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표 천일사 전축
강성철
아내가 혼수품으로 가지고 왔던
별표 천일사 전축.
산꼭대기 단칸방에서 시작하여,
30년 가까이 이곳저곳 이사를 하면서도
버리지 못해,
지금은 건넛방 구석에서 잔뜩 웅크린 채
골방 노인테처럼 늙어가고 있다.
꼬불꼬불 달팽이관 같은 미로를 돌아
존 바에즈, 비틀즈, 나나 무스꾸리와
배호, 최희준, 패티김의 오래된 소리기억을
더듬이 같은 전축 핀으로 토해내던
별처럼 반짝이던 전축.
애들 감기 걸리지 말라고
가습기 증기 가득했던 단칸방 기억,
술 취해 늦게 들어와 변명하던 기억,
아내와 말다툼하던 기억,
그 기억들 사이사이로 빛바랜 흑백사진 같이
전축 핀이 톡톡 튀며 돌아간다.
건넛방에서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하시던
말년의 아버지도
전축판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전축보다, 카세트와 씨디에 익숙해진 나도
아버지와 어울려 함께 돌아간다.
MP3를 끼고 사는 자식들 보며,
나도 이제는 골방으로 밀려날 때를 생각해본다.
―《시인시각》200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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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詩
강성철, [별표 천일사 전축]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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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3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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