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을 낭비한 죄
오래전에 본 영화 '빠삐용'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빠삐용이 꿈에서 자신을 기소한 검사와 대면하는 부분이다.
억울한 살인 누명 쓰고 절해고도에 갇힌 빠삐용은
어떻게든 탈출해서 누명을 벗으려 하지만
탈출은 실패하고 독방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악몽을 꾼다.
먼 사막의 지평선에 검사가 나타나 빠삐용을 바라본다.
빠삐용은 외친다.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검사는 말한다.
"맞다. 너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는 살인보다 더한 죄를 저질렀다."
빠삐용은 억울하다는 듯 대꾸한다.
"그게 뭡니까?"
검사가 단호하게 말한다.
"인생을 낭비한 죄다."
빠삐용은 고개를 떨군다.
"나는 유죄다."
젊었을 때 이 장면을 보고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말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빠삐용의 자유를 향한 초인적인 집념보다 몇 배 더 큰 울림이었다.
빠삐용의 기소 죄명이 나에게도 예외일 수 없었다.
검사의 정확한 대사는 이렇다.
"Yours is the most terrible crime a human being can commit.
I accuse you... of a wasted life."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범죄,
인생을 낭비한 죄로 너를 기소한다."
'인생을 낭비한 죄'를 물을 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나 역시 심판정에 섰을 때 빠삐용처럼 기소될 게 뻔한데
인생을 충실히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본다.
흔히 인생은 시간의 벨트 위에서 흘러간다고 한다.
시간은 빠른가? 느린가?
나에게 시간은 얼마나 허여 되어 있는가?
그러나 현대물리학에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한다.
(카를로 로벨리)
단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만 증가한다고 하는데
자연은 점점 파괴되어 가고
인간은 점점 노쇠해 갈 뿐이지 않던가.
그런 과정에 천천히 파괴되어 가는 것
급하게 파괴되어 가는 것
천천히 노쇠해 가는 것
급하게 노쇠해 가는 것, 그런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건 물리학의 이야기지만
불란서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를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가만히 있는 건 사는 게 아니요
지속을 지속해 나가는 게 생명이라는 거다.
엘랑 비탈(Elan Vital),
엘랑은 도약과 약동을 의미하고
비탈은 생명을 말하는데
궁핍에서 이런 기전이 생성되고
그럼으로써 창조적 진화를 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배고픈가?
모든 것에 만족하고 배부른가?
오늘밤엔 그것부터 생각해 봐야겠다.
그렇지 않고야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노쇠해 갈 뿐이므로.
첫댓글
생명의 도약과 약동은
궁핍으로부터...
급공감하기에
새해에는 간헐적 단식을 제대로 실천해보아야겠습니다
ㅎㅎ.
네에, 무슨 뜻인지 알만하겠습니다.ㅎ
시간의 벨트 위에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라 한다면,
가만히 있으면 벨트 위에서 넘어집니다.
지속을 거듭하며 내 발로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생명을 지속하는 중에
어떤 창조적 행위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면
날마다 새로운 날이겠지만,
인생을 낭비하는 죄라면,
무엇에서 자유로울까 걱정이 됩니다.
생각은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살려고는 하지만,
인생은 낭비도 저축도 아닌 것 같습니다
심오한 석촌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네에 그렇기도 하겠습니다.
삶에 있어서 낭비라고 분류할 것이
실제로 있을지...
저는 삶이 소풍이라 하셨던 그 시인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소풍 나온듯 즐겁게, 심각하지 않고
가볍게, 회귀 전에 마음껏 향유하는...
네에 좋은말씀이에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렇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네에 가끔은 맹하게 무료하게 지내기도 하는데
또 가끔은 이렇게 생각해보기도 하는거죠.
저도 빠삐용중에 가장 감명적인 장면이
너의 죄는 인생을 낭비한 죄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빠삐용 주제가 free as the wind 올려드립니다
https://youtu.be/65SVNeyxS1k?si=zWv0DOEGJt6-V0J9
PLAY
네에
올해도 보람 가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