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랑거철(螳螂拒轍)
기원전 7세기경 춘추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은 어느 날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중
벌레 하나가 팔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당랑지부螳螂之斧) 수레바퀴를 칠 듯 덤볐다.
이에 장공이 마부에게 어떤 벌레냐 묻자
마부는 “저것은 당랑(사마귀)이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융통성이 없어
물러설 줄을 몰라 제 힘을 생각지 않고 앞을 가로막고
강자에게 함부로
덤비는 습성이 있사옵니다”
이에 장공은
“저 벌레가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용사일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비켜 가도록 하라”
ㅡㅡ
아산 정주영 회장님 일화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추진한다.
된다는 확신 90%와
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가 전부다."
오늘은 거북선이 나온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세계 제1의 조선소를 만든
아산 정주영 회장의 소설과도 같은 실화,
현대중공업 창립 일화를 한 토막 소개할까요.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못할 것도 없지.
그까짓 철판으로 만든 큰 덩치의 탱크가 바다에 떠 동력으로 달리는 게 배지,
뭐. 배가 별거냐.”
1970년 초 그는 포항제철에서 생산되는 철을 대량으로 소비해줄
산업이 필요하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조선소 건립을 결심하죠.
당시 우리나라 조선업은
영세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고작 1만 7000t급 선박이 최대였고,
연간 건조량도 50만 G/T(총톤수)로
세계 시장점유율은 1%에도 못 미쳤죠.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덤비는
무모한 도전을 이르는 말.
경험도, 숙련된 기술자도,
당장 초기 비용도 없는 회사가
초대형 조선소를
짓겠다고 덤벼드는 모습
자체가 비웃음거리였죠.
“너희 같은 후진국에서 무슨 몇십만톤의
조선소를 지을 수 있냐?”
그는 일본,
미국 등 이곳저곳 뛰어다녔지만
아무도 그를 상대해주지 않고
미친놈 취급을 하였죠.
어쩔 수 없이 그는 영국으로 날아가
버클레이즈 은행의 문을 두드렸는데,
돈을 빌리기 위해선
공신력 있는 기관의 사업계획서와
추천서가 필요했죠.
이에 그는 조선소를 지을 울산 미포만의 소나무가 서 있는 황량한 모래사장을 찍은
흑백 사진 한 장만 들고
선박 컨설턴트 기업인 A&P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을 만나죠.
"벌써 여러 번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안 됩니다."
롱바톰 회장은 단호했죠.
"한국 정부가 빚 보증을 서도 안됩니까?"
"한국 정부도 그 많은 돈을 갚을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은행을 설득하려면 성장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때 그는 숨겨진 비장의 카드(?)를 꺼내죠.
"이게 뭡니까?
한국 돈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한국이 가진 잠재력이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롱바톰 회장은
무슨 말인지 어안이 벙벙했죠.
"잘 보십시오.
이 지폐에 그려진 것은
거북선이라는 배입니다.
철로 만든 함선이지요.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전쟁에서 일본을 물리쳤습니다."
이에 롱바톰 회장은 지폐를 들어
꼼꼼히 살펴봤는데,
앞면에는 국보 1호인 남대문이,
뒷면에는 거북이와
닮은 배가 그려져 있었죠.
"당신의 선조들이 실제로
이 배를 전쟁에 사용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한국은 그런 대단한 역사와
두뇌를 가진 나라입니다.
불행히도 산업화가 늦어졌고
그로 인해 좋은 아이디어가 묻혀 있었지만
잠재력만은 충분합니다.
우리 현대도 자금만 확보된다면
훌륭한 조선소와
최고의 배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롱바톰 회장을 설득했는데,
결국 수많은 화려한 프리젠테이션과
보고서에도 'NO'를 외쳤던
롱바톰 회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500원짜리 지폐 한 장에서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은 그의 의지였죠.
이후에도 그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한 끝에 결국 1972년 황무지나 다름없던 울산의 백사장에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와 배가 '동시'에 건설되죠.
조선소 부지로 점찍어 둔
울산 미포만의 모래사장 사진 한 장과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26만t급 초대형 유조선 2척을 수주하고,
이를 기반으로 차관까지 빌려온
'현대판 봉이 김선달'
아산 정주영!
이렇게 세워진 현대중공업은
1983년 세계 조선업계 1위에 올라서고,
국내 기업 중 최초로 10억 달러
수출탑을 거머쥐었으며,
2012년 선박인도 1억 GT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죠.
당시 1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지닌 영국과 일본 등의 조선소들도
근접조차 하지 못 한 불멸의 대기록이죠.
가장 짧은 기간,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
한강의 기적 가운데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아산 정주영!
"길이 안 보이고 막막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봐라.
안 보이던 길이 보일 것이다."
"할 일이 힘들고 어렵나?
그만큼 가치와 보람이 있는 일이란 증거다.
쉬운 일로는 성공에 이르지 못한다."
"실패가 두려운가?
실패는 성공의 뿌리 내리기다.
비바람을 겪지 않고 자란 나무는
강풍이 불면
제일 먼저 뽑힌다."
"지치고 낙담하고 있나?
바로 운명의 갈림길이다.
결연히 일어서라.
아니면 도태된다."
결국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평생 좌우명이
그의 성공비결이라고 봐야겠죠.
경제에는 기적이 있을 수 없는 것,
흔히 말하는 '한강의 기적'은
결코 기적이 아니라
온 국민의 진취적인 기상,
개척정신, 열정적인 노력이 혼연일체가 되어
이루어낸 '필연'으로 봐야겠죠.
일부에서는 정경유착 등
산업화의 '빛'보다 '그림자'를 얘기하지만,
자원 불모지에서 열정과 의지,
창조와 혁신만으로 세계에 우뚝 선
위대한 기업인들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불세출의 개척정신과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수많은 역경을 딛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한 아산, 냉철한 이성보다는
뜨거운 열정을 주문했고,
불가능이란 고정관념을 가장 경계했던 아산,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인간은 한번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라는 신념의 아산,
'一勤天下 無難事
(일근천하 무난사)',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움이 없다.'
쌀 배달꾼 시절부터
새벽 3시면 일어나 왜 이렇게 해가 늦게 뜨냐고
하늘에 대고
푸념을 할 정도로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부지런했던 아산,
치열한 좌우 이념대립으로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영웅이
부재한 이 시대에
그의 "이봐, 한번 해봤어" 하는
개척과 도전정신은
기업인뿐 아니라
전 국민의 사표가 될 수 있지 않을지··
“어릴 적 가난이 싫어
소 판 돈을 갖고 무작정 상경한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묵묵히 일 잘하고
참을성 있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 걸어왔다.
이제 그 한 마리가 천 마리의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
이번 방북이 단지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을 넘어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1998년 소떼 방북 시 판문점 기자회견에서
그가 한 말인데,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한 것,
항상 그처럼 '상식의 족쇄'를 깨고
창조하고 혁신하는 우리들 되었으면 합니다.
-서정욱 변호사의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