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간 당할뻔한 소녀를 구해 낸 쿠르카 용병!!무려 40대 1로!!~~
40:1로 강도를 물리친 네팔인 구르카 병사, 비슈누 쉬레스타 -
네팔의 특수부대를 일약 세계적인 부대로 만든 일인의 멋진 병사입니다.

아저씨에 나오는 태식이는 겁나 강하다. 그는 전직 UDU 출신이였는데 이것은 북파공작원 이라고도 불리는 HID와 비슷한 개념으로 (참고로 공군에는 OSI가 있다.) 이러한 해군특수부대라는 출신하나만으로 태식이가 그렇게 강력한 이유를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다. 특히나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먹어줄게" 는 나도 정말 감동한 대사인데, 문제는 아저씨는 영화인데 이건 뭐......

도대체 구르카 용병은 어떤 사람들이길래~~울 해병대랑 비슷한가?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면 우리 군인들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진정한 남자 아니겠는가!!!

6.25때도 참전한 네팔의 " 구르카(Gurkha)軍 "
세계 최강의 용병 중 하나는 영국이 현재도 운영하고 있는 네팔출신 병사들로 모집한 구르카용병이라고 생각 됩니다. 흔히 영국군의 3 대 용병이라면 네팔의 구르카용병, 인도의 시크교도용병, 버마의 카렌용병을 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용맹하기로 첫손을 꼽으라면 구르카용병을 들 수 있습니다.

[ 이라크전 참전직전 훈련 중인 구르카병 ]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설립해서 인도를 식민지화 할 무렵 영국의 침략에 대항하여 네팔의 구르카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맞서 싸웁니다. 구르카인들은 고산지대 출신이라 엄청난 폐활량을 바탕으로 뛰어난 체력과 함께 용맹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구크리검이라는 단도를 뛰어나게 사용하여 근접전 상대에게 공포를 안겨 주었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들의 상징 구크리검 ]
저항 초기 영국군을 위기로 몰아넣기도 하였지만 결국 장비의 열세로 항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국은 구르카인들의 뛰어난 전투능력과 강인한 정신력에 오히려 반해 버립니다. 이후 영국은 이들을 전투병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당근과 채찍을 동원하였고 결국 용병으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합니다.

[ 제1차대전 당시 프랑스 전선 ]
이들은 이후 제1차대전, 제2차대전은 물론이거니와 포클랜드전쟁, 걸프전까지 참전하여 그 용맹을 떨칩니다. 포클랜드를 방어하던 아르헨티나군이 구르카부대가 공격 한다는 말에 곧바로 항복 하였다고 전할 만큼 그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고 현재 약 4,000 여명이 근무 중입니다.
현재도 변변한 직장을 구 할 수 없는 네팔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영국에서 9개월 동안의 고된 훈련기간을 거쳐야 정식으로 용병이 될 수 있을 만큼 일당백의 정예용사들입니다만 영국이 이들을 적당히 이용만 해먹고 푸대접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제2차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 ]
그런데 최근 구르카족 용병들이 영국 시민권을 얻게 됐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처음으로 구르카용병의 희생을 인정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이들에게 시민권 신청 자격을 주기로 결정하였으나 그것도 1997년 7월 이후 영국군에 입대한 사람들로 제한된다고 합니다. 까삐블랑 근무경력이 있으면 쉽게 프랑스 시민권을 따는 것에 비한다면 이것도 때늦고 미흡하다고 생각 됩니다.

그런데 약소민족을 가지고 장난치고 이용해 먹으려는 것은 굳이 영국만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국제사회는 보이던 보이지 않던 힘이 지배하는 곳이지 결코 관용과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도 나약해지거나 틈을 보이면 언제든지 다시 강대국의 놀림감밖에는 되지 않겠죠. [ august 의 軍史世界 ]
출처 : http://cafe.daum.net/ambri/1obW/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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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침빨아 먹는 뵨태는 한칼에 직여삔다
네팔이 영국에 정복된 후 영국은 구르카 부족의 광신적인 용맹성을
눈여겨 보았고, 이후 용병으로써 후한 대접을 해줌으로써 영국은
용맹한 용병을, 구르카는 극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를
얻었습니다. 네팔이 독립한 후에도 구르카 용병은 영국군 내부에서
특수한 외인부대적 입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하루 1달러로 연명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네팔에서 용병이 되는 것은 출세가도를 의미합니다.
구르카는 전통칼인 쿠크리 도를 한손에 들고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적의 목을 무자비하게 잘라버리기로 유명합니다. 영국도 고생 좀 했죠.
출처 : http://eggboy.tistory.com/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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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구르카 족은 인도 중부에 살고 있었으나, 힌두교인이라는 이유로 14세기경 이슬람교인에게 쫓겨 북쪽 네팔로 이동, 그곳의 지배 민족이었던 네와르족을 정복하고 이들과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네팔의 중부 및 서부 산악지대에 살며 농경민으로 목축도 겸하고 있었다.
그런데 1815년 인도를 정복한 영국군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 왕국으로 쳐들어 왔다. 당시 최신식 무기를 갖춘 영국군은 활과 돌팔매, 그리고‘쿠쿠리’라고 불리는 독특한 모양의 네팔 전통단검으로 무장한 구르카 부족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전투는 2년 동안 계속 되었고, 결국 영국군이 승리를 하였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이 승리하였지만, 영국은 네팔의 험한 산악 지형 등 여러 가지 악조건 때문에 식민지를 삼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영국은 자신들에게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던 구르카 부족과 계약을 맺고 청년들을 용병으로 고용해 갔다고 전해진다.
구르카 군은 1차, 2차 대전에 영국군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특히 2차 대전 때 총 25만의 대병력으로 확충된 구르카 용병들이 독일군에 맞서 싸웠는데, 구르카족 용병들의 쿠크리에 목숨을 잃은 독일군의 수는 웬만한 대공습의 피해와 맞먹는다 할 정도로 악명을 높이게된다.
이후 태평양 전쟁에 버마전선에서 영국군과 함께 일본군을 상대로 맞서 싸우게 된다. 영국군과 싸운 일본군은 정글전은 당연히 자신들의 독무대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국군 지휘관들조차 "일본군을 잡으러 정글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상어를 잡으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할 정도로 두려워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이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이 정글전의 우위를 여지없이 뒤집어 버린 것이 바로 구르카용병들이다. 쿠쿠리 한 자루를 들고 소리 없이 정글 속을 누비고 다니며 귀신같이 일본군을 죽이는 구르카 용병들은 그야말로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때, 버어마 전선의 「임팔」전투에서 구르카대대의
「디마푸르」중사는 쿠쿠리 한 자루로 24명의 일본군의 목을 잘라 영국 최고 훈장인 빅토리아 무공훈장을 받아 영국의 최고의 영웅이 되기도 했다.
한국전쟁에도 참여한 구르카군은 지평리 전투에서 1개의 대대가 중공군 1개 사단을 전멸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구르카가 온다!"는 말 한마디에 포트스탠리를 수비하던 아르헨티나군 전체가 손을 들고 투항해 버렸다고 한다.
구르카 군이 강한 이유!
원래 구르카족은 군사훈련을 시킬 필요도 없이 군인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물과 땔감을 구하기 위해 맨발로 눈 덮인 히말라야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그들의 일상생활은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원들이 받고 있는 고도의 군사훈련보다도 훨씬 더 가혹한 것이며, 공기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의 심폐기능과 체력은 도저히 후천적인 군사훈련으로 얻어질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것이다.
거기다 이들이 열 살을 전후하여 성인식을 치르면서 한 자루씩 소지하게 되는 쿠쿠리 단검은 그들의 용기와 명예의 상징이다. 이 칼을 빼어들면 반드시 피를 묻혀야 한다는 그들의 계율은 그들의 적이 이 칼에 대해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원초적인 공포 심리를 가지도록 만들어 놓았다.
"쿠쿠리를 한번 보여 달라고 간청하는 영국인 동료를 위해 칼을 뽑아든 구르카 병사가 그 칼로 자기 손가락에 상처를 내서 피를 묻힌 후에야 다시 칼집에 꽂았다"고 한다. 구르카족은 ‘한번 칼을 뽑으면 피를 볼 때까지 절대 칼집에 넣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구르카 용병 선발
구르카 군은 2-3년에 한번 17-21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115명을 선발하는데, 이 시험에 무려 1만 7000여명의 사람들이 몰린다.
1차 시험에서 영어, 수학, 네팔어 필기시험을 치르고, 신체검사로 가슴둘레 재는데 가장 크게 했을 때와 작게 했을 때 차이가 2cm이상이 되어야하고, 충치는 2개 이하여야 하고, 키는 160Cm이상, 몸무게 50kg이상, 고혈압과 수술경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800m 2분 45초안에 주파해야 1차 시험을 통과 할 수 있다. 1차 시험에서 대략 17000명중 1100명만 뽑는다.
2차 시험은 2.5km 8분 45초안에 주파해야하고 여기서 통과하면 다시 영어 필기시험를 치른다. 2차 시험에 통과하면 마지막 코스이며 가장 중요한 시험인 ‘도코시험’으로 25kg의 모래주머니를 짊어지고 6km의 산을 48분 안에 올라야 합격이다. 선착순이라서 험한 산지를 뛰어 다녀야만 한다. 여기서 200명 정도만 뽑는다.
200명 중 다시 영어 회화, 필기시험해서 150명으로 추리고, 거기서 또 35명 탈락시켜서 결국 115명 뽑는다.
구르카군으로 영국군에 입대 하게 되면, 한 달에 1000파운드의 월급(약 200만원-네팔의 교사 월급이 약 12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입니다.)과 16년을 근무하면 영국 시민권이 나오기 때문에 네팔 청년들에게는 꿈의 직업입니다.
출처: http://blog.paran.com/blue5191/436447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