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칼럼 10) 내가 깊이 고민했던 일, 지금 보니 이렇더라
인생을 돌아보아 생각해볼 때 깊이 고민하고 슬퍼하며 좌절했던 일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인생칼럼을 쓰면서 다른 글의 주제(~을 다시한다면~돌아간다면)에서 인생의 문제와 어려움 앞에 힘들었던 배경과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했었다. 그래서 이번 주제에서는 문제의 발전 배경과 상황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소개하고 그 일을 현재 다시 보았을 때 어떻게 해결하고 접근할 수 있을까를 집중하여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기억에 많이 남는 기억은 고교연합 선교단에서 백 선배님과 일어났었던 일이다. 그 분이 우리들에게 실망을 하시고 연합을 그만 두겠다고 얘기하셨을 때, 그때 며칠씩 크게 3번 정도 통곡하며 울었던 것 같다. 왜냐면 그 당시에 그 얘기는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느끼고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조금 더 넉넉하고 유연하게 문제에 대해 반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만약에 지금 그 상황이 다시 일어난다면 내가 과거와 동일하게 행동할까?
그때도 해결책을 아무것도 써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는 나의 원한 바와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때와 같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조취를 일찍, 조금 더 빨리 취했다면 그나마 나아질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이런 상황까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들이 조금 더 마음열고 관계를 형성했다면 괜찮았을텐데..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머지 생각은 내가 눈물만 흘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해결을 위해서 집중하고 노력했다면 더욱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두 번째 내게 일어난 숨막히는 순간은 중 3 이후로 5년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던 교회에서 일어났다.
그때의 순간들을 설명한다면 잠잠히 숨겨져 있던 시한폭탄이 때를 맞춰 폭팔했던 것으로 표현하고 싶다. 그만큼 충격은 교회와 가정과 나를 덥쳤기에 한동안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과정은 너무나 길고 복잡하고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강 생략하고 그때의 내가 처신할 수 있었던 더 나은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휴~ 이것도 마찬가지로 생각을 해도 딱히 이거다! 하는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워낙 복잡하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때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정확히 분별하여 적시적지에서 움직이고 행동했다면 그나마 충격의 여파는 작았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어머니께 안겨드려야만 했던 큰 충격은 예전에 뿌려둔 충격의 씨앗이 자라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다시금 생각해보면 어렸기에,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던 일이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때보다 3년은 더 나이를 먹은 현재에 그런 일이 발생하거나 비슷한 일이 생길 소지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은 한마디로.. 정직과 용서를 구하는 자세인 것 같다. 사람에게 실망을 주기 쉬운 것이 정직하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신의를 깨는 것이다.
그때는 정직하면 야단을 맞고 일이 커지겠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솔직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내가 혹여나 잘못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실망과 아픔을 안겨주게 된다면 나중에라도 기회를 만들어 정직하게 용서를 구해야겠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람을 외모만으로 판단하고 분석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과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작업 후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자리에 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말이 충분히 설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이 어떤 공동체에 양의 탈을 쓴 늑대로 들어왔다면 그것이 양인지 늑대인지 바로 파악하고 처신하는 것은 그 공동체의 몫이고 나의 책임일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모임에든 모임의 성격과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이 들어와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소지는 충분히 있기에 사람을 바로 파악하고 또 그 사람에 맞게 처신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할 것이다. 특히 리더의 자리에 선 사람은..
이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세 번째 얘기로 넘어가자.
이 일은 최근에 일어났던 일인데 이것도 하나의 가정사이기에 깊은 설명은 삼가 피하도록 하겠다.
집에 어려운 일이 다시 닥쳤다. 아버지께서 재혼을 한 가족을 제외한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문제였다. 그때 당시 나는 천안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05.1학기) 모든 일들은 대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그 일들을 전화를 통해서 음성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부터 3년 동안 살았던 집은 외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갔고 어머니는 대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시게 되셨다. 그리고 몇 주동안 어머니와 연락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떻게 어디서 무엇을 하시면서 몸은 건강하게 잘 계시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상황은 도대체 왜 이렇게 또다시 복잡하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 여파가 지속되어 방학을 거쳐 2학기의 생활까지 연장이 되었다.
대구의 고향 집에 내려가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보고싶은 어머니가 계서도 볼 수가 없었고 한번쯤은 주말에 집에 가서 쉬고도 싶고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따뜻한 밥도 먹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2학기 내내 집에 한번 내려가지 못하였다.
참 난감한 마음이었다. 자꾸만 낙심되고 절망이 되었다. 왜 나의 가정과 사랑하는 가족들은 왜 이렇게 계속 문제 속에 힘들어할까? 사랑하는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이런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도 없는걸까? 내가 과연 제대로 된 아들일까?
고민하며 자책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수록 힘이 빠지고 얼굴의 생기는 잃어갔던 것 같다. 그렇게 고민했던 시간을 거쳐 다시 어머니의 계신 처소와 안부를 파악하게 되었고 지금은 연락하고 싶을때면 다시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감사하고 기뻤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나의 마음에 또 다시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쉴 집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내가 쉼을 누린지가 과연 언제인가?
서로를 격려하고 따뜻하게 웃으며 삶을 나누는 가정이 그립다 못해 아쉬워진다..
그래서 한동안 정말 절망하며 깊이 회의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친구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터졌었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덕연 선생님으로부터 복지순례 제의를 받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희망을 복지순례에 걸면서 일어서도록 마음을 먹었다.
지금 돌아와 생각해보면 그때 아무리 상황이 긴박하고 어렵게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가는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스스로 못 다스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구하지 못했던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그때 조금 더 믿음을 가지고 내게 다가온 문제의 상황을 대처했더라면 그만큼 시간과 여러 가지 좋은 상황들은 놓치지 않았을텐데..
삶의 한 부분만 보는 오류,
지금 순간만 생각하는 오류,
이러한 모든 것들이 삶을 사는 자들이 흔히 짓는 범죄가 아닐까 생각 한다.
조금 더 넓게, 높게, 깊게, 크게 생각한다면 그만큼 삶을 여유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텐데.. 그래서 지혜가 중요한가보다. 사람살이에 있어서 금보다, 은보다 중요한 지혜..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여 살아가게끔 하는 지혜.. 그 지혜와 함께 살고 싶다.
지난 몇차례의 시련과 어려움을 통해서 얻은 것은 이것이다.
‘지혜와 함께 살아가라.’
언제나 삶을 삶되게 만드는 원동력은 지혜에 있다. 지혜를 얻도록 노력하고 땀 흘리라. 사람을 통해 배우고, 삶의 모든 변화와 경험을 통해서 배워라.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그 속에 담겨진 숨은 의미와 깊은 뜻을 찾아라.
바로 그것이다..
첫댓글 먼저, 글을 보기에 편하게 썼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고맙다. 눈이 편안하다. / 하나 하나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직접 육성으로 들으며 배움을 얻고 싶습니다. 이번 순례는 좋은 인생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