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의 어떤 구청장은 자신의 홍보에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 구청에 가면 구청의 홍보영상에 구청장의 동정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자신에게 큰 마이너스가 될 것임을 금방 알 것 같은데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성경 말씀에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는데 요즘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도 자신이 했다고 과장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입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시장을 방문하고, 사람들하고 ‘즉석 만남이’라는 쇼를 하는 것도 눈에 거슬리고 국회의원 출마를 앞둔 사람들이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코빼기도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일 겁니다.
현장, 현장을 찾았다고 그게 서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고, 또 현장에 갔다고 해서 거기서 무엇을 얻겠습니까?
러시아의 표트르대제가 낙후된 러시아를 바꾸기 위해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한 얘기가 전하는데 그는 귀족이 아닌 노동자의 신분으로 여러 나라를 돌면서 기술을 배우고 정신을 배웠습니다. 현장에 한두 번 가서 큰 것을 찾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신임 장관은 현장부터 달려간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작년말 내정을 받자마자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을 찾았다.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시장 상인들과 현장 간담회를 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다. 신문 방송엔 '최상목 경제부총리 후보자, 민생 현장 행보'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신임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취임 이후 자동차 수출현장 방문에 이어 두번째 민생 행보로 경기도 고양시 경로당을 방문, 난방비 대책 이행 현황을 점검했다. 역시 언론엔 '안덕근 장관, 에너지복지 현장 방문해 난방비 지원 대책 이행실태 점검'이란 기사로 채워졌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도 부임하자마자 부산 자갈치 시장을 찾아 수산물 물가와 민생 상황을 점검했다.
호들갑을 떠는 장관들의 현장 방문은 국내 정치상황과 딴판인 북한의 김정은 행보와도 오버랩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닭공장 현지 지도에 딸 주애를 동반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뭐라고 했을까. 통일부는 "민생을 함께 챙기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추정된다"고 평가했다. 민생현장 챙기기라는 연출이 어쩌면 민주국가인 대한민국과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똑같이 나오는 것은 아이러니다.
독일에서 16년간 재임했던 메르켈 전 총리는 현직일 때 주말에 동네 슈퍼마켓에서 혼자 카트를 끌고 장을 봤다. 이런 장면을 누가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려 화제가 됐었다.
물가 관련 장관이 장바구니 물가를 살피려면 남몰래 주말에 부인과 함께 장을 보면 된다. 복지 장관이 현장의 애로상황을 들어보려면 장관 신분을 굳이 드러내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들러봐야 한다. 실제로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서울시내 공공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관들이 암행어사처럼 주말 잠행을 하지 않고, 언론에 알려가며 행차 쇼를 벌이는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내각과 대통령실 수석이 관료로 많이 채워져서 답답해한다고 전해진다. 이들 '늘공' 출신들의 주특기는 보고서 위주의 업무능력과 자기부처 챙기기다.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낼 수 없는 구조적 핸디캡이다. 이럴수록 윤 대통령은 현장을 강조하고 부처 칸막이를 없애라고 일갈한다.
대통령의 실망과 주문이 제대로 먹히려면 각료는 뻔한 보여주기식 현장이 아닌 설득의 현장으로 뛰어가야 한다.
의대정원 확대를 외치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계 현장에서 의사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평검사들과 테이블에 마주해 '맞짱 설전'을 벌였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을 개혁하기 위해 관료나 동료 정치인 뒤에 숨지 않고, 노동단체 대표들을 대통령궁에 불러들여 8시간이나 직접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대국민 담화를 하고 전국순회 정책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우리는 어떤가?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책임진 장관들은 기득권 혁파를 위한 설득의 현장을 만들지 않는다. 시민안전의 현장을 챙겨야 할 서울 용산구청장은 재작년 이태원 참사 때 자신의 집 근처를 둘러보곤 '현장'을 점검했다고 거짓말했다가 들통 났다.
요즘처럼 온라인 실시간 정보가 발달한 시대에 장관의 또 다른 현장은 여론이 가감 없이 전달되는 기자회견장이어야 한다. 기자와 전문가를 수시로 만나 여론을 듣고 궁금증에 답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각계 인사들과 '소맥 폭탄주'를 곁들이며 소탈하게 소통한다고 한다. 대통령도 밑바닥 민심을 훑으려면 소통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현장을 강조하는 말로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작금의 떠벌리는 각료의 현장 행차는 우문현답이 아니라 현문우답(賢問愚答)일 뿐이다.
대통령이 피부에 와 닿는 성과를 내기 위해 현장에 가라고 했는데, 관료들은 개혁을 위한 설득의 현장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언론플레이 현장에만 달려가기 때문이다. 안 가는 것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이런 행차를 준비하는 아랫사람들의 월급만 국민 혈세로 빠져나가서다.>디지털타임스. 정구학 이사겸 편집국장
출처 : 디지털타임스. 오피니언 정구학 칼럼, 번지수 헛짚은 장관들의 현장 행차
암행어사는 암행을 하기 때문에 민심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장관이 수행원과 시장 한 바퀴 돈다고 해서 무슨 민심을 보겠습니까?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은 태풍 경보가 내린 상황에서 한 밤에 작업복에 장화를 신고 대책본부를 찾아가 상황을 점검하고 대원들을 위로했다는 얘기는 이제 옛날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여기에 고인이 되신 육영수 여사님의 얘기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1968년 7월 3일 밤.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물난리가 났다.
잠원동 주민 300여 명이 신동초등학교에 긴급 대피해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폭우 속에 황토물 교정을 철벅철벅 걸어오고 있었다. “이 밤중에 누굴까?” 그는 교사 안으로 들어오며 머리를 감쌌던 흠뻑 젖은 수건을 벗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사님 아냐?” 누군가 놀라 소리쳤다. 육영수 여사는 “여러분 얼마나 고생 많으세요”라고 인사한 뒤 가져온 구호 물품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나룻배를 타고, 발목까지 빠지는 흙탕길을 고무신 차림으로 걸어서 그곳까지 온 것이다.>
이런 모습이 현장 방문입니다.
손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본다는 얘기,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