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시험지
문희봉
시험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되었다. 숙제를 잘해 가면 빨간 동그라미 다섯 개를 선물로 받았다. 받아쓰기 시험, 덧·뺄셈 시험에서부터 시작한 시험은 고희를 넘기면서까지 계속되고 있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는 말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승진을 하던가, 선발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면접시험이라는 게 또 있었다. 다섯 명의 면접관이 앞에 근엄한 얼굴로 앉아 있고, 어떤 질문을 받을지, 받은 질문에 수월히 답변할 수 있을지 가슴은 늘 콩닥콩닥 뛰었다.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래가 있던가? 그래서 시험이란 것을 통해 인생은 완성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나이 들어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삶이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삶이란 하루 이틀 사용하고 마는 호텔의 객실이 아니다.’라는.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험이 가장 객관적일 수 있다.
요즘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시험’을 치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올바른 결정인지, 지금 하고 있는 내 행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정답’을 찾는가?” 하는 시험은 매일매일 치러야 하는 나의 일상이다. 그렇게 나는 막 뜯어낸 거즈에 아세톤을 묻히고 세월을 닦아내는 연습을 한다. 인생은 땅에 묻히기 전까지는 시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기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 선발 과정에 안착하기 위해서 말이다.
얼마 전엔 김영호의 ‘박하사탕’을 읽었다. 김영호를 만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술수와 편법과 안일에 물들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페스탈로치의 묘비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모든 행동이 남을 위해서였으며,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는. 이런 삶은 아주 잘 산 삶이겠다.
‘장영희’ 님의 말대로 인생은 어쩌면 삶 자체가 시험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것은 용기의 시험이고, 인내의 시험이고, 사랑의 시험이겠다.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착해지고 성실해지고 겸손해지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기쁨이고 풍성한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제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산은 삶의 위안처이며 수양의 도장으로 늘 내 가까이에 있다. 언제든지 스스럼없이 찾을 수 있는 생활의 공간이다. ‘입산’은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쉬고 어울리기 위한 것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계곡을 찾고 체력에 따라 오를 수 있는 만큼만 오르는 산행이라면 최고가 아닌가 하는. 그리고 산을 오르면서 깨달은 게 있다. 첫째는 보폭을 줄여야 한다는 것, 둘째는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셋째는 경사에서는 기어를 변속해야 한다는 것을. 이런 삶을 살아가라 산은 오를 때마다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살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는 아름답다.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향기가 진하다. 이름 없는 잡초 속에서도 약초가 자란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고, 멸망으로 가는 길은 넓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시골은 자연이 지배하고, 도시는 사람이 지배한다. 기름기 빠지면 남는 건 노여움뿐이다. 한 방울의 물이 돌에 구멍을 낸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 고장 난 문을 열리지 않는 법이다. 이런 것들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내 삶은 괜찮은 삶이 아닌가?
나는 지금 빈 들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본다. 빈 들은 곡식이 없어도 습기를 머금고 있는데 나는 지금 가진 것이 없다고 마음까지 메말라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행복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가꾸는 것이다. 규격화된 행복은 어느 곳에도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헌신적인 사랑은 되돌려 받을 생각 없이 하는 사랑을 이르는 말이다. 작은 승리에 교만한 자는 큰 전쟁에서 실패한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열심히 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평생 이름값 제대로 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이름에는 가치가 부여되고, 가치에는 그것에 합당한 가격이 매겨진다. 산다는 일은 바로 어제의 일들과 헤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삶은 존경받는 삶이다.
살아가면서 어떻게 시험을 보고 얼마만큼의 성적을 내는가는 자신 각자의 몫이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남은 생을 이삭 줍는 마음으로 살기로 했다. 새 둥지를 두어 개씩 품어줄 수 있는 넉넉한 나무처럼, 가슴마다 남을 위한 사랑을 더 많이 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소나무는 늘 말없이 살면서도 푸르른 혼, 하얀 속살, 이승의 시름까지 나이테에 새겨놓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초연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는 사회는 암담한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