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0일전쯤이었을까.
우연히 대한바둑협회 윤광선 주임을 만났다. 협회가 한국기원 4층에 있을 때는 오며가며 쉽게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올림픽공원으로 이사를 간 다음부터는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던 친구다.
“유 기자님, 28일에 함양에서 노사초배 하는데 별일 없으면 같이 가시지요.”
벌써 그렇게 됐나. 노사초배는 항상 8월 마지막 주에 열린다. 첫 대회가 열렸던 2008년 내려갔을 때 그곳 관계자들과 그렇게 정했었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약속은 계속 지켜지고 있구나….’
▲ 여성 단체부의 대국 모습. 상금은 적지만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부문이다.
특별한 일도 없었기에 “그러지 머”라고 대답하고 같이 가기로 했다. 사무실을 이전한 대한바둑협회는 올림픽공원역 내 컨벤션센터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마침 거기서 서울에서 출발하는 참가자들을 위해 차량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듣고 토요일 오전 9시, 그곳으로 향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잔뜩 찌푸린 날씨.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로 나왔더니 버스 2대에 사람들이 꽉 차 있다. 개인적으로 출발한 사람들도 있을 터이니 서울에서만 10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하는 셈이다.
함양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경상남도다.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대전까지 내려가다가 대전에서 진주로 가는 대진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다시 한 시간 여를 달리면 지리산을 품고 있는 함양군이 모습을 드러낸다.
함양은 남동쪽으로 산청군, 북동쪽으로 거창군, 북서쪽으로 전라북도 장수군, 남쪽으로 하동군, 남서쪽으로 전라북도 남원시와 접하고 있는데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바로 함양군에 속해있다.
▲ 전국 최고의 대회를 만들 테니 내년에도 꼭 함양을 찾아달라던 이철우 함양 군수.
그동안은 신라 때 함양태수였던 최치원 선생이 조성했다는 상림(上林)과 조선시대 정여창 고택 등이 볼거리였지만, 2년 전 함양군에서 이곳 출신 노사초(盧史楚) 국수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비도 세우고, 선생의 이름을 딴 바둑대회도 창설하면서 새로운 문화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전국 아마바둑대회는 보통 토요일 오후 2시에 열린다. 7시쯤까지 예선을 마치고 다음날인 일요일에 본선 경기를 갖는다. 조금 일찍 도착해 대회장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국장을 꽉 채우고 있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인데 참 많이도 모였다.
함양은 인구 3명만의 군(郡)이다. 아무리 노사초 국수의 생가가 있는 고장이라 해도 이런 군에서 전국바둑대회를 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관(官)의 도움이 절실한데 그런 면에서 이철우 함양 군수는 바둑계로서는 고마운 존재다.
이 군수는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이런 훌륭한 대회가 함양군에서 치러진다니 오히려 영광”이라며 “꼭 1등가는 대회를 만들 테니 내년에도 후년에도 함양군을 찾아 달라”고 격려했다.
▲ 오랜만에 역전의 노장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황원순 아마5단, 김동근 아마7단, 김동섭 아마7단.
▲ 프로기사들도 함양을 많이 찾았다. 백성호, 서능욱, 김원, 김찬우 사범.
제3회 노사초배는 아마최강부, 단체전, 전국여성부, 중·고등부, 초등최강부, 경남일반부, 지리부(경남초등4~6년), 덕유부(경남초등 유치~3년)의 8개 부문으로 나뉘어 열렸다.
이중 눈여겨보아야 할 부문이 중고등부다. 불과 2~3년전 까지만 해도 바둑대회에서 중고등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개 바둑은 초등학교 때 배운 후, 학업 때문에 청소년기에는 잘 두지 않았다. 이러니 대학바둑도 함께 죽을 수밖에 없었고 점차 젊은 사람들이 바둑을 두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바둑대회에서 입상하면 대학 입학시 가산점도 부여되면서 점점 참가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바둑보급의 활성화라는 정책적인 차원에서 장려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생각된다.
둘째 날인 일요일은 첫날 참가자 중 꼭 절반이 줄어 대회장은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제 입상권이 눈앞에 보이는 만큼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그렇다면 아마추어 바둑대회 중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부문은 어디일까? 승부세계에서 어딘들 덜할까마는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전국여성부가 아닐까 싶다.
전국 여성부는 대개 한국여성바둑연맹 소속 회원들이 주로 참가하는데, 지역 별로 5명이 한 팀을 이뤄 단체전으로 치러진다. 크게는 같은 회원이고 또 자주 봐서 친숙한 사이이기도 하지만, 막상 대회가 시작되면 치열하다 못해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 현재 지곡면 개평리 노사초 국수의 생가는 노 국수의 며느리 이정호 할머니(89)가 지키고 있다. 좌우는 노사초 국수의 손자들이다.
올해도 전통의 강호 부산 A팀과 군포 팀이 결승에서 부딪쳤는데 부산 팀이 4-1로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부산 A팀은 열 번 대회가 열리면 7번은 우승을 차지하는 막강 전력의 팀. 구성원 전체가 기원 3급 기량을 자랑할 정도로 탄탄한 팀웍이 강점이다.
한편 관심을 모은 최강부 결승전은 지난해에 이어 연구생 출신의 이상헌 군이 다시한번 우승패를 안았다. 대회 2연패.
우승을 차지한 이 군은 “운이 많이 따랐다. 연구생을 그만두면 아무래도 실전 경험이 부족해진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전국대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입상이 목표가 아니라 실전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대회 참가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함양은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가기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바둑이라는 게임을 매개로 이번 대회에는 전국에서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양을 찾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들의 이름을 전부 소개하고 싶지만, 각부 16명의 입상자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운무에 휩싸인 지리산이 특히 기억에 남는 대회였다.
제3회 노사초배 전국아마바둑대회 각부 입상자 명단
아마 최강부
1위 : 이상헌
2위 : 이호승
공동3위 : 우원제, 박영롱
장려 : 박창명, 홍근영, 송홍석, 최우수
감투 : 한창한, 김대혁, 박영운, 유제성, 신진서, 정찬호, 진승재, 이진우
경남 일반부
1위 : 이현승
2위 : 박지홍
공동3위 : 신홍
섭, 전문수
장려 : 박영렬, 여영조, 김주섭, 심재용
감투 : 이남일, 이영국, 김성일, 정효진, 강창대, 최병규, 서동훈, 윤형근
초등 최강부
1위 : 윤진성
2위 : 강충길
공동3위 : 장민석, 박정현
장려 : 정성우, 김진수, 우상범, 엄동건
감투 : 안도영, 석성민, 김지우, 한상조, 강재우, 남한솔, 최진원, 이덕형
중.고등부
1위 : 박태영
2위 : 윤영우
공동3위 : 임상규, 김경원
장려 : 강유승, 정용근, 이재정, 조민수
감투 : 백운기, 김영삼, 김현동, 장승리, 이효훈, 신영수, 박승덕, 이재원
여성 단체부
1위 : 부산A
2위 : 군포
공동3위 : 서울, 전주A
장려 : 안양B, 부산B, 부산D, 광주
감투 : 대구A, 대구B, 대구C, 전주B, 안양C, 안양A, 군포B, 부산C
단체부
1위 : 호빵이예술
2위 : 스마일
공동3위 : k2, 소풍
장려 : 산청기우회, 고양시A, 고양시B, 기당회
감투 : 광유회, 여수도원, 함양A, 안동이수기우회, 검은돌하얀돌, 왕박이, 고양시C, 전주
지리부
1위 : 이석호
2위 : 김예헌
공동3위 : 김진곤, 정현
장려 : 이준혁, 이수현, 이승현, 박근호
감투 : 변지석, 허재영, 박한진, 김세완, 이선호,박원범, 박원기, 변창혁
덕유부
1위 : 김재우,
2위 : 강주형
공동3위 : 최서진, 김시우
장려 : 최석민, 최연수, 최석원, 조인태
감투 : 문지성, 김명광, 신선웅, 조재혁, 김단영, 임채정, 천임성, 하재영
▲ 어린이들의 대국 자세와 눈매가 프로기사들 못지않게 날카롭다.
▲ 최치원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함양군 고운체육관. 유명한 상림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 3인 1조로 열린 단체부. 유독 여성 참가자들이 많이 보여 눈길을 끌었다.
▲ 대회장 앞의 간이 노점. 지방 아마대회에서는 낯익은 풍경이다.
▲ 아마 최강부 결승전. 이상헌(우측)과 이호승의 대국 장면.
▲ 단체부 우승을 차지한 ‘호빵이예술’ 팀. 죄측부터 배덕환, 송예슬, 김태현.
▲ 노사초 국수의 비는 생가가 내려다보이는 지곡면 개평리에 위치해 있다.
▲ 입상자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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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내년에는 꼭 구경 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