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군의 旌閭(烈女)이야기
禮山 烈女 鐵原林氏 旌閭
예산은 학자. 문인, 유학자, 독립운동가 등을 많이 배출한 충, 효, 에의 고장이다. 어느 고장과 비교하여 효자, 효녀가 많이 나왔다. 효행으로 이름난 인물이 많다.
조선시대 예산여성에게 부담을 준 것은 성리학이다. 남편이 죽으면 순결을 중시한 사회적분위기였다. 재혼이 금지되었다. 남편이 사망하면 여성의 인생길은 내리막길이었다. 재혼을 하지 못하고 힘들게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야만했다. 재혼하여 발각되면 양반이라도 벼슬할 수 없었다. 조선예산사회에서는 재혼은 지탄대상이었다. 목숨보다도 정절을 지지는 것이 조선시대 성리학의 주요 덕목이었다.
여성이 가족과 가문을 위해 절개를 지키며 살다가 생을 마감하면 나라에서는 ‘烈女’라는 호칭을 주어지고 ‘烈女門’을 내렸다.
충남 예산군 삽교읍에 널리 알려진 정려문은 2개소다.
조선후기 1797년(정조21년)명정을 받아 건립된 삽교읍 상하 1리 마을입구에 있는 ‘예산 열녀 철원임씨 정려’, 대한제국 1905년 건립된 삽교읍 월산리 마을에 있는 ‘예산 효자 장윤수 정려’이다.
삽교읍은 다른 면 보다 인구수와 면적이 넓은데 열녀와 정려 지정개수가 적어 아쉽다.
예산군 삽교읍 상하1리 마을입구 도로변 남향에 있는 ‘예산 열녀 철원임씨’정려비가 있다. 우측 마을 입구 ‘OK무인텔’, ‘YES무인텔’이 보인다. 바로 옆에 예산 열녀 철원임씨 정려가 있다. 임씨 정려는 당초 삽교읍 평촌리 정문들에 있었다.
2015년 예산군은 상하1리 있었던 철원임씨 정려를 다시 건립해주었다. 아이러니하다.
예산군에 훌륭한 정려문 옆에 무인텔 난무하고 있어 그곳을 지날 때 마다 나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禮山 烈女 鐵原林氏 旌閭
충남 예산군 삽교읍 상하 1리에 세워진 김재양의 부인 철원임씨 정려는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797년(정조 21)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김재양 부인 철원임씨 정려는 처음에 예산군 삽교읍 평촌리 정문들에 있었다. 이곳에 있던 철원임씨 정려를 인접 마을 삽교읍 상하리로 옮겼다.
철원임씨의 출생일과 이름은 알 수 없다. 남편 연안김씨 김재양과 출생일은 알 수 없고, 사망년도만 전해온다. 부부의 사망일은 1794년(정조18)이다.
철원임씨는 신혼 초에 남편 김재양이 병에 걸려 고생하자 탕약을 직접 맛보아 달였다. 5년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여 고생하면서 극진히 간호를 했다. 그런 그녀의 정성에도 남편은 병석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임씨는 자신도 세상에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그런 철원임씨 마음을 눈치를 알아채고 집안에서는 불의의 일에 대비하여 皐復 중에는 그녀의 몸을 뒤져 칼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시가의 철저한 감시 속에 뜻을 이룰 수 없었던 그녀는 이때부터 언행을 비롯하여 잠을 자거나 먹는 일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며, 집안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던 중 갑자기 체기가 있다. 라며 밥을 삼키지 못하였다. 그녀는 죽은 남편의 관 앞에 곡을 하고, 자리를 마루 동쪽으로 옮겨 대뜸 담배를 피운 후 자기 방으로 돌아가 누웠다. 그런데 정신과 기력이 괴로워 보여 집안사람들이 약을 입으로 흘려 넣었으나 끝내 삼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남은 담배를 가져다 살펴보았다. 그 안에 거미 같은 형상의 물체가 있었다. 철원임씨가 사망하자 집안사람들은 그녀가 끝내 독으로 자해하여 목숨을 끊었음을 알아 차렸다.
『일성록(日省錄)』 1795년 윤2월 19일 기사에 “덕산의 유학자인 이언복(李彥復) 등이 본현(本縣) 김재양 의 부 임씨의 열행이 뛰어나니 정문을 세우는 은전을 베풀어 달라고 청하였다.”라는 정려 건립 기록과『일성록』1796년 기사에 철원임씨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孝行等第謄錄』, 「烈女旌閭秩」에 ‘德山故士人金載讓妻林氏)’라고 임씨의 명정 기록이 남아 있다. 1980년 지방유림과 선현유적보존회. 김씨문중 주선으로 정려를 증건했다. 이러한 지역에서 노력은 부인이 높고 아름다운 정렬貞烈을 오래도록 전지하고 가련한 영혼을 위로하고자 했다.
옛 정려 앞에는 1992년 예산 지역 유림 및 선현유적보존회에서 세운 烈女鐵原任氏重修紀蹟碑가 세워져 있다.
정려 내부 중앙 상단에는 ‘烈女學生延安金載讓妻孺人鐵原林氏之門 上之二十一年丁巳正月 日 命旌’이라고 쓰인 각서된 현액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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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정조18) 18세의 어린나이에 목을 매어 자결한 철원임씨가 가엽다. 철원임씨는 김재양과 결혼 후 아이도 출산하지 못하고 남편이 병이 들었다. 5년간 극진히 병간호 했으나 남편은 사망을 했다. 슬픔에 감겨 질긴 목숨을 끊어야 했던 조선시대 남존여비의 강요에 젊은 여성의 참담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삽교읍 상하1리 마을은 농촌건강장수마을이다. 2016년「해뜨는 초막골 상하1리 마을지」 만들었다. 상하1리 고향인 신익선 예산학연구소장은 집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상하1리 마을지 발간에 기여했다.
2018년 마을의 옛 문화와 역사를 담은 ‘해뜨는 초막골 상하1리 마을박물관’개관을 했다. 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동영상, 마을 상조회 물품, 옛 농기구, 마을주민 소장 유물 등 자료를 전시ㆍ기록해 놓았다. 상하1리 마을주민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다양한 동아리활동과 마을행사, 봉사활동 등도 남다른 마을이다. 이런 마을에 조선시대 열녀문을 보존하고 있어 지상에서 축복을 내리는 상하1리 마을이다.
완연한 봄이 오면 양 삽교읍 상하1리 도로변에 벚꽃이 만개한다. 장관이다. 그곳을 지나던 차량에 내려 사진을 촬영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랑고장에 숨겨져 잘 알려지지 않은 서민의 역사의 숨겨진 예산이야기 기록을 연구하고 기록으로 후대에 행적을 남기려 한다. 소중한 문서자료로 남을 것이다. 그런 일은 수필가로서 해야 할 일이다.
우리고장 예산향토사 소재를 발굴하고 전국에 알려 선조의 지혜, 삶, 철학, 애환 등을 술술 풀어보고 싶은 욕심이다.
첫댓글 김작가님은 이리 예산의 열녀비나 효제비를 연구해서 발표하시면서 책을 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열심히 쓰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