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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억대 연봉의 동기들에 밀린 초라한 은퇴선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다
https://m.sports.naver.com/basketball/article/020/0003655632
“제가 1999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됐을 때 제 이름이 정확하게 나온 신문 기사가 거의 없었어요. ‘손찬환’ 아니면 ‘손창완’….”
프로농구 소노 지휘봉을 잡은 손창환 감독 얘기다. 스스로 생각해도 농구로 크게 될 운명이 아니었다.선수 시절 조명을 받지도 못했고 은퇴도 빨랐다. 학연, 지연에 의지하거나 도와 달라고 빌붙어 볼 커리어도 없다. 2003년 은퇴하고 성실성과 노력으로 농구계에서 버텼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농구계를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전력 분석의 세계를 알았다. 마음 잡고 ‘존버(끈질기게 버티다는 뜻의 신조어)’했다. 몸 담은 팀이 공중분해 돼 막노동도 했다. 그리고 감독이 됐다.
그는 여전히 말을 아끼는 데 익숙하다.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 있어야 편하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어떻게 감독으로까지 인정받을 수 있었는지. 앞으로 어떤 농구를 보일지 말이다. 그가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조금씩 알기 시작하면서 걱정보다는 기대가 많다.
손 감독은 건국대 95학번이다. 쌍둥이 형제 조상현 LG감독과 조동현 전 현대모비스 감독, 황성인 전 단국대 코치가 연세대 95학번이다. 강혁 가스공사 감독과 김성철 전 DB코치는 경희대 95학번 에이스였다. ‘육각 슈터’ 조우현도 중앙대 95학번. 고려대에는 주희정 현 고려대 감독이 95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9년 KBL(한국농구연맹)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로 안양 SBS(KGC 전신)에 지명됐다. 프로에서는 4시즌만 뛰고 유니폼을 벗었다. 마지막 2002~2003시즌에는 단 1경기에 출전했다. 마음 한 켠 깊게 박힌 농구에 대한 결핍을 이겨 내지 못했다.
“은퇴하기 전에 휴가도 전부 반납하고 훈련을 엄청 했어요. 그런데 혼자 열심히 뛰고 해 봐야 의미가 없더라고요. 팀 시스템을 모르고 무작정 몸을 내던지니 한계가 온 거죠. 헛짓했어요. 죽도록 농구 해 봤자 잘하는 선배들한테는 안 되는구나.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계약 기간은 1년 남았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농구 말고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
“건설업을 하던 큰 자형이 유학 가서 영어 공부하면서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물로 건물 부수는 기술을 배워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국내에서 그 분야 전문가가 필요할 테니 미국에서 제대로 배워 오라고요. 6개월까지는 생활비를 대 준다고 했어요. ‘그래, 한번 해 보자.’ 유학 준비를 하는데 팀의 이상범, 지금 하나은행 감독님이 말리는 거예요. ‘너, 워드프로세서, 엑셀 할 줄이나 아냐’고 대뜸 물으셨던 기억이 나요. 다른 일을 하려면 그것부터 먼저 배우라고 하셨어요.”
틀린 말도 아니었다. 농구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준비도 없이 타국에 가기도 민망했다. 그래서 눌러 앉았다. 구단 홍보팀 직원이 됐다. 기자들을 만나고 영업도 했다.
“딱 내 체질이었어요.”
손 감독이 말하는 인생 변곡점이 이 시점이다. 농구 코트 밖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돈이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지 보게 됐다. 어려웠던 농구도 코트 밖에서는 보였다. 뛰고 또 뛰어도 몰랐던 농구. 그런데 공부하면 알 것 같았다. 자신을 괴롭혔던 농구 결핍 증세는 결국 노력이 부족해서였다. 공부가 모자랐다고 자책했다.
“뭐든 닥치는 대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어요. 홍보팀 일이 재밌으니 제가 영업을 잘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대기업 본부장님하고 미팅을 하는데, 그분이 묻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어요.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죄송합니다. 제가 공부해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요.’ 그분께서 웃으시더니 그 다음 주에 보자고 하시더군요. 그날로 그 대기업이 하는 사업에 대한 갖가지 정보와 이슈들을 달달 외웠죠. 잊어버릴 만하면 또 보고, 또 외우고 했어요. 그때 느꼈죠. ‘실력 없이 사람을 속이면 안 되겠구나.’ 농구할 때 농구도 모르면서 ‘손창환’을 속였던 거예요.”
2005년, 그에게 전력 분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농구 40분 경기를, 24초 공격 제한 시간을, 예를 들면 소고기를 안창살 등심 갈비 등으로 해체하는 것처럼 찢어 놔요. 그 묘미가 쏠쏠합니다. 비슷한 부분끼리 항목을 나눠 모아 놓고 분석해서 감독님께 전달합니다. 답을 찾아 놓고 해석도 합니다. 그런데 감독님에게 드리지는 않아요. 그건 월권이라고 봐요. 그래도 스스로는 해 봐요. 그렇게 쌓인 세월이 20년입니다.”
그의 전력 분석에서 중요한 건 비우고 새로 채워 넣는 거다. 써 본 건 과감하게 정리한다.
“제가 만들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자료는 공개해 버려요. 저한테는 유통기한이 지난 자료 거든요. 밖에 풀기 직전에 ‘업그레이드 버전’들을 만들어요. 남들보다 1~2년 빨리 트렌드를 찾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어서죠. 그게 제 유일한 자부심이에요.”
2장 : 마음 속 깊이 간직하던 지도자의 꿈, 12년 만에 코치로 인정받다
https://m.sports.naver.com/basketball/article/065/0000242741
Q. 지도자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가지게 됐나요?
대부분의 농구선수 중 다수가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을 거예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죠. 코치가 되기 위해 전력분석 하면서 차곡차곡 준비를 하진 않았어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전력분석팀장이었던 손창환 코치는 2015-2016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KGC 코치로 승격되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준비된 코치였던 그는 손규완 코치와 함께 김승기 감독을 훌륭하게 보좌했고, 2016-2017시즌 통합우승과 2020-2021시즌 플레이오프 전승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Q. 2015년 전창진 감독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갑작스럽게 KGC의 코치가 됐습니다.
전창진 감독님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김승기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치르게 됐어요. 그때 팀에서 저에게 코치 제의가 왔죠. 사실 당시에 작은 대학교에 가서 전력분석학과를 열어보려고 조용히 준비 중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안 하겠다고 거절했죠. 근데 사무국장님이 끈질기게 설득하셨고, 결국 코치가 되기로 받아들였어요.
Q.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 같은데요?
저는 강압적인 분위기보다 대화로 선수의 길을 만들어보려 했는데 그게 정답은 아니더라고요. 강압적인 게 필요한 선수들도 분명 있어요. 그런 선수들한테는 나쁜 사람이 되더라고 그렇게 해야 되는 거죠. 게을러지거나 하는 척만 하고 거짓말하는 선수들도 있더라고요. 저는 모든 선수를 다 믿었는데 배신감을 느껴본 적도 있고요. 제 신념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오류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Q. 2016-2017. 2020-2021시즌 코치로 두 번의 우승을 했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솔직히 당시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냥 멍했던 것 같아요. 그 경기 상황은 생각이 나는데 끝나고 기억이 없어요. 사진 찍었는지, 술을 먹었는지도요. 아마 경기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끝나고 넋을 놔버린 것 같아요. 흥분되고, 너무 좋다는 기분은 며칠 지나서 느꼈죠.
Q. 올 시즌을 앞두고 캐롯으로 팀을 옮겼습니다. 안양을 떠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상황이었나요?
계약 기간이 끝났어요. 그리고 김승기 감독님께서 강력하게 저를 원하셨죠. 저 또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러나 연어가 귀소본능이 있듯이 언젠가 안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가서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알이라고 낳고 죽고 싶은 마음이에요. 안양에 제가 아끼는 동생들이 있고, 약속한 것도 있거든요. 안양은 저에게 제2의 고향과 같아요. 사람이 고향에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Q. 손창환 코치만의 지도자 철학은 무엇인가요?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기술은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체력과 기술은 선수 본인이 해야 돼요. 의지가 없으면 감독, 코치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선수의 의지를 끌어내도록 만들어주는 게 지도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Q. 선수로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해도 코치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은데요?
운이 좋았죠. 김승기 감독님 밑에서 묻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미쳐야 된다는 거예요. 놀 때 미쳐서 놀고, 일할 때는 미쳐서 일하는 거죠. 뭘 할 거면 제대로 미쳐서 해야지 그러지 않을 거면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3장 : 표류하는 창단 3년 차의 신생팀, 위기 상황에서 무명의 지도자에게 지휘봉을 맡기다
https://m.sports.naver.com/basketball/article/028/0002747790
60페이지에 달하는 시즌 마무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그는 그 중요한 전화를 받았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굉장히 복잡했어요. 팀의 미래가 달려있으니 제 욕심만으로 오케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느냐를 깊이 고민했죠.”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가능할 것 같다. 해보자”였다. “구상을 현실화하겠다”며 휴가도 반납하고 일에 몰두 중인 고양 소노 새 수장 손창환(49) 감독을 최근 경기도 고양시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만났다.
구단 역시 그가 “전력분석 및 국제업무에 특화된 점”을 높이 샀다. 손 감독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팀에서 데이터를 밤새 분석할 것이다. 데이터는 바탕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각 선수의 체력, 심리 등 여러 상황에 맞게 잘 융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데이터에만 의존하면 선수에게 선입견이 생길 수 있어서 때론 데이터를 보지 않고 선수 자체에 집중하려고도 한다”고 했다.
김승기·김태술에 이은 소노의 세 번째 수장이지만, 사실상 ‘소노의 진짜 시작’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소노는 사연이 많은 팀이다. 1996년 창단한 고양 오리온스가 2022년 데이원스포츠에 인수·양도되어 고양 캐롯으로 재탄생했지만 모기업의 부실 운영으로 리그 이사회에서 제명당하고 해체됐다. 그때 갈 곳 잃은 선수들과 코치진들을 대명소노그룹이 인수해 2023년 7월 창단한 팀이 지금의 소노다. 캐롯과 상관없는 새 팀으로 출발했지만 다친 마음이 아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임금 체불 등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모두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당시 코치였던 손 감독은 며칠간 일용직을 뛰며 선수들에게 고기를 사주기도 했다. 잘못은 다른 사람들이 했는데 고통은 코트에서 열심히 뛴 이들이 떠안았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손 감독은 “뿔뿔이 흩어질 수 있었던, 이산가족이 될 뻔한 우리를 한집에서 살 수 있게 해준 소노 구단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그가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 중 하나도 “내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이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이제 자산이 됐다. 오랫동안 선수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면서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 가능할 정도로 끈끈해졌다. “이 선수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 선수는 어떻게 둬야 공격이 극대화되는지” 등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다 안다’는 식의 자만과 방심을 경계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들을 잘 안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어요. 너무 잘 알면 제 머릿속에 그 선수를 가둘 수가 있죠. 그래서 선수들하고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려고 합니다.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선수 시절 “잘”은 못해도 “성실하게는 했다”는 그는 지금도 노트를 갖고 다니며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메모한다. 시즌 구상에 잠이 안 오면 새벽에라도 경기장에 나온다. 그의 노트와 심장과 머리를 빼곡하게 채운 생각들이 다음 시즌 코트에서 살아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소노는 많이 돌아왔어요. 저 역시 돌아가는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지만, 제가 밤잠 안 자고 성실하게 움직이면 최대한 바른길로는 갈 수 있다고 믿어요.”
https://m.sports.naver.com/basketball/article/020/0003655632
그런 차원에서 선수들이 뛰는 1분을 시즌 전에도, 시즌에 들어가서도 유심히 보겠다는 손 감독이다.
“전력 분석하면서 1분이 소중했어요. 늘 60초가 모자란다는 기분으로 살았어요. 1분을 절실하게 뛰는 선수들이 있어요. 제가 만들어 놓은 집에는 1분을 절실하게 뛰는 선수들이 입주하는 게 맞아요. 완전히 지는 경기에서도 1분에 모든 걸 쏟아붓는 선수가 팀에 필요해요. 40분 내내 서커스나 묘기를 보여 줄 건 아니니까요.”
4장 : 꿈꿔왔던 22년이 걸린 감독의 자리, 그의 일상은 10년 전, 20년 전과 변한 게 없다
https://m.sports.naver.com/basketball/article/025/0003509454
올 시즌 8~10위권 전력으로 평가받던 소노의 반란은 손창환 감독 없이는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이 반란에는 숫자 하나가 더 붙는다. 1997년 KBL 출범 이후 총 62명의 감독·감독대행이 있었다. 고려대·연세대·중앙대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건국대는 한 명도 없었다. 손창환은 KBL 첫 건국대 출신 사령탑이다.
전희철(서울 SK)·이상민(KCC)·문경은(수원 KT). KBL 코트를 주름잡던 스타들이 감독으로 즐비하다. 손창환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름값’들과 당당히 맞붙고 있다.
“사령탑 제의를 받고 일주일을 고민했다.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수락했다”고 했지만 그의 감독 첫 시즌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3연패로 시작해 4라운드 초반까지 11승 20패. 눈앞이 캄캄할 법도 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7연승을 거둔 직후에도 “다음 상대 경기를 5개는 봐야 한다”고 했다. 모처럼 주어진 휴식일에도 “집에서 밀린 빨래를 하다 출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고양 아레나 지박령(어떤 장소를 떠나지 못하는 영혼)’이라는 별명이 괜한 게 아니다.
소노는 최근 14경기에서 12승 2패를 달리고 있다. 목표를 묻자 짧게 답했다. “처음엔 6강이 목표라고 했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선수들과 함께 더 큰 무언가를 이룰 수 있지 않겠나.”
구단 프런트와 전력분석팀장, 코치, 국제업무담당 등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마침내 모든 농구인들의 꿈인 남자프로농구팀의 감독을 맡게 된 손창환 감독이
마침내 그간의 노력이 빛을 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안양에서 오랜시간 계셨던 분이고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했지만
감독의 기회가 찾아오리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는데
그가 쌓아온 오랜 내공은 갑자기 찾아온 감독의 기회를 잘 살리게 만들어준 거 같습니다.
76년생 동기들에 비해 떨어지는 선수 네임벨류이지만 감독 손창환으로서 자리잡고 있는 그는 앞으로 더욱 발전가능성이 기대되는데요.
KBL 출범 6주년에 은퇴하고 KBL 출범 19주년에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KBL 출범 29주년 시즌이 되어서야 감독의 기회를 잡은 손창환 감독이
어렵게 잡은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신생팀 소노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길 기대해봅니다.
손창환(76년생)
03-04시즌 안양SBS 유소년 농구교실 강사
04-05시즌 안양SBS 홍보마케팅 담당 프런트
05-06시즌 안양KT&G 전력분석원
06-07시즌 안양KT&G 전력분석원
07-08시즌 안양KT&G 전력분석원
08-09시즌 안양KT&G 전력분석원
09-10시즌 안양KT&G 전력분석원
10-11시즌 안양한국인삼공사 전력분석원
11-12시즌 안양KGC 전력분석팀장
12-13시즌 안양KGC 전력분석팀장
13-14시즌 안양KGC 전력분석팀장
14-15시즌 안양KGC 전력분석팀장
15-16시즌 안양KGC 코치
16-17시즌 안양KGC 코치
17-18시즌 안양KGC 코치
18-19시즌 안양KGC 코치
19-20시즌 안양KGC 코치
20-21시즌 안양KGC 코치
21-22시즌 안양KGC 코치
22-23시즌 고양캐롯 코치
23-24시즌 고양소노 코치
24-25시즌(11월까지) 고양소노 코치
24-25시즌(12월부터) 고양소노 국제업무 담당
25-26시즌 고양소노 감독
25-26시즌 KBL 감독 데뷔
첫댓글 고등학교 때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좀 무서운 이미지 였는데 ㅎㅎ 확실히 나이가 드니 인상이 많이 순해졌네요. 잘 모르는 사이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동기가 프로팀 감독이 되서 활약 하는거 보니 뭔가 뿌듯합니다! 소노에서 승승장구 하길 바라며 다음엔 고향팀 감독으로도 오길 바랍니다! 화이팅!!
대구,안양,고양 손창환 감독의 인생의 고향은 세군데로군요 ㅎㅎ
오랫동안 준비된 '감독'이었군요.
6강을 넘어 파이널까지 가기를 바랍니다.
스포엘스트라 감독 같으신 분이였군요. 공부해야하는 트렌드에 잘 맞는 좋은 감독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전임의 역사가 있어 계약기간 다 채우실것 같으니 실험도 해보셨으면 좋겠구요.
조상현도 공부를 많이 한다던데 코칭도 프로다워야 성공한다는걸 보여줘주면 좋겠어요.정신력 드립이나, 누가 해줘야한다는 인터뷰는 질렸습니다.
와 초짜 감독이 어떻게 이런 성적을 낼 수 있나 의아했는데 내공이 어마어마한 분이었군요.
김성철 동기였군요
나이대가 더 있는줄 알았는데
젊네요?
젊었을때 근육이 ㄷㄷ
저거야말로 자기힘으로 한계단 한계단 올라온 입지전적인 스토리네요..
김성철은 원피스를 입혀놨나요ㅎㅎ
손창환은 선수 때 애매한 사이즈에다가 솔직히 할줄 아는게 별로 없어서 금방 사라지겠거니 생각했는데...그 이후의 삶을 노력으로 헤쳐왔네요. 대단합니다.
이제 안양 돌아올 생각은 안하시겠죠 아마 ㅋㅋ
양희종이라는 거대한 벽이(?) 잇어서 힘들겟네요;;; ㅋㅋ
나이대도 비슷하고 농구판 이정효가 되길 기대하며^^
젊었을때 반팔티 입은모습 또 다른느낌이네요 이번에 한번 일 내셨으면!!! 가자 소노
이런 성공사례가 많아져야 함
잘해주십쇼 응원합니다
최근 몇년간 KBL감독들을 보면 확실히 '오랜시간 내공을 쌓고 준비된 감독'들이 성적을 잘내고있습니다. 좋은 현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