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전당 보두네홀 미사 (보두네 신부를 기리며)
어제(4/24)부터 평화의전당 보두네 홀에서 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보두네 신부님은 1859년 불란서에서 태어나 1884년 9월 20일 사제 수품 후 같은 해 일본을 거쳐 다음해에 우리나라로 입국하게 된다. 처음에는 대구교구 소속으로
충청도 지역 사목을 담당하시다가 1889년 전주본당(현 전동성당) 주임으로 오시게 되는데 당시 전주시내에는 신자집이 하나도 없어 소양 대성동(대승리)에 자리를
잡았다가 1891년 현재의 전동성당 터로 옮겨 오시게 된다. 복자 윤지충과 복자 권상연이 우리나라 첫 순교가 이루어진 1791년의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후 1907년 성당건축을 준비하여(설계) 1908년 착공을 하였으며 1909년에는 전주 성벽을 헐게 될 때 그곳 성벽의 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아 전동성당
주춧돌로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돌은 1801년 이고장의 첫 사도 복자 유항검이 능지처참 (육시형)을 당하고 그 목을 성벽위에 매달아 놓을 때 흐른 피가 적셔진
돌이었다.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하시다. 첫 순교 100주년에, 그것도 순교터인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이 그렇고 이고장의 첫사도가 흘린 피로 물들인 돌들이 성당
주춧돌이 될 줄이야. 본당은 1914년 1차 완공을 보게 된다. 축성을 하지 못한 이유는 공사비가 부족하여 제대로 공사가 진행되지 못한 탓이다. 보두네 신부님은
1914년에 초남이 바우백이에 묻혀 계신 복자 유항검 일가의 유해를 발굴하여 잠시 전동성당에 모셨다가 그해 치명자산 위에 모시게 된다. 치명자산은 당시 전동성당
건축용 벽돌 굽는 화목을 구하기 위해 매입을 하였는데, 보두네 신부님은 당신도 이산에 묻히기를 희망하셨다. 신부님은 당신이 그렇게도 심혈을 기울였던 전주성당
완공(23년이 걸린 1931년에야 축성)을 보지 못하고 1915년 성령강림절 미사 때 제대 앞에서 쓰러진 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신부님은 원하시던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된 첫 사제가 된다. 당신이 믇혀 계신 치명자산 아래 평화의 전당에 가장 넓은 공간을 보두네 홀이라 명명한 것은
어쩌면 주님의 뜻이라 여겨진다.
아래 : 입구에서 본 평화의전당 모습
아래 : 중정에서 바라본 피정 건물
아래 : 보두네 홀 전경
아래 : 보두네홀에서의 미사
아래 : 속칭 치명자산 성지 머슴 김영수 헨리코 신부
아래 : 3층에서 바라본 보두네홀 입구
아래 : 3층 유항검 홀 (최첨단 시설을 갖춘 공연장 - 전주시 협찬으로 매월 두 차례 가톨릭 예술단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