C 닷드내가 다리오에게 보낸 서신(5:6-17)
C' 다리오가 닷드내에게 보낸 답신(6:1-12)
B' 닷드내 총독이 성전 rsj축 허락에 동의함(6:13)
A'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으로 성전 완공(6:14-15)
우선 에스라 4장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적 돌보심에 대해 의심을 가졌던 독자들은 5-6장에 들어가면 학개와 스가랴의 활동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히 느끼게 된다(5:1-2, 6:14). 두 선지자의 격려로 인해 이스라엘은 다시 낙망을 딛고 일어나서 성전을 환공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 단락의 안 틀과 바깥 틀에 해당하는 (5:1)과 (6:14)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스 5:1)....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스 6:14)...."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아무리 반대가 심하고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의 과감한 선언에 의해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이스라엘이 형통한 궁극적 비결은 아니다.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었다면 아무리 선지자들이라 해도 총독의 ㅂ나대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닷드내 총독은 4당의 르훔과는 달리 성전 건축에 대한 일을 다리오 왕에게 문의했으며, 그 답변이 올 때까지 성전 건축 공사를 중단시키지 않았다. 그가 이러한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그 원인이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5:5). 비록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대적들이 세력을 과시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포로 후 공동체는 정치적 자유와 독립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다.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이방 열강의 신민 노릇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신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속 정치 구조 안에서도 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온 땅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단락에서 강 서편 총독 닷드내뿐 아니라, 페르시아 왕 다리오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닷드내와 다리오 사이에 왕래한 서신 교환을 통해서 비록 일부 적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반대한다 해도,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이방 왕의 도움도 의지할 수 있는 것임을 통해서 보게 된다. 닷드내가 다리오에게 보낸 서신과 다리오가 닷드내에게 보낸 답신은 세부적 내용이 서로 상응한다.
A 닷드내가 다리오에게 보낸 서신(5:6-17)
a 보고: "열심히 건축을 하고 있음"(5:7-8)
b 허락 여부에 대한 조회(5:9-10)
c 유다 장로들의 대답: 고레스 칙령(5:11-16)
d 요청; 고레스 칙령 조사(5:17)
A' 다리오가 닷드내에게 보낸 답신(6:1-12)
d' 고레스 칙령 조사 완수(6:1-2)
c' 고레스 칙령 본문(6:3-5)
b' 다리오 왕의 허락(6:6-12(상))
a' 칙령; "신속히 행할지어다"(6:12(하))
성전 건축 재개는 고레스 칙령에 의해 시동이 걸렸었다. 그러나 대적들이 서신을 올리는 등의 반대 공작으로 인해 15년간 중단되었던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닷드내의 요청에 의해 다시 한 번 고레스 칙령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성전 건축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린느 여기에서 또 다시 고레스의 칙령이 사건 전개의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리오는 고레스 칙령을 근거로해서 새로운 조서를 내렸으며, 그것을 신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로인해 닷드내 총독과 신하들은 조서의 지시를 신속하게 이행했으며, 이로 인해 성전 건축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스 6:14)...." 에스케나지는 이 구절을 에스라-느헤미야서 전체 중에 핵심이 되는 "린치핀"(linchpin)으로 본다. 이 구절은 유대인들의 성전 건축이 형통하게 진행된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세 왕의 칙령을 좆은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은 성전뿐 아니라, 앞으로 아닥사스다 왕 때에 건축하게 될 성벽 건축까지 하나의 거대한 "하나님의 집" 건설 사역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구절은 에스라-느헤미야서 전체를 연결하는 구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성전을 재건한 후에 있었던 봉헌식 규모(6:15-17)를 간단히 처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과정 중에서 일부만이 완공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유월절 단락(6:19-22)은 성전 봉헌식보다 더 크게 언급이 되고 있다.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가 성전 봉헌식을 간단히 기록한 것은 아직 하나님의 집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하나님의 집은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되고, 그 안에 사람들이 정착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을 맺은 후에야 완공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따러서 성전만 완공된 후에 거대한 봉헌식을 갖는 것은 이기 상조였다. "그랜드 오프닝"이 이 모든 일이 끝난 후인 (느 12-13장)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성전 완공이 하나님의 집의 완공이 아니라는 에스라-느헤미야서의 견해로, 에스라 6:3-5에 나오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특이한 언급을 설명할 수 있다. 고레스 칙령을 담고 있는 이 단락은 하나님의 집의 규모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 고는 60규빗으로, 광도 60규빗으로 하고...." 여기에서 흥미로운 일은 하나님의 집의 높이와 넓이만 언급하고 그 길이는 언급하고 있지 않는 점이다. 게다가 그 크기가 솔로몬 성전(넓이 20규빗, 높이 30규빗, 길이 60규빗)보다 6배나 더 큰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노인들이 성전 지대를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 보고, 초러한 것을 보고 대성통곡했다는 기록(스 3;12)과도 상충된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를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여러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학자들은 이 경우 주로 본문 전승에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에스케나지는 본문이 언급한 것은 "고레스가 성전으로 세워진 것보다 훨씬 큰 하나님의 집을 짓도록 허락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길이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성장과 팽창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아닥사스다 왕 때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성취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집은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이러한 포괄적인 하나님의 집이 완공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설명하게 될 나머지의 주 내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