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모이는 즐거운 곳, 광화문!
220822. 송혜영
2016년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 우리 가족은 부산에 살았다. 마침 둘째 아이의 임신과 출산으로 광화문광장은 참 가고 싶지만 먼 곳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서울로 이사를 왔고, 우리는 이 일대를 애정하여 즐겨 찾는다. 비오는 날도 운치있는 경복궁과 그 앞에 양쪽으로 서 있는 세종문화회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종종 오는 곳이다. 문화회관의 어린이를 위한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공연 등은 그 수준이 높고 유익하고 재미있다. 박물관의 4층 체험실은 아이들이 신나게 즐기면서도 근현대 우리나라의 생활사와 역사를 알아가도록 해 놓았다. 청와대나 인왕산 숲길 등 경복궁 근처에도 갈 데가 많아 종종 광화문을 지나치는데 사실 꽤 오랜동안 광장을 공원으로 조성한다며 공사를 해서 정해진 길로 복잡하게 다니기도 했고 공연장을 멀리 한 바퀴 돌아 입구를 찾는 불편이 있었다. 그래서 광장이 바뀌면 어떤 모습일까 기대와 기다림도 컸던 것 같다.
지난 주 화요일,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경성)을 알아보는 수업이 있어 서울역사박물관에 가는 길이었다. 이제 두어 정거장만 더 가면 목적지 도착인데 서은이가 광화문광장을 꼭 들르고 싶다고 졸라댄다. 8월 6일 개장소식 이후로 가고 싶다고 여러 번 뜻을 비췄던 터라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아이들을 즉각적으로 사로잡은 것은 이순신동상 앞의 바닥분수! 이미 온 몸이 젖은채 물길 사이를 왔다 갔다 놀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여벌옷이 없는 두 아이는 손으로 튕기는 물방울을 잡더니 까르르! 발 한 쪽 스윽 내밀어보곤 깔깔! 당연히 곧 치마 한자락이 꽤 젖었는데 시원하다며 행복한 표정을 연신 지어댄다. 시간이 얼마 없어 잠시 놀았지만 그 에너지로 발걸음 가벼웁게 박물관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열흘 뒤, 이번에는 공공예약사이트에서 시민해설사의 해설을 신청하여 다시 방문하였다.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고, 곳곳의 분수들을 보고 즐기며 아이들과 함께 시민들이 어울리기 좋은 공간이라 여긴 것은 정말이지 한 단면만 본 단순하고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조선시대에 광화문을 바라보고 왼편에는 병조 형조 공조, 오른편에 이조 호조가 자리잡은 정치의 중심지, 육조거리였다는 것과 좀 더 내려오면 민가와 시장이 형성되어 사람들로 북적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광화문 광장에서 그 유구를 발견하고 보존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지금의 감사원 역할을 하는 사헌부가 있던 터는 그대로 살려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해 두었는데 건물 가운데 우물터도 보인다. 보통 우물은 집 밖에 있곤 했는데 여기 우물은 왜 안에 두었을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야 할 거리들을 많이 발견했다고 한다.
나는 오랜 세월 속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그 현장을 거니는 것을 좋아한다. 십년도 넘게 전에 전주의 경기전을 거닐며 이 곳은 시간이 멈췄거나 느리게 간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름드리 고목들 사이로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가족과 몇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거닐었을 흰 옷 입은 선조들이 겹쳐보이며 그 사이에 수없이 있었을 전쟁과 평화와 인고와 성실함의 세월들에 차분해지고 엄숙해지는 것이다. 동일한 기분을 광화문 광장에서 느낀다. 광화문 뒷편 경복궁에는 왕이 나랏일을 고민하고 그 앞 육조거리에서는 신하들이 정사를 논한다. 시전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요새 살기가 어떻느니 나랏님이 어떻느니 사는 이야기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들과 지금의 나는, 서 있는 공간은 같지만 살아내는 시간은 다르다. 그 간극을 연결해주듯 광장따라 길게 흐르는 '역사물길' 바닥에는 1392년 조선시대 건국부터 2022년 광화문광장 조성까지 우리나라의 주요 역사가 새겨져있다.
스타벅스 앞 한글분수는 그 물줄기로 창제 당시 한글 자모 28개 모양을 만들어내어 위에서 보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며, 광장 곳곳에 숨어있는 한글 찾기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 해치마당 경사진 벽은 단순한 벽이 아니라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고 월 1회 시네마 음악회도 예정되어 있는 영상 창이라는 것, 꽃을 피우는 시기가 계절마다 다른 산수유, 산수국, 산벚나무 등의 나무들을 모아 '사계 정원'이라 이름짓고 우영우와 함께 유명해진 팽나무 등 키 큰 나무를 포함해 5천주의 크고 작은 나무를 심어 10년 뒤면 더욱 초록이 무성할 것이라는 것, 팔도석 구간은 전국에서 가져온 돌을 깔았으며 광장숲과 문화쉼터에서는 지금 펼쳐지는 마술쇼처럼 버스킹 공연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과 경복궁 안쪽 일부까지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에 올라가면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 등 이건 정말 친절한 해설을 듣고 심봉사가 눈이 뜨이듯 알게 된 것이다.
8천개의 바닥 타일은 네모난 모양인데 그 안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어떤 것은 오른쪽이 더 튀어나와 있고 어떤 것은 좀 더 몽글한 것이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 이는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민주주의를 상징한다고 한다. 광장의 조경 설계자인 김영민씨는 각각의 동그라미를 네모 안에 넣음으로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였다.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존중하고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어우름을 뜻한다는 것이다. 광장을 이용하는 사람만 해도 같은 곳에 모였지만 하나가 되긴 어렵듯이. 그렇게 서로 어울리는 것이 지금의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광복절에 광장에서 두 개의 단체가 각자 목소리를 높여대서 광장 저 멀리서부터 왕왕거렸었다. 몇 단어들이 귀에 들어오긴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고 귀가 아플 정도로 소음이어서 평화스럽게 개장한 신상 공원을 일부러 멀리 돌아 걸었더랬다. 싸우는 듯 외쳐대는 것이 배려는 없고 자기 목소리만 살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저 분들은 모이기에 좋은 날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대절하고 시간과 경비를 들여 옳다고 믿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인 거다.
77개의 물줄기로 길게 늘어선 터널 분수는, 초기에는 그 사이를 거닐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최고의 포토존이었지만 지금은 지그재그든 일직선이든 나무에 깃든 새처럼 포로롱 다니는 아이들로 인해 잠시라도 섰다간 물벼락 맞기 딱 좋다. 물에 비친 주변과 나를 들여다 본다는 '샘물 탁자' 는 그 위에 올라가 참방거리는 아이들로 물결이 일어 또 하나의 물놀이장이 되어버렸다. 더위를 잊은 아이들의 생기와 북적거림은 광장에 활기를 주고 아빠엄마에겐 하루를 또 떼울 수 있는 고마운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여름밤의 정취를 조용히 즐기고 싶은 시민들에겐 감내해야할 불편일 수 있다.
질서와 규칙을 지키며 배려하는 속에 집회 문화도 성숙해야 하고, 샘물 탁자 같은 경우 '올라가지 마세요' 같은 안내 팻말로 그 의미를 상기하고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가꾸어가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시간이 걸리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며 이해하려는 가운데 천천히 가꾸어가는 그것이 바닥돌로 공유하고픈 민주주의 정신이리라 생각해 본다.
광화문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을 때가 있었다. 철거해서 일제시대의 역사를 청산할지, 한국근현대의 상징으로 보존할지 말이 많았지만 결국 1995년 조선총독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은 해체되었고 경복궁 복원사업이 이어졌다. 현재 조성된 광장의 포토스팟 중 하나인 소나무 정원에서 광화문이 보이도록 사진을 찍으며 지금 저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면 어땠을지 잠시 떠올려보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늦여름 어슴프레 내리는 어둠 속에 빛을 발하며 위엄있게 섰는 저 광화문이 없다면 지금 이 광장도 없을테다. 임금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광화문'. 지금 임금이 없는 시대라도 더불어 살아가는 한 명 한 명 우리가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밝힌다는 점에서 여전히 광화문의 이름은 의미가 좋다. 내일 새롭게 펼쳐질 일주일을 맞아 직장으로, 학교로, 아이들 돌보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여기 모든 시민들이 흐르는 역사 속에 함께 살아간다는 연대의식, 그래서 있는 자리에서의 무게감도 함께 짊어질 수 있고 함께 쉼도 누릴 수 있다는 것. 이게 우리에게 위로이자 힘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