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바다기차 타고 선녀 같은 엄마랑
<고령화 가족>의 용유도 선녀바위해변
복잡한 가족이다. 이상한 가족인가. 아무튼 보통 가족은 아니다. <고령화 가족>은 천명관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중학생부터 할머니까지 평균 연령 47세의 좌충우돌 가족 이야기다. 선녀바위해변은 그들이 함께 떠난 첫 나들이 장소다. 바다도 보고 조개도 구워 먹고 소주도 한잔? 주말에는 서해바다열차를 이용하면 좋다.
[왼쪽/오른쪽]선녀바위해변은 넓지 않은 모래사장이지만 엄마처럼 포근하게 바다를 품어 안는다. / 선녀바위해변에서 바라본 인근 상점과 주택가
용유도 주변 섬 여행
또 고기를 굽는다. 백수건달 큰아들 한모, 실패한 영화감독 인모, 이혼을 결심한 미연과 그녀의 중학생 딸 민경. 69세의 엄마는 다섯 식구가 모여 산 이후로 매일 고기를 굽는다. 살짝 소주 한잔도 곁들였나. 큰아들 한모가 아련한 옛이야기 한 자락을 꺼낸다. 어릴 적 창경원 가족 나들이의 추억이다. 벚꽃은 날리고 고기는 익어가고, 막내 딸 미연은 살랑거리며 노래하고, 둘째 인모는 책이나 읽고 자빠졌던(?), 또 분위기가 좋아 아버지는 소주를 한잔 걸치던 옛날이다. 지금은 고령화가 된 가족의 단란한 한때. 그때 여린 미소를 지으며 고기만 굽던 엄마가 뜬금없이 제안한다.
“가자, 야유회. 엄마도 가고 싶어.”
그래서 떠난다. 미연의 새 남자친구까지 6명이 좁은 차 안에 어깨를 좁힌 채 구겨져 앉아 바다로 향한다. 어디로?
“을왕리해수욕장이요.”
을왕리해수욕장은 영종도 서쪽 끝자락이다.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며 선녀바위해수욕장, 을왕리해수욕장, 왕산해수욕장이 차례로 이어진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무의도다. 지난해 여름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을 이곳에 촬영하기도 했다. 무의도는 북쪽으로 실미도, 남쪽으로 소무의도가 육지처럼 이어진다. 소무의도는 작을 ‘소(小)’가 붙었지만 그 의미에 가둘 수는 없다. 오래전부터 무의도의 중심이었고, 3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 큰 섬에 해당하는 무의도는 조선말까지는 목장이었다. 소무의도와 무의도 사이에는 2011년에 다리가 놓여 이제는 걸어서 오간다.
소무의도를 한 바퀴 도는 무의바다 누리길도 각광받는다. 총길이 약 2.5km로 거북이걸음으로 걸어도 1시간이면 족하다. 자동차 엔진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섬을 천천히 산책하듯 거니는 즐거움이 있다. 섬의 정상인 안산의 정자에서 발아래 바다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낭만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도 볼 수 있다. 육지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다. 아직 입소문이 많이 나지 않아 조금은 한가한 섬 여행을 누린다.
반면 무의도 북쪽의 실미도는 영화 제목만큼이나 유명하다. 노송이 어우러진 실미해변은 여름을 나기에 안성맞춤이다. 무이도 본섬의 하나개해변과 쌍벽을 이룬다. 무이도에는 호룡곡산도 명소다. 가벼운 산행으로 너른 경치를 품을 수 있다. 영종도를 사이에 두고 무이도 반대편 북쪽에는 모도, 신도, 시도 등 3개의 섬이 있다. 다리로 이어져 일명 삼형제섬이다. <슬픈 연가>, <풀하우스> 등 드라마 촬영 세트가 있다. 제일 끝섬 모도에는 배미꾸미 조각공원이 흥미롭다. 야릇한 조각품들이 해변 가장자리를 물들인다. 영종도의 해변과 더불어 하루 나들이로 다녀오기에 알맞은 섬들이다.
[왼쪽/오른쪽]을왕리나 왕산과 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해변 끝자락의 선녀바위 / 선녀가 바위를 꼭 끌어안은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선녀바위 뒤편에서 바라보면 한 마리 곰처럼 보인다.
바위를 끌어안은 선녀의 사랑
영종도에서는 용유 해안을 따라 산책길도 열렸다. 남쪽 거잠포에서 마시안해변을 지나 선녀바위와 을왕리, 왕산해변까지 이어진다. 거잠포에서 마시안해변까지가 1시간이 걸리는 1코스, 마시안에서 선녀바위해변까지가 2시간 거리의 2코스, 선녀바위해변에서 을왕리 지나 왕산해변까지가 3시간이 소요되는 3코스다. 여름 더위가 가시는 가을날에 물때를 맞춰 찾아 걸음을 내봄직하다.
이들 해변 가운데 <고령화 가족>이 찾은 곳은 선녀바위해변의 겨울 바다다. 극중에서 미연의 남자친구가 자신 있게 ‘을왕리’라고 말했지만 그가 길치인 탓인지 가족이 도착한 모래사장 끝자락에는 선녀바위의 형상이 또렷하게 잡힌다. 하기야 그 또한 을왕리(동)에 속하기는 하겠다. 가족 가운데 바다를 향해 가장 먼저 달리는 이는 큰아들 한모. 천진난만한 44세다. 하지만 정작 나들이를 제안한 엄마의 첫마디는 아주 현실적이다.
“춥다. 그냥 가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녀딸 민경이 어른다. 할머니 손을 이끌고 기어이 백사장으로 향한다. 그제야 나머지 가족들도 바다 가까이로 느린 걸음을 옮긴다. 한모와 미연의 남자친구가 씨름을 하고, 그러다 온 가족이 한데 엉켜 모래 위를 뒹군다. 모처럼 시원한 웃음이 가득하다. 고령화 가족의 행복한 시간이다. 그럴 때는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다. 휴대전화로 가족사진도 찍는다. 모두가 밝게 웃는다. 먼발치에서는 선녀바위가 어른댄다. 밀물이라 갯바위가 사라져 바다 위에 선녀바위 홀로 외롭다.
선녀바위는 멀리서 보면 그냥 솟대처럼 서 있는 바위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이름을 닮은 형상이 드러난다.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다 갔다는 바위다. 다른 전설도 있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쫓겨난 선녀가 바위 총각을 만나 결혼했다. 1년 후에 옥황상제가 다시 선녀를 불렀으나 거역하자 벼락을 내렸다. 두 사람은 죽어도 같이 죽겠다며 서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결국 선 채로 한몸의 바위가 됐다는 이야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녀가 바위를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선녀바위가 연인이나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해준다는 말도 있다.
가족인들 다를까. 실제로 선녀바위해변은 조수의 차가 커 갯벌체험이 가능하다. 가족 나들이로 찾는 이가 많다. 썰물 때면 갯바위들이 무성히 드러난다. 마치 선녀와 바위의 자손인 양 주변을 감싸 안는다. 동그랗게 바다를 안은 백사장도 곱다. 여유가 있다면 조금 늦게까지 머물러도 좋다. 연인들이 자주 찾는 이유도 서울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고, 거기에 더해 아름다운 서해의 낙조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구준표(이민호 분)가 금잔디(구혜선 분)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첫 키스를 한 장소도, 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에서 몽희(한지혜 분)가 옛 남자친구 상철(김다현 분)과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도, 극중에서는 아름다운 연애의 배경이 되는 바다다.
[왼쪽/오른쪽]가족 단위로 갯벌체험을 오는 사람들이 많다. / <고령화 가족>의 한 장면처럼 바다를 향해 걷는 가족
기차 타고 바다로!
올해 8월 말까지는 접근성도 한결 좋다. 주말마다 서해바다열차가 다니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내려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서해바다열차는 인천국제공항역에서 한 정거장을 더 달려가 용유임시역에서 정차한다. 서울역에서 1시간 10분 거리다. 홍대입구역이나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김포공항역 등에서도 탈 수 있다. 교통도 편리하지만 너른 창밖으로 보이는 인천 앞바다 풍경이 장관이다.
갈매기 떼는 해변에서 또는 하늘에서 바다의 정취를 더한다. [왼쪽/오른쪽]하늘을 머금은 백사장의 전경이 아름답다. / 주말에 운영하는 서해바다열차는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용유임시역 인근에는 잠진도선착장이 있다. 여기서 무의도 가는 배편이 출발한다. 마시안해변도 지척이다. 넓은 백사장과 해송이 어우러진 바다다. 갯벌체험은 물론 가벼운 레저도 즐길 수 있다. 마시안해변에서 북쪽으로 용유도해변과 선녀바위해변이 이어진다. 약 7km 거리로 202번 버스가 오간다.
을왕리에서는 조개구이가 빠질 수 없는 별미다. 일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와 입맛을 돋운다. <고령화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먹고 마시기 좋아하는 가족이다. 하지만 즐거운 야유회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결국 술이게 마련. 오빠 뒷바라지를 위해 희생한 미연의 푸념이 인모를 향한다. 싸움은 기어이 아무 상관없는 옆 테이블로 번진다. 그 순간 고령화 가족이 다시 똘똘 뭉친다. 미연과 다투던 인모도 가족애를 발휘한다. 그가 던진 한마디가 괜히 흐뭇한 웃음을 자아낸다.
“남의 집 귀한 동생을….”
마지막 장면은 다시 겨울 바다다. 인모와 엄마가 나란하다. 엄마가 묻고 답한다.
“넌 지금까지 살며 제일 행복했던 때가 언제니? 나는? 글쎄. 너무 많아 꼭 짚어 말할 수가 없네.”
아마도 그녀의 기억 속에는 선녀바위해변 나들이도 남아 있지 않았을까. 가끔씩 휴대전화에 남겨진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유쾌한 추억을 되새김질했겠지. 그녀의 말처럼 가족이란 게 별건가. 한데 모여서 한데 밥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울고 웃으면 그게 가족이지. 아마도 바위를 꼭 끌어안았던 선녀는 사람이 되고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선녀바위와 모래사장 사이에는 갯바위가 무리지어 자리한다. [왼쪽/오른쪽]을왕리해변 쪽으로 노을도 일품이지만 겹겹이 섬 그림자도 곱다. / 한가로이 날갯짓하는 갈매기 떼
여행정보
- 1.찾아가는길
- * 자가운전
인천국제공항 → 공항로424길 → 영종해안남로321번길 → 영종해안남로 → 공항서로 → 용유로 → 남북로 → 선녀바위로 → 선녀바위해변
* 대중교통
평일 : 공항철도 인천공항역에서 하차 후 3층 2번 승강장에서 302번 버스로 환승, 선녀바위해변 하차
주말 :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서해바다열차를 타고 용유임시역에서 하차. 202번 버스로 환승 후 선녀바위해변 하차
- 2.주변 음식점
- 조개마당 : 조개구이 / 인천시 중구 용유서로423번길 37 / 032-746-2357
카페오라 : 커피․파스타 / 인천시 중구 용유서로 380 / 032-752-0888
자매조개구이 : 조개구이 / 인천시 중구 큰무리로 7 / 032-746-4948
- 3.숙소
- 골든스카이리조트 : 인천시 중구 용유서로 379 / 032-745-5000 / korean.visitkorea.or.kr
인천프린스관광호텔 : 인천시 중구 용유서로172번길 22 / 032-751-8886 / korean.visitkorea.or.kr
베스트웨스턴 프리미어 인천 에어포트호텔 : 인천시 중구 공항로424번길 48-27 / 032-743-1000 / korean.visitkore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