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24.2.21) 저녁부터 오늘 새벽 사이에 전국적으로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전국 많은 곳에서 대설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어제 퇴길길 그리고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들 고생이 꽤 많았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제설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들과 환경미화원 여러분들도 고생이 많았겠지요.
눈은 도시보다는 농촌지역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그렇지도 않지요. 요즘 농촌도 각가정에 차량이 존재하니 전원일수록 교통이 편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도시에서는 제설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지는데 반해 전원에서는 늦게 제설이 이뤄지게 마련이고 보통 대부분은 각 가정에서 직접 눈을 치워야 하니 상당히 수고스러울 것입니다. 강원도 영동지역에서는 겨울이 되면 눈때문에 걱정이 많다지요. 눈이 거의 오지않는 부산에서 강원도 영동지역의 눈이 부러워서 잠시 이주를 했답니다. 하지만 일년 살아보고 다시 돌아갔다네요. 눈이 해도해도 너무 많이 와서 지쳐서 그냥 컴백했다고 합니다.하지만 겨울철에는 눈이 와야 식물들에게도 좋습니다.이제 겨울도 막바지에 놓여 있지만 겨울작물과 그리고 나무들에게는 눈이 소중한 존재입니다. 추위를 막아주는 이불역할을 하거던요. 아주 포근한 솜이불 말입니다. 그리고 눈은 아주 천천히 녹으면서 식물들의 목을 축여주는 청량제 역할도 합니다.
뭐니 뭐니해도 눈이 많이 온 이런 날에는 예전에 많이 읽었던 백설부(白雪賦)가 제격입니다. 백설부는 1939년에 발표된 김진섭작가의 수필입니다. 일제 강점기 그리고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나려고 세계가 혼돈상태였던 그때 김진섭작가는 정말 감동적인 글을 발표해 시름과 우려속에 나날을 보내던 한국백성들에게 위로를 전달했습니다. 이글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백설부는 "말하기 조차 어리석은 일이나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라는 서두로 시작합니다.
김진섭작가는 눈에게 묻습니다.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했기에 이곳에 내려 오는 것이며,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곳에 와서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의를 통제할 수 있으랴". "이와 같은 화려한 장식을 우리는 백설이 아니면 어디서 또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주위에는 또한 하나의 신성한 정밀이 진좌하여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열도록 명령하는 것이니,이때 모든 사람은 긴장한 마음을 가지고 백설의 계시에 깊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진섭 작가는 오늘같은 날에는 우리 모두 백설의 계시에 귀를 기울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나는 김진섭 작가의 백설부 가운데 특히 이 글귀를 좋아합니다. "이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슬픈 일이요, 얼마나 단명하며 또 얼마나 없어지기 쉬운가! 그것은 말하자면 기적같이 와서는 행복같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그렇지요. 미인단명이라고 아름다운 것은 그다지 수명이 길지 않습니다. 낮에 기온이 올라가면 사라져버릴 숙명을 지낸 존재가 바로 눈이기도 하지요. 정말 기적처럼 갑자기 찾아왔다가 오래 간직하고 싶은데 결코 그렇지 못한 행복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 바로 인생 아니겠습니까.
이번 눈은 아마도 올 겨울의 마지막 큰 눈처럼 보입니다. 이제 봄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그래도 눈은 잠시나마 온갖 지저분한 상황을 덮어주는 거대한 보자기이자 청량제같은 존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이 한국땅을 짓누르는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사와 정부의 격돌과 이합집산을 보이며 탈당 러시를 이루는 각 정당들의 불편함, 한국축구의 난맥상들을 시원하게 해결할 그런 방도는 없는 것인지 눈에게 묻고 싶습니다. 눈치우느라 애쓰시는 여러 분들께 힘내라는 성원의 말도 함께 보냅니다.
2024년 2월 2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