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영 꽝이다.
자전거하이킹에 칼바람은 쥑음이라던데 칼바람이 쌩쌩~
자전거가 도통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오늘은 김제에서 부산까지 배낭여행을 함께 했던
상희네 할머니댁에서 묵기로 했는데..
자전거를 질질끌며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니
갈등이 되기 시작한다.
광주에서 명희성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낄낄거렸다.
가다가 힘들면 트럭타고 올라가겠다고 했던..
국도를 달리는 차들중 트럭이 많다는건 여찌 알았을꼬..
결국 장성에 도착해서 관광이나 하다가 하루 쉬기로 결정했다.
장성은 홍길동이 태어난 고장이란다.
이정표마다 홍길동의 고장 "장성"이라 쓰여있다.
마침 장성읍에선 5일장이 열려 시장이 북세통을 이룬다.
그 작은 시장거리엔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득실된다.
다시한번 지방도시에 빈약함을 느낀다.
젊은사람들은 죄다 비대해진 서울 도시 어디가로 올라가고
고향을 지키는건 쇠약해진 노인들 뿐이다.
장성읍 시장을 벗어나 홍길생생가를 찾아가다가
갈림길에서 길을 잃었다.
사람들이 없이 휑한 거리엔 논이나 밭뿐이다.
쌀쌀맞은 날씨만큼이나 스산한 시골풍경이다.
어찌할바를 몰라 기웃거리다 마을 어귀에 시골집 하나를 찾아들어갔다.
마침 할아버지 두분이 처마밑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5일장에서 샀던 뻥튀기를 나눠먹으며
길을 묻는 우리에게 할아버진 묻지도 않은 이야기에
열을 올리신다.
동학농민운동에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장성사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 이야기보단 할아버지의 뻔쩍거리는 이빨들만 보인다.
금니, 은니,도대체 하얀이는 찾아볼수가 없다.
시간이 너무 지체된 까닭에 할아버지 집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할머니가 두달전 교통사고로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후로
혼자 밥해먹고 사신단다.
그래서 따뜻한 밥한끼 대접 못한다며 미안해하신다.
홍길동생가는 복원공사로 가는 길이 진흙투성이다.
자전거가 진흙으로 엉망진창이 됐다.
괜히 들렸다 싶다.
할아버지 집에 들리니 어느새 밤이다.
창호지로 된 문을 열어보니 부엌엔 베지밀한박스와 라면한박스가
놓여있다. 밥상엔 통조림 캔과 김치가 담긴 종기가 전부다.
불쌍한 할아버지...
수도가 얼어 물도 안나온다던데..
할아버진 당신보다 우리를 더 걱정하신다.
7시부터 이불속에서 나올수가 없었다.
보일러가 돌아가도 시골추위란 대책이 안선다.
꽁꽁언 몸을 녹이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그때 옆집에 사는 아저씨 한명이 술에 취해 할아버지랑 티격태격
요란하게 싸운다. 내심 산골소녀 영자아버지 사건이 떠올라
가슴을 졸이는데 이내 방으로 들어와 우리에게
횡설수설해댄다. 화가난 할아버지가 아저씨를 쫒아내려 하는데...
아저씨는 안갈라구 문지방에 발을 걸쳐놓고
기운없는 할아버진 끌어낼라구 하구 난리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이불 뒤집어 쓰고 소리죽여 웃었다.
이것또한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얼마나 흘렀을까..
할아버지가 문지방으로 걸어나오시더니
" 이젠 못들어올껴.. 피곤할텐데 푹시쇼" 하신다.
문지방을 보니 베지밀 빨대로 고리를 잠가 놓으셨다.
그렇게 초저녁에부터 추위에 취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어제 그 난리를 피웠던 옆집 아저씨가 미안했는지
양념된 고기한덩어리를 넣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미신다.
비닐봉지 사이로 양념이 뚝뚝 떨어지는데..
가져가서 먹으란다.
마음만 감사히 가져가겠다고 하는데도 기여이 자전거 짐에
넣을라고 하신다. 가까히 다가가니 또 술 냄새가 난다.
농한기땐 할일 없는 시골사람들은 항상 술과 함께 사나부다.
떠날 인사를 하는데 할아버진 귀한 손님 떠내보내듯
눈물까지 그렁그렁 하신다.
고개를 넘어가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손을 흔들어
보이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그 훈훈한 시골인심에 또한번
감동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