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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연도 | 수상내역 | ||
1986 | 네덜란드 리그 우승 (PSV 아인트호벤) | ||
1987 | 네덜란드 리그 우승 (PSV 아인트호벤) | ||
1988 | 네덜란드 리그 우승 (PSV 아인트호벤) | ||
1988 | 네덜란드 FA Cup 우승 (PSV 아인트호벤) | ||
1988 |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PSV 아인트호벤) | ||
1996 | 유럽선수권대회 8강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 ||
1998 | 도요타컵 우승 (레알 마드리드) | ||
1998 | 프랑스 월드컵 4강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 ||
2002 | 한일 월드컵 4강 (한국 국가대표팀) | ||
2002 |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선정 한일월드컵 최고의 감독 | ||
2002 | 명예국민증(제1호 대한민국 명예국민), 명예시민증(서울시) | ||
2002 | 체육훈장 청룡장 | ||
2005 |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PSV 아인트호벤) |
세계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그의 커리어는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훌륭하다.
클럽이면 클럽, 대표팀이면 대표팀. 그가 맡은 팀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결과가 있었다.
2002 한일 월드컵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모험을 좋아하고 선수 관리면 관리, 전술이면 전술, 그리고 용병술까지. 모든게 완벽한 감독이다.
히딩크는 2000년 11월에 한국 대표팀에 선임됐고, 2002년 한국에게 월드컵 4강을 안겨주며 떠났다.
고작 1년 7개월만의 이룬 쾌거였다.
코엘류 (Humberto M. J. Coelho)
수상내역 |
수상연도 | 수상내역 | ||
1971 | 포르투갈축구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상 | ||
1978 | 포르투갈축구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상 | ||
2002 | 포르투갈 근대축구를 빛낸 선수 10인에 선정 |
포르투갈의 베켄바우어라고 불렸었고,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을 4강에 안착해놓은 감독이다.
포르투갈 사커를 한국 대표팀에게 도입하려 해 국민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금 축구팬들이 열광하는 이관우 등의 플레이메이커를 좋아하는 감독이었다.
그러나 축구협회의 말도 안되는 지원과 끈기 부족으로 인하여 결국 대표팀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 능력은 크게 인정 받은 감독이었지만, 2002 한일 월드컵 4강의 주역이었던 수비라인을 변화하지 않았고 원톱 시스템으로 갔던 것이 문제였다.
훌륭한 실력이 있으나, 우리나라 축구와는 맞지 않았던 전술과 축구협회의 無 지원으로 물러난 비운의 감독.
조 본프레레 (Johannes Franciscus Bonfrere)
수상내역 |
수상연도 | 수상내역 | ||
1990 | 아프리카컵 준우승 | ||
1992 | 아프리카컵 3위 | ||
1994 | 아프리카컵 우승 | ||
1996 |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우승 | ||
1996 | 걸프컵 준우승 | ||
1998 | UAE 리그 우승 | ||
2000 | 아프리카컵 준우승 | ||
2000 | 시드니 올림픽 8강 | ||
2003 | 이집트 리그 준우승 |
사실 본프레레는 3류 감독은 아니었지만, 여태껏 선임되었던 감독들에 비해 커리어가 초라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프리카와 이집트 등을 떠돌아다니며 우승한 경력은 있으나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전혀 세계적인 감독이 아니었다.
1990~1994년에는 베스터호프 감독의 수석코치가 아닌 피지컬 트레이너였고, 그의 담당은 선수들의 체력 훈련과 부상 선수들의 재활 훈련이 주 임무였다.
그의 유일한 좋은 전적.
그 전적 이라는것도 카누, 아모카치, 바바야로, 웨스트, 아가호와, 올리세, 아무니케, 바방기다 등 전임감독이 발굴하고 리빌딩 한팀을 올림픽 본선 2번째 경기서 부터 이끌면서 어부지리로 커리어를 쌓았다.
2000 시드니 8강(친선경기로 허정무사단에 2번연속 5-1패)
2000 시드니 8강도 그다지 내세울 기록은 아니었으며, 매번 맡았던 클럽이나 대표팀에서 성적 부진과 선수들과의 불화로 쫓기듯 나온 감독이다.
딕 아드보카트 (Dick Advocaat)
수상내역 |
수상연도 | 수상내역 | ||
1997 | 네덜란드리그 우승 (PSV 아인트호벤) | ||
1999 | 스코틀랜드리그 우승 (레인저스 FC) | ||
1999 | FA컵 우승 (레인저스 FC) | ||
2000 | 스코틀랜드리그 우승 (레인저스 FC) | ||
2000 | FA컵 우승 (레인저스 FC) |
에인트호벤을 이끌고 우승한 경력도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미 영웅으로 통하는 네덜란드의 명장이다.
94 미국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월드컵 8강, 유로 2004에서는 네덜란드를 4강에 올려놓은 감독이다.
그러나 수비적인 전술과 이른바 뻥축구 전술로 인해 유로 2004 시절에도 욕을 많이 들었던 감독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드보카트는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06 독일 월드컵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한 팀 중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비운의 대표팀 감독이 되고 말았다.
월드컵 원정 첫승과 프랑스와의 기적적인 무승부, 월드컵 이전에 국민들에게 보여줬던 화끈했던 축구를 보여줬던 아드보카트.
그러나 그는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럿 루머에 휩싸였고, 월드컵 이후 제니트로 몸을 옮겨 이호와 김동진을 영입하여 현재 리그 1~2위를 달리고 있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핌 베어벡 (Pim Verbeek)
히딩크, 아드보카트와 함께 한국 대표팀 수석 코치를 했던 그는 아드보카트 이후로 국가대표 감독에 선임되었다.
차분한 인상과 그만의 축구 전술을 가진 감독. 히딩크와 아드보카트와 함께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오랜 수석 코치로 일하면서 한국 선수들을 잘 알고 있고 장 단점을 잘 아는 등 아시안컵을 앞두고는 가장 적절한 감독이었다.
그러나 조 예선에서의 미드필더의 센터벡 기용과 약체 팀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경기 기록을 기록했지만, 그는 미래를 내다본 장기형 감독이었다.
그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채 2007 아시안컵에서 한국을 3위로 이끌고 자진 사퇴하였다.
일본
필립 트루시에 (Troussier Philippe)
1984.1 | ~ | 1987.6 | 프랑스 CS 알랑송 클럽 감독 | |||
1993.1 | ~ | 1993.12 | 코트디부아르 축구대표팀 감독 | |||
1995.7 | ~ | 1997.1 | 모로코 FUS 라바트 감독 | |||
1997.1 | ~ | 1997.10 | 나이지리아 축구대표팀 감독 | |||
1998.3 | ~ | 1998.7 | 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대표팀 감독 | |||
2002 | ~ |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 | ||||
2003 | ~ | 카타르 축구대표팀 감독 | ||||
2004 | ~ | 2005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감독 | |||
일본의 축구 협회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그에게 전권을 위임하겠다고 한 것으로 유명한 감독.
야심에 찬 그는 일본의 제의를 수용했다.
트루시에는 청소년 대표팀과 국가 대표팀을 동시에 맡았다.
그가 2002년 월드컵까지,
일본에서 거둔 성적은 1999년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2000년 시드니 올림픽 5위,
2000년 아시안컵 우승, 2001년 컨페더레이션컵 준우승,
2002년 월드컵 16강, 실로 놀라운 성적이었다.
올림픽을 제외하면(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3위를 차지했었다)
각 대회마다 일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다.
월드컵 개최 전의 성적은 모두 인접 라이벌 한국을 뛰어넘는 성적이었다.
한국은 청소년 대회, 올림픽, 컨페더레이션스컵 예선 라운드 탈락, 아시안컵 3위였다.
짧은 패스 게임을 좋아하며 조직력을 우선시 했던 트루시에. 선수들과 마찰이나 언론과의 마찰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론 일본의 최전성기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지쿠 (Arthur Antunes Coimbra)
수상연도 | 수상내역 | ||
1974 | 브라질 올해의 선수상 | ||
1977 | 남미 올해의선수상 | ||
1981 | 남미 올해의선수상 | ||
1982 | 브라질 올해의 선수상 | ||
1982 | 브라질리그 득점왕 | ||
1982 | 남미 올해의선수상 | ||
1983 | FIFA 올해의 선수상 |
사실 감독보다는 선수로써 더 유명했던 하얀 펠레 지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트루시에에 이어 일본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브라질 축구의 전설로
오랫동안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인연을 쌓아오며 일본축구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지내기도 했다.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후 다소 실망스런 경기력을 보여왔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승리를 챙기며 2004년 AFC 아시안컵 우승과 독일 월드컵 본선진출을 일궈내기도 했다.
월드컵 이후 일본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일본은 06 독일 월드컵에서 조 예선 탈락을 했다.
이비차 오심 (Ivica Osim)
유고슬라비아 출생의 감독으로 현 일본 대표팀 감독이다.
85년 제레즈니찰을 이끌고 UEFA 컵 준결승에 진출했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이끌고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8강을 이루기도 했다.
오심 역시 지코와 비슷하게 일본 축구와 먼저 인연이 있었던 감독이다.
오심은 그만의 고집과 전술, 그리고 할 때마다 화근이 되는 어록들은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 각종 A매치를 통해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일본 축구협회 측에서는 그를 2010 남아공 월드컵까지 맡길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코엘류라는 지도자와 축협의 무능함으로 화려했던 월드컵 4강의 기록을 뒤로 한채 점점 하락세를 보여왔다.
잦은 경질로 인하여 실력 없는 감독을 데리고 왔으며, 그 또한 마저 축협의 경질로 인하여 급하게 감독 선임 작업에 들어갔고, 결과적으론 1승 1무 1패로 17위로 안타깝게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의 문제점이라 하면, 히딩크가 보여줬던 한국 축구의 파워와 압박에 의한 축구가 아닌 코엘류라는 기술 축구 체제로 변화하다 실패를 했다는 것이고, 축협의 무능함이 어울러져 하락세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일본은 트루시에, 지코를 보면 알듯이 4년을 꿋꿋이 기다려줬다. 세계적인 명장은 아니더라도 실속이 있는 감독을 잘 선임한 일본 축협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점은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자메이카 대표팀 감독인 밀루티노비치가 우리 대표팀 감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는 약한 국가팀을 이끌고 월드컵에서 중국을 제외하곤 늘 16강에 진출해왔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중국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기도 했다. 코스타리카, 미국, 나이지리아를 월드컵에서 16강에 안착시켜준 감독이기도.
어느 감독이 선임되던 간에, 국내파는 시기상조지만. 여하튼 월드컵까지 꿋꿋이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일본은 지코 감독이 부진을 보여왔어도 계속해서 믿음을 보여줬고, 큰 대회에서는 우승을 하기도 했다.
우리도 그런 끈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첫댓글 히딩크가 울나라 감독맡은게 자랑스럽다 !~
흠냐~ 이거 쓰느라 무한도전 놓쳐버렸군요. ㅋㅋ; 여하튼 일본이 참 부럽습니다. 꾸준한 믿음을 보여줬고... 장기적으로 볼때 앞으로 일본이 항상 16강, 8강에 올라갈 수 있는 아시아 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꾸준한 믿음.....ㅠㅠ
잘봣습니다!!아드보카트감독도 커리어가생각보다좋네요
훈장받으면 연금도 줄텐데... 딩크옹도 우리나라에서 통장으로 연금받나요? ^^;
아... 쿠엘료가 자신의 축구를 한국에 제대로 정착시켰으면..
잘봤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쿠엘류 안타깝다 ㅡ,.ㅡ
우리나라는 5명바꼇는데 일본은 3명 ...민족성은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역시 히딩크는 최고의 감독이군
우리는 멕시코 축구를 벤치마킹해야함..
갠적으로 코엘류가 진짜 명장인듯,,,
저도 그렇게 생각함.. 아르헨티나전 쩔었었죠....
히딩크가 진짜 쩌네..
트루시에 했슴 좋겠다..^^ 청소년 부터..국대까정..한..몇년을..~~
솔직히 코엘류 대변할 것도 많긴 하지만 골결정력 장난아니게 떨어졌음
히딩크만으로... 코엘류도 많이 아쉽긴하지만...
코엘류 제일 아쉬운 축협의 무지원 무성의 그나저나 지쿠는 선수상만쩌럿군..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