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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호판 없는 이륜차
베트남에서 온 M은 토요일에도 인력사무소 통해 일하러 간다. 아침 7시 30분, 인력사무소에 도착해 대기하다가 현장으로 이동해 오전 9시부터 일하면 오후 6시에 끝난다. 일당 8만 원에 수수료 1만 5천 원을 떼면 6만 5천 원 남는다. 그렇게 토요일에 6만 5천 원을 벌어 집에 오면 저녁 7시다. M은 세 딸의 엄마다. 아이들은 이웃 베트남 친구네 집에 가있거나, 종일 집에 있을 때도 있다. 세 자매는 토요일에도 12시간 동안 엄마를 만날 수 없는 것이다.
M에게 토요일마다 청소를 부탁했다. 인력사무소에 가는 대신, 토요일 오후 3시간 동안 책방을 청소하면, 일당 6만 5천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일하는 책방에서 그림책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손 놀이를 하거나, 책방 근처 놀이터에 간다. 엄마는 주말 노동시간이 줄고,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는다. 2020년 겨울, 이렇게 M과 아이들을 처음 만났다.
책방에서 M과 아이들 셋을 처음 만난 날 아찔했다. 다섯 살 시은이는 엄마 다리 사이에, 세 살 하율이는 엄마 가슴에, 여덟 살 나연이는 엄마 등에 붙어 이륜차를 타고 온 것이다.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둘러도, 한겨울 바람을 가르며 이륜차를 타고 온 아이들 얼굴은 얼어있었다. 이륜차 손잡이엔 방한 장갑 대신 비닐봉투가 여러 겹 매달려 있었고, 깨진 흙받이와 찢어진 시트는 청테이프로 얼기설기 땜질되어 있었다. 책방에 처음 오던 날, 아이들을 만난 반가움보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갈 일이 걱정되었다.
게다가 이륜차엔 번호판마저 없었다. 이륜차 소유자는 이웃에 사는 태국 친구라 했다. M과 첫째 딸 나연이는 심하게 멀미를 해서 버스를 타지 못한다. M은 자신이 운전하는 차만 탈 수 있고, 나연이는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선 멀미를 견딜 수 있다. 그래서 150만 원짜리 중고차를 샀는데, 이마저도 고장 났다. 어쩔 수 없이 먼 거리를 이동할 때면 이웃에 사는 태국 친구의 이륜차를 빌려 타곤 한다. 태국 친구의 이륜차는 심하게 낡은 데다 번호판도 없지만, 멀미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셈이다.
번호판 없는 이륜차는 자주 단속된다. 교통경찰이 불러 세우지만, 달리 이동 수단이 없는 사연을 듣고는 경찰도 계도나 주의 조치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2. “엄마 나 왜 등록번호 없어”
번호판 없는 이륜차처럼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나연이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하고, 한국 노래를 부르는 나연이에게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엄마 M이 베트남 사람이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 국적을 얻을 순 있다. 베트남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고 해당 지역 출입국관리소에 외국인 등록을 하면 된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는 것은 출국을 뜻하며, ‘불법체류’에 대한 과태료 3백만 원을 내야 한다. (자녀 출생일로부터 30일 기간 내에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기간 초과에 따른 과태료도 존재한다. ― 편집자 주) 나연이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엄마가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베트남 국적을 얻으려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과태료를 내고서라도 출생신고를 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엄마는 사출공장에서 일하면서 175만 원 정도 번다. 비자가 없어 일하지 못할 때도 있어, 월세 35만 원을 내지 못해 6개월 이상 밀린 적도 있다. 비자 없고 국적 없는 모녀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 없어 한겨울에도 기름을 거의 때지 않고, 겉옷까지 입은 채 온 가족이 바싹 붙어 잔다. 의료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어, 아토피를 앓는 막내 하율이가 병원에 가서 연고 처방만 받아도 5-7만 원이 든다. 소위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지역아동센터에도 갈 수 없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녀야 하지만 보육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여느 한국 가정에 지원되는 어떤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는 가정의 엄마 M은 딸들의 출생신고에 필요한 돈을 모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자나 국적이 없어도 학령기 아동은 학교에 입학해 공부할 수 있다. 나연이도 2020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단짝 친구도 있고, 책을 읽고 그림 그리는 게 즐겁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고, 영어 수업을 힘들어하며 학교 생활한다.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생활은 좋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다. 친구들이 들고 다니는 손전화를 갖고 싶긴 하지만, 집에 있는 그림책을 읽거나 동생들이랑 놀면 된다. 아빠가 계시지 않지만,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오시는 엄마가 있다. 이만큼, 나연이는 행복했다.
행복한 나연이에게 제주도에 갈 기회가 왔다. 작년 5월이다. 이주민 지원 단체에서 다문화 가족을 위한 제주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나연이네 가족에게도 연락이 온 것이다. 친구들이 다녀와서 자랑하곤 하던 제주도에 갈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가 부풀어 올랐는데, 문제가 생겼다. 나연이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5월 가정의 달에 기획된 제주 여행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는 걸 알게 된 그때, 나연이는 어버이날 엄마에게 카드를 썼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제주도는 못가 아쉬(쉽)지만
다음 여행에는 가고 싶어요.
등록번호가 무엇인지 알 필요 없는 아홉 살 아이의 글씨로 세 줄이 적힌 빨간 하트. 상처 입은 자신의 작은 빨간 심장 위에 “엄마 사랑해요”라고 먼저 쓴 한 줄이 아프다. 겨울이면 조금 춥고, 손전화는 없어도 동생들이 있고, 아빠는 없어도 엄마가 있어 괜찮은 나연이지만, 등록번호가 없을 땐 뭘로 대신해야 할지, 등록번호가 없으면 왜 비행기를 탈 수 없는지 모른다.
현대 문명은 숫자로 구축된다. 0과 1 숫자 두 개만 없어지면 문명은 붕괴될 것이다. 자연과 문명은 숫자의 유무로 구별된다. 문명에 길들여져 자연에선 무능력한 게 현대인이라, 문명을 벗어나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공중파에 소개되기도 한다. 그런 자연인에게도 등록번호가 있다. 문명을 구축하는 숫자는 문명을 떠나려는 자연인이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한 번 새겨진 숫자는 끝까지 그 사람을 기억해준다. 문명을 실컷 살다가 중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 어떻게든 문명을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자연인마저, 등록번호가 기억해주는데,
이제 열 살배기, 이 세상에서 무한 보호를 받아야 할 아이에게 등록번호가 없다. 거대한 현대 문명은 숫자 없이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데, 열 살배기 아이는 자신을 규정해주는 숫자 없이 어떻게 이 사회를 살아가야 할까.
올해 초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 아동이 체류비자를 얻을 수 있는 자격을 완화하기로 했다. 국내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국적취득이 불가능한 아동은 15년이 지나야 체류비자를 받을 수 있었는데, 15년을 6~7년으로 줄여,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미등록 아동에게 체류비자를 준다는 내용이다(2025년 3월까지 한시적 시행). 체류비자가 없어도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건 현재도 가능하다. 보도자료 내용을 M에게 설명해주며 대단치 않은 조치라고 말했더니, M은 반색한다. “나 왜 등록번호 없어?”라고 묻던 나연이에게 해줄 말이 생긴 것이다. 말 그대로 체류비자일 뿐 실생활에 별다른 혜택이 있는 건 아닌데, 엄마 M이 반색하며 기대하는 이유는 체류비자엔 등록번호가 적히기 때문이다.
“나 왜 등록번호 없어?”라는 아이의 물음에 엄마는 대답할 수 없었다. 국가만이 답할 수 있다. 문명국가에 태어난 누구에게나 있는 등록번호를 요구하는 아이에게 국가는 더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왜 엄마의 국적을 확인하고 엄마의 과실을 따지는가. 엄마가 누구인지,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묻기 전에 아이의 작고 빨간 심장을 보라. 저출생을 고민하는 대한민국이 영토 내에서 태어나고 한국어에 유창한 아이에게 주민등록번호를 주지 않는 건 모순 아닌가.
사람의 존재를 숫자로 기억하고 확인하는 것에 저항하고 싶을 때가 있다. 주민등록번호에 규정돼있는 생일과 성별과 출신지가 낙인이 될 수 있어서다. 현대사회에 살면서, 의료 복지 등 혜택을 받기 위해 부득이 주민등록번호를 외우는 일이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쓸데없는 예민함일 수 있지만, 나는 그렇다. 그런데 말이다. “엄마, 나 왜 등록번호 없어?”라고 묻는 나연이의 목소리 때문에, 요새 민망하다. 내가 열 살 아이보다 너무 많은 걸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3. “나무젓가락으로 종아리 부위를 각각 1회씩 때렸다”
등록번호가 없어 제주도에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없었던 작년 5월, 그래서 작고 빨간 심장에 복잡한 생각이 깃들자마자, 나연, 시은, 하율이는 엄마로부터 분리되었다. 김포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엄마를 아동 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조사 후 검찰로 송치했다. 경찰의 검찰 송치 이유다.
피의자는 2021. 5. 12. 저녁시경에 … 피해아동들을 훈육한다는 이유로 요리용 나무젓가락(길이 30cm)으로 피해아동들의 종아리 부위를 각각 1회씩 때렸다. … 이로써 … 피해아동들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행위를 하였다.
1년 동안 토요일마다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환했고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했다.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눌 때, 움츠러들거나 은밀한 일을 감추는 낌새도 없었다. 함께했던 그림책 선생님도 아이들에게서 어떤 폭력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의아해한다. 이렇게 갑자기 아이들은 인사도 못 한 채 책방에 올 수 없게 되었고, 엄마 M은 아동 폭력의 피의자가 됐다.
경찰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신고를 받아 작성한 송치 이유서를 아무리 읽고 읽어도 이상하다. 30cm 나무젓가락으로 종아리를 1회 때린 것을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학대행위로 해석했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진단서나 전문가 소견서를 요청하지 않은 채 법원에 기소한 검찰이 이상하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라는 공적 기관이 신고한 까닭에 경찰과 검찰이 법원에 떠넘겨버린 것일까.
M이 미등록 이주민이 아니라면, M이 미혼모가 아니라면, 나무젓가락으로 종아리를 1회 때린 것으로 아이들과 분리되었을까. 미등록 이주민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작동되지 않은 채, 나무젓가락으로 종아리를 1회 폭행한 사건이 순전히 법에 의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경찰로, 경찰에서 검찰로, 검찰에서 법원으로 보내졌을까.
M에 의하면 2021년 5월 12일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중, 아이들이 싸워서 나무젓가락을 흔들며 아이들을 혼냈다고 한다. 이런 진술을 무시하고, M이 종아리를 나무젓가락으로 1회 때렸다는 게 사실이며 학대행위라 치자.
이 정도 폭력 때문에 엄마와 아이들이 1년이 다 차도록 분리되어야 하는 건 엄마와 아이들을 향한 더 큰 폭력 아닌가? 이 사건 전에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지역아동센터에서 받아주지 않았던 건 아동 유기 아닌가? 이 사건 전에 엄마 혼자 아이 셋을 키우는 가정에 어떤 경제적 지원도 없었던 건 훨씬 심각한 아동 학대 아닌가? 이 사건 전에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탈 수 있었던 비행기를 나연이가 탈 수 없었던 건 정서 발달을 해치는 폭력 아닌가? 나무젓가락으로 종아리를 1회 맞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폭력과 학대를 M과 나연, 시은, 하율이가 받아왔는데,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가?
법원 판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간, 법관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이 기도한다. 내 기도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고된 공장 노동의 시간이 끝나도 아이들 없는 집에서 잠들지 못해 울며 아침을 맞는 엄마 M과, 왜 엄마와 분리되어야 하는지, 왜 등록번호가 없는지 생각이 많아진 세 아이에게 쌓여왔을 보이지 않는 폭력에 분노하는 게 내 기도다. 하나님에게 신고한다. 외국인 나그네 신세였던 사람들의 하나님, 외국인 나그네를 본토인처럼 여기라는 하나님에게 신고한다.
너희와 함께 사는 그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 살 때에는, 외국인 나그네 신세였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레 19:34, 새번역)
김영준
김포에 산다. 민들레교회와 협동조합 달팽이학교가 모이는 공간 ‘민들레와달팽이’를 지킨다. 교회 목사, 협동조합 조합원이다. 2023년 5월에 나연, 시은, 하율이와 제주도 갈 방법을 궁리 중이다.
첫댓글 마음이 아프네요ㅜ
차별이 없어야하는데요ㅜ
제주도 여행 꼭 할 수 있기를..
주민등록번호가 주어지길, ,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