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은 속도가 줄 수 없는 성찰의 기회를 줍니다.
오랜만에 일반열차를 이용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속열차(KTX)가 다니지 않는 곳이라서 ITX- 새마을호와 누리로를 타게
된 것인데, 익숙한 모습이 아니라서 그런지 왠지 낮설게 느껴지더군요.
일단 속도가 느리니 답답하고, 거기다 청차역까지 많으니 자꾸만 시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니나고 지루
함에 조금씩 지쳐갈 무렵 너는 어느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KTX 를 탈 때는 창밖을 볼 일이 없었는데, 느리게 가는
기차에서는 창문 너머 풍경이 참 정답게 다가오더군요. 초록빛으로 물든 산, 유유히 흐르는 강, 논과 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
는 사람들..., 초고속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종착역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속도를 줄이니 풍경이 보이고 제
가 누구와 더불어 살고 있는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이동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느리게 가더
라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속도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속도가 우리를 지배한다고 할 수 잇을 정도로 일상의 많은 것들이 속도의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초고속 인터넷'부터 '총알 택배'까지, 빠른 속도는 어느새 삶의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몰론 빨라진 속도가 우리네 생활에 가져온 혜택은 많습니다. 무엇보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생활이 편리해졌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속도의 혜택만큼 그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간편하고 빠른 것에 길들여져 불편한 것은
불필료한 것으로, 느린 것은 피해야 할 것으로 여깁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진 만큼 인내심도 줄어들었습니다. 속도는
빨라졌는데 여유는 더 없어지고 삶은 더 조급해진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인류가 직면한 생태 위기도 결국에 속도 경쟁이
불러온 산업하의 산물이라고 할 있겠지요.
속도 무제한의 문명에 맞서 '느림의 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실 빠름이 미더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느림이란 가치는
종종 무시됩니다. '행동이 느리다.' '일 처리가 느리다.' '발전이 느리다.' 등 '느리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비춰지기도 합니
다. 그런데 느린 것이 정말 무의미하고 좋지 않은 것이기만 할까요? 우주의 역사를 생각해 봅시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138억 년 전 시작되었고, 생겨난니 93억 년이 지나서야 태양과 지구가 형성되었습니다. 수억 년이 더 지나서
지구에는 생명이 탄생했고, 수많은 생물종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이 38억 년 이상 이어지는 가운데 그 끝자락에서 인간
도 출연했습니다 이처럼 현대 과학은 우주가 조금씩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생성되고 있음을 밝혀 주고 있는데, 저는 이 우주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 창조의 신비를 봅니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긴 호홉을 당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혼자 달리시기보다 우리와 함께 천천히 걸으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창조와 속도가 '느림'이라면, 느리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이 세상에 새겨주신 창조의 리듬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동의 집 지구에 사는 피조물은 이 자연의 리듬을 따라 살아갑니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을 서두르지 않고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처럼 인간도 창조의 리듬을 따라 자신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때 자연과 좀 더 조화롭게 살 수
있겠지요.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창조의 리듬에 순응하지 않은 채 '나 홀로 과속 주행'을 계속 이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찬미받으소서』 회칙에서도 지적하듯이 "인간 활동이 발전해 온 속도는 생물학적 진화의 자연스러운 느린 흐름과 대비됩니다."
(18항) 우리가 "속도를 어느 정도 줄여 합리적 한계를 설정하고, 더 나아가 너무 늦기 전에 되돌아가는 것"(193항)을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십 년간 '더 빨리, 더 많이'에 익숙해진 감각을 한순간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가가려면 '느림'이란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지혜를 살아가야 합니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맛보고, 느리면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느림은 속도가 줄 수 없는 성찰의 기회를 줍니다.
느리게 가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굽이굽이 돌아가며 천천히 흐르는 강, 수백 년이 넘는 아름드리 나무를 바라보며
느림이 주는 선물과 가까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귀 기울여 보세요. 창조의 리듬을 따라사는 하느님의 피조물은
이야기합니다.
"느려도 괜찮아요. 자연은 원럐 느려요."
2024년 8월호 빛 책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