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위해 나 자신의 삶을 희생해 본 적이 있는가? 어디까지를 [희생]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평생 이타적 자아와는 담을 쌓은채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사람들도 많다. 다른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야만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가까운 사람들까지 배신하고, 사기치고, 착취한다. 이런 세상에서 자기 희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사치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산술적인 이익과 논리적인 경제 원칙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잠재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삶은 신비로운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정서적 충격을 가하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세븐 파운즈]는, 첫 장면에서 미스터리한 설정을 해 놓고 그 답을 구하는 스릴러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내러티브 자체에는 멜로적 요소도 들어 있고, 사회 비판적 시선도 담겨 있다. 벤 토마스(윌 스미스)는 욕실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911에 전화를 한다. 자살을 했으니까 빨리 출동해 달라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대답한다. 자신이라고. 그리고 화면은 첫 장면의 충격을 넘어서서 플래시백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때까지, 왜 벤이 자살 신고 전화를 했을까 하는 첫 장면의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븐 파운즈]는, 첫 장면에 설정된대로 벤 토마스가 왜 자살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7 파운즈, 즉 3.17kg의 무게를 뜻하는 제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신은 7일동안 세계를 창조했다고 했지만, 벤 토마스의 삶은 단 7초동안 모든 것이 뒤바뀌어 버렸다. 벤은 국세청 직원이다. 그는 자신의 변호사로부터 7명의 명단이 담긴 파일을 넘겨 받는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그들을 찾아나선다. 시각장애인 에즈라 터너(우디 해럴슨)은 텔레마케터이다. 그는 카페에 가서 평소 좋아하는 여직원에게 말도 못 건네고 앉아만 있다. 벤은 에즈라에게 전화를 해서 격렬한 어조로 자극을 한다. 에즈라는 화를 내지 않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심장 수술을 해야만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에밀리 포사(로자리오 도슨)는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벤을 보고 호감을 느낀다. 벤이 자신의 인생으로 들어오면서 그녀는 삶의 강한 의욕을 갖게 된다.
벤이 만나는 7명의 사람들은 앞이 안보이거나 심장이 약하거나 각각 무엇인가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 때문에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여자에게 벤은 자신의 큰 집을 아무 조건없이 제공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우리들은 강한 의문을 갖게 된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7명의 사람들과 벤은 무슨 관계일까?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벤이 사실은 국세청 직원도 아니라는게 밝혀진다. 진짜 국세청 직원인 벤 토마스는 벤의 신분증을 갖고 다니는 가짜 벤 토마스의 남동생(마이클 이얼리)이었다.
[세븐 파운즈]는 이야기의 핵심 부분을 숨기고 전개되면서 관객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극대화시킨다. 미스터리가 뒤섞인 이야기 전개는 관객과의 머리 싸움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는게 중요하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벤 토마스가 왜 자살하려는지 이유가 밝혀지고 비로소 메시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감독은 관객의 호기심을 극대화시키며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끌고 가는데 성공하고 있다. 벤이 리스트에 있는 7명의 각각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파편적으로 흩어지던 이야기가 한 군데로 초점이 모이는 곳은 에밀리오를 만나면서부터이다. 벤과 에밀리오의 로맨스는 [세븐 파운즈] 전체의 내러티브를 지배할 정도의 강렬한 자장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이 서먹한 관계를 극복하고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순수한 열정과 따뜻한 사랑으로 충만해 있다.
벤과 에밀리오의 에피소드, 에밀리오의 집을 방문한 벤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이 격렬하게 밤을 보내는 동안 벤의 동생인 진짜 벤 스틸러가 찾아 오고, 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확대된다. 비 내리는 밤을 격렬하게 함께 보낸 두 사람. 에밀리오의 판화 찍는 낡은 인쇄기계를 벤이 고쳐주면서 그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짜 숨겨진 부분은 그때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홈리스 아버지가 오린 아들과 함께 고난을 극복하고 인생 역전에 성공한 실화를 영화로 옮긴 [행복을 찾아서]의 감독과 주연으로 만났던 아탈리아 출신 가브리엘 무차노 감독과 윌 스미스는 다시 [세븐 파운즈]에서 재회하면서 감동의 파고를 전작보다 올려놓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서 할리우드 데뷔작 [행복을 찾아서]에서 휴먼 드라마에 강렬한 개성을 입히는데 성공한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은 [세븐 파운즈]에서는 훨씬 더 성숙된 기량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조금 모자라면 의문투성이의 난해한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조금 넘치면 결말을 짐작하게 되는 맥빠진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내러티브 구조를, 단순화하지도 않고 미궁 속으로 끌고 가지도 않은 채 중용의 미덕을 찾았다는 것은 그의 커다란 장점이다.
윌 스미스는 각각 두 편이나 나온 [나쁜 녀석들][맨 인 블랙]의 장난꾸러기 재간동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내면의 깊은 고뇌를 형상화하는 연기자로 진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연기한 벤 토마스라는 캐릭터는 상처 받은 영혼이다. 순간의 실수로 7초만에 모든 것을 잃고 괴로워하던 그에게, 다시 사랑의 따뜻함이 찾아오지만 마지막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벤 토마스의 갈등과 고뇌를 윌 스미시는 섬세한 떨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로 가장 주목받을 배우는 에밀리오 역의 로자리오 도슨이다. [알렉산더]에서 인도를 정복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원정을 가던 도중 만난 동방의 여왕의 매력에 빠져 결혼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부인으로 나왔던 에밀리오 도슨은,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고 내면적 깊이와 외면적 표현을 동시에 갖춘 연기력을 선보인다.
첫댓글 아휴!!!! jeff2424님의 지적이 아니었다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벤 토마스를 벤 스틸러라고 자꾸 오기를 했네요. 제프님 고맙습니다. 쪽지가 숨어 버렸나봐요. 일찍 보내셨던데, 이제야 쪽지 검색하다가 보고 깜짝 놀라 얼른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