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공자께서 제나라에서 소(韶, 순임금의 음악)를 들으시고, (이 음악을 배우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모를 정도로 심취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이 음악이 이런 경지까지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하셨다.
史記三月上有學之二字 不知肉味蓋心一於是而不及乎他也 曰 不意舜之作樂 至於如此之美 則有以極其情文之備 而不覺其歎息之深也 蓋非聖人 不足以及此 사기에는 三月 위에 ‘學之’라는 두 글자가 있다. 고기 맛을 모른다는 것은 대개 마음이 여기에 오로지 있어서, 다른 데로 미치지 않는 것이다. 순임금이 음악을 만든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렀음을 생각하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렇다면 소악에 情과 文이 모두 갖추어짐을 지극히 할 수 있었기에, 깊이 탄식함을 깨닫지도 못하셨던 것이다. 대개 성인이 아니라면 여기에 미치기가 충분하지 않다.
新安陳氏曰 學之三月 學之久 因以忘味之久 否則三月字連下文無意味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배우기를 석달 동안 한다는 것은 배움이 오랜 것이니, 이로 인해서 맛을 잊은 지 오래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三月이란 글자는 물론 아랫글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記曰 知禮樂之情者能作 識禮樂之文者能述 예기에 이르길, 예악의 情을 아는 사람은 능히 지을 수 있고, 예악의 文(꾸밈)을 아는 사람은 능히 전술할 수 있다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文聲音也 情實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文이란 성음이고, 情이란 실질적 내용이다.”라고 하였다. |
2 | ○ 范氏曰 韶盡美又盡善 樂之無以加此也 故學之三月 不知肉味 而歎美之如此 誠之至 感之深也 범씨가 말하길, “소악은 다 아름답고 다 선하다. 음악 중에 이것에 더할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3개월 동안 배우면서 고기 맛을 몰랐고, 또한 감탄하며 찬미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은 誠이 지극한 것이고, 감동이 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子聞韶音 學之三月 不知肉味 學之一節 不知如何 今正好看其忘肉味處 這裏便見得 聖人之樂如是之美 聖人之心如是之誠 又曰 聖人聞韶 須是去學 不解得 只恁休了 學之亦須數月方熟 三月大約 只是言其久 不是眞箇足頭九十日 至九十一日 便知肉味 想見韶樂之美 是能感動人 是能使人視端而行直 某嘗謂 今世人有目不見先王之禮 有耳不得聞先王之樂 此大不幸也 주자가 말하길, “공자께서 韶音(순임금의 음악)를 들으시고, 3달 동안 배우셨는데, 고기 맛을 몰랐다고 하셨지만, 배우셨다는 한마디가 어떠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지금 고기 맛을 잊어버렸다는 부분을 잘 살펴본다면, 여기에서 성인의 음악이 이처럼 아름답고 성인의 마음이 이처럼 정성스럽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성인께서 소음을 들으시면, 반드시 가서 배우셨는데, 해득하지 못하시면, 그저 이렇게 쉬셨다. 배우시기를 역시 모름지기 몇 개월이 되어야만 비로소 익숙해지는 것이다. 3개월은 대략 그것이 오래됨을 말한 것일 뿐이고, 진짜로 처음 90일을 지나쳐서 91일이 되면, 문득 고기 맛을 안다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소악의 아름다움은 능히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고,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단정한 것을 보고서 곧게 행동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일찍이 말하길, 지금 세상 사람들은 눈이 있어도 선왕의 예를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선왕의 악을 듣지 못하니, 이는 큰 불행이라고 한 적이 있다.”라고 하였다.
問孔子聞韶 學之三月 不知肉味 聖人殆亦固滯不化 當食之時 又不免心不在焉之病 若何 曰 主一無適 是學者之功 聖人行事不可以此求之也 更是舜之樂盡善盡美 而孔子聞之深有所契于心者 所謂得志行乎中國 若合符節 是以學之三月 而不自知其忘味也 누군가 묻기를, “공자께서 韶樂을 들으시고, 3달 동안 배우시며 고기 맛을 몰랐다고 하셨으니, 성인께서는 거의 또한 고집스럽고 막히셔서 소화해낼 수 없으신 것 같고, 마땅히 밥을 드셔야 할 때에, 또한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은 병통을 면하지 못하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하나에 주안점을 두어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은 배우는 자들이 하는 공부다. 성인께서 일을 행하실 적에는 이로써 구할 수는 없는 것이고, 더욱이 순임금의 음악은 모두 다 선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공자께서 이를 깊이 들으시고 마음에 부합하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이른바 ‘(탕임금과 문왕은) 뜻을 얻어서 중원의 나라에 행하신 것에 있어서는, 마치 부절이 합해지듯 똑같았다.’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3달 동안 배우시고도 고기 맛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셨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心不在焉 則食而不知其味 是心不得其正也 然夫子聞韶三月何故不知肉味 曰 也有時如此 所思之事大而飮食不足以奪其心也 且如發憤忘食 吾嘗終日不食 皆非常事 以其所憤所思之大 自不能忘也 누군가 묻기를,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밥을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하였는데, 이는 마음이 그 올바름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韶樂을 들으시고 3달 동안 무슨 이유로 고기 맛을 알지 못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러할 때도 또한 있는 것이니, 생각하는 일이 커서, 음식이 그 마음을 빼앗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發憤忘食이나 吾嘗終日不食도 모두 일상적인 평범한 일이 아니니, 발분하고 생각하는 그것이 커서 저절로 잊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程子改三月爲音字 如何 曰 彼以一日聞樂而三月忘味 聖人不當固滯如此故爾 然以史記考之 則習之三月而忘肉味也 旣有音字 又自有三月字 則非文之誤矣 蘇氏說亦得之 蘇氏曰 孔子之於樂 習其音 知其數 得其志 知其人 其於文王也 見其穆然而深思 見其高望而遠志 見其黯然而黑 頎然而長 其於舜也 可知 是以三月而不知肉味 누군가 묻기를, “정자는 三月을 고쳐서 音자로 하였는데,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저것은 하루 음악을 들었다고, 3달 동안 맛을 잊어버렸다는 것인데, 성인께서 고집하고 막힘이 마땅히 이와 같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는 것이다. 史記로 상고해보자면, 익히기를 3달 동안 하면서 고기 맛을 잊었다고 하였다. 기왕에 音자도 있는 데다가, 다시 저절로 三月이란 글자가 있다면, 이는 글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소씨가 말한 것도 역시 잘 터득한 것이다. 소씨가 말하길, ‘공자께서는 음악에 있어서 그 음을 익히면 그 수를 알았고, 그 뜻을 터득하면 그 사람을 알았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문왕에 대하여, 그 엄숙하시고 깊이 생각하심을 알아보았고, 그 높이 바라보시며 뜻이 원대하심을 알아보았으며, 그 암연하시며 아득하고 훤칠하면서 크신 것을 알아보았으니, 공자께서는 순임금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3달 동안이나 고기 맛을 몰랐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夫子之學韶樂 非但有以極其聲容節奏而已 倂當與大舜無不幬載之德 當時雍熙平成之治 所謂盡善盡美之實而得之 不翅如身有其事 親歷其時也 則其誠意之深 而見於嘆息者如此 誠非聖人不足以及 是固非常情之所能測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韶樂을 배우실 적에, 단지 이로써 그 목소리와 용모와 리듬를 지극히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아울러 마땅히 순임금의 덮어주지 않거나 실어주지 아니함이 없는 덕과 더불어 함께 하였을 것이다. 당시의 온화하고 밝으며 평화롭게 이루어진 다스림이 이른바 모두 선하고 모두 아름답다는 실질이었는데, 이를 터득하였으니, 마치 제 몸에 그 일을 갖고 있으면서 직접 그때를 경험한 것처럼 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었다. 그러한즉, 그 성의가 깊으면서도 탄식에 드러난 것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진실로 성인이 아니라면, 이르기에 부족한 것이니, 이는 본래 人之常情으로는 능히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舜之後封於陳 爲之後者 得用先代之樂 自陳敬仲奔齊而韶樂有傳 當是時魯具四代之樂 然恐不無差舛 韶之來最遠而獨得其傳於今 夫子故曰 韶盡美矣 又盡善也 殆謂是歟 季札在魯觀韶 雖極稱贊 未必如在齊之善 夫子是以學之而忘味之久 후재풍씨가 말하길, “순임금의 후손들이 陳나라에 봉해졌고, 그 후손 되는 자들은 선대의 음악을 쓸 수 있었다. 진경중이 제나라로 도망친 때부터 소악이 제나라에 전해짐이 있었다. 이때를 당하여 노나라도 四代의 음악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마도 부족하거나 어그러짐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제나라는) 韶樂의 유래가 제일 오래되었고 또한 지금에 그 전해짐을 홀로 얻었으니, 그래서 공자께서도 ‘소악은 모두 아름답고 또 모두 善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아마도 이것을 말한 것이리라! 계찰이 노나라에서 소악을 살펴보고서, 비록 극도로 칭찬을 했지만, 반드시 제나라에 있는 것만큼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자께서는 이런 까닭으로 이를 배우면서 고기 맛을 오래도록 잊어버리셨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舜以上聖之德 當極治之時 作爲韶樂 群聖之樂 無以加於此者 故夫子聞其音而學之 忘味而深嘆美如此 想如親見虞舜之聖 身在雍熙之時 契之以心 而非徒聞之以耳也 又按論語 於韶凡三言之意者 聞韶而學之 最先 謂盡美盡善 次之 告顔子以韶舞 其最後歟 신안진씨가 말하길, “순임금은 上聖의 덕으로써, 지극히 잘 다스려지는 때를 당하여, 韶樂을 만들었으니, 여러 성인들의 음악에는 여기에 보탤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그 음악을 들으시고 그것을 배우다가, 고기 맛을 잊어버리고 깊이 찬탄하심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만약 虞舜임금의 성스러움을 직접 보시고, 자신이 온화하고 밝은 그 시절에 계셨더라면, 마음으로 그것에 합치되고자 하셨을 것이지, 헛되이 귀로 듣기만 할 따름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살펴보건대, 논어에서 韶樂에 대하여 모두 3번 말한 것 중에서, 韶樂을 듣고서 배웠다는 것이 제일 처음이고, 모두 아름답고 모두 선하다고 말한 것이 그다음이며, 안자에게 韶舞로써 알려준 것이 아마도 제일 마지막이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