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굽에 내린 재앙들
출 8: 1-32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보내라는 명령을 거부한 바로에게 하나님께서는 나일 강이 피가 되게 하는 첫 번째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은 바로와 모든 애굽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일 강은 애굽 사람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섬기는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일 강은 애굽 사람들에게 풍부한 식수를 제공해 주었고, 나일 강 하류의 비옥한 삼각주는 모든 애굽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만한 풍부한 식량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일 강이야말로 자신들에게 모든 풍요와 은혜를 가져다주는 최고의 신이라고 믿었고, 따라서 그런 나일 강이 있는 한 하나님도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일 강을 먼저 치신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순식간에 피로 변하여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서 애굽 사람들이 물을 마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피로 변한 나일 강은 곧 죽음의 강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명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유명한 교부인 터툴리안은 신앙생활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는 언제나 물속에 있어야 살 수 있으며 활동도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 그렇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심령은 절대로 사는 법이 없는 줄 알아서 늘 주님 안에서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애굽의 모든 하수가 피로 변하여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는데도 강퍅한 바로는 그 일에 관념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계속해서 재앙을 내리시게 됩니다.
2. 개구리 재앙
5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론이 팔을 애굽의 물들 위에 펴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바로의 궁궐과 그의 침실과 침상 위에와 신하들과 백성들의 화덕과 떡 반죽 그릇에까지 가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개구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개구리와는 다른 특수한 종류의 개구리로서 두꺼비와 생김새는 비슷하나 두꺼비보다는 조금 작은 개구리를 가리킵니다. 이 개구리들은 뛰어 다니기보다는 주로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소리를 냈으며 나일 강이 끝나는 늪지대나 그 주변의 웅덩이 등지에서 많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일 강이 빠지기 시작하는 12월경부터 나일 강변의 비옥한 토양 위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인들은 이 비옥한 옥토 위로 무수하게 올라오는 개구리들을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개구리 모양의 머리를 가진 여신을 숭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애굽인들 사이에 신성하게 여겨졌던 개구리들을 오히려 고민거리와 저주거리로 만들어 애굽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신을 경멸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개구리 재앙은 나일 강이 피로 변한 것만큼이나 애굽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재앙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믿었던 개구리가 오히려 자신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게 되었으니 어찌 충격적이지 않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한, 인간이 누리는 풍요한 것들은 오히려 인간을 멸망으로 이끄는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십시오. 눈부신 과학과 산업의 발전은 인간에게 엄청난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그 물질적 풍요와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즉 인간들은 하나님 대신 그들에게 물질적 풍요와 편안함을 가져다 준 과학을 자신들의 신으로 숭배하며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과학의 발전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의 발전으로 이어져서 두 차례의 세계 대전뿐만 아니라,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통해 파괴와 죽음의 비극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지구 곳곳에 존재하는 핵무기는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질의 풍요는 사람들로 하여금 물질 만능주의와 쾌락 지상주의를 신봉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인간 사회는 과거의 사랑과 따듯한 인간성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물질을 얻기 위해 범죄를 서슴지 않는가 하면,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도덕 질서를 쉽게 파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인간이 그토록 갈망하고 추구하던 물질의 풍요와 과학의 발전은 오히려 인간에게 재앙을 자져다 주었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인간이 가장 좋아하고 풍성하게 누리던 것을 통해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곧 물질이나 명예나 지식이나 건강이나 사랑하는 사람 등은 오히려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가는 재앙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서, 심판이 아니라 지금의 누리는 것에 더 풍족히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개구리 재앙을 견디지 못한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하나님께 구하여 개구리를 자신들에게서 떠나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모세가 바로에게 어느 때에 개구리를 하수로 돌려보내기를 원하느냐고 묻자 바로는 ‘내일’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정말 어리석고 미련한 바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는 진실이든 아니든 그토록 강퍅했던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려보내기를 결심할 만큼 개구리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장이라도 모세에게 하나님께 청하여 개구리 재앙을 그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바로는 왜 지금 당장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내일이라고 하였을까요? 그것은 혹시라도 밤사이에 자연적으로 개구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한 가지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뒤로 미룬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바로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그만큼 고통의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며 온갖 요행을 구하고 그 말씀에 대한 실천 시기를 뒤로 미루게 되면, 말씀을 순종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로 인해 고통만 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사람의 가장 지혜로운 행동은 하루라도 빨리 아니 말씀을 듣는 순간 곧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간증들을 통해 제멋대로 살다가 육체적인 질병에 시달리거나 재물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의 고백을 종종 듣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그런 고난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순간 순종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가장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혹시 어리석은 바로처럼 어떻게 해서라도 그에 대한 순종을 뒤로 미루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에게 고통만 가져다 줄 뿐입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고난을 당치 않고 형통한 삶을 사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 재앙
개구리 재앙을 당하여도 굴복하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재앙을 내리게 되었으니 곧 ‘이’ 재앙입니다. ‘이’ 재앙은 이전의 ‘피 재앙’이나 ‘개구리 재앙’이 사전에 바로에게 경고되었던 것과 달리, 아무런 경고 없이 바로 단행되었습니다. 이는 바로와 애굽인들이 모세와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를 크게 산 까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 됨과 어리석음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심지어는 땅의 티끌까지도 들어서 당신의 채찍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이’는 날개가 없는 곤충으로 다른 동물에 기생하여 피를 빨아먹고 삽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우리나라에도 과거에는 ‘이’가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이 ‘이’는 사람의 몸속에 기생하여 여러 무서운 질병의 매개체가 되었고 건강을 해치고 불쾌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음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가 오른 애굽의 사람과 생축들이 얼마나 괴로움을 당하였겠습니까?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굽 백성들이 심지어 말 못하는 짐승들까지 이런 고통을 당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애굽 왕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애굽 왕 바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애굽의 모든 백성들과 짐승들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는 죄를 짓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까지 고통을 당하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모든 인간이 왜 죽음과 질병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까? 바로 아담 한 사람의 죄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교만한 죄를 범함으로 이스라엘 땅에 온역이 내려 칠만 명의 백성이 죽음을 당하였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한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과 그가 속한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볼 수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그런데도 우리가 함부로 죄를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나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남편, 자녀들, 부모님이 고통을 당하고, 내가 다니는 직장이나 내가 섬기는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쉽게 죄를 지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을 유혹할 때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내가 지금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죄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치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개구리 재앙에서 또 한 가지 깨닫게 되는 교훈은 구원은 지식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술객들은 바로에게 아론이 지팡이를 쳐서 티끌을 이로 만든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세 번째의 재앙을 통해 애굽의 술객들은 마침내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성경 어디를 보아도 술객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의 백성이 되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애굽의 술객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알기는 하였으면서도, 정작 권능의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애굽이 멸망할 때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해 안다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술객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서 알고 인정하게는 되었으나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이런 애굽의 술객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주일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그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으며 진정으로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은 정신적인 스승이며 교회는 도덕적인 수양을 쌓는 곳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도 그들과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여러분의 창조주와 구원주로 고백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한다면, 아무리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교회 집회에 아무리 열심히 참석한다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참된 신앙의 고백이 없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믿음의 고백을 드림으로 구원의 은총에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4. 파리 재앙
애굽인들은 태양신을 창조신으로 믿고 그 태양신의 머리를 파리 모양으로 만들었음으로 파리를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에도 굴복하지 않는 바로와 애굽인들에게 이번에는 파리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파리는 개파리로서 사람과 짐승의 피를 빨아 먹으며 병원균을 옮기는 전염병의 매개물로서 피해가 막심하고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첫째 재앙부터 셋째 재앙까지는 모두 물과 땅에서 이루어진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넷째 재앙인 파리 재앙은 공중에서 이루어지는 재앙이었습니다. 이는 횟수를 더해갈수록 재앙의 범위가 커져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해 마음이 강퍅해져 불순종을 거듭하는 바로와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점점 더해져 감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심판하시기 위해 애굽 땅에 파리 떼를 보내실 때,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은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악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자신의 택한 백성들은 멸망에 처하시지 않고 구원하실 것을 가르쳐 줍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때도 하나님의 사람 노아는 방주로 구원하여 주셨고,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유황불로 심판하실 때도 의인인 롯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심판의 상황에서도 결코 멸망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모든 죽은 자들까지 다 심판하시고 악한 자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 불 못에 던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던져진 자들은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고통에 처해지게 될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두려운 심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신판하실 때 자기 백성은 결코 심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때에 하나님은 심판받는 자들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별하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심으로, 죽음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축복된 삶을 누리도록 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인 이상 이런 특권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심판 날에 누릴 특권과 축복을 바라보며 결코 믿음을 잃지 않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은 연속되는 재앙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이고 임시방편적인 행동이었지,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파리 떼로 인한 재앙을 면할 수가 있었지만, 또 다시 다른 재앙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정한 회개가 없는 순간적이고 임시방편적인 고백은 결코 하나님의 진정한 용서를 얻을 수가 없고 따라서 고난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죄에 대해서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뜻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함으로 받게 되는 수치는 잠깐이지만, 그로 인해 받는 사죄의 은혜는 영원한 것입니다. 반면에 죄를 숨김으로 얻는 이익은 잠깐이나 그로 인해 받는 죄의 고통은 영원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해야 현명한 선택이 되겠습니까? 당연히 잠깐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죄를 고백함으로 영원한 사죄의 은혜를 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크고 무거운 죄를 지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할 준비를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십시오. 그 고백이 진실한 것이라면 그 순간 우리의 모든 죄는 깨끗이 사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받던 고통도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죄로 인한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우리 모두로 진실한 죄의 고백과 회개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영혼과 육신을 모두 살리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