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희한하게도 준이가 통후추를 너무 좋아합니다. 밥과 국이나 찌개 위주의 식단을 너무 좋아하는 준이는 사실 식단확대에 한계가 많았습니다. 생선이나 해산물은 아예 입을 대지않고 고기와 햄 소시지 위주로만 먹으니 그것 또한 큰 숙제였는데 요즘 그 숙제가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입니다. 물론 생선 야채는 아직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해산물로는 많이 확대되었고 만두 김치볶음밥 김밥까지 거뜬히 해치우고 있습니다.
준이때문에 우리집은 사골을 고아만든 육수를 항상 냉동고에 쟁겨둡니다. 김치찌개 육개장 부대치개 등이 준이의 최애음식들이기에 이들을 만들기위한 육수로는 사골국물이 꼭 필요합니다. 이런 음식에서 준이에게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통후추입니다. 준이 몫을 줄 때 항상 더 넣어주는 통후추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희한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준이가 통후추를 유난히 좋아하는 때에 맞춰 편식에서 조금씩 놓여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추가 주는 그 강렬한 맛과 향이 분명 둔하면서도 유달리 예민한 준이의 촉각체계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이 맞아보입니다. 양념용일 뿐 그것 자체를 먹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보편적 음식관에 또다른 변화를 깨우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통후추의 효능을 찾아보니 순기능들이 많습니다. 후추의 주성분인 피페린Piperine은 소화액을 자극해서 소화기능을 돕고, 항염증 성분이 강해서 체내 염증 개선에 도움을 주고 특히 강황과 같은 항염증 성분이 많은 음식들의 효과를 극대화해준다고 합니다.
문득 '향료전쟁'이란 책이 생각납니다. 향료 중 으뜸인 후추보다 더 뛰어난 효능과 다소의 환각성분까지 있는 육두구 Nutmeg 쟁탈전이 세계 갈등의 원인과 전개라는 역사적 측면에서 다룬 이 책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국내서적으로는 '향신료전쟁'이란 책도 있는데 여기서는 역시 후추가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향료를 확보하기 위한 은밀한 탐닉욕구가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 중에 하나라는 것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내밀한 미식욕구가 우리의 행동방향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듯 합니다.
요즘 준이의 입맛변화를 지켜보며 자기몸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기회들이 다양하게 제공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깨닫게 해줍니다. 통후추 탐닉으로 시작된 오랜 세월동안의 뇌와 몸의 침잠을 얼마나 깨워줄 지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저녁마다 과일먹는 것을 하나의 일상루틴으로 만들어버린 태균이. 종일 해야하는 넓은 집 안팎 청소에 지쳐 일찍 쓰러진 엄마를 굳이 깨워서 과일을 대령시키고야 맙니다. 한동안 복숭아에 집착하더니 요즘은 포도입니다. 그러면서 준이몫은 얼마나 잘 챙기는지, 준이것부터 가져다주고 자기것을 먹습니다.
그 덕에 과일까지 다양하게 먹게 된 준이의 입맛변화가 태균이 단계까지 갈 지 궁금합니다. 태균이 어제는 토마토 6개로 직접 만든 스파게티를 한 점의 찌끄레기도 없이 깨끗이 먹어치웠습니다. 시중의 스파게티소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직접만든 소스의 깊은 맛을 실감하는 것은 저 뿐이 아닌 듯 합니다. 준이에게는 밥과 국을 주며 햄에다 수제 스파게티 소스를 뿌려주니 일단 먹기는 했습니다. 스파게티를 즐길 날이 멀지않은 듯!
준이의 통후추 탐닉 세월을 지켜보면서 느껴지는 것도 많습니다. 하나의 음식재료가 녀석들의 숨겨진 자극욕구의 대체물이 될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고보니 구운 생선은 절대 그냥 먹지않고 와사비장에 찍어먹는 태균이의 기호도 같은 맥락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와사비 그 맛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시중의 와사비소스는 실제 와사비 비율이 너무 적은지라 와사비가루로 사다가 잘 개어서 냉동실에 쟁여놓고 필요할 때마다 쓰곤 합니다. 인공과 실제재료의 차이를 태균이 맛으로 잘 아는 듯 합니다. 녀석들의 변화를 추구하는 입맛은 놓치지말고 충족시켜 줄 일입니다.
첫댓글 아, 맹탕 와사비의 정체를 알겠습니다.
후추, 초피, 각황, 계피, 와사비까지 향신로 덕후인 1인입니다.
박하, 고수, 로즈마리 등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허브들도 있긴 합니다. 준이가 거의 모든 음식을 즐기면 많이 발전할듯 싶습니다. 구운 생선을 와사비장에 찍어 먹는 태균씨 따라쟁이 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