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 종로일가
새를 팔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새를 사는 사람이 없었다
새는 떠나고 나는 남았다
물가에 발을 담그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다
종치는 소리가 들리면
새가 종에 부딪혔나 보다
하는 생각이 지워진다
할아버지,
하고 아이가 부르는데 날 부르는가 해서 돌아보았
다.
종로이가/황인찬
길을 건너는 사람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
을 지나친다 두 사람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인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운명으로 묶여 있음을 그들이 죽
기까지 모른다
새는 난다 자신이 죽어 가는 줄을 다른 새들이 알
도록 하는 방식으로 난다 그 아래를 지나가는 것은
어느 새의 죽음을 알아차리는 새들이다
아파트 복도에서는 품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십 대 후반의 베트남 인이고 몇 달 째 급료를 받
지 못해 자신이 사장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공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쓰레기봉투를
내놓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켠 적 없는 가스레
인지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무언가 끓는 소리를 듣는 것은 방의 개다 방은 말
이 없는 여자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이 말을 하
지 못한다고 믿었으나 그녀는 종교적 이유로 침
묵하고 있을 뿐이다.
길을 건넌 사람이 죽은 것은 개 한 마리가 너무 이
상한 방식으로 걷고 있어서였다 그는 그러한 광경
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이후로 그러한 광경을 보지 못
했다
어떤 사람이 나무에 기대 앉아 그의 인생에서 가
장 중요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그것을 누군가에
게 말하거나 행하지 않은 채 가슴속에 묻기로 했다
오늘은 종로에 나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 작은
아이가 종로에 도달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남영역을 지나가는 국철의 불이 꺼진다
종로삼가/황인찬
오늘은 이미 첫 끼를 먹었다 밀린 빨래를 하고 밖
으로 나온 것이 오랜만의 일이다 병원을 가려고 밖
으로 나왔다 걷다가 노인에게 두들겨 맞는 고교생
을 보았다 걷다가 물웅덩이가 도로 위에 끝없이 고
여 있는 것을 보았다 걷다가 내게 인사하는 미래의
자식도 보았다 못 본 새 많이 컸구나 그런 생각을 하
며 병원엘 갔다 앞으론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의사에게는 처방을 받고 약사에겐 약을 받
아 나왔다 약은 식후에 먹는 것이다 오늘은 이미 첫
끼를 먹었다 집에 돌아가니 벙어리 노인이 나를 맞
아 주었다 빨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종로사가/황인찬
앞으로는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다정하게 말했지 하지만 나는 네 마음을 안다 걷다가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우리가 걷고 지쳐 버리면, 지쳐서 주저앉으면, 주저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이면,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보았다고 믿어 버리고, 믿는 김에 신앙을 갖게 되고,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깊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겠지 우리는 이 거리를 끝없이 헤매게 될 거야 저것을 빛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다 저것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고 그러면 나는 그것을 빛이라 부르고 사람이라 믿으며 그것들을 하염없이 부르고 이 거리에 오직 두 사람만 있다는 것, 영원한 행인인 두 사람이 오래된 거리를 걷는다는 것, 오래된 소설 같고 흔한 영화 같은, 우리는 그러한 낡은 것에 마음을 기대며, 우리 자신에게 위안을 얻으며,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지 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느낌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추위와 빈곤에 맞서는 숭고한 순례자가 되어 사랑을 할 거야 아무도 모르는 사랑이야 그것이 너무나 환상적이고 놀라워서, 위대하고 장엄하여서 우리는 우리가 이걸 정말 원했다고 믿겠지 그리고는 신적인 예감과 황홀함을 느끼며 그것을 견디며 끝없이 끝도 없이 이 거리를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그러다 우리가 잠시 지쳐 주저앉을 때,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거기에 담긴 것이 정말 무엇이었는지 알아 버리겠지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추운 겨울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종로오가/황인찬
탁자를 쾅쾅쾅 내리치면 모두가 이쪽을 본다 거
기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건 중학생도 모르지
만 중학생은 탁자를 내리치는 데 중독되었다
중학생은 이 거리에서 태어나고 이 거리에서 자
랐다 중학생은 거리의 생활을 안다 거리의 생활은
아름다운 것들이 급속도로 피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생활이다
어느 날 중학생은 거리에서 아름다운 중학생을
보았다
두 사람이 보고 나온 영화는 반복되는 하루를 그
린 영화였다 중학생은 중학생에게 묻는다 좋았어?
잘 모르겠어 나는 이 영화를 제일 좋아해 중학생이
엄숙하게 말했다
교실에 빈자리가 없었는데도 중학생들 사이에서
는 중학생이 거리를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제는 밤이다 얼른 돌아가지 않으면 혼날 시간
인데 소방차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달려간다 중학
생은 중학생의 손을 잡고 싶다
중학생은 무엇인가가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소리
를 들었다 그런 소리는 거리 어디에나 있었다 거리
어디에나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두드리고 또 두드리
고 있었다
중학생은 중학생과 거리를 걸었다 그것은 아름다
운 일이다 아름다운 중학생이 아름다운 중학생과
아름다운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중학생도 있었다
중학생은 교실에 앉아 있다 중학생은 속으로 이
건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생각과 너무
달랐다 의외로 세상은 선량하구나 중학생은 노트
에 적어 보았다
모두가 중학생을 보고 있다 중학생은 탁자를 다
시 세게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