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늦은 한 끼를 먹기 위해 마실을 나갔고 장고 끝에 문어 짬뽕(15.000)을 선택했는데 별로여서 반주를 생략했어요. 복권을 2장 샀고 텀블러와 참치캔을 배낭에 집어 넣고 농협 김을 사야지 하면서 왕숙천 밤 산책을 시작했어요. 근데 왜 나는 텀블러 같은 물건을 보면 수집하고 싶은지 스스로도 의문입니다. pm9시가 되어가는 데도 사람들이 북적북적 합니다. 부부 커플은 집구석에 있지 왜 나와서 물을 흐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꼴 보기 싫어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헤겔 형님을 소환해 ‘타자의 부정성’을 듣고 있는데 흥미진진합니다.
-
다들 아시는 것처럼 헤겔은 목사 안수를 거절한 날라리 신자에요. 그의 '절대정신은 삼위일체 '성령'의 역할을 벤치마킹 하고 있습니다. 칸트의 초월적 이율배반이자 보편 법칙인 '정언명령'을 인간의 삶으로 끌어오려는 헤겔의 노력이 애처롭습니다. 헤겔의 절대정신은 성령의 '프뉴마'개념이에요. 헤겔의 역사관에 의하면 태초에 자기 안에 있던 본질이 창조를 시작하면서 본질 밖으로 나왔고(외화) 성령을 통해 신의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이 역사입니다.
-
이미 자유를 스스로 실현한 신이, 복귀하는 패턴으로 역사가 진행되면서 자유가 확장 되었고 신의 영역인 절대정신-절대지에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인간 제도의 끝이라고 말하는 부분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했어요. 좋아요. 바야흐로 이제 영의 시대인 '절대지'로 가는 겁니다. 철학에서 모든 현상(세계)은 가짜인데 영의 세계는 본질과 직통합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로고스를 통한 창조-십자가와 부활-그리고 재림만 남았습니다.
-
문제는 이 '이미와 아직(세상의 역사)' 사이에 '고난'이 있다는 겁니다. '이미와 아직'동안의 모순-불화-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파우스트에서 "너는 무엇이냐"는 물음에 메피스토펠레스가 "항상 악을 원하지만 도리어 선을 행하는 그 힘의 일부입니다"라고 답하는데, 자신을 '부정의 영'이라고 일컫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위약적으로 들리는 절묘한 이 대답은 역사 밖에서 나타나는 '정반합'의 소용돌이가 결국 절대정신을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 도식의 일부라는 헤겔적 사유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인간은 어리석은 작은 우주인 주제에 자칫 전체라고 생각한다"는 대사는 온갖의 비극이 난무하는 가운데 절대정신이 현현하는 이 장대한 드라마에서 도대체 나는 어디쯤 와 있는지 묻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심지어 내가 최종적으로 당도할 곳으로 가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황당한 망상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일이 잘 풀리면 '신의 뜻'이라 하고 더럽게 꼬이면 '신의 숨은 뜻'이라는 우스개가 있는데, 헤겔이 펼쳐 놓은 인류의 운명에 대한 이 진지한 각본이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것 같지 않고 바이든의 대가리에 없다면 도대체 왜 헤겔을 읽어야 할까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수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식, 민족적 관습을 어쩔 수 없이 비교하고 우열을 가릴 수밖에 없는 가치판단, 자본주의가 짜놓은 착취구조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갈등 등등 자유 의식의 확대로부터 오는 역기능(불만족) 가운데 불쌍한 우리들의 영은 잠시 동안이라도 헤겔이 필요할지 모르겠어요. 아, 인자가 머리 둘 곳이 없구나!
2024.8.7.wed. 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