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대한 최초의 소개는 서기 9세기의 아랍 지리학자인 코르다드베의 <세계 지지>에 나온다.
조선족은 놀라울 정도로 그들의 가까운 이웃인 중국인이나 일본인들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몽골계 민족의 치켜올라간 눈꼬리가 여전하고 청동색 피부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피부색은 까무잡잡한 황색으로부터 아주 밝은 갈색까지 다양하다. 반듯한 코와 매부리코가 있는가하면 콧구멍이 크고 넓적한 들창코도 있다. 비록 머리칼이 검기는 하지만 머리색을 내기 위해서는 검댕이와 기름을 자주 발라야 한다. ...눈은 비록 검지만 암갈색으로부터 담갈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광대뼈는 높이 솟아 있다. 눈두덩의 모양은 마치 유행을 따르기라도 한 것처럼 고상하고 이지적으로 생긴 경우가 많다. 귀는 작고 예쁘다. 일상적인 표정은 약간 당혹한 듯하면서도 활기에 차 있다. 좋은 의미에서 볼 때 그들의 외관은 힘이나 의지력보다는 재치 있는 지성의 모습을 보여 준다. 조선 사람들은 분명히 잘생긴 인종이다. 체격도 좋다.
가정은 대가족제도이며 건전하다. 인구는 1200만-1300만 명 정도일 것이다. 정신적으로 조선 사람들은 많은 재능을 타고 났는데 특히 스코틀랜드의 말로 영리하고 눈치빠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 교사들은 그들이 정신적인 치밀성과 빠른 인식 능력, 빠른 외국어 습득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조용한 아침 또는 상쾌한 아침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조선의 지리는 단순하다.
기후는 분명히 세계에서 가장 좋으며 건강에 도움이 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1년 중 9개월 동안은 하늘이 보통 맑으며 조선의 겨울은 아주 훌륭하다.
조선의 동물상은 주목할만하다. 많은 수의 호랑이와 표범, 곰, 영양, 최소한 일곱 종류의 사슴, 여우, 해성, 수달, 오소리, 살쾡이, 돼지, 몇 종류의 담비, 한 종류의 별 가치 없는 족제비, 줄무늬 다람쥐 등이 있다.
새 종류로는 서울 근교에서 발견되는 검은 독수리, 송골매, 꿩, 백로, 거위, 밤점 오리, 청둥오리, 원앙새, 수즙음이 많은 대머리 수리, 희고 붉은 따오기, 새매, 황조롱이, 두루미, 해오라기, 왜가리, 마도요, 쏙독새, 붉은 알도요새, 멧새, 보통 푸른색의 까치, 꾀꼬리, 종달새, 개똥지빠귀, 딱새, 까마귀, 비둘기, 땅비둘기, 띠까마귀, 휘바람새, 할미새, 뻐꾸기, 호반새 그리고 밝은 푸른색의 물총새, 어치, 도요새, 동고비, 회색 때까치, 꿩, 매, 그리고 솔개들이 있다.
고유한 수종으로는 전나무, 구상나무, 소나무, 잣나무, 세 종류의 참나무, 참피나무, 양물푸레나무,, 자작나무, 다섯 종류인 단풍나무, 오갈피나무, 옾나무, 보리수나무, 노간주나무, 산물풀나무,개암나무,자작나무,지빵나무, 버드나무, 고섬나무, 서나무, 서양 자두, 복숭아 나무, 빗살나무 등이 있다.
조선의 언어는 혼합되어 있다. 식자층은 대화에서 가능한 중국어를 많이 사용하며 보고서의 모든 문자는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천년 전의 중국의 고어의 형태여서 중국에서 현재 사용되는 중국어와는 발음이 완전히 다르다. 조선의 글자인 언문은 한문 교육을 고집하는 지식층으로부터 무시되고 있다. 조선 사람들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민족과 구별된다.
조선의 왕은 말하기를 식자는 공자와 주문왕의 가르침을 지키며 실천한다고 했다. 이는 조선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열쇠이다. 정부, 법률, 교육, 예절, 사회적 관계 그리고 고덕에서 중국의 영향은 현저하다.
낡아빠진 사회적 조건, 말할 수 없는 구습, 고칠 수도 없고 개혁할 수도 없는 동양적 사고...거친 흔들림으로 인하여 수세기에 걸친 잠에서 깨어나 반쯤은 겁에 질리고 정신이 완전히 빠진 이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독립 국가는 강력하고 야심만만하고 침략적인 열강의 대열 앞에 자신이 서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제1장 조선의 첫인상
조선 사람은 색다른 인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닮지 않았다. 오히려 양자보다 더 멋있어 보이며 일본인보다 체격이 더 좋다. 비록 그들의 평균 신장이 겨우 5피트 4.5인치이지만 흰색 옷은 몸을 풍성하게 보이게 하고, 언제나 쓰고 있는 높은 왕관 장식의 모자는 키를 더 커 보이게 한다.
제2장 서울의 첫인상
25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의 거대한 수도 중의 어느 곳도 이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r 뜻을 음미하기까지에는 1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가까이 하기엔 어려운 정상이 분홍 반투명의 자수정처럼 빛나며 그림자는 짙은 청색을 띠고, 하늘이 푸른 금빛일 때 저역은 진홍색 장관을 보여 준다. 아름답고 우아한 푸르름이 산을 덮는 봄이 되면 연보랏빛 진달래로 붉어지고 불꽃 같은 자두와 홍조의 벚꽂과 복숭아꽃이 소스라치게 의외의 곳에서 나타난다.
오둑 초가집, 작은 종이 창문, 흙벽, 굴뚝, 6시가 되면 요리와 난방을 위해 타 들어가는 향기로운 연기.
상점; 흰 솜, 짚신, 삿갓, 조악한 도기, 바람막이가 달린 촛대, 빗, 유리구슬, 담뱃대, 담배쌈지, 타구, 뿔테 안경, 온갖 종류의 종이, 목침, 배갯닛, 부채, 곶감, 사탕, 해초와 버섯, 등유 램프, 손거울, 항아리.
놋제품 식기.
세탁은 여인의 숙명이다. 어떤 옷은 돌 위에 올려 놓고 무거운 방망이로 두들긴다. 여성은 세탁소의 노예이며 서울의 밤의 경적으로 깨는 유일한 소리는 규칙적인 다듬이 소리이다.
양반은 공식적이거나 개인적인 일 이외에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그들보다 더 운이 좋은 인척들에게 매달려 살아가고 있다. 중류 계급의 젊은 사람은 태연함과 당당한 걸음을 흉내낸다.
서민들이 다니는 거리에는 소나무 잡목을 나르는 황소, 소금이나 토산물을 실은 말의 행렬, 길마를 진 소에 물통을 싣고 물을 튀기며 달리는 물장수들, 그리고 나무로 된 무거운 짐을 나르는 노동자들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모든 집은 개를 기르며 구멍을 통해 개가 살금살금 드나든다. 개는 낯선 사람에게 격렬하게 소리치지만 우산 접는 소리만 들어도 도망친다. 개는 서울의 유일한 청소부일 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는 사람의 친구도 아니며 식구도 아니다. 그들은 조선말은 물론이고 어느 말도 못 알아 듣는다. 그가 밤에 짖으면 도둑이 든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매우 거칠다. 개들은 늙기 전에 봄철의 보신탕이 된다.
나는 하루 종일 옷을 세탁하고 물을 긷는 하층 계급의 여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가정의 노예로서 가장 낮은 신분이다. 조선 여인들은 매우 엄격하게 격리되어 있으며 다른 어느 나라의 여인들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서울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매우 신기한 제도가 널리 보급되었다. 8시 경이 되면 거대한 종이 울리는데 이는 남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라는 신호이며 그제야 여인들은 밖에 나가 즐기며 그들의 친구를 방문한다. 거리에서 남자들을 깨끗이 없애 주는 이 제도가 사라지면 무슨 일이 꼭 벌어졌기 때문에 이 제도가 다시 강화되었다. 내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캄캄한 거리에는 등롱을 든 하인을 거느린 여인들의 무리가 북적거리고 있었다...12시에 다시 종이 울리면 여인들이 물러가고 남자들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간다. 지체 높은 가정의 부인이 나에게 들려준 바에 의하면 그는 낮에 서울 거리를 결코 나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제3장 왕의 거둥
서울에는 5000여명의 궁정 신하와 관리들, 그리고 유명무실한 6000명의 군인들이 있다.
거둥의 화려함은 도시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불결한 뒷골목 백석의 일상 생활의 누추함을 두드러지게 할 따름이다. 행렬에 참가한 사람들은 고용된 것도 아니고 입은 옷들이 의상업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제4장 조선의 성지 서울
서울은 곧 조선이다. 허름한 뒷골목과 진흙 벽으로 된 오두막집, 깊은 처마가 달린 갈색 지붕, 불결하고 지렁이가 기어다니며 악취가 나는 도랑 등은 모두 마을과 시골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서울에서 잡아 보려고 원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서울로 끌리는 힘이 있다.
조상 숭배와 푸닥거리가 조선 사람의 종교이다.
도시의 성벽으로부터 10마일에 이르는 지역 내의 무덤들은 서울의 특징이다. 죽은 사람들은 남향과 명당을 독점한다.
제5장 나룻배 여행
기운 없고 조용한 남자들과 소년들이 배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배의 앞부분의 길이는 7피트로서 한 사람이 장대로 강상을 밀거나 노를 저었으며 뒷부분의 길이는 4피트였는데 여기에서도 한 사람이 장대로 밀거나 노를 저었다. 배의 앞 부분은 나의 부텈으로서 닭을 몇 마리 키웠으며 사공의 부엌으로도 썼다....김씨가 고용한 사람은 술이 몹시 취했을 때 딱 두 번을 제외하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대체로 그들의 행동은 조신했고 조용했다...한 시간 동안 노를 저은 다음에는 배를 세우고 담배를 피웠으며 때때로 쌀을 사러 나가서 반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피로한 척하며 나의 동정을 사기도 하는 등, 게으른 사람의 모든 계략을 동원하였다....가장 불편했을 때는 사공들이 먹는 음식 냄새와 연기가 배 전체에 퍼졌을 때이다.
제6장 금모래 강변
며칠이 지나자 풍경은 더욱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웅장하기까지 하여 온통 경이의 대상이었다. 붐의 아름다움이 펼쳐지면서 나무들은 푸르고, 붉고, 황금빛으로 생동감을 보였다. 꽃 핀 관목들은 빛을 발휘하고 있었고, 곡식들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새들은 수풀 속에서 지저귀고 있었고, 향기로운 냄새가 물위로 퍼져 나갔다. 드물게 소들이 무릎을 덮을 정도의 풀둘을 뜯기도 했다. 상당히 하류인데도 물은 수정처럼 맑았다. 티베트의 하늘처럼 부른 창공에서 퍼져 나온 햇빛이 부서지는 물결에 반사되고 있었다.
생활하는 데 약간의 부족함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매혹적이었다. 나비와 잠자리가 수없이 많았고, 맑은 녹갈색의 뱀도 많았다. 한강은 물오리, 원앙새, 거위 등으로 장관이었으며, 논에는 두루미, 해오라기, 봄의 신선한 빛을 깃털에 가득 담은 핑크빛 따오기 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매, 황조롱이, 새매, 그리고 말똥가리 등도 종종 보였다. ..소쩍새의 처량한 소리가 들리고, 꿩의 맑은 소리가 들렸다. ..표범, 노루, 그리고 몇 종류의 사슴들이 한강 주변 산등성이에서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러나 조선 전체를 통해 가장 특출난 맹수는 호랑이었다.
농민들은 대개가 양반이 마음내키는대로 할당한 땅을 경작하는 소작농이었다. 땅의 소유자인 양반들은 추수 후에 그 땅을 회수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 양반들은 땅과 씨앗을 제공하고 소농들은 추수한 곡식의 반을 지대로 지불한다.
남자들의 식사는 노동자들의 보통 식사보다 훨씬 조촐했다. 여자들은 늘 아무렇게나 먹었고, 주인이 남긴 것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남자들은 독상을 받았다.
동학도들의 세력은 한강 이남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현재의 상태에 불만을 부였고 다소 개혁의 욕구를 보였다.
사람들은 우호적이었다. 그들은 호기심이 매우 많아서 배를 정박할 때마다 배 근처의 둑에 앉아서 무심하게 바라본다. 그들은 자주 소심해져서 우리가 나타나면 가축을 잡아 채어 감추었다....가는 곳이 한적한 곳이든 마을이든 특히 여자들은 희한하게 생긴 나의 옷에 호기심을 보였다.
제7장 떠돌며 본 풍경
과음하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다. 사공들은 과음으로 저녁 휴식을 즐겼다. 과음은 조선의 독특한 모습이다. 그것은 불명예가 아니다.
서울을 떠난 지 30일이 지나서 우리는 단양에 도착했다.
제8장 자연의 아름다움; 북한강 여행
단양을 떠난 다음날 우리는 이강의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접어들었다. 한강 계곡이 대부분 정연하게 개간된 데에 대해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그것은 다른 여행자들이 전하는 얘기와는 달랐다. 한강은 조선에서 가장 비옥하고 번영된 부분을 관통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밀과 보리의 수확은 풍작이었고 놀라울 정도로 잡초가 없었다.
양반은 친척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직접 일해서는 안 된다. 양반은 담뱃대조차 들고 다녀서는 안 된다. 양반 집의 학동들은 학교에 갈 때 책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황소 떼가 시야에 들어온다. 황소가 풀을 뜯는 광경을 본 것은 처음이다. 풀은 거칠고 시큼하며 보통 가내업으로 소를 사육한다. 이슬 내린 아침이면 황소 떼를 싱싱한 풀밭에 매어 놓으러 가곤 하는데 이 때 들려 오는 황소의 울음소리, 아이들의 외침,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기분은 매우 상쾌하다. 조선의 가정에서 사육하는 송아지들은 어린애들이 친구 삼아 돌보는데, 이 송아지들이 자라서 부드러우면서도 위풍당당하고 전형적인 대형 종으로 성장한다. 성년이 된 황소는 350에서 500파운드의 짐을 나를 수 있다. 그들의 먹이는 삶은 콩, 저민 수숫대와 콩줄기, 콩을 삶은 물 등이다.
제9장 결혼 풍습
조선 사람은 결혼할 때까지 아무 것도 아니며 그저 하찮은 애숭이일 뿐이다. 결혼식이란 존경과 어른으로의 입문이요 사회적 위계 속으로 뛰어들어감을 의미한다...그의 머리털은 잘려 나가고 머리를 감쌌던 긴 머리카락은 자랑스런 상투로 변하는 것이다. 그는 망건을 쓰게 된다. 그는 검은 갓을 쓰고 긴 도포를 입는다.
여자는 결혼으로 운명이 결정된다. 7세부터 아버지의 견고한 굴레에서 갇혀 살아오던 소녀는 17세가 되면 시대의 엄한 담장 속에 갇혀 살게 된다.
신부는 놋쇠로 모서리를 장식한 예쁜 함을 받는다.
청사초옹을 든 남정네들이 이 선물을 신부집으로 운반하는데, 도중에 횃불을 든 한 떼의 신부측 남자들과 맞닥뜨린다.
정숙은 여자쪽에 요구되는 미덕이다.
남자가 부정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이 있기는 하지만 조선에서의 결혼은 영원한 의미를 갖는다.
침묵은 아내의 첫 번째 의무이다.
조선의 여성은 속박 속에서 살아왔다. 그들은 열등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말없이 현모양처의 법칙을 따른다.
조선의 여인이 어머니가 되면 그의 지위가 좀 나아진다.
제10장 조선의 조랑말-도로와 여관
조랑말은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특산물이다.
농구나 모자 등을 담은 상자가 낮은 대들보에 걸려 있다. 이 방에는 마부 나그네 하인 비천한 식객 등등이 와글거리고 있다.
뜨거운 열기와 해충, 독, 메주. 마루와 등뼈를 노곤하게 해주는 이 가마솥 같은 방에서 조선의 나그네들은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여관에서는 밥, 계란, 야채, 국, 국수, 마른 해초,그리고 밀가루, 설탕, 기름을 섞어 만든 반죽류 등이 나왔다.
조선의 여관은 조용하며, 술이 넘칠 때라도 소란은 오래가지 않는다.
내가 조선에서 겪은 악몽은 여인네의 지나친 호기심과 우악스러움이었다.
무당이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북을 두드리고 징을 치며 집안의 환자에게 병을 가져다준 귀신을 몰아내고 있는 장면을 려러 번 목격했다.
제11장 금강산 기행
금강산 지역의 서쪽 국경인 단발령은 마릿재로부터 1320피를 더 올라가야 했다.
언덕진 숲의 물결과 물의 반짝임, 언덕의 물결치는 듯한 모습, 금강산의 가장 높은 정상에 있는 6천피트를 넘는 높이를 포함한 울퉁불퉁한 산의 병풍...참으로 아름다운 약속의 땅이다.
장안사의 기분이 좋기도 하고 기분이 우울하기도 하는 모습은 수십 명의 밝고 활기찬 고아 소년들의 존재이다.
그들의 낭만적이고 신성한 환경, 삶의 고요함, 평화로운 피난처를 찾는 빈곤한 노인에 대한 자비심 그리고 특히 그들의 예절과 인정에서 나는 그들이 어떤 매혹적인 일을 하고 잇다는 점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12장 동해안을 따라서
호랑이
조선 사람들은 지극히 대식가이다. 그들은 배고픔을 만족시키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포만감을 즐기기 위해서 먹는다. 한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인다. 많은 먹은 후에도 더 먹을 수 으면 띠를 들러 등에 업은 채 다시 더 먹인 다음 평평한 숟갈로 어리이의 배를 두드려 보고 다시 먹일 때도 있다. ..쌀 한 쿼트로 밥을 지으면 그 부피가 무척 많은 데 그것이 한 노동자의 식사량이다. 이외에도 무미한 맛의 음식들을 더 먹는다. 반찬 중에는 고추, 마늘, 다양한 냄새의 장, 김치, 시김털털한 배추, 해초, 짠 생선, 절인 생선 등이 있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의 식사만 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하루에 세끼나 네끼의 식사를 한다.
이처럼 포식을 선호하는 것은 모든 계층에서 똑같다. 식사의 특징은 질이 아니라 양이며 어려서부터 가능한 많은 양의 식사를 하는 것인 인생의 목적이다. 따라서 하루에 4파운드의 식사를 해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좋은 환경의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많은 양의 과일과 열매 그리고 식사 사이사이의 짬에 과자를 먹는다. 그들은 마치 일주일 동안 굶을 것처럼 한 번의 식사에 달라붙는다. 잘 사는 집에서는 소나 개의 고기를 커다란 접시 위에 준비한다...나는 조선 사람들이 한끼 식사에서 충분한 음식과 3파운드 이상의 고기를 먹는 것을 보았다.
조선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먹는 사람들이다. 어떤 계절에 개고기가 많이 소비되기 때문에 식용개를 집중적으로 키운다. 돼지고기, 소고기, 살진 송아지처럼 절인 동물들의 내장, 새나 금지된 사냥물 등도 마다하지 않고 먹는다. 그런 것들을 먹기 위해 반드시 요리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한강에서 한 남자가 낚시로 고기를 잡아 고추장을 찍어 뼈와 함께 통째로 먹는 것을 보았다. 밀, 보리, 옥수수, 달콤한 감자, 쌀, 귀리, 완두, 대두 등과 무수한 뿌리들, 들에 나는 나뭇잎, 해초, 새우, 밀가루로 만든 부침개, 설탕, 기름, 11월이 되면 조선의 모든 여성들이 달아 붙어 담가야 하는 김치, 국이나 찌개, 곶감, 기지떡, 송홧가루와 꿀로 만든 다식, 밀가루, 설탕, 마늘, 밤 등 많은 것을 먹는다.
왕씨는 ‘죽지 마세요’라고 잠자리 인사를 했다.
조선인들은 그의 작고 어둡고 더럽고 악취 나는 방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안 난로나 아주 희미한 등불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생명력 있는 봄을 맞는다. 그들은 그 긴 겨울 동안에 자연스런 동반자로서 악기와 노래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음악은 해방이며 대지를 숨쉬는 것이며 육신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다.
제13장 청일전쟁의 전운과 제물포
동학 교도들은 타락한 관료들과 간신배들에 대항해서 봉기했고 국왕에 변함없는 충성을 맹세했다고는 하지만 전국에 나돌고 있는 그들의 포고문으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조선의 어디엔가 총성이 고동치고 있다면 그것은 농민의 가슴 속 뿐이라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들의 봉기는 무절제하거나 헛된 유혈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며 그들의 행위는 개혁에 국한되어 있었다.
무장한 개혁자
원세개--막후 실력자
제14장 만주로의 추방
만주에는 혈통이 다른 몇 개 인종이 혼재하고 있다. 만주족, 길랴크족, 퉁구스족, 솔론족, 다우어 족 그리고 중국인들이다. 이들과 함께 약 3만명의 조섡족들이 다수 민족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 사람들은 정치적 혼란과 관리의 수탈을 피하여 1868년 이후 조선을 떠난 사람들이다.
만주의 관습의 대부분은 만주어와 함께 사라졌다. 만주어는 단지 몇몇 외딴 산골에서만 사용되며 인위적으로 보존되고 있을 뿐이다.
청국; 1894년 6월 7일 조선에 군대 파병 통보. 일본도 중국에서 파병 통보.
일본; 조선의 내정 개혁 제안; 국왕 협박, 억류. 대원군의 요청
아산 전투 일본 승리.
7월 30일; 조선은 청과 맺은 조약의 포기 선언. 종주권 무효화.
제18장 나가사키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동방의 보물--블라디보스톡
군국주의의 열풍
제19장 시베리아에 사는 조선의 이주민들
내가 러시아령 만주를 방문한 주된 목적은 러시아로 이민을 간 조선 사람의 난처한 문제를 개인적으로 조사하여 나 혼자 해결해 보려는 것이었다. 2만명.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조선 사람들은 중국인들과의 야채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
남자들의 태도는 미묘하지만 사실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여자들은 명목상으로는 은둔의 습관을 지켜 가고 있었지만 , 비굴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국내에서만 자란 조선 사람들은 아내에 대한 의심과 독단 노예 근성을 가지고 있으나 그런 모습들이 이곳엔 바뀌고 있었다. 양반의 거만한 몸짓과 농부가 기운 없이 어슬렁대는 태도는 민첩한 행동으로 바뀌었다.
제20장 시베리아 횡단 철도
철도 건설 중
제21장 자주 독립 서고문과 홍범 14조의 발표 그리고 국왕 부부의 알현
1895년 1월 8일--중국의 종주권을 공식적이고도 공개적으로 부인.
종묘에 나가 선조들의 영령 앞에 개혁을 맹세.
김홍집/ 박영효/김윤식/어윤중/서광범
왕비전으로 이르는 뜰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 우리는 왕실의 통역원과 많은 환관들, 왕비의 두 시녀들 그리고 왕비를 보좌하는 제조 상궁의 안내를 받았다. 그는 궁녀들의 우두머리로 특권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서 나이는 중년에 이르렀으며 뛰어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노란 색 비단으로 장식된 정결하고 단정한 방에서 풍습대로 정중한 환대를 받았다. 저녁 식사는 서구 스타일로 훌륭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오래고 긴 절차를 거치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통역관과 함께 조그마한 알현실로 들어갔다. 알현실의 상단에는 왕과 세자 그리고 왕비가 서 있었다. 언더우드 여사가 나를 소개하자 그들은 우리에게 마련된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왕비 전하는 40세가 넘었으며 매우 멋있어 보이는 마른 체형이었으며 머리는 윤기가 흐르고 칠흑같이 검었으며 얼굴은 상당히 창백했는데 그 창백함은 진주빛 분을 발라 더욱 희게 보였다. 눈은 냉철하고 예리했으며 반짝이는 지성미를 풍기고 있었다.
왕은 키가 작고 누르스름한 얼굴을 지녔으며 약간의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의 친절한 본성은 익히 잘려져 있었다. 대화 중에 왕비는 왕을 상당히 북돋우어 주었다.
세자는 비만하고 의지가 박약해 보였다. 세자는 병약한 환자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는 외아들이었으며 어머니의 우상이었다.
왕비가 정중하고도 풍부한 재치를 보이며 나에게 여러 가지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였다.
왕의 표정은 온화했다. 왕은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조선의 역사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떤 종류의 질문을 해도 명확하고 상세하게 답변할 수 있었다....그는 한없이 선량한 사람이며 사상면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그가 보다 더 확고하고 강인하였더라면, 훌륭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에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준 예의 범절과 순수함, 위엄 그리고 친절함이 있었다.
제22장 갑오경장
1894년 12월--이노우에 공사는 국왕의 이름으로 공식 약정 체결을 발표
갑신정변 모반자들을 사면/ 대원군과 민비 공무 불참/
종친과 척신 등용 말 것/ 내시와 궁녀의 수 최소화
반상 계급의 차별 폐지.
나는 서울의 서소문 밖의 가장 사람의 왕래가 잦은 북경로에 전봉준의 목잘린 머리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 다른 사람의 목 잘린 머리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머리는 마치 야영 솥걸이처럼 세 발 장대에 조잡한 정치로 허공에 높이 매달려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조금도 비굴함이 없이 당당하고도 평온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제23장 을미사변
1895년 10월 나가사키에 도착, 조선의 왕후가 시해되었다는 소문을 들러.
44세의 나이의 왕비는 한 우방 국가의 공사에 의한 피비린내나는 음모에 자극을 받은 자객들의 손에 그렇게 죽어갔다.
제24장 장례 풍습
파주에 이르는 길은 조그만 마을과 계단식 논이 있는 조그만 계곡으로 펼쳐 있었다.
초가 지붕 위에는 고추를 말리기 위해 널어놓았는데 전체적으로 결핍된 생활을 충분히 보상할만큼 그 모습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정오에 우리는 고양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가난한 30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상여. 경쾌한 음조의 장송곡.
염, 수의, 3일 장-9일 장; 왕족 9월장
죽으면 그 영혼은 세 곳에 머문다.
위패/ 무덤/ 미지의 세계
옷 불태워
관. 명당. 길일. 매장. 봉분. 위패-사당. 5대 조 제사.
미망인 평생 소복.
제25장 고도 송도의 모습
임진강의 아름다움.
인삼
제26장 격전지 평양의 모습
대동강을 따라 풍부한 평야를 두르고 있는 낮은 산맥들은 푸르고 보랏빛이었으며, 그 위에는 물결 따라 갈색의 돛단배가 한가롭게 떠돌고 있었다.
제27장 관서 지방의 여행
조선의 종이는 강인성과 내구성에서 탁월하다.
어떤 수령은 부하를 1000명이나 거느리고 잇엇다. 한 도에서만 44명의 수령이 있고 그들은 각기 평균 400여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다.
제28장 안길령을 넘어서
나는 조선이 희망이 없고 무기력하고 한심스럽고 애처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기후와 적당한 강우와 비옥한 토지 그리고 내란과 강도로부터 벗어날 수만 잇다면 조선 사람들은 행복하고 잘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만약 착취하는 아전과 강제 징수 그리고 관리들의 악덕한 음모를 철저히 금지시키고 토지세를 공평하게 부과하고 법이 불법의 도구가 아니라 보호를 위한 것이 된다면 조선의 농부들이 일본의 농부만큼 행복하고 부지런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관습에 간섭하고 작은 일에도 간섭함으로써 조선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다. 내가 도처에서 느낀 바에 의하면 일본은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조선을 종속국으로 삼으려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여행자들은 조선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으나 러시아와 만주에 이주한 조선 사람들의 활력과 인내를 보고, 난 후 조선 사람의 게으름을 기절의 문제로 여기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조선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가난이 최고의 보신책이며 가족 자신을 위한 음식과 옷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탐욕적이고 타락한 관리에게 노출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제29장 여성의 사회적 지위
조선의 낮은 신분의 여성들은 버릇이 없다.
밤새도록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를 오직 남자들의 옷만을 다루는지 여자들의 옷은 매우 더럽다.
빨래--시냇가--나뭇재로 만든 잿물--말리고--풀을 먹인다--다듬이질
흰 색 옷/ 겨울에 입는 솜바지 옷==여자들에게 끊임없는 노동을 강요.
고된 일을 며느리에게 전가할 때까지 일만 하는 존재.
서른 살에 이미 쉰 살로 보이며 마흔 살에 이가 거의 빠진다.
상류 계급의 여자는 무조건 숨어 살아야 한다. 여자는 그들의 뜰과 방에 숨어 있다.
남자들을 우대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남자들은 음양이라는 이원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계급에서나 여자는 열등한 존재이다.
민비가 나에게 넌지시 들려준 바에 의하면 조선이나 서울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으며 다만 왕이 거둥하는 길만을 안다고 한다.
여자들이 어머니의 방에서 무심하게 시간을 보낸다.
조선의 여성들은 어머니와 시어머니로서의 엄격한 권세를 행사하고 있다.
조선 사람은 집은 있으나 가정은 없다. 남편은 아내와 떨어져서 기거한다. 부부 사이의 우정과 같은 관계나 애정의 표현 같은 것은 없다. 남자의 즐거움은 여자 친구나 기생을 통해서 얻어진다. 우리는 아내와 결혼하지만 첩과 사랑을 나눈다고 양반들은 말한다.
제30장 무당과 기생
여기 저기에서 정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잇다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지만 극동에서의 열망이란 돈을 위한 것이다. 동양에서 불안이라는 단어가 가난과 동의어이며, 정신적인 본능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중병에 걸린 한 남자. 낮은 병풍, 떡과 밥, 삶은 닭, 콩나물.. 징 치는 여자. 춤
다음 날 아침 4시까지 14시간 동안 계속. 주로 여자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관중.
평양 기생; 악기, 노래, 춤, 독서, 낭송, 서에, 수놓기--우아한 춤
칼춤과 용춤
기생은 남편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내들의 가슴앓이
조선은 소문이 많은 나라이다.
제31장 단발령과 아관파천
1896년이 우울하게 시작되었다. 각방면에서 작은 폭동이 일어나고 여러 관리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반란군은 서울로 진군하겠다고 위협했다. 일본의 영향력은 쇠태해 갔으며, 전국적으로 통치력이 붕괴되고 있었다. 1895년 12월 30일자의 왕령으로 발표된 단발령에 대한 공격.
조선 사람에게 상투란 2000년이라고 하는 그들의 역사이며 성스러운 전통이다.
상투는 결혼을 의미. 위패.
조선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애국심은 없지만 강한 민족적 본능이 있다. 그러한 민족성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그토록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토록 유서 깊은 제도로서의 상투를 없앤다는 칙령이 1895년 12월 30일자로 발표되자 마치 온 나라가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일본의 의도는 조선 사람들의 민족 의식을 깨뜨리는 것이라는 믿음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각처에서 단발령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나고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이 노골적으로 표출되자 심지어는 그들을 살해하는 일도 빈번했다.
1896년 2월 11일--조선의 왕이 궁전을 탈출하여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고 있다는 전문이 발송.
신변이 안전하게 된 국왕은 오랫동안 상실되었던 왕권을 다시 찾았다.
칙령
단발령에 대해 짐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그렇게 시급한 문제인가? 반역자들은 힘과 강압으로 단발령을 일으켯다. ...군인들은 짐의 자식들이며 소요를 일으킨 사람들도 짐의 자식들이다. ..짐은 바라노니 명령을 받은 즉시 모든 군대는 서울로 돌아오고 모든 폭도들은 각기의 생업으로 돌아라가.
제32장 정부 조직의 개편
지방에는 관료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집권남용이 자행될 뿐만 아니라 모든 중앙 정부 체계는 직권 남용의 핵심부로서 끝도 없는 부패의 바다여서 모든 산업에서 그 활력을 빼앗아가는 착취 기관일 뿐이다.
내각=총리대신/내부대신/외부대신/탁지부대신/군부대신/학부대신/법부대신/농상공 대신
제33장 교육과 대외 무역
지금까지 조선의 교육은 애국자나 사상가나 정직한 사람을 산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편협, 관례, 자부심, 거드름, 노동을 경멸하는 잘못된 위선, 이기적 개인주의, 너그러운 공공 정신과 사회적 신뢰의 파괴, 관습과 전통에 대한 노예 근성, 편협한 지식, 얕은 도덕심, 여성 비하.
조선에서 가장 강력하게 교육적 도덕적 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학교는 배재학당.
제34장 무속 신앙(1)
샤마니즘--서낭당--장승--돌무더기--무당
다신--귀신--불안--두려움--
판수와 무당
제35장 무속 신앙(2)
푸닥거리의 효과에 대한 믿음은 대단하다. 몸이 아프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당의 비용을 갚기 위하여 절반을 굶거나 아니면 옷을 저당 잡힌다. 무당의 힘은 수백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 왔다.
제36장 1896년의 서울
조선 사람들은 보통 온순하고 악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유럽식 의복과 무기를 휴대한 군인들은 시민적인 동정과 애국심이 없으며 반항적이고 불복종적이고 흉포하고 권력과 이권에 욕심 많은 사람으로 바뀌었다.
제37장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
조선의 바다와 땅과 그리고 강건한 민족성 내에 온갖 자원이 존재하고 있다. 조선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수천 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자신들보다 나은 형편에 있는 친구나 친척에 의존해 살아가는 관습이다.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인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점하는 하층민들로서 그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제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