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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우지 국사보지(國士遇之 國士報之)
국사로 대우하면 국사로 갚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헌신함을 말한다.
國 : 나라 국(囗/8)
士 : 선비 사(士/0)
遇 : 만날 우(辶/9)
之 : 갈 지(丿/3)
國 : 나라 국(囗/8)
士 : 선비 사(士/0)
報 : 갚을 보(土/9)
之 : 갈 지(丿/3)
출전 :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이 말의 원문은 “나를 국사로 대우하였으니까 나도 국사로서 갚는다(國士遇我 我故國士報之)”로서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오는 예양(豫讓)의 말이다.
옛날 진(晉)나라에 예양(豫讓)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육경(六卿)의 한 사람인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를 섬겼으나 두 사람이 모두 그를 알아주지 않자 지백(智伯)을 섬기면서 중용되었다. 지백은 그를 스승처럼 친구처럼 극진히 대우하였다.
그후 지백이 조양자(趙襄子)를 쳤다가 크게 패하여 그 후손까지 모두 죽임을 당했다. 당시 조양자는 지백의 머리뼈에 옻칠을 하여 술 따르는 그릇으로 썼다고 하며, 혹자는 요강으로 썼다고도 하였다.
산중으로 피해 숨어 살던 예양은 이 소식을 듣자 분개하여 기어코 그의 원수를 갚기로 결심하고 궁중에 접근하기 위해 죄수로 가장한 뒤 궁중 변소의 벽을 바르는 일을 하며 절치부심(切齒腐心) 기회를 노렸다.
어느날 조양자가 변소에 갔다가 느낌이 이상하여 심문하여 보니 예양의 품에서 비수가 나왔다. 주위에서 그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조양자는 “그는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조심해서 그를 피하면 된다. 지백이 죽고 그의 후손도 없는데도 그 신하로서 원수를 갚으려 하니 이 사람이야말로 천하의 어진 사람이다”라며 풀어 주었다.
예양은 이번에는 몸에 옻칠을 한 채 나환자로 가장하고 숯을 먹고 반 벙어리가 되어 시장에서 걸식을 하면서 틈을 보았다. 예양은 조양자가 지나는 길목의 다리 밑에 숨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양자의 말이 무엇엔가 놀라자 조양자가 “또 예양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사람을 시켜 잡아 심문하니 과연 예양이었다. 조양자는 “그대가 전에 섬기던 사람들을 모두 지백이 멸했을 때는 오히려 지백의 신하가 되었는데, 왜 지백을 위해 나에게만 유독 집요하게 원수를 갚으려 하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양은 예의 당당하게“그 전에 내가 섬겼던 이들은 나를 여느 사람과 똑같이 대했기 때문에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그들에게 받은 만큼 보답했지만,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접했기 때문에 나도 국사로서 그에게 보답하고자 한다(國士遇我 我故國士報之)”고 말했다.
조양자가 울면서 이제 당신을 더는 풀어줄 수 없다고 하자, 예양은 자신이 사형을 달게 받겠지만, 조양자의 의복이라도 주면 이것을 베어 원수를 갚는 뜻을 이루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양자가 이를 의롭게 여겨 사람을 시켜 자신의 의복을 가져다주자 예양은 이를 세 번 뛰어오르며 칼로 내리치고는 마침내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숯을 먹어 가면서 까지 몸을 혹사한 예양도 그렇거니와, 집요하게 자신을 죽이려던 암살자의 의리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 조양자 역시 보통 인물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편의 고전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국사우지 국사보지(國士遇之 國士報之)이다. 대우를 받은 만큼 대우를 한다는 뜻이다. 국사로 나를 대우하니 그렇기 때문에 국사로서 갚는다는 말이 변한 것이다.
예양(豫讓)
예양(豫讓)은 춘추 시대 말기 진(晉)나라 시대 협객으로 출생과 사망 년도가 알려져 있지 않다. 전국시대는 한편 자객들의 시대였다. 공개적인 해결책이 없을 때 은밀한 방법을 찾는 것은 유사 이래 의지를 가진 인간들의 공통점이지만, 전국시대에 오면 그런 행동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일부 자객들은 독립적인 열할을 부여받았고, 일부는 역사책에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 전국 말진 진(秦)의 정치를 전담하던 승상 이사는 6국의 정치가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던졌다. “금이나 칼이냐?” 매수공작이 통하지 않으면 자객을 보내 그들을 찔렀다.
사마천(司馬遷)은 그저 명령을 받고 수행하는 불나방 같은 살수들은 빼고 나름대로 주종관계의 의를 실천한 이들을 열전에 실었다. 춘추전국시대 때 활약한 다섯 명의 자객들을 다룬 이 편은 사기(史記)에서도 명편으로 꼽힌다. 여기에는 아득한 역사 속에서 찰나처럼 나타났다 사라져간 칼잡이들의 희로애락이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히 펼쳐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정작 읽어야할 것은 그 속에 담긴 사마천의 심정일 것이다. 그는 명분과 도리를 지키기 위해 혼탁한 세상에 맞서 제 한 몸을 던졌던 협객들의 용기와 의기를 높이 평가하면서 냉혹한 현실 속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사마천은 이들을 한갓 범법자로 치부하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라 여겼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예양(豫讓)이다.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보면 예양(豫讓)이란 이름이 나온다. 그는 전국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형가와 더불어 협객의 시초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에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긴 일이 있는데 이 두 사람은 예양을 그다지 예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예양은 그들을 떠나 지백(智伯)이란 자를 섬기게 되었다.
지백은 진(晉)나라 육경의 한 사람으로 세력이 강성하고 야심만만한 사람이었는데 마침 찾아온 예양을 알아보고 국사(國士)로 예우하였다. 당시 진(晉)나라는 많은 씨족들이 세력을 다투고 있었는데 결국 위(魏), 조(趙), 한(韓) 3개 성씨가 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진의 지백이 이들을 공격하게 되는데 도리어 이들 3개 연합국에 패해 나라는 분해되고 지백은 멸족하게 된다.
조나라 양자(趙襄子)는 이미 죽은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술잔으로 쓰며 과거에 당한 분풀이를 한다. 지백이 패한 후 그의 가신들은 대게 새 주인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예양만은 새 주인을 찾지 않고 산중으로 달아나 탄식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
이후 성과 이름을 바꾸어 죄를 받은 사람으로 꾸민 다음 조양자의 궁전으로 들어가 변소의 벽에 흙을 바르는 일을 하며, 몸에 비수를 지니고 찌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두달 후 조양자가 변소에 들어가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변소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게 한다. 호위병들은 잠복하고 있던 자객 하나를 끌고 나와 심문해보니 바로 예양이었는데, 품에 칼을 품고 있었다.
예양은 서슬 퍼런 조양자 앞에서 ‘죽은 주군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 했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주위에 있던 자들이 그의 목을 베려고 하자 조양자는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며 풀어주었다. 그러나 예양은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는다. 얼마 지나서 그는 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삼켜 문둥이에 벙어리가 되어 남이 자기 모습을 못 알아보게 하고는 도회에서 구걸을 하며 다녔다.
자기 아내도 못 알아볼 지경이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그를 알아보고 울면서 말했다. "자네만한 재능으로 예물을 바치고 조양자의 부하가 된다면 조양자는 반드시 자네를 가까이하고 총애할 것이네. 그런 다음에 그에게 접근하여 목을 베면 오히려 손쉽지 않겠나? 어째서 자네는 몸을 그 모양으로 망가뜨리고 원수를 갚을 작정을 한단 말인가? 그래가지고는 성공하기가 힘들 것 같네.”
예양은 답했다. “이미 예물을 바쳐 남을 섬기는 처지가 된 후에 그를 죽이려 한다면 두 마음을 품고 주군을 섬기는 일일세.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지.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어 주인을 섬기는 자를 경계하려는 것이네.”
이듬해 기원전 450년 2월 초사월, 봄 사냥철에 예양은 조양자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다리 밑에 숨어 있었다. 조양자의 말이 알아채고 놀라 날뛰니 조양자가 사람을 시켜 다리 밑에 숨은 자를 데려오니 예양이었다. 조양자는 예양의 진심을 알았으되 더 이상 용서해주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양은 자신이 지난번 암살하려 했을 때 용서해준 일에 감사하면서 조양자의 옷이라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게 해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한다.
조양자는 그의 의로운 기상에 감탄하고, 사람을 시켜 자기 옷을 예양에게 가져다 주도록 했다. 예양은 칼을 뽑아 세 번을 뛰어올라 그 옷을 베어버리고는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죽던 날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고문관지(古文觀止) 12권 명문(明文)
06. 예양론(豫讓論) / 방효유(方孝孺)
예양(豫讓)에 대하여 논함
이 편은 고문관지(古文觀止) 제12권 명문(明文)의 여섯 번째 편으로 방효유(方孝孺)의 예양론(豫讓論)이다. 예양론(豫讓論)은 명나라의 문학가인 방효유가 춘추시대 말기 진(晉)나라의 자객이었던 예양(豫讓)에 대해 평론한 글이다.
예양은 진(晉)나라 지백(智伯)의 가신으로 지백이 조양자에게 살해당하자 복수를 하기 위해 조양자를 죽이려다가 발각되어 자살하였다. 방효유는 예양이 의인(義人)이지만 지백이 죽기 전에 적극적으로 간언하여 지백의 우둔함을 막았어야 했다고 주장하였다. 예양(豫讓)에 대한 일은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기록되어 있다.
예양(豫讓)은 춘추(春秋) 말기 진(晉)나라 지씨(智氏)의 가신이다. 처음에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기다가 뒤에 지백(智伯)을 주인으로 섬겼는데, 지백이 그를 매우 존경하고 총애하였다. 조양자(趙襄子)가 지백(智伯)을 살해하자, 예양은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죽는다”하고 보복을 맹세한 뒤 죄인으로 가장하여 비수를 품고 조양자의 변소에 잠입하여 그를 죽이려다가 발각되었다. 조양자는 그를 의인(義人)이라 생각하고 석방하였다.
그 뒤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여 나환자로 변장하고, 벙어리·거지의 행세를 하며 다시 기회를 기다렸다가 조양자가 외출할 때 다리 밑에 숨었다가 그를 찔러 죽이려고 하였으나, 말이 놀라는 바람에 다시 붙들렸다. 조양자가 이번에는 그를 용서하지 않자, 예양은 조양자에게 간청하여 그의 옷을 받아 칼로 3번 친 뒤, “내가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말하고, 칼에 엎어져 자결했다.
방효유(方孝孺)는 명나라 초기의 학자. 字는 희직(希直) 희고(希古)이며 호는 손지(遜志)이다. 송렴(宋濂)의 문하에 들어가 뛰어난 재주로 이름을 떨쳤다.
06. 예양론(豫讓論) / 방효유(方孝孺)
士君子立身事主, 既名知己, 則當竭盡智謀, 忠告善道, 銷患於未形, 保治於未然, 俾身全而主安.
선비군자가 군주를 섬겨 공명을 세움에 군주가 자기를 알아주면, 응당 지모를 다하고 충심으로 간하여 선한 길로 인도해서 환란이 생기기 전에 없애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잘 다스려, 자신을 안전하게 하고 군주도 평안하게 해야 한다.
生為名臣, 死為上鬼, 垂光百世, 照耀簡策, 斯為美也.
이렇게 해야 살아서는 명망 있는 신하가 되고 죽어서는 덕이 높은 귀신이 되어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전하고 역사서에 빛나게 되니 이것이 훌륭한 선비인 것이다.
苟遇知己, 不能扶危於未亂之先, 而乃捐軀殞命於既敗之後; 釣名沽譽, 眩世炫俗, 由君子觀之, 皆所不取也.
만약 군주가 자기를 알아주는데도, 난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위험에서 구해내지 못하고 나라가 망한 후에 목숨을 바쳐 온갖 수단으로 명예를 추구하고 세상을 기만하고 미혹시키니 이는 군자가 볼 때 취할 만한 것이 못된다.
葢嘗因而論之, 豫讓臣事智伯, 及趙襄子殺智伯, 讓為之報讎.
나는 일찍이 예양(豫讓)에 대하여 평론하였으며, 예양이 지백(智伯)의 신하가 되어 섬겼는데, 조양자(趙襄子)가 지백을 죽이고 난 후에야 예양이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
聲名烈烈, 雖愚夫愚婦, 莫不知其為忠臣義士也.
예양의 명성이 자자하여, 비록 일반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가 충신이며, 의사(義士)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嗚呼! 讓之死固忠矣, 惜乎處死之道, 有未忠者存焉. 何也?
아! 예양이 죽은 것은 정말 충성스러운 것이었으며 애석하게도 그가 죽음을 택한 방법에 충성스럽다고 할 수 없는 표현이 있었다. 왜 그런가?
觀其漆身吞炭, 謂其友曰: 凡吾所為者極難, 將以愧天下後世之為人臣而懷二心者也.
그가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이처럼 하고 숯을 삼켜 목소리를 쉬게 만들었을 때 그의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장차 후세에 신하된 자가 두 마음을 품는 것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謂非忠可乎?
이것이 충성스럽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及觀斬衣三躍, 襄子責以不死於中行氏, 而獨死於智伯.
예양이 조양자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자 세 번 뛰어올라 밟은 후에 칼로 베는 것을 본 조양자가 어찌 중항씨(中行氏)를 위해 죽지 않고 지백(智伯) 만을 위해 죽느냐고 꾸짖었다.
讓應曰: 中行氏以衆人待我, 我故以衆人報之; 智伯以國士待我, 我故以國士報之.
예양이 이에 응하여 대답했다. “중항씨는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접해 주었기에 나도 보통 사람으로 보답했고,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접해 주었기에 나도 국사로서 보답하는 것이다.”
即此而論, 讓有餘憾矣.
이에 대하여 논하면 예양에게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
段規之事韓康, 任章之事魏獻, 未聞以國士待之也.
단규(段珪)는 한강자(韓康子)를 섬기고, 임장(任章)은 위헌자(魏獻子)를 섬겼지만 한강자나 위헌자가 그들을 국사(國士)로 대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而規也章也, 力勸其主從智伯之請, 與之地以驕其志, 而速其亡也.
그러나 단규와 임장은 온 힘을 다해 그들의 주인에게 지백(智伯)의 요구대로 땅을 주어 지백의 마음을 교만하게 해서 빨리 망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郄疵之事智伯, 亦未嘗以國士待之也; 而疵能察韓魏之情, 以諫智伯.
치자(郗疵)가 지백을 섬길 때도 또한 지백이 그를 국사로 대접한 적이 없었지만, 치자는 한(韓)과 위(魏) 두 나라 실정을 살펴 지백에게 간했다.
雖不用其言, 以至滅亡, 而疵之智謀忠告, 已無愧於心也.
비록 지백이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멸망에 이르렀으나, 치자의 지모와 충고는 마음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이었다.
讓既自謂智伯待以國士矣.
예양이 이미 지백이 자신을 국사(國士)과 같은 대우를 해주었다고 했다.
國士, 濟國之事也.
국사로 말하자면 나라를 구제하는 사람이여야 한다.
當伯請地無厭之日, 縱欲荒棄之時, 為讓者, 正宜陳力就列, 諄諄然而告之曰: 諸侯大夫, 各受分地, 無相侵奪, 古之制也. 今無故而取地於人, 人不與, 而吾之忿心必生; 與之, 則吾之驕心以起. 忿必爭, 爭必敗; 驕必傲, 傲必亡.
지백이 다른 제후의 땅을 요구하고도 만족하지 못할 때나, 멋대로 음란하고 난폭한 짓을 할 때에 신하된 예양으로서는 당연히 그의 온 힘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면서 간곡하게 지백에게 다음과 같이 간해야 했다. “제후와 대부들이 각각 받은 땅이 있어 서로 침입하여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니, 이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규칙입니다. 지금 아무런 까닭도 없이 다른 제후와 대부의 땅을 달라고 하시는데, 그들이 땅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분노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고, 땅을 주면 우리 마음에 교만함이 생겨나게 됩니다. 분노하면 반드시 싸우게 되며, 싸우게 되면 반드시 패하게 되며, 교만하게 되면 반드시 방종하게 되고 방종하게 되면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諄切懇至, 諫不從, 再諫之, 再諫不從, 三諫之.
간곡히 충고했는데도 간언을 듣지 않으면 또 간하고, 또 간하였는데 듣지 않으면 세 번 간했어야 했다.
三諫不從, 移其伏劍之死, 死於是日.
세 번 간했는데도 듣지 않으면 칼에 엎어져 죽는 일을 그때 행했어야 했다.
伯雖頑冥不靈, 感其至誠, 庶幾復悟.
그러면 비록 지백이 우둔하고 무지한 사람이었을지라도 그 지성에 감동되어 아마도 다시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和韓魏釋趙圍, 保全智宗, 守其祭祀.
그리하여 한(韓)과 위(魏)의 두 나라와 화해하고 조(趙)나라의 포위를 풀어 지백의 종묘를 보존하고 제사를 지켰을 것이다.
若然, 則讓雖死猶生也, 豈不勝於斬衣而死平?
만약 이렇게 되었더라면 예양이 비록 죽더라도 오히려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니, 어찌 칼로 옷을 베고 죽는 것 보다 낫지 않았겠는가?
讓於此時, 曾無一語開悟主心, 視伯之危亡, 猶越人視秦人之肥瘠也.
그런데 예양은 이때 자신의 주인을 깨닫도록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백이 위험에 처해 망하게 된 것을 보기만 한 것은 마치 월(越)나라 사람이 진(秦)나라 사람의 마르고 살찐 것을 보듯 했다.
袖手旁觀, 坐待成敗, 國士之報, 曾若是乎?
수수방관하고 앉아 성패를 기다리기만 했으니, 국사로서의 보답이 결국 이것이었는가?
智伯既死, 而乃不勝血氣之悻悻, 甘自附於刺客之流.
지백이 죽은 뒤에야 분노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기꺼이 스스로 자객의 무리에 끼어들었다.
何足道哉? 何足道哉?
어찌 칭찬할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찌 칭찬할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雖然, 以國士而論, 豫讓固不足以當矣.
비록 그러하나 국사의 자격으로 논해 볼 때, 예양은 본래 국사가 되기에 부족한 것은 당연하였다.
彼朝為讎敵, 暮為君臣, 覥然而自得者, 又讓之罪人也. 噫!
그러나 아침에 원수였다가 저녁에 군신이 되는 후안무치하고 의기양양해 하는 자들 또한 예양에게는 죄인인 것이다. 슬프다!
▶️ 國(나라 국)은 ❶회의문자로 国(국)은 간자(簡字), 囗(국), 囶(국), 圀(국)은 고자(古字), 囲(국), 围(국)은 동자(同字)이다. 國(국)은 백성들(口)과 땅(一)을 지키기 위해 국경(口)을 에워싸고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데서 나라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國자는 ‘나라’나 ‘국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國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或(혹 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벽을 경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或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누가 쳐들어올까 걱정한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후에 ‘혹시’나 ‘만일’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囗자를 더한 國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國자는 성벽이 두 개나 그려진 형태가 되었다. 참고로 國자는 약자로는 国(나라 국)자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國(국)은 (1)어떤 명사(名詞) 다음에 쓰이어 국가(國家), 나라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나라, 국가(國家) ②서울, 도읍(都邑) ③고향(故鄕) ④고장, 지방(地方) ⑤세상(世上), 세계(世界) ⑥나라를 세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 백성을 국민(國民), 나라의 법적인 호칭을 국가(國家), 나라의 정사를 국정(國政), 나라의 안을 국내(國內), 나라의 군대를 국군(國軍), 나라의 이익을 국익(國益), 나라에서 나라의 보배로 지정한 물체를 국보(國寶), 국민 전체가 쓰는 그 나라의 고유한 말을 국어(國語), 한 나라의 전체를 전국(全國), 자기 나라 밖의 딴 나라를 외국(外國),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국가의 수를 세는 단위를 개국(個國), 조상 적부터 살던 나라를 조국(祖國), 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을 순국(殉國),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애국(愛國),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는 국사무쌍(國士無雙),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을 이르는 말을 국치민욕(國恥民辱), 나라의 급료를 받는 신하를 국록지신(國祿之臣), 나라의 풍속을 순수하고 온화하게 힘을 이르는 말을 국풍순화(國風醇化),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흩어졌으나 오직 산과 강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등에 쓰인다.
▶️ 士(선비 사)는 ❶회의문자로 하나(一)를 배우면 열(十)을 깨우치는 사람이라는 데서 선비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士자는 '선비'나 '관리', '사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士자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고대 무기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士자는 BC 2,000년경인 오제(五帝)시대에는 감옥을 지키는 형관을 뜻했고, 금문에서는 형관들이 지니고 다니던 큰 도끼를 말했다. 그러니 士자는 본래 휴대가 간편한 고대 무기를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학문을 닦는 사람을 '선비'라고 하지만 고대에는 무관(武官)을 뜻했던 것이다. 士자에 아직도 '관리'나 '군사', '사내'와 같은 뜻이 남아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士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선비'나 '관리', '남자'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士(사)는 (1)장기에 있어서 궁을 지키기 위하여 궁밭에 붙이는 두 개의 말 (2)중국 주(周)나라 때 사민(四民)의 위이며 대부(大夫)의 밑에 처해 있던 신분 등의 뜻으로 ①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②관리(官吏), 벼슬아치 ③사내, 남자(男子) ④군사(軍士), 병사(兵士) ⑤일, 직무(職務) ⑥칭호(稱號)나 직업의 이름에 붙이는 말 ⑦군인(軍人)의 계급 ⑧벼슬의 이름 ⑨벼슬하다 ⑩일삼다, 종사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선비 유(儒), 선비 언(彦)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장수 장(將), 백성 민(民)이다. 용례로는 병사를 지휘하는 무관을 사관(士官), 선비의 아내 또는 남자와 여자를 사녀(士女), 선비의 힘 또는 병사의 힘을 사력(士力), 장교가 아닌 모든 졸병을 사병(士兵), 병사의 대오를 사오(士伍), 학식이 있되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를 사인(士人), 군사를 사졸(士卒), 군사의 기세 또는 선비의 기개를 사기(士氣), 선비로서 응당 지켜야 할 도의를 사도(士道), 선비들 사이의 논의를 사론(士論), 선비와 서민 또는 양반 계급의 사람을 사민(士民), 일반 백성을 사서(士庶), 선비의 풍습을 사습(士習), 문벌이 좋은 집안 또는 그 자손을 사족(士族), 학문을 연구하고 덕을 닦는 선비의 무리를 사류(士類), 군사와 말을 사마(士馬), 선비의 기풍을 사풍(士風), 양반을 일반 평민에 대하여 일컫는 말을 사대부(士大夫), 사회적 지위가 있으며 덕행이 높고 학문에 통달한 사람을 사군자(士君子), 교육이나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을 인사(人士), 하사관 아래의 군인을 병사(兵士), 절의가 있는 선비를 지사(志士),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성심껏 장렬하게 싸운 사람을 열사(烈士), 의리와 지조를 굳게 지키는 사람을 의사(義士), 기개와 골격이 굳센 사람을 장사(壯士), 세상을 피하여 조용히 살고 있는 선비를 은사(隱士), 학덕이 있고 행실이 선비처럼 어진 여자를 여사(女士), 의욕이나 자신감이 충만하여 굽힐 줄 모르는 씩씩한 기세를 떨쳐 일으킴을 일컫는 말을 사기진작(士氣振作),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음을 일컫는 말을 사기충천(士氣衝天),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는 뜻으로 매우 뛰어난 인재를 이르는 말을 국사무쌍(國士無雙), 수양이 깊어 말이 없는 사람 또는 말주변이 없어서 의사 표시를 잘못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무언거사(無言居士), 백금을 받은 용사라는 뜻으로 매우 큰 공을 세운 용사를 이르는 말을 백금지사(百金之士), 산림에 묻혀 사는 군자를 두고 이르는 말을 산림지사(山林之士), 세속밖에 홀로 우뚝한 훌륭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특립지사(特立之士), 궤변을 농하여 국가를 위태로운 지경에 몰아넣는 인물을 일컫는 말을 경위지사(傾危之士), 보잘것없는 선비 또는 식견이 얕은 완고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일개지사(一介之士), 나라의 앞일을 걱정하는 기개가 높고 포부가 큰 사람을 일컫는 말을 우국지사(憂國之士), 세상일을 근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우세지사(憂世之士), 좋은 일에 뜻을 가진 선비를 일컫는 말을 유지인사(有志人士), 무슨 일이든지 한마디씩 참견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사람 또는 말참견을 썩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일언거사(一言居士), 조그마한 덕행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일절지사(一節之士),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을 편하게 할 큰 뜻을 품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지사인인(志士仁人), 바위 굴속의 선비라는 뜻으로 속세를 떠나 깊은 산 속에 숨어사는 선비를 이르는 말을 암혈지사(巖穴之士), 천명을 받아 천자가 될 사람을 보필하여 대업을 성취시키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좌명지사(佐命之士), 항우와 같이 힘이 센 사람이라는 뜻으로 힘이 몹시 세거나 의지가 굳은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항우장사(項羽壯士) 등에 쓰인다.
▶️ 遇(만날 우)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가끔이란 뜻을 나타내는 글자 禺(옹, 우)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遇자는 ‘만나다’나 ‘조우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遇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禺(원숭이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禺자는 꼬리가 긴 원숭이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遇자는 ‘우연히 만나다’라는 뜻을 위해 만든 글자다. 그래서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린 辶자가 의미요소로 쓰였다. 遇자는 ‘만나다’라는 뜻 외에도 ‘예우하다’나 ‘대접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에 대한 예를 갖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遇(우)는 ①(우연히)만나다 ②조우(遭遇)하다 ③상봉(相逢)하다 ④대접(待接)하다, 예우(禮遇)하다 ⑤(뜻을)얻다 ⑥합치다, (뜻이)맞다 ⑦짝하다, 맞서다 ⑧성교(性交)하다 ⑨막다, 저지(沮止)하다 ⑩우연히, 뜻하지 않게 ⑪때마침 ⑫예우(禮遇), 대우(待遇) ⑬알현(謁見) ⑭때, 기회(機會), 시기 ⑮성(姓)의 하나, 그리고 ⓐ땅의 이름(옹)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만날 봉(逢), 만날 조(遭), 만날 해(邂)이다. 용례로는 유능함을 인정하여 잘 대우하고 알아 줌을 우지(遇知), 해를 만남 또는 살해를 당함을 우해(遇害), 예의를 갖추어 대함을 대우(待遇), 예로써 정중히 맞음을 예우(禮遇), 놓여 있는 조건이나 놓이게 되는 형편 또는 사정을 경우(境遇),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하여 불행함을 불우(不遇), 근로자에게 어떤 수준의 지위나 봉급 등을 주어 대접하는 일을 처우(處遇), 만남 또는 우연히 서로 만남을 조우(遭遇), 손을 맞아 대접함을 접우(接遇), 손님으로 대우함을 객우(客遇), 한데 모여 만남을 회우(會遇), 기이하게 만남이나 뜻하지 않게 만남을 기우(奇遇), 우연히 서로 만남을 봉우(逢遇), 서로 마음이 맞아서 알뜰히 알아줌을 계우(契遇),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귀를 얻어 누림을 궤우(詭遇), 어리석고 우둔함을 우우(迂遇), 특별한 귀여움으로 받는 대우를 총우(寵遇), 잔학한 대우를 학우(虐遇), 천 년에 한 번 만난다는 뜻으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를 이르는 말을 천재일우(千載一遇), 눈먼 거북이 물에 뜬 나무를 만났다는 뜻으로 어려운 지경에 뜻밖의 행운을 만나 어려움을 면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맹귀우목(盲龜遇木), 미개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대우한다는 말을 토매인우(土昧人遇), 정당한 이유없이 남보다 나쁜 대우를 함 또는 그 차별을 두고 하는 대우를 일컫는 말을 차별대우(差別待遇), 대우를 잘 받아서 후의에 감격하는 느낌이라는 말을 지우지감(知遇之感)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報(갚을 보/알릴 보)는 ❶회의문자로 죄를 짓고(幸) 다스림을 받은(문자의 오른쪽 부분인 글자 복 사람을 복종시키는 모양, 다스리는 모양) 사람이라는 데서 갚다를 뜻한다. 죄받다, 대답하다, 갚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報자는 ‘갚다’나 ‘판가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報자는 執(잡을 집)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報자의 금문을 보면 수갑을 찬 죄수를 잡으려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글자의 형태로만 본다면 같은 시기에 그려진 執(잡을 집)자와 비슷하다. 다만 報자에는 又(또 우)자가 있으므로 수갑을 차고 있는 죄수를 붙잡아두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죄수를 붙잡아둔 모습이 왜 ‘갚다’라는 뜻을 가지게 된 것일까? 報자에서 말하는 ‘갚다’라는 것은 사실 벌을 받아 죗값을 치르라는 뜻이다. 그래서 報(보)는 ①갚다 ②알리다 ③대답(對答)하다 ④여쭈다 ⑤치붙다 ⑥재판하다 ⑦판가름하다 ⑧공초(供招)받다(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다) ⑨간통(姦通)하다, 간음(姦淫)하다 ⑩나아가다, 급(急)히 가다 ⑪갚음 ⑫알림, 통지 ⑬신문, 신문지 ⑭처형,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갚을 상(償), 갚을 수(酬)이다. 용례로는 일반에게 알리는 새로운 소식을 보도(報道), 알리어 바치거나 베풀어 알림을 보고(報告), 근로의 대가로 주는 금전이나 물품을 보수(報酬), 입은 혜택이나 은혜를 갚음을 보답(報答), 원수를 갚음을 보복(報復), 은혜를 갚음을 보은(報恩), 공훈에 보답함을 보훈(報勳), 남에게 진 빚이나 받은 것을 갚음을 보상(報償), 착한 일은 착한 대로 악한 일은 악한 대로 선악이 대갚음됨을 보응(報應), 사정이나 정황의 보고를 정보(情報), 널리 알리는 것 또는 그 소식이나 보도를 홍보(弘報), 통지하여 보고함을 통보(通報), 상대방의 정보나 형편을 몰래 탐지하여 보고함을 첩보(諜報), 신문 기사에서 일컫는 그 신문 자체를 본보(本報), 앞으로의 일을 예상해서 미리 알림을 예보(豫報), 반가운 소식을 낭보(朗報), 경계하라고 미리 알림을 경보(警報), 정보를 제공함을 제보(提報), 빨리 알리는 것 또는 그 보도를 속보(速報), 확실하게 알림 또는 그러한 보도나 소식을 확보(確報), 여러 가지 일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발행한 책자를 화보(畫報),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기사를 적어 벽이나 게시판에 붙이는 종이를 벽보(壁報), 그릇된 보도 또는 그릇 보도함을 오보(誤報),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천지와 선조의 은혜에 보답함을 보본반시(報本反始), 남을 국사로 대우하면 자기도 또한 국사로서 대접을 받는다는 뜻으로 지기知己의 은혜에 감동함을 이르는 말을 보이국사(報以國士), 조상의 음덕을 추모함을 보본추원(報本追遠), 자신의 삶의 은인인 군사부君師父에 대해서 죽음으로써 보답함을 보생이사(報生以死), 원한 있는 자에게 은덕으로써 갚는다는 뜻으로 앙갚음하지 않는다는 말을 보원이덕(報怨以德), 서로 대갚음을 하는 자연의 이치를 보복지리(報復之理), 봉숭아에 대한 보답으로 오얏을 보낸다는 뜻으로 내가 은덕을 베풀면 남도 이를 본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투도보리(投挑報李), 자식이 부모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반포보은(反哺報恩),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는 뜻으로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의 인연에 따라서 뒷날 길흉 화복의 갚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과응보(因果應報),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을 결초보은(結草報恩)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